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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김대건 신부 착지처 익산 나바위 성당

  논산 국도 주행 도중 우연히 길가에 있는 안내 표지판을 보고 찾아간 성당이다. 김대건 신부님의 유적지라는 이정표를 따라 성당 주차장으로 들어섰는데, 난생처음 본 한옥 성당이어서 깜짝 놀랐다. 처음 보는 이층 누각의 한옥 성당으로, 성당 좌우에 긴 회랑까지 있어서 보기에 아름다웠다. 코로나 때문에 내부를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스러웠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자태만으로도 큰 감동이었다.

 

  성당 서북쪽 화산 언저리는 1845년 10월 12일 밤 8시에 조선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페뢰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11명의 조선인 신자들과 조선에 첫발을 디딘 곳이다.  이를 기념하여 베르모렐 신부가 1906년 공사를 시작하여 1907년 완공하였다.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아넬 신부가 조선인의 정서에 맞도록 한옥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한 때 화산 성당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1987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후, 1989년부터 본래대로 나바위 성당이라 이름 부른다.

 

 

성당 정면

 

우측면

 

성당 앞 강당 입구에 있는 고난의 예수상

 

성당과 역사관

 

성당 회랑과 역사관

 

역사관

 

성당 측면

 

성당 후측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과 추모 동산 

 

성당 안내문과 안내도 

 

 

 '나바위는 성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 후, 조국에 첫발을 디딘 축복의 땅'

 

  나비위는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되어 조국에 입국하며 첫발을 디딘 축복의 땅으로 ‘첫 마음의 성지’로 불리고 있다. 1836년 12월, 15세의 나이로 조국을 떠나 마카오에서 사제 수업을 마치고 1844년 12월 부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1845년 1월 선교사들의 입국 통로를 개척하고 그들이 거처할 집을 마련코자 서울에 입국하였다. 그리고 1845년 4월 선교사를 모셔올 목선을 구입하여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가 그 해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김대건 신부는 8월 31일, 11명의 교우와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타고 갔던 배편으로 귀국길에 올라,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끝에 1845년 10월 12일 밤 8시경 강경에서 좀 떨어진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닻을 내렸다. 나바위로 정박한 이 일을 페레올 주교는 그의 편지에서 ‘하느님의 섭리’라고 하였다.

 

 '성 김대건 신부 일행의 최초 상륙지점'

 

  1845년 8월 31일 김대건 신부는 중국 상해에서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그리고 11명의 한국인 신자들과 함께 포교지인 한양을 향하여 라파엘호를 타고 항해하였다. 그러나 폭풍우와 풍랑을 만나 돛 대와 키가 파손되어 표류하다가 제주도 용수리에 닿았다. 그곳에서 배를 정비하여 다시 북상하였으나 반파 상태인 배로는 항해가 불가능하자 계획을 바꾸어 강경에 정박하기로 하였다. 선원 일행 중에 강경 신자들과 강경 일대의 지형을 잘 알고 있던 자가 있었다. 당시 강경포는 조선 3대 어시장 중 하나였으므로 번잡하고, 황산포와 낭청포는 나루가 있어 사람들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그러기에 배들의 오고 감이 드물고 상선도 정박하지 않던 아주 작은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가 상륙하기 알맞은 곳이었을 것이다.  <나바위 성당 홈페이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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