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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진도 운림산방

  진도 방문 첫 번째 코스로 조선조 말기, 소치 허련이 기거하며 그림과 저술활동을 하던 운림산방을 찾았다. 그간 몇 차례 이곳을 둘러보긴 했으나 겨울철 방문은 처음이었다. 겨울 햇볕이 심술궂게 오락가락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춥긴 했으나 남도의 봄기운이 숨어 숨 쉬는 듯했다. 봄향기를 품고 길게 누워있는 첨찰산 자락 아래, 고즈넉한  운림산방의 풍경이 보기에 너무 좋았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좋은 그림도 글도 나오는 건 당연지사겠다. 전시관 안에서 소치일가가 남긴 남도의 풍경들을 둘러보면서 구름이 숲을 이룬다는 운림산방의 정취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 보았다.

 

 

  운림산방 표지석, 뒷 건물은 남도전통미술관 그림 경매장

 

  산방 진입로

 

  운림산방

 

  산방 앞 풍경

 

  소치 허련의 기적비

 

  그림을 그리던 산방 뒤 소치의 생전 살림집

 

  양천 허씨 사당

 

  소치의 영정을 모신 사당

 

  한옥의 우아한 멋이 넘치는 소치 기념관

 

  소치 기념관 옆의 진도 역사관

 

  역사관 내부 명량해전도

 

  해전도 옆에 준비된 전투장구를 빌려 잠시 개구짓하며 동심으로 돌아가 명량해전의 용사가 되었다.

 

  역사관 안의 전시작품

 

 

  남도 전통 미술관 내부

 

  남도전통미술관 정문

 

 사족 : 추사의 사대관은 놀랍도록 대단하다. 추사는 자신이 스승으로 삼은 청나라의 옹방강을 흠모하여 그를 닮으려 애썼다. 옹방강의 호가 '봉래'인 것을 보고 자신은 '소봉래'라 칭하고 자신의 집 뒤 화암사 바위에 스승 옹방강의 탁본 글씨들과 자신이 만든 호인 '소봉래'를 새겨 놓았다.  추사는 제자였던 허련에게 원말 4대가의 그림을 방작한 화첩(畫帖)을 주고 폭마다 열 번씩 본떠 그리라고 시켰다. 허련은 추사의 가르침대로 날마다 추사에게 그림을 그려 바쳤다. 그러다 잘된 그림이 있으면 추사는 찾아오는 손님에게 한 폭씩 나누어 주면서 허련을 칭찬해 마지 않았다. 허련의 이름이 장안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추사는 허련에게 '소치'라는 호를 지어 주었는데, 원말 4대가인 황공망(黃公望, 1269~1354년)의 호인 '대치(大痴)'를 빌려 조선의 작은 대치란 뜻으로 '소치(小痴)'라 했다. 

 '운림'이란 이름도 원나라 말기 대표적인 남송화가 예찬의 호이다. 예찬은 중국 원대의 화가이다. 자는 원진(元鎭), 호는 운림(雲林), 형만민(荊蠻民), 환하생(幻霞生) 등. 무석(無錫, 장쑤성) 사람. 부호의 집안에서 태어나 고서화, 고기물을 수집하고 집 안에 청비각(淸閟閣), 운림당을 세워 많은 문인들과 사귀며 은둔 생활을 했으나, 지정 연간(1341~68)초 원말의 병란을 예상하고 가산을 정리하여 근친자에게 나눠주고 오강, 소주 등 각지를 유력한 후 말년에 귀향하여 병사했다. 진도 시골마을에 낙향하여 운림산방을 짓고 남송화를 모방하여 산수화를 그린 소치 허련, 과연 한국회화사에서 가치있게 평가받을 수 있는 인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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