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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양평 용문사

  하루종일 이슬비 내린 다음날이라 날씨는 쾌청했다. 바람이 다소 강하게 불었으나 전형적인 오월 날씨였다. 양평으로 가는 길은 맑고 시원했다. 남한강을 따라가며 먼 산을 바라보니, 이곳 저곳 소나무 숲에서 공사장 마른 먼지처럼 송화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처음보는 진풍경이었다. 문득 박목월의 시 윤사월이 떠올랐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윤사월은 아니더라도, 산 중의 외딴집은 아니더라도 그리고 꾀꼬리 소리가 없었어도 송화가루 날리는 풍경 하나만으로도 무르익는 봄정취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용문산이 가까워지자 바람은 더 맑고 시원했다. 하늘은 더욱 청명했고 햇볕은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아이들 학교들이 단기방학중이어서인지 평일임에도 시골장터처럼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절 아래 상가 식당가에도 많은 사람들이 흥청거렸다. 식당마다 식사를 하면 용문전철역까지 바래다 준다는 호객글귀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아낙들의 산나물 장사도 신나는 모양새였다. 좌판에 수북히 쌓인 싱싱한 두릅들이 참으로 먹음직스러웠다.

 

  용문사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산에 있는 절로 양주 광릉을 떠받치는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신라 신덕왕때 대경대사(大鏡大師)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진덕여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고 도선(道詵)이 중창하였다고 하며, 또 경순왕이 직접 이곳에 와서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있는데, 아무튼 천년 지난 유서깊은 고찰이다.

 

  그 동안 파란만장한 우리 역사의 질곡대로 부침을 거듭해오다가. 1907년 의병 봉기 때 모든 건물이 불타고 말았다. 1938년 주지 홍태욱(洪泰旭)이 대웅전·어실각(御室閣)·칠성각·기념각·요사채 등을 복구했는데,  6·25전쟁 당시 용문산전투로 다시 소실되어, 전후 1958년에 다시 재건하였다. 현재의 절집들은 모두 그 뒤에 지어진 집들로 옛모습이 아니다. 다만, 신라가 망한 뒤,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다가 짚고 있던 지팡이를 이곳에 꽂았는데 그게 자라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천년의 세월을 버티며 지키고 있다.

 

 먼 산에서 먼지처럼 날리는 송화가루, 팔당 물안개 공원

 

  용문사 들어가는 계단, 좌측은 천 년 지난 은행나무

 

 높이 42m, 가슴높이 둘레 14m의 큰 은행나무로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다가 이곳을 지나다가 지팡이를 땅에 꽂고 갔는데, 그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 자란 것이란다.

 

 석탄일에 즈음하여 마련한 대웅전 앞 연등

 

 종무소 툇마루에 걸터앉으니. 하늘을 찌를 듯한 피뢰침이 시야에 들어온다. 은행나무에 떨어지는 낙뢰를 막기 위한 조치란다. 처음 보았을 땐 하도 높아서 방송국 송신탑인 줄 알았다.

 

 대웅전 추녀 아래서...

 

대웅전 측면 뒤

 

 산신각 등...

 

 좌측의 절집은 개금불사전으로 신도들이 직접 부처님께 금박을 공양하는 공간이다.

 

개금 불사전 앞 풍경

 

석탑과 대웅전

 

 관음전과 범종루, 관음전이 특이하게도 6각 지붕에 육면체 절집이다.

 

범종루 아래로 나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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