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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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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준경묘 대한민국 최고의 명당자리라는 준경묘, 묘를 잘 쓴 덕에 오백 년 조선왕조를 세웠다고 전한다. 이성계의 증조부인 이안사가 전주에서 삼척으로 야반도주해서 살다가 도승을 만나 아버지 묘를 쓰게 되었는데, 그 자리가 바로 이곳 준경묘이다. 야사에 의하면 전주호족이었던 이안사는 전주관기를 사랑했었는데, 때마침 전주로 부임해 온 사또 역시 그 기생을 좋아하게 되었단다. 분을 참지 못한 이안사가 사또를 두들겨 패고는 그 기생과 집안 식솔들을 이끌고 삼척으로 도망했다. 삼척에 정착해서 평안하게 살고 있는데, 신임사또 부임소식에 관아의 담너머로 사또를 보니 전주에서 두들겨 팼던 그 사람이었다. 지난 악연에 후환이 두려워 사또의 눈을 피해 고려 조정의 힘이 미치지 않는 함경도 변방으로 식솔들을 데리고 다시 이주했다. 그곳..
삼척 준경묘와 영경묘 지난 겨울에 가보고 싶었던 준경묘였다. 그때, 지척까지 갔다가 갑자기 내린 눈 때문에 안타깝게 포기했었다. 태백에서 내비게이션(지니맵)에 준경묘를 입력하고 달렸으나, 도착한 곳은 비포장도로의 끝지점인 시멘트 광산 본부 사무실이었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으나 이정표 하나 없는 첩첩산중이어서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일이어서 비탈을 오르는 시멘트 구비길을 200여 미터 오르니 현장 숙소가 나타났다. 이른 아침 차소리에 잠을 깬 현장 직원들이 놀래서 밖으로 나왔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종종 내비게이션 오류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준경묘는 이 산의 반대편에 있단다. 산을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고 멀지 않으니 활기리 마을회관을 찾으면 될 것이라는 말에 차를 되돌려 또 달리고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