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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시련의 땅, 강화 전적지

고려궁지에서 가까운 갑곶돈대로 향했다. 강화대교와 이어지는 갑곶돈대에 전쟁기념관도 있었다. 때마침 기념관 2층에 625 당시 참전한 프랑스군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는 것 같았다.  1866년 병인년에는 강화도를 침략하여 성안을 불사르고 문화재를 약탈했던 프랑스군이 80여 년 후엔 지원군을 파병하여 이 땅에서 피를 흘렸었다.  역사의 쳇바퀴는 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로 나날이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는 오늘, 앞으로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강화도 전적지에 들어서는 심회가 사뭇 달랐다. 

 

고려 때부터 외세의 침략 때마다 시련을 겪었던 강화도였다. 오늘도 북한과 강 하나를 맞대고 대치하고 있기도 하다. 강화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사람들은 무심하리 만큼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세계인들이 숨죽여 주목하고 있는 한반도임에도 일상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평온한 하루들을 살아간다. 그러나, 내면을 살펴보자면 의식 속 깊은 한 구석에 전쟁에 대한 공포와 증오에서 오는 쓰라린 격정들이 있다. 다만 그것이 보이지 않는 내면 속에서 쌓이고 쌓여서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솔개를 보고 숨는 병아리들의 본능 같은, 한국인들의 집단무의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것 때문에 자신들을 희생하고 독재정권에 유린당하며, 위선적 정치가들에게 자신들의 생존권과 자유를 속박당하며 살아왔다. 인생의 황금시기인 젊은 시절, 청춘들은 군대에 징집되어 자존감마저 상실한 채 국토방위의 명분과 상반된 복종과 굴욕의 시간을 보낸다. 정치가들은 입으로만 국방을 외치지만, 아직까지 전작권조차 없이 미국에 의지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한반도의 평화를 부르짖지만, 해결할 능력은 하나도 없으니 미국의 조야는 핵전쟁이 나도 깨지고 죽는 것은 한반도 사람들이라고 노골적으로 전쟁을 거론해도 어쩔 도리 없다. 힘이 없어 몽고족에게 밀리고, 왜적들과 청나라 여진족들에게 짓밟히고, 서양의 열강들에게 침략당하던 과거 우리 역사에서 우리는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갑곶돈대부터 광성보에 이르기 까지, 아름다운 녹음 속 자연을 걸으며, 옛날에 치열했던 전쟁들을 떠올리는 이율배반적인 상념에 잠겼었다.  

 

  강화 전쟁 박물관 전시물, 몽고침략에 항전하는 고려군 

 

 1871년 4월 신미양요 때 초지돈대를 점령한 미해군-강화 전쟁기념관 소장 사진

 

  전투에서 승리한 미군들-강화 전쟁기념관 소장 사진

 

  광성보 손돌목돈대에서 전멸한 조선군의 참상-강화 전쟁기념관 소장 사진

 

  당시 미군에게 잡힌 조선군 포로-강화 전쟁기념관 소장 사진

 

  전쟁기념관 밖, 갑곶돈대

 

  갑곶돈대 밖, 옛 강화대교. 그 위쪽에 신강화대교가 있다.

 

  신미양요 때, 미군과 치열한 전투에서 함락되었던 광성보

 

  신미양요 때 순국한 무명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비, 광성보에서 손돌목 돈대로 가는 길가에 있다.

 

  무명용사의 순국비 맞은 편에 있는 순국 병사들의 묘

 

  광성보 아래쪽, 손돌목 돈대에서 용머리 돈대로 내려가는 길

 

  용머리 돈대, 용머리처럼 해안에서 길게 돌출되어, 성의 치성처럼 삼면에서 공격하는 적들을 쉽게 방어할 수 있는 천연의 요새이다.

 

  용머리 돈대 건너편 김포해안

 

  용머리 돈대에서 바라본 강화해안 방향

 

  손돌목 돈대 앞 풍경, 손돌목 돈대는 신미양요 때 미군과 치열한 백병전으로 조선군이 전멸한 곳이다.

 

  손돌목 돈대 위에서 바라보는 강화해협

 

  광성보 안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