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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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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화적연(禾積淵) 화적연은 한탄강 비둘기낭 폭포에서 북쪽 8km 정도 상류에 있다. 한탄강 구비에 우뚝 솟은 벼낟가리 모양의 화강암 바위를 화적이라 하고 그 앞의 강 굽이를 연못이라 하여 총칭 화적연이라 부른다. 강가에서 뻗어 나온 화적 바위는 포천시 영북면에 있고, 화적연을 두루 감상할 수 있는 곳은 포천시 관인면에 있다. 화적연을 보기 위해서는 바위 건너편인 포천시 관인면 화적연 캠핑장으로 가야 한다. 비둘기낭 하늘다리를 체험한 뒤, 그 상류에 있는 다리를 건너 화적연으로 이동했다. 화적연을 감상할 수 있는 캠핑장 입구 부근 도로는 차량 두 대가 교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도로였다. 캠핑장 한 구석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강가로 나가 화적연 상류에서 하류까지 거닐며 두루 돌아보았다. 화적연은 겸재 정선이 금강산에 가..
포천 한탄강 지질공원과 비둘기낭 폭포 코로나 백신을 맞고 약간의 미열과 두통을 겪었다. 백신을 맞는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한 모험이다.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백신 사망 사고 소식에 어쩌면 내가 포함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주저하다가, 인명재천이라 생각하며 사생결단하고, 접종 개시 첫날 동네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다. 접종을 했어도 활보할 수 없는 현실에 집콕하다 너무나 답답해서 모처럼 한탄강으로 멀리 원족을 나갔다. 날씨가 며칠 사이 갑자기 더워져, 뜨거운 뙤약볕 아래 걷기가 힘들었다. 목적지를 비둘기낭 폭포로 정하고 갔는데, 목적지 근처에 지질공원 센터가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들려 이곳저곳을 관람했다. 다행히 다른 관람객이 없어 편안한 마음으로 전시물들을 둘러보았다. 한탄강(漢灘江)은 북한의 강원도 평강군에서 발원하여 하류에서 임진강..
화성시 궁평해변 날씨가 포근했지만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가 걷히리란 생각으로 화성시 궁평항에 갔으나, 바다에는 더 짙은 연무가 퍼져 있었다. 궁평항에서 해변가에 설치한 바다 육교를 따라 궁평 해변으로 걸어갔다. 해변을 따라 쌓은 방파제 둑 위엔 요즘 유행하는 차박 캠핑족들이 바다를 향하여 뒤 트렁크를 열어놓고 촘촘히 줄지어 조밀하게 서 있었다. 어찌보면 낭만적 모습이겠지만,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철없는 활동처럼 보였다. 내가 소심한 탓인지 차박한답시고 자동차에 차박 시설을 해놓고도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인적이 뜸한 곳이라면, 힐링이 될 법도 하겠지만 조밀하게 주차해서 가스버너에 음식을 조리해서 먹는 모습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차박하는 행렬에서 벗어나, 인적 뜸한 해변가를 거닐며 밀물이 몰려오는 서해 풍경을 ..
논산 선샤인랜드 날씨 쾌청, 날씨가 추우리란 예상과 달리 포근했다. 선샤인랜드는 연무대 육군 훈련소 막사가 빤히 보이는 곳에 있었다. 연무대 훈련소 앞을 지날 때 옛날 추운 겨울 12월에 군기가 제일 빡세다는 훈련소 30연대에서 뺑뺑이 돌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이도 어린 놈이 어찌나 악랄했던지 논산 쪽으로는 소변도 보지 않겠다 결심했었다. 옆소대 내무반장이였던 인천 출신 하사 녀석은 매일 저녁 술에 취해 훈련병들을 심하게 때렸다. 그 때, 그녀석은 '불루 나이트 요코하마'란 왜국 노래를 늘상 읊조리고 다니던 아주 고약한 자식이었다. 지금 이름도 잊었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훈련병이던 주먹으로 내 가슴팍을 모질게 때렸다. 소대 막사 복도 끝에서 끝으로 발로 차며 밀며 주먹으로 암팡지게 때려서 이 주일 이상, 가슴이 저려 ..
대청호 오백리길, 대청댐 대청호 오백리 길, 이름이 좋아 무작정 탐방지원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아뿔싸 코로나 사태 때문에 탐방지원센터 내부엔 들어갈 수 없었고 건물 주변에 조성한 생태공원을 거닐며 보았다. 대국을 재배하는 국화 화원을 지나 아기자기한 야생화 정원을 거쳐, 건물 앞 정원을 관람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국화 전시회를 성대하게 치렀을 텐데, 직원들의 노고가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아쉬웠다. 직원에게 물으니 오백리 길은 구간구간이 있어서 차를 타고 가며 쉬엄쉬엄 관람하라는 것인데, 초행에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어 무조건 대청댐 전망대로 향했다. 길이 좁고 대청호를 끼고도는 길이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라 멀미를 느낄 정도였으나, 불타는 듯한 가을산과 바람에 흩날리는 형형색색의 가을 이파리들을 바라보며 가을의 정취에..
대청호 청남대 한글날, 날씨가 좋았다. 하늘엔 새털구름이 깔렸다. 그동안 몇 번 가보려다 포기했던 청남대에 갔다. 문의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해서 대청호의 구불구불한 길을 돌고 돌며 가을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모두 마스크를 쓰고 발열 체크까지 하고 입장했지만, 마스크를 벗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풍광 좋은 대청 호숫가에 자리 잡은 대통령 별장 청남대는 주변에 철망 울타리와 원형 철조망을 올려놓아 철책선을 방불케 하여 아름다운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권력의 서슬이 시퍼렇던 전두환 폭정 시절, 민생과 관계없이 국민의 세금으로 호화롭게 지어진 청남대 경내를 거닐며,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말 나쁘단 생각이 들었다.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여 안보타령과 정쟁으로 긴장감..
공세리 성당 삽교호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세리 성당에 들렸다. 코로나 여파로 성당 진입로 입구에 손세정제와 방명록이 있었다. 성당이 있는 언덕 위, 박물관과 사제관으로 가는 길목을 금줄로 막아 놓았다. 하는 수 없이 성당 아래 둘레길인 십자가의 길 14처를 돌면서 인적 없는 숲 속을 거닐었다. 산책 중에 기도하는 남자를 보았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14처 곳곳에 멈추어 기도하는 모습으로 보아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보였으나 마스크를 쓰지 않아 그를 멀리 우회해서 걸었다. 왜 쓰라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걸까. 남을 위해서라기 보다도 자신의 방역을 위해서 쓰라는 것인데...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마스크 없이 편히 숨 쉴 수 있는 세상이 그립다. 모든 것이 불편하다.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니 답답해서 미칠 ..
삽교호 공원 집콕에 지쳐 바다라도 보고픈 마음에 삽교호로 갔다. 그동안 몇 번 들렸던 곳인데, 몇 해 사이에 너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엔 삽교방조제 준공 기념비와 함상공원들만 있었는데, 이젠 대관람차를 비롯해서 놀이 공원과 캠핑장까지 조성되어 있었다. 코로나 염려에도 불구하고 바람 쐬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도 나처럼 일요일이라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산책꾼들이겠다 싶었다. 생명줄 같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대놓고 한 마디씩 하고 싶었지만, 내가 알아서 멀리 피해 지나치곤 했다. 젊은이들도 젊은이지만 나이 많은 노인들이 마스크 없이 크게 떠들며 다니는 걸 보면, 밉상이 따로 없어 보였다. 집콕이 최선이라는데, 집을 벗어나 관광지에 나온 내 탓이 크다고 자책하며 가볍..
양평 세미원과 두물머리 날씨가 무덥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임에도 이리도 많은 행락객들이 운집해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집콕에 지쳐 정신까지 피폐해져 모처럼 나들이 나갔는데, 인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세미원 주차장은 이미 발 들일 공간조차 없었다. 하는 수없이 멀리 떨어진 공영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입장했다. 30도를 넘는 더위는 세미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사람을 지치게 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많아서 관람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20% 정도는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는 듯했다. 무더위에 마스크를 쓰고 걷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더운 날씨 덕에 마스크 안에 땀까지 차올랐으나 벗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능한 대로 사람들과 떨어져 걸으려 했음에도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임에도 이리 많은 사람들이..
탄도항 누에섬 대부도에서 방조제를 통해 화성시로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탄도항에 들렀다. 이곳에서도 수요일은 휴무란다. 안산 어촌박물관도 휴관이어서 누에섬이 보이는 방조제로 나갔다. 저녁 시간이라 누에섬 개방 시간도 이미 지났거니와 밀물이 들어오는 형국이어서 잠시 해변을 거닐었다. 내륙과 달리 바닷가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찬 바람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동하고 말았다. 해넘이 풍경으로 유명한 곳인데, 오월의 해가 너무 길어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탄도항 맞은편은 화성시 전곡항인데, 요트항으로 유명하다. 시간이 늦어 요트항에는 들르지 못했다. 등대가 있는 누에섬, 그 뒤로 보이는 섬이 화성시 제부도이다.
선재도 목섬 예전에 선재도에서 간재미 무침을 맛있게 먹은 적이 있어서 기억을 더듬어 해산물 센터를 찾았으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분위기도 썰렁해서 돌아 나와 인근 목섬으로 향했다. 때마침 밀물이 들어오는 시기여서 싸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섬에 들어간 사람들을 향해 빨리 나오라는 경고방송이 이어졌다. 결국 목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닷가에서 멀리 바라 보기만 했다. 선재도 목섬
영흥도 십리포 해변 모처럼 푸른 하늘이었다. 햇살이 퍼져 여름 날씨 같았으나, 영흥도 바닷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물 빠진 갯벌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언 가를 캐고 있다. 내 보기엔 별 거 없을 것 같은데... 산이나 바다에 나가면 아직도 여전히 수렵과 채취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초적 본능이라 뭐라 할 수 없지만, 먹을 것도 되지 않는 것들을 거둬가는 것을 보면 안스럽다.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요즘 세상에 씨까지 말라가는 어패류들을 보면 마음이 그리 좋지 않다. 여유있게 살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마음까지 상쾌해졌으나 가볍게 차려 입고 나온 옷차림이 문제였다.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찬 바람에 콧물이 비치었다. 해안에 나가 바닷가를 걷다가 십리포 서편의 산책로를 걸었다. 바위절벽 앞..
화성시 제부도 날씨가 오락가락한다. 며칠 전엔 여름날처럼 덥더니, 오늘은 찬 바람이 몰아쳤다. 황사까지 뿌옇게 끼여 두꺼운 봄 점퍼를 꺼내 입고 나섰다. 제부도 물길이 오후 7시까지 열려서 여유 있게 제부도에 입도했다. 차에서 내리자 바닷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두꺼운 옷을 입고 마스크까지 했건만, 추위에 콧물까지 줄줄 흘러내렸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지 않아 매바위 입구 갯벌체험장 부근에서 갈매기들과 한참을 놀았다. 녀석들은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으려고 거센 바람에 저항하며 제 자리에 떠있다가 던지는 새우깡을 잽싸게 나꿔채 먹었다. 새우깡을 들고 주려다가 손가락을 물릴 뻔했다. 녀석은 기술적으로 손가락 사이에 있는 새우깡만 쏙 빼먹고 다시 기회를 노렸다. 새우깡에 길들여진 기막힌 녀석들이었다. 제부도 서해안..
강화 역사 박물관과 전등사 역시 코로나가 문제였다. 강화 역사박물관에 갔으나 무기한 폐쇄로 문을 닫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박물관 옆에 있는 강화 고인돌 유적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유명하다는 강화 고인돌 유적 공원 안에는 애석하게도 실물 고인돌 하나밖에 없었다. 고인돌 유적 공원 울타리 주변에 세워 놓은 것은 이곳저곳의 고인돌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며 소개하는 조악한 수준의 것들이었다. 놀라운 것은 야외 공원 화장실이었는데, 관리를 하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여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상태였다. 코로나 때문에 박물관 폐쇄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 옆에 있는 야외 화장실을 청소하지도 않고 방치한다는 것은 그곳 직원들의 직무유기였다. 부근에서 마주친 청원 경찰에게 도움을 받을까 화장실을 문의해봤지만 헛수고였다. 기분이 언짢아 볼 멘 소리..
강화 교동도 아침에 햇살이 곱길래 강화섬에 가려고 작정했다. 강화 평화 전망대에서 북한땅을 촬영하려고 500mm 렌즈까지 챙겼다. 내비게이션 만 믿고 따라갔는데, 사당역 교차로로 안내하는 바람에 차가 막혀 죽도록 고생했다. 내가 아는 길보다 나을 줄 알았는데, 실시간 교통정보를 제공한다는 내비게이션 안내는 아직까지도 단순하고 기계적일 뿐이었다. 사당역 부근부터 동작동 현충원 앞 큰 도로까지 나가는데 족히 한 시간은 걸렸다. 올림픽대로부터는 막힘이 없어 강화 평화전망대까지 순탄하게 달려갔는데, 아뿔싸 전망대 입구에서 경비병들이 코로나 때문에 전망대를 폐쇄했다고 했다. 푸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소리여서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어 가던 길을 달려 교동도까지 갔다. 이따금 TV에 소개되던 교동도 재래시장인 대룡시장에 가서 때..
동탄 호수공원 신도시마다 유행처럼 만들고 있는 호수공원인지라 모처럼 동탄호수공권으로 나들이 나갔다. 동동탄 도시 기반 공사를 할 때 지났던 곳이라, 그 모양이 사뭇 궁금했었는데,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쾌적해 보였다. 호수 주변에 벤치와 흔들 그네들을 설치해서 인근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예쁘게 꾸며 놓았다. 주변에 아직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라 완성된 모습은 아니었지만, 나름 시민들을 위한 쾌적한 공간으로 생각되었다. 한 바퀴 돌며 산책하던 중 호숫가 언덕에 정숙옹주 태실터가 있다고 해서 올라가 보았다. 산 정상 위에 태실비만 덩그러니 서있었는데, 앞부분은 글씨가 마모되어 정확히 읽을 수 없었고, 뒷부분의 명문은 뚜렷해서 판독할 수 있었다. 명나라 만력제 16년 7 7월 11일 을시에 세웠다고 한다. 만력제는 명나라 ..
길상사와 김유신 탄생지 진천에 와서야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사당을 세웠는데 그것이 길상사였다. 하루 사이에 날씨가 뜨거워져서 여름날씨처럼 더웠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가니 텅 빈 공간에 사람이 없었다. 사당에 오르려 했으나, 사당문이 굳게 잠겨져 있었다. 코로나 때문일까. 아니면 군당국의 무심한 행정 때문일까. 멀리서부터 이곳을 보러 찾아왔는데, 안에 들어가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고 야속했다. 다행히 길상사 왼편에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있어서 그리로 따라 올라가며 측면에서 도둑촬영하듯, 몇 컷을 찍고 내려왔다. 아마도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놓고 관리하기 귀찮으니까 자물쇠로 잠가놓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았다. 괜한 걸음 한 것 같아 후회 막심하기도 했거니와 군청..
진천 농다리 하늘다리에서 초평저수지를 돌아 진천 농다리로 갔다. 농다리는 고려초에 만들어진 다리로 여러 개의 돌로 징검다리처럼 교각을 쌓고 그 위에 크고 넓적한 돌을 건너질러 만든 돌다리였다. 중부고속도로로 이 부근을 지날 때마다 궁금했던 곳이었는데, 비로소 그 궁금증이 풀리게 되었다. 농다리 주차장을 지나 중부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면 미호천 가에 넓은 소형차 주차장이 있다. 개울 건너 맞은편 산 위에 정자를 짓고 인공 폭포를 만들었다. 코로나 사태 때문인지 폭포는 가동하지 않고 산 위에 쓴 "생거진천"이란 푯말이 인상적이었다. '생거진천'이란 말은 이곳에 전해오는 옛날이야기인데, 이곳 진천에서는 진천군의 구호처럼 대단한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은 뒤에 용인에 머물러라." 즉 '생거진천 사거..
생거진천 하늘 다리 生居鎭川(생거진천) 초평호수 하늘다리, 신록이 우거지는 계절에 잔천군 청소년 수련원 앞 초평호숫가에 있는 하늘 다리를 걸었다. 모처럼 날씨도 화창하고 따뜻해서, 방콕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었다. 지방자치제마다 출렁다리를 놓아 홍보 도구로 삼는 게 요즘 추세인가 보다. 호수에, 또는 계곡에 출렁다리를 놓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데, 이곳 하늘 다리는 규모가 아담하고, 진천의 유명한 농다리와 연결되어 한나절 트레킹 코스로 안성맞춤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 아니어서, 큰 위험은 없어 보였다. 시원한 호숫가에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모처럼 바깥바람을 원 없이 쏘인 하루였다. 청소년 수련원 앞 하늘 다리 초입 데크 이곳 하늘 다리는 반은 일반..
진천 배티 성지 청룡사 보수 공사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청룡사 북쪽 서운산 너머에 있는 석남사로 방향을 돌렸다. 서운산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청룡마을에서 고개를 넘어 충북 진천으로 들어갔다가 왼쪽으로 돌아 서운산 고개를 넘었다. 그 고개가 바로 배티인데, 고개 넘기 바로 전 충북 진천 땅에 배티성지가 있다. 예전에 들려본 곳이긴 했지만, 잠깐 내려 성지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곳은 1981년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들어 교우촌을 이루자, 이곳에 신학교를 짓고, 이곳을 중심으로 신부들이 사목활동을 하였다. 김대건과 함께 마카오에 유학하여 신부 수업을 받았던 최양업이 김대건 신부 순교 후, 1849년 중국 상해에서 신부 서품을 받고 조선의 두 번째 신부로 귀국하여, 1850년부터 이곳 배티를 근거지..
화성시 궁평항 평일 오후라 궁평항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으나, 근처에서 제일 큰 어항이라 산책 나온 분들이 더러 있었다. 개중에는 낮술에 취해서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 팔자걸음으로 어기적거리는 중년 아베크족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담배를 피우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래침을 길바닥에 뱉는 사람도 눈에 띄어 기겁하곤 멀리 돌아서 걸었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궁평항 방파제 끝에 낚시터까지 걸어갔다가 되돌아왔다. 낚시꾼들이 삼삼오오 모여 찬 바람에도 불구하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조황은 그리 좋지 않은 듯 살림통 안에 잡혀있는 망둥어를 한 마리 보았다. 어항에 온 김에 활어 판매장에 들렸다. 상인들은 대부분 마스크 없이 생활하고 있다가 손님들이 다가가면,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평일에는 손님들이 거의 없어 마지못해..
화성시 매향리 역사 기념관 날씨가 너무 좋아 외출을 감행하였다. 사람들이 많지 않을 매향리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지난번 근처까지 갔다가 보지 못하고 되돌아온 매향리 역사 기념관을 찾았다. 말이 거창해서 역사 기념관이지, 엉성하게 지은 비닐 막사와 찻길 옆 공터 마당에 쿠니 사격장에서 수거한 포탄 더미를 수북하게 쌓아 놓은 곳이 매향리 역사 기념관이었다. 매향리 쿠니 사격장은 1951년 매향리 앞바다 농섬 등 모두 2376 만 9000㎡ 규모로 미 공군 폭격장으로 사용하다가, 2005년 폐쇄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54 년간 미군의 끊임없는 폭격훈련으로 현재 농섬과 그 주변 땅은 파괴되고 허물어져 절반도 남아있지 않다.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의 참담함이 전쟁 이후 근자까지 자행되었던 현실이 한없이 가엽다. 바닷가 평화로운 포구 마을 농..
화성시 우정면 매향리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이로제 걸렸다. 두문불출 나가지도 않고 방콕생활하니까 우울증이 온다. 오후 한 차례씩 동네 뒷산에 산책을 나갔었는데, 산길에서조차 사람을 만나면 서로 경계하니 그것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그 덕에 뒷산 산책도 끊었더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가장 두려운 것이 마스크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앞 발코니에 나가서 따스한 햇볕을 쬐면서 동네를 내려다보면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차들만 바쁘게 왕래할 뿐, 걷는 사람이 없어 골목길이 휑하다. 골목길 관찰도 지루해서 TV를 켜면 하루 종일 바이러스 이야기이다. 그것도 확진자가 점점 늘어 간다는 뉴스이고 보면, 인간의 삶이 바이러스에 무너지는 것 같아 무상감까지 느낀다. 바이러스 보균자들이 종교집회에 참석한 탓으로 이 지경에 이..
예산 오석산 화암사 추사기념관에서 길을 물어 8분 여 거리에 있는 오석산 화암사에 들렸다. 화암사는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이 중건하여 집안의 원찰로 사용했었다. 겉으로는 절집보다는 사대부 저택처럼 보였다. 바깥채를 통해 안으로 들어서자 대웅전과 약사전이 나타났다. 절의 규모는 암자처럼 작고 아담했다. 텅 빈 주차장에 나 홀로 차를 대니 절집의 털북숭이 백구가 짖지도 않고 반가운 듯 앞발을 번쩍 들고 달려들었다. 행여 물릴까 살살 달래며 이리저리 피했다. 인기척에 안에서 비구니 스님과 여보살님이 나오셨다. 인적이 드물다 보니 불현듯 들어서는 탐방객조차 낯선 모양이다. 담장처럼 둘러싸인 바깥채 가운데 원통보전이 있고, 문안으로 들어서니 비로소 법당을 만날 수 있었다. 대웅전 뒤에 병풍처럼 바위가 둘러 섰는데, 이곳에 추사가 돌..
예산 추사고택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한 추사고택이었다. 찬 바람에 으스스하게 몸이 움츠려드는 겨울철이라서인지 고택 주변은 쓸쓸하고 황량했다. 이파리 다 떨어진 앙상한 나목들과 추사가 좋아했다는 고택의 뜨락 수선화도 흔적마저 찾을 수 없어서, 적막감까지 감돌았다. 방문객들도 없어 추사고택을 나 홀로 온전히 감상했다. 사랑채 마루 위 벽에 고택의 옛 사진이 있어 흥미로웠다. 나름대로 과거의 모습을 짐작하며 현재와 비교할 수 있었다. 예전엔 사랑채 앞까지 마당 없이 밭을 일구었다. 문화재 가치를 모르던 시절, 무심하게 무너져가던 유적들이, 오늘날 온전한 형태로 복구되어 볼 수 있는 것이 다행한 일이다. 다만 고증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작위적 창조물은 삼갈 일이겠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조선시대 명필로 석봉과 추사를 모르는..
예산 화순옹주 홍문 지난 가을 추사고택을 찾았을 때, 보지 못했던 영조대왕이 사랑했던 화순옹주 홍문을 찾았다. 한 모퉁이 돌면 그곳이었는데, 그 걸 몰라 지나쳤던 것이 아쉬웠던 탓이다. 공교롭게도 희뿌연 연무가 끼어 맑은 날이 아니었다. 오랜만의 출사라서 기대가 컸었는데, 결과물이 그리 좋지 않았다. 화순옹주(和順翁主, 1720년 ~ 1758년 1월 17일)는 조선 제 21 대 임금 영조의 차녀로 어머니는 정빈 이씨(靖嬪 李氏, 1694~1721) 소생이다. 조선의 왕녀들 중 유일하게 열녀(烈女)로 지정되었으며 이복 언니 화억옹주가 조졸하였기에 장녀가 되었다. 화억옹주와 효장세자는 소론 일당의 지시를 받은 궁녀들과 무당 등이 죽은 사람의 뼛가루를 창경궁의 양화당, 동궁, 빈궁의 침실 등에 묻고, 오랫동안 그것을 효장세자와 ..
대관령 하늘목장 아침 날씨가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여전히 좋지 않았다. 리조트 안내 데스크에서 얻어온 홍보물을 보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행선지를 하늘목장으로 정했다. 전에 선자령을 트랙킹할 때 눈발치로 봤던 곳이기도 했다. 리조트 안에서 게으름을 실컷 떨다가 퇴실 시간에 즈음해서 목적지로 떠났다. 구불구불 산길을 돌고 돌아 30여분 소요되었다. 주차장엔 이미 많은 차량들이 가득 차 있었다. 입장료 6000원, 트랙터 포장마차 7000원이니 관람료가 지나치다 싶었다. 목장을 운영하면서 부가적으로 체험농장을 하는 것인데, 어찌 보면 주객이 바뀐 것 같다. 놀이공원이 아닌 목장이라면 차라리 적당한 입장료에 농장의 생산물을 다양하게 가공해서 판매하는 것이 바람직할 텐데, 아예 안전한 수익을 위해 다소 과한 요금을 책정했는지..
용평 발왕산 관광 케이블카 주말에 처남의 도움으로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에 바람 쐬러 나갔다가, 용평리조트에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발왕산에 올랐다. 일본을 강타한 태풍 하비기스의 영향으로 구름이 내려앉아 안갯속을 헤매다가 비만 맞고 내려왔다. 케이블카 왕복 요금이 성인 2만 원이어서 그리 싼값은 아니었다. 일부 카드(BC, 농협, 국민카드)를 사용하면 25% 할인해 준다. 케이블카 손님들이 의외로 많아 놀랐다. 케이블카는 3.7킬로미터로 긴 편이어서 그 규모가 대단했다. 중국 장가계 천문산 케이블카보다는 덜했지만, 편안하게 앉아서 해발 1458미터를 오를 수 있었다. 설악산에도 대청봉에 오르는 케이블카가 생기면, 노약자들도 아름다운 절경들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을 텐데, 내 개인적으로는 설악산 대청봉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