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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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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추사고택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한 추사고택이었다. 찬 바람에 으스스하게 몸이 움츠려드는 겨울철이라서인지 고택 주변은 쓸쓸하고 황량했다. 이파리 다 떨어진 앙상한 나목들과 추사가 좋아했다는 고택의 뜨락 수선화도 흔적마저 찾을 수 없어서, 적막감까지 감돌았다. 방문객들도 없어 추사고택을 나 홀로 온전히 감상했다. 사랑채 마루 위 벽에 고택의 옛 사진이 있어 흥미로웠다. 나름대로 과거의 모습을 짐작하며 현재와 비교할 수 있었다. 예전엔 사랑채 앞까지 마당 없이 밭을 일구었다. 문화재 가치를 모르던 시절, 무심하게 무너져가던 유적들이, 오늘날 온전한 형태로 복구되어 볼 수 있는 것이 다행한 일이다. 다만 고증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작위적 창조물은 삼갈 일이겠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조선시대 명필로 석봉과 추사를 모르는..
예산 화순옹주 홍문 지난 가을 추사고택을 찾았을 때, 보지 못했던 영조대왕이 사랑했던 화순옹주 홍문을 찾았다. 한 모퉁이 돌면 그곳이었는데, 그 걸 몰라 지나쳤던 것이 아쉬웠던 탓이다. 공교롭게도 희뿌연 연무가 끼어 맑은 날이 아니었다. 오랜만의 출사라서 기대가 컸었는데, 결과물이 그리 좋지 않았다. 화순옹주(和順翁主, 1720년 ~ 1758년 1월 17일)는 조선 제 21 대 임금 영조의 차녀로 어머니는 정빈 이씨(靖嬪 李氏, 1694~1721) 소생이다. 조선의 왕녀들 중 유일하게 열녀(烈女)로 지정되었으며 이복 언니 화억옹주가 조졸하였기에 장녀가 되었다. 화억옹주와 효장세자는 소론 일당의 지시를 받은 궁녀들과 무당 등이 죽은 사람의 뼛가루를 창경궁의 양화당, 동궁, 빈궁의 침실 등에 묻고, 오랫동안 그것을 효장세자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