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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城

용인 처인성

  용인시는 1996년 시로 승격한 후, 2005년 3개 구로 분할하는 등,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용인이란 명칭은 고려시대 용구현과 처인현을 조선조 태종대왕 때 한 고을로 병합하면서 일컫게 되었다. 그중 처인구는 용인시청을 소재지로 하여, 여러 읍면들을 거느려 용인시에서 제일 넓은 곳이다. 한 때 용인시청사는 광화문 앞 정부종합청사보다도 그 규모가 커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었다. 또한, 넓은 면적을 지녔음에도 경부고속도로를 축으로 산림을 훼손하여 아파트와 공장들을 짓는 난개발로, 환경을 파괴한다는 오명을 한 몸에 뒤집어쓰면서 개선할 생각은 전혀 없다. 역대 용인시장치고 난개발 건축과 관련하여 구속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비리의 온상지대이다.

 

  처인성은 고려시대 1232년(고종 19) 몽고군이 쳐들어왔을 때, 승려 김윤후가 처인부곡의 천민들과 함께 이곳에서 몽골 원수 살리타이[撒禮塔]를 사살한 곳이다.  당시 몽고군은 1231년부터 40년간 6차례에 걸쳐 대군을 동원하여 침공하였다. 1232년 몽고군은 살리타이를 대장으로 2차로 침략했는데, 살리타이는 선봉부대를 경상도까지 진출시켜 팔공산 부인사에 소장하던 고려대장경판을 불태우는 한편, 주력부대를 남진시켜 한강을 건너 처인성으로 진격하였다. 이때, 김윤후는 진위 백현원에서 처인성으로 피난하였다가 처인성에 모여든 백성들과 힘을 합쳐 12월 16일 적장 살리타이를 사살하였다. 이에 몽골군이 크게 무너져 전군이 퇴각함으로써 몽고군의 남진을 막았다. 이 지역은 본디 수원의 속읍으로 용인에서 진위로 가는 길로, 수원에서 평택으로 이어지는 호남선과, 또는 용인에서 안성(일죽) 충주로 이어지는 경부선과 같은 간선교통로가 아니어서 진위나 화성에서 급히 피난하기 적절한 곳이었다. 

 

  처인성은 아곡리 마을 입구 해발 약 71m 정도 구릉의 끝부분에 평면이 마름모꼴 형태인 토성으로 남아 있다. 성벽 규모는 둘레 약 350m이고 높이 약 5∼6m이다. 외벽은 35°∼45° 가량 경사를 이루고 있다. 1979년 남서쪽 성벽 120m를 복원하였고 1980년에도 동·남·북쪽의 성벽 205m를 수리하였으나, 지금 토성의 규모로 보아 대규모 전투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토성의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해도 성의 내부가 너무 협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성 주변에는 성높이 정도되는 야산들이 산재해 있기도 하다. 현재 성곽 주변공사 중이어서 사방에 파놓은 흙으로 어지러웠다. 재정이 탄탄한 지방자치단체로 유명한 용인시에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승첩전적지로 유명한 처인성을 이렇게 방치하는 처사가 이해되지 않았다. 언제쯤에나 주변이 정비되어 자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전승지가 될지 안까까움이 앞섰다. 

 

  성벽과 성안엔 웃자라 하늘을 찌를듯한 도토리 나무만 듬성듬성 서있고, 몇 사람들이 다람쥐 먹이인 도토리를 부지런하게 열심히 줍고 있었다. 옛날 가난했던 시절 먹을 게 없어 주워 먹던 도토리를, 다이어트에 힘쓰는 오늘날에도 저렇게 먹는 걸 보면, 아마도 굶주렸던 시절의 체취 본능이 한국인 DNA 속에 남아 있나 보다. 사람들이 도토리를 주워가면 다람쥐 같은 작은 산짐승들은 추운 겨울에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다. 

 

 

  처인성 주차장 안내판

 

  토목공사중인 처인성 주변, 입구엔 '처인성 역사공원 조성사업 주변  정비공사'라는 안내판이 쓰러진 채로 널브러져 있고, 주변은 흙을 마구 파헤친 상태로 공사가 중단되어 매우 볼성 사나웠다. 표지판대로 공사가 끝나는 금년 12월이면 자랑스럽게 처인성을 바라볼 수 있을지...  

 

  아곡리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와 북쪽 토성

 

  북쪽 토성 성곽 중 끊어져 안으로 들어가는 부분

 

  서쪽 토성 성곽

 

  성곽의 남서쪽 모둥이

 

  남쪽 토성, 가장 높고 짧다.

 

  동쪽 성곽 윗길

 

  남쪽 성곽 모퉁이에 서서 바라 본 남쪽과 동쪽 성벽길 

 

  남쪽 성벽길과 성안

 

  토성의 남쪽 방향

 

서쪽 성벽 위에서 바라본 북동쪽 방향. 두 기의 묘지 주변에 이장하라는, 기한이 2년이나 지난, 표지판이 무슨 유적지 안내판처럼 네 개씩이나 꽂혀 있었다. 

 

  서쪽 성벽과 북쪽 방향

 

  서쪽 성벽에서 바라본 동쪽 방향

 

  서북쪽 성벽 끝지점에서 바라본 동남쪽 방향

 

  북쪽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가는 길

 

  북쪽 성벽 절개지 출입문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

 

  동쪽 성벽에서 남쪽으로 가는 성벽

 

  북동쪽 끝지점에서 바라보는 처인성

 

  북쪽 방향

 

  동쪽 성벽 아래 전승비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산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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