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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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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앓는 백제의 미소 - 서산 삼존 마애불 모처럼 큰맘 먹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돌아 마애삼존불을 찾았는데, 개울물 건너는 다리부터 공사판으로 어지러운 풍경이었다. 삼존불에 오르는 계단 옆으로 석재를 끌어올리는 레일이 설치되어 볼상사나웠다. 삼존불상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불이문도 엉망으로 해체되어 있고, 그 주변이 성의 없이 마구 파헤쳐져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보수를 하려고 이토록 자연스러운 주변 경관들을 파헤치는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천년 풍상을 견디고 오늘에 전하는 삼존불은 자연과 하나 된 아름다움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할 수 있을까. 왜 이리 문화재를 못살게 들볶는지 모르겠다. 그전에는 삼존불 위에 비바람을 피하는 전각을 짓는다고 삼존불상 옆 암벽에 들보 구멍을 뚫었었는데, 전각을 철거한 지금 그 흉측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삼존불..
양남 파도소리 길 경주시 양남면 읍천 주상절리를 가려는데, 내비게이션에 읍천주상절리가 입력되어 있지 않아 읍천항을 목표로 삼았다. 이정표를 참고하려는데, 양남에 들어서도 주상절리 푯말이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길가에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 찾아갔다. 마을 입구에 이정표 대신 주상절리라고 쓴, 세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현수막을 따라 좁은 길로 해안으로 나가니, 비로소 최근에 만든 듯, 너른 임시 주차장이 나타났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해안으로 이동했다. 연무 때문에 바다와 하늘이 모두 잿빛이었다. 다만, 해안 풍경들이 흔히 볼 수 없었던 막대모양의 바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서 흥미로웠다. 제주 중문 주상절리는 규모도 크고 육각형의 막대 바위들이 세로로 서 있었는데, 여기의 막대바위들은 누워 있..
산사에서의 커피공양, 죽산 국사암의 궁예 미륵 쌍미륵사에서 내려오며 바로 좌회전하여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맞은편에서 차라도 나오면 그야말로 낭패였을 것이다. 그 산길을 구불구불 지나 국사암 바로 아래에선 30도 이상 가파른 시멘트 길을 박차며 암자에 올랐다. 막바지 오르막길에선 경사가 급해 자동차가 뒤로 뒤집어질 것 같았다. 나는 두 번째 방문이라 큰 감동은 없었으나, 가을빛이 무르익어 풍광이 아름다웠다. 때마침 작업복을 입은 스님이 설풍기를 등에 지고 바람으로 낙엽들을 치우고 있었다. 싸리비로 낙엽들을 쓸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날려 버리니, 문명의 이기가 이곳 암자까지 들어와 스님의 노고를 덜고 있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 경내를 두루 돌아 관람을 마친 뒤,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낙엽을 날리던 스님이 우리..
가을 찬가, 죽주산성 가을의 색깔은 오묘하다. 가을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색깔은 무엇일까. 산을 불태워버릴 듯 맹렬하게 번지는 단풍나무의 원초적 빨강, 참나무들이 내뿜는 주황, 태고적부터 살아왔다는 화석식물인 은행나무의 노랑 등 등... 형형색색이 서로 섞여, 이 가을을 수놓는다. 그래서 예부터 우리 산하를 금수강산이라 했나 보다. 내가 보기에는 비단에 수놓은 것보다도,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오묘한 색상들의 배합이 더 아름답다. 다시 말하면 미려한 금수강산이란 말보다도 우리의 가을 산천은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곳, 죽주산성에는 노랑색의 향연이었다. 산성에 서식하는 나무들의 주류는 낙엽송이었는데, 노랑 낙엽송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파랑 하늘빛과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허물어졌던 옛 성을 최근에 보수해서 구불구..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 그곳엔 과거가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기울어진 햇살 아래 MBC 촬영장은 짙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시간을 뛰어넘어 호랭이 담배 먹던 과거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들어가는 진입로 주변은 축사농가라서, 동물들의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르고, 동네 개울에는 농가의 오수가 악취를 내며 흘렀다. 도로도 좁아서 승용차 두 대가 서로 교행하기도 불편할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통의 산맥들처럼 북-남으로 뻗은 낮은 산줄기에 동향으로 앉은 세트장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전에 보았던 부안 종합세트장보다 남양주 종합 촬영소보다도 규모가 더 커 보였다. 단지 내 상식으로 알 수 없을 것 같은 국적불명의 건축물이 많아서 아쉽긴 했지만... 입장료 7000 원을 내고, 세트장을 주욱 돌아보는데, 일본인 관광객들이 의..
충주 탄금대 충주를 지나는 길에 탄금대를 찾았다. 20년도 더 지난 시절의 기억을 더듬었으나, 기억이 가물거려 처음 온 곳처럼 모든 것이 생소해 보였다. 탄금대 공원 위로 올라가자, 탄금대 가는 길은 포장 공사중이었다. 편하지 않은 길을 타박거리며 걸어서 직진하다가 좌로 굽어진 구비에 현충탑과 위령탑을 보았다. 현충탑은 6.25 전몰장병들을 기리는 것이고, 위령비는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순국한 신립장군과 그 휘하 8000 명의 고혼을 추모하는 것이었다. 경치가 아름다워 신라에 귀화한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며 궁중악을 창작했었다는 이곳 탄금대가 포악한 왜적들의 침략으로 처절한 핏빛으로 물들어 그 흔적을 좇아 오늘에 그 만행을 반추하고 있었다. 탄금대 주변, 곳곳에 신립장군을 기리는 비석들이 널려 있..
오산 독산성 가을볕 따라 나간 독산성(세마대)이었다. 휴일이라서인지 어린아이들을 데려온 가족들이 부쩍 많았다. 인근에 오산 세교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동탄 신도시가 생기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았다. 5 공화국 시절 대통령의 장인이 이곳에 농장을 만들고 살아서 성아래 중턱에 헬기장까지 닦였는데, 5 공화국 이후에 주차장이 되었다. 사람들로부터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세마대를 찾는 시민들에게 엄청난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그 옆 약수터에서는 산행 후 시원한 물맛도 볼 수도 있고... 옛날부터 군사적 요충지였지만 널리 알려진 것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쌀로 말을 씻어 왜적들을 물리쳤다는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휴일 한 때, 맑은 공기를 벗하며 수원과 화성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창녕 화왕산과 화왕산성 억새숲으로 유명한 화왕산. 이곳에서 2009년 2월 9일 설날에 창녕군 주최로 달집 태우기 행사를 하다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에 불이 번져 7 명이 죽고 80여 명이 부상하는 대참사가 일어났었다. 진달래와 철쭉 군락지로 봄철에 보는 경관 또한 수려하다고 한다. 청명한 가을날 이름난 화왕산 억새숲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강원도 정선 민둥산이나 포천 명성산 갈대숲만큼이나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곳이라 기대감이 사뭇 컸다. 산행 코스는 창녕군 학생야영장이 있는 곳을 들머리로 해서 화왕산을 지나 허준 세트장을 경유하여 관룡사로 하산하는 경로로 약 5시간 정도를 예상했다. 창녕은 우포 늪지로 유명하기도 해서 한 번 다녀가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차제에 화왕산부터 등반하기로 했다. 들머리에서 화왕산으로 가는 코스는 ..
배티성지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노고산에서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아래 위치한 배티성지(聖地)는 많은 순교자의 정신을 기리고 기도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동네어귀에 배나무가 많아 배나무고개, 즉 이치(梨峙)라는 말이 생겨났고 이것이 순수한 우리말로 ‘배티’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조선 영조 때 이인좌가 난을 일으켰을 때 백곡을 지나다 이 마을 노인 이순곤이 이끄는 주민에게 패한 뒤 다시 안성 쪽으로 향하다가 오명항이 이끄는 관군에게 패하였다는 데서 '패치'라 불리다가 '배티'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배티(梨峙)는 신유박해(1801년)로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이어지는 천주교 박해시대 때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골짜기로, 1830년을 전후로 교우촌(비밀신앙공..
안성 석남사 안성에서 진천으로 넘어가는 차령산맥 줄기의 배티 고갯길 직전, 깊은 골짜기 속의 아담한 사찰이었다. 배티는 국도에서 오른쪽 샛길로 일 차선의 좁은 길을 따라 쭈욱 올라가면 서운산 오르는 길목의 작은 사찰을 만나게 되는데 이 절이 바로 석남사였다. 당초에 석남사를 알고 찾은 것이 아니라 안성에서 진천으로 가다가 길가에 서있는 천년사찰이라는 안내판을 보고는 가던 길을 멈추고 샛길로 접어들어 방문한 곳이었다. 석남사 아래 작은 공터에는 등산객들의 승용차들이 몇 자리를 남겨두었다. 석남사는 통일신라시대인 680년(문무왕 20)에 담화 또는 석선이 창건하였단다. 876년(문성왕 18) 염거가 중수하고, 고려 때에는 광종(光宗)의 왕사였던 혜거 국사가 중창하여 수백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 숭유..
안성 팜랜드 유명하단 안성목장을 검색하니 안성 팜랜드로 바뀌었다.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팜랜드를 찾았는데, 입장료가 장난이 아니었다. 볼거리라야 달랑 산책로 딸린 목장이 전부로 생각되는데 말이다. 대관령 양떼 목장에 갔을 때, 입장료를 3000원 받길래, 그것도 과하다 싶었는데, 여기는 평일에 6000원, 공휴일엔 7000원이란다. 개인이 영리 차원에서 경영하는 양떼목장도 일반인 3000원씩 입장료를 받는데, 농협에서 주관해서 운영하는 목장에, 7000원을 징수한다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어쩌는 수 없이 표를 구입하니 입구에서 종이 팔찌를 하나씩 채워주었다. 옛날 자연농원 들어갈 때 그러던 것처럼... 정문을 지나니 dog show 하는 곳, 소형동물 키우는 곳, 애완용 조류장 등이 있었고, 말타기 활쏘기 체험장들이..
화성 화서문 화성의 서문인 화서문에 나갔다가 보수 공사가 끝난 서북공심돈을 보고 몇 컷 촬영했다. 마침 삼각대가 차 안에 있어서 안정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지나다니는 행인들과 자동차를 피하려고 애썼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태풍 소식에 우중충한 하늘은 어둠 속이라 오히려 다행이었다. 성안에서 바라본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성밖의 서북 공심돈과 화서문 측면에서 바라본 화서문과 공심돈 서북각루 서북각루에서 바라본 공심돈과 화서문
제부도의 가을 바다가 보고 싶어 집을 나왔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문득 스마트 폰으로 제부도 물때를 검색해 보니, 때마침 바닷길이 열려 있었다. 제부도에서는 푸른 바다를 보기 어렵지만, 탁 막힌 가슴을 열고 비린내 나는 해풍에 큰 호흡, 한 번 제대로 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제부도 가는 길거리마다 쌓아놓고 파는 송산 포도를 보며, 어김없이 가을 냄새를 느꼈다. 바다가 가까워지자 대하 구이집들이 현란한 간판을 달고 나그네들을 유혹했다. 추석도 멀지 않았나 싶어 문득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제부도 입구엔 활어시장 건물을 크게 짓고 오픈행사를 하고 있었다. 대하구이, 1인당 만원으로 무한 리필이란다. 대형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호객소리가 요란하다. 각설이 타령, 나레이션 모델들을 춤사위가 퍽이나 요란스럽다. 섬에서..
여름 지나간 바다 아직도 한여름의 열기가 후끈하게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여름은 지나가고 있었다. 여름이 지나는 해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바닷가를 거닐며, 물 빠진 갯가에 나가 조개를 줍기도 했다. 끈적거리긴 하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산책길의 분위기를 돋구웠다. 올봄, 이곳을 찾았을 때 바닷바람이 매섭게 차가워 눈물까지 났었는데, 이젠 여름 지나 벌써 가을이었다. 세상이 격변하듯 날씨의 변화도 그야말로 무쌍하다. 온난화 덕인지 몰라도 겨울엔 몹시 춥고, 여름엔 너무 덥다. 마치 극과 극을 달리듯 춥고 더우니 사람이 힘들다. 사람만이 힘든 게 아니라 모든 생물들이 환경변화에 극심한 몸살들을 앓고 있나 보다. 처음 아열대 기후로 접어들었다는 말을 듣고는 겨울 추위를 싫어했던 나는 세상 살기 좋아질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