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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영취산 흥국사

  충민사에서 흥국사로 목적지를 정하고 길을 떠났다. 흥국사는 이순신대교를 거쳐 광양으로 나가는 길목 부근에 있기도 하지만, 왜란 당시 충무공을 도와 승병 300여 명이 활동한 호국사찰이기에 여수 방문의 마지막 방문지로 정했었다. 흥국사 가는 길은 여수산업단지여서 엄청난 산업시설들이 광양까지 이어져 있었다. 여수산단의 큰길에서 동쪽의 안쪽으로 샛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진달래꽃으로 유명하다는 영취산이고, 그 초입에 흥국사가 있었다. 진달래 피는 계절에 찾아오면 아름다운 꽃들도 보고, 흥국사의 호국정신도 체득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을철에는 흥국사 꽃무릇이 유명하다고 한다. 사전 지식 없이 불쑥 들려 미련감을 남기고 가는 여행이어서 아쉽지만, 다음 여정의 여운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 그것도 여행의 묘미라 싶다. 

 

  일주문 앞 광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한 후, 부도들이 있는 언덕 아래를 지나 흥국사에 도달했는데, 날씨도 화창하고 춥지 않아 산책하는 즐거움이 컸다. 게다가 인적도 없어 절에서 기르는 강아지들이 낯선 여행객을 보고는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법왕문을 들어서니 절집을 통째로 해체하여 보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언젠가는 해야 하겠지만, 관광지에 갔을 때, 공사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실망감이 크다.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는 안타까움에다 현장 주변에 어지럽게 널린 자재들이 실망감을 주기 때문이다. 공사 현장의 주변의 금줄을 지나 흥국사 경내를 돌아보았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정리되지 않은 듯 산만한 절집들의 배치와 경내 깊숙이 까지 주차된 자동차들, 일부이긴 하지만 콘크리트로 목재처럼 지은 절집들이 전통적 아름다운 조화를 해치고 있었다. 절집의 배치도 남향이 아닌 서북향으로 보통의 상식에 벗어나 있었다. 왜란 때 충무공을 도왔다는 승병들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볼 수 없어 아쉬웠다.

 

  흥국사는 그 이름처럼 나라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마음과 관련 깊은 절이다. 사적기에 적힌 “국가의 부흥과 백성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경관이 좋은 택지를 택해서 가람을 창설했다”,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나라가 흥하면 이 절이 흥할 것이다” 등의 글은 절과 나라를 공동운명체로 여긴 흥국사의 창건 배경을 명확히 드러낸다.

 

흥국사는 고려 명종 25년(1195)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신정권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사회기강과 그러한 세속의 흐름에 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불교계에 대한 강한 반성을 담는 수행실천운동인 정혜결사를 떠올려도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는 흥국사의 탄생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흥국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군의 중심지이기도 했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흥국사를 중심으로 활약한 승군은 수군, 곧 해군이었다는 점이다. 영취산 너머 여수에 있던 충무공 이순신을 중심으로 한 전라좌수영이 호남 수군의 본영 역할을 했으므로, 흥국사의 의승수군(義僧水軍) 전력이 어떠했을지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흥국사의 의승수군 활동은 절에서 발견되는 각종 상량문과 비문에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승군은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직후에는 700명으로 조직되었다가 이듬해부터 300여 명 정도로 정비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1812년까지 해체되지 않고 있다가 구한말로 접어든 이후로 차츰 줄었다고 한다. 전쟁시 이들의 활동은 주로 지역 경계 근무, 조선 및 전함 수리, 군사작전 수행, 종이 만들기, 밥 짓기, 짚신 삼기 등이었으며, 전후에는 산성 축성과 보수·관리, 종이 만들기, 사원의 보수·관리 같은 일을 하였다. 흥국사는 임진왜란 당시 항전 활동이 두드러진 의승수군의 중심지였기에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매우 심해 전후에는 아예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흥국사는 임진왜란 이전에도 몽골 침입으로 완전 소실되었다가 명종 15년(1560) 법수 스님에 의해 크게 중창된 바 있으며, 임란 이후에는 인조 2년(1624) 계특대사에 의해 중건 불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계특스님의 뒤를 이은 중창은 숙종 16년(1690) 통일 스님에 의해 이루어졌다. <네이버 지식 백과 답사여행의 길잡이 발췌>

 

  흥국사 천왕문으로 인도하는 영취교

 

  법왕문 계단 앞에 햇빛을 따라 강아지가 졸다가 우릴 보고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

 

  법왕문에서 바라본 대웅전

 

 대웅전 앞의 거북 석등

 

대웅전 측면에서 본 적묵당과 범종각, 법왕문.

 

대웅전 안 부처님과 후불탱화

 

  대웅전 뒤뜰

 

  대웅전 뒤 팔상전

 

  범종각과 승병 수군 유물전시관, 범종각 앞 공사자재가 널려 있어서 승병수군유물전시관을 모르고 지나쳐, 결국 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대웅전과 심검당

 

  범종각과 승병수군유물전시관

 

  법왕루 앞의 해체 보수공사 중인 봉황루

 

  따뜻한 2월의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영취산의 진달래들도 한껏 망울들이 부풀어 있을 터였다. 언제 또다시 방문해볼지 모르겠지만, 왜란 당시 구국을 위해 무기를 들고 싸우신 승병 수군들의 혼백들이 평안히 쉬시기를 바라며, 호젓한 영취산 산길을 타바타박 걸어 내려왔다.

 

Photo by Sony a6000, ILCE-6000L/B. E PZ 16-5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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