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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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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명당 남연군 묘 모처럼 날씨가 쾌청했다. 어젯밤에 비가 온 탓인지 티끌 먼지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날이었다. 집콕하기엔 너무 아까운 날이어서 외출을 감행했는데, 인적 없는 곳을 고르다 보니 덕산에 있는 남연군 묘가 생각났다. 영화 '명당'이, 이 묏자리를 두고 안동 김씨 세력과 대원군이 암투를 벌리는 내용이던데, 대원군은 그의 후손 두 명이 왕이 될 자리라는 풍수쟁이의 말을 듣고, 본디 있던 가야사를 불태우고 석탑이 있던 자리에 아버지의 묘를 멀리 연천에서부터 1846년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묘자리는 왕을 배출하기는 하지만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달이 우선이었던 대원군은 기어코 아버지 남연군(1788∼1822)의 묘를 쓰고 말았다. 사도세자는 혜빈 홍씨와 ..
삼척 준경묘 대한민국 최고의 명당자리라는 준경묘, 묘를 잘 쓴 덕에 오백 년 조선왕조를 세웠다고 전한다. 이성계의 증조부인 이안사가 전주에서 삼척으로 야반도주해서 살다가 도승을 만나 아버지 묘를 쓰게 되었는데, 그 자리가 바로 이곳 준경묘이다. 야사에 의하면 전주호족이었던 이안사는 전주관기를 사랑했었는데, 때마침 전주로 부임해 온 사또 역시 그 기생을 좋아하게 되었단다. 분을 참지 못한 이안사가 사또를 두들겨 패고는 그 기생과 집안 식솔들을 이끌고 삼척으로 도망했다. 삼척에 정착해서 평안하게 살고 있는데, 신임사또 부임소식에 관아의 담너머로 사또를 보니 전주에서 두들겨 팼던 그 사람이었다. 지난 악연에 후환이 두려워 사또의 눈을 피해 고려 조정의 힘이 미치지 않는 함경도 변방으로 식솔들을 데리고 다시 이주했다. 그곳..
예산군 남연군묘 꺼져가는 촛불처럼 조선의 기운이 쇠락해 가던 시절, 자신의 야망을 감추고, 시정잡배 파락호로 위장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이하응(1820~1898). 그는 안동 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도정치 속에서 앞날을 내다보며, 자신의 후손을 왕위에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하응은 풍수설의 신봉자로, 지관 정만인에게 아버지 남연군의 묏자리를 의뢰하였다. 당대의 유명한 풍수쟁이였던 정만인은 충청도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가야사를 일러주며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라고 했단다. 이에 이하응은 1846년 가야사를 불태워 없애고, 이미 경기 연천에 모셨던 아버지의 묘를 가야사 탑이 있던 자리로 이장하였다. 그로부터 7년 뒤에 둘째 아들 명복을 낳았는데, 그가 조선조 철종의 뒤를 이은 고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