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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목련

  봄바람 속에 온 산이 진달래 붉은 꽃으로 물들면, 마을 담장 사이로 드문드문 솜사탕 피어오르듯 목련꽃이 부풀어 오른다.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꽃처럼 목련꽃도 봄의 전령사이다.  금년은 예년보다 봄이  일찍 찾아든 줄 알았는데,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보통이 아니다.  봄꽃들이 피려다가 시들고 시들다가 다시 피어난다.  목련 역시 밀려드는 봄기운을 피할 수는 없었는지 활짝 피지는  못했지만, 터지기 직전 팝콘처럼 망울 망울 부풀어 올랐다.   군복무 시절, 민간인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시절에,  봄낮이면  산꼭대기 대공초소에서 머언 민가에서 솜사탕처럼 피어오른 목련들을 바라보노라면, 고향의 집이 생각났었다.  하루종일 산꼭대기에서 보초를 서며, 서울서 부산까지 왕복하고도 족히 남을 시간들을 목련꽃을 바라보며 국방부 시간들을 헤아리고 있었다.  제대한지도 수십년이 지나 검은 머리칼보다 흰 머리칼이 더 많아진 지금에도 목련꽃을 바라보면, 푸른 군복을 입고 메마른 산꼭대기에서 멀리서 아련하게 피어오르던 목련이 떠오르곤 한다.  추운 겨울을 떠나보낸 안도감에, 목련꽃 송이만큼이나 남은 군생활에 노곤해하던 추억들이 불현듯 일어선다.  북녘땅의 핵실험 이후, 연일 보도되는 전쟁 공갈 속에 한참이나 지난 지나간 군시절이 생각나는 게 참말로 아이러니하다.   남침의 위협 속에 서슬 퍼런 유신통치에 내 젊은 시절이 묻혀 지나갔는데, 이제 또, 내 자식들 세대에 전쟁의 공포가 대물림되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분단된 이 나라의 백성으로, 아니 남자로 태어나, 국방이란 멍에로 아까운 청춘이 사라져갔었는데, 자식대에 이르러 평화는커녕 전쟁이라는 공갈협박이라는 현실에 절로 몸서리쳐진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로 애들이 취업해 먹고 살기도 힘겨운데, 명분도 없는 전쟁이라니 정말 어불성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제 무르익는 봄기운 속에 목련꽃도 활작 피었는데, 얼었던 동토가 녹아내리듯, 북녘의 겨울도 해빙되었으면 좋겠다. 배고픈 백성들을 볼모삼아 협박할 것이 아니라 불쌍한 백성들을 등따습고 배부르게 보듬을 일이 급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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