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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화성시 용주사, 융건릉

  가을 날씨답게 하늘이 푸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입방정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을 관통하는 태풍 탓인지 모처럼 푸른 하늘이 이어지고 있다. 맑은 하늘 덕에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용주사에 도착하니 주차된 관광버스가 보였다. 사람들이 많으면 아무래도 사진 찍기가 어려워진다.  매표소에서 약간 실랑이를 하고 현금으로 인장권을 샀다. 대부분 절간에선 카드를 받지 않는다. 며칠 전 불국사는 전과 달리 카드결제를 하고 있더만...  현금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대부분 지갑에 현금을 넣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지갑을 탈탈 털어 천 원짜리들을 모아서 입장료를 내며 싫은 소리를 했더니 매표소 직원은 처음엔 결제시스템이 없어서라더니 나중엔 윗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할 뿐이랬다. 스님들의 현금 사랑이 지나치다. 가뜩이나 금전을 탐하는 조계종 종정 자리와 유신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종정 선출 선거 제도를 놓고 말이 많은 요즈음에도 막무가내 변함이 없다.  

 

  정조대왕께서 인근 화산에 부친을 모시고, 부친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곳 용주사를 중건했는데, 그 때 대왕의 권세를 등에 업고, 이곳 스님들의 횡포가 대단했다고 전한다. 모처럼 기분 전환하러 나왔다가 매표원과 실랑이하다 보니, 기분이 언짢아져서 용주사 역사까지 들먹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종교계도 큰 문제다.  대중들의 삶과 무관하게 권력과 돈을 좇는 종교는 이미 종교가 아니라 개인의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되었다. 인간의 구원보다 자기 가족의 기복신앙을 바탕에 깔고 있는 신자들의 신앙도 이런 사태를 불러온 근원적 문제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라와 사회의 제도가 민주화되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 종교계도 대오각성하여 인간 구원의 본연 자세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아무튼 용주사는 정조대왕께서 비운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중건하신 절이다. 그런 탓에 법당 오른 편에 부모은중경 탑이 서 있고,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위패를 모신 호성전이 있다. 정조대왕 이후 조선 후기의 왕들이 모두 사도세자의 후손인 것을 생각하면, 뒤주 속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다한 사도세자라도 죽어서 저승에서는 위로받았을지 모르겠다. 애석하게 나라가 망하는 비극을 겪긴 했지만...   크고 꼿꼿한 적송들이 에워싸고 있는 용주사에 수십여 분 머무르며,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겼었다.  

 

 

  용주사 들어가는 입구 왼편에 있는 용주사 효행박물관

 

  오층석탑과 천보루

 

  천보루 아래 계단에서 바라본 대웅전

 

  대웅전 왼편에 있는 천불전과 범종각. 범종각 안에는 고려시대 주조된 범종이 있다.

 

  대웅전 앞 뜰과 홍제루(천보루 뒤편)

 

  대웅전 부처님과 김홍도가 그린 탱화

 

  대웅전 오른편에 있는 부모은중경 탑과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위폐를 모신 호성전

 

호성전 안의 사도세자와 정조대왕 위패

 

  호성전 뒤에 있는 사리탑

 

  인근 화산에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융릉. 이 자리는 본디 수원 읍성이 있던 자리였는데, 부왕을 모시기 위해 수원 읍성을 지금의 수원 화성으로 옮겼다. 일찍이 이곳은 고산 윤선도가 효종대왕의 능으로 점지했던 명당자리로 전해지고 있다.

 

  화산 왼쪽, 융릉의 왼편에 모신 정조대왕의 건릉

 

  융건릉 입구에 있는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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