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 (84) 썸네일형 리스트형 신라시대 철조 약사불 좌상(국보)이 있는, 칠갑산 장곡사 "콩바앝 매애는 아나악네야아~ 베적삼이 흠뻐억 저엊누나아아~~ " 주병선이 부른 칠갑산 노래이다. 예전엔 청양군이 있다는 것도 몰랐었는데, 칠갑산 노래로 충남도 청양군을 알았다. 산이 많고 공기가 맑아 살기 좋대서 몇 번 그곳에 정착하러 답사도 가보았었다. 실제로 거처를 옮기진 못했지만, 왠지 백제의 옛 수도 부여와 그곳에 인접한 마을들에 정감이 간다. 청양 고추를 두고 이곳 청양군 원조설에 대응하여 경북도 청송군과 영양군이 연합하여 지역 연고권을 주장한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청양군의 상징물은 고추이다. 무료하던 차에 청양군의 볼거리를 찾아 나섰다. 첫 번째로 낙점한 곳이 장곡사였다. 입구에 장승마을도 있고 주차장 조성이 잘 되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단다. 대부분의 큰 도로.. 가을에 물든 공주 태화산 마곡사 더웠던 여름 탓인지 마곡사에는 이제 가을이 농익고 있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다. 참나무 느티나무 이파리들도 색깔이 고왔다. 단풍잎은 이제 물들기 시작하고... 모처럼 찾았던 마곡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곤 이내 나왔다. 자주 본 풍경들이 익숙한 탓이기도 했고, 입구부터 극락교 건너기 전까지 담장 안 전각 마당엔 금줄을 치고 공사가 한창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가을이 익어가는 산사의 경내에서 바라보는 울긋불긋한 풍경들이 그저 곱기만 했다. 해탈문 천왕문 극락교, 냇물 하나의 경계로 속세와 극락을 나눌 수 있을까. 다리 건너에 부처님을 모셨으니 그러려니, 다리를 건넜다. 범종각 오층석탑과 대광보전, 그리고 그 뒤 언덕 위에 있는 대웅보전.오층석탑은 10월 31일 국가보물로 지정예고 되었다.. 세상에나, 아까워라! 공주 고불산 성곡사(聖谷寺) 공주의 명소를 검색하던 중, 거대한 불상들이 있는 성곡사를 찾게 되었다. 천불상과 국내 최대의 높이 18m의 청동좌불을 보기 위해 공주 시내를 지나 산골길 끝에서 가파른 외길을 등판하여 성곡사에 올랐다. 군데군데 보이는 우람한 크기의 불상과 달리 주변의 절집들이 왜색풍을 띠고 있어서 어수선해 보였다. 허름해보이는 종무소와 넓은 주차장은 바닥이 거칠었다. 주변의 건물들도 가건물같아서 인적 끊긴 폐가처럼 을씨년스러운 것이 첫인상이었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산길들도 정리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고 험했다. 성곡사는 1982년 주지 관묵이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 종각, 삼성각, 명부전, 나한전, 천불전, 지장전, 명부전, 와불전, 약사전에 이어 2006년 관음전을 건립하여 현재에 이른다. 대한불교 관음종으로..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과 사사자 3층석탑 수년 전 화엄사를 찾았을 때 각황전 뒤 언덕 위에 있는 사사자삼층석탑을 보수하는 중이라 보지 못해 마음에 걸렸었다. 화엄사를 대표하는 것은 뭐라 해도 각황전과 사사자삼층석탑이 아닌가 나름 생각한다. 몇 년 사이 약간의 변화가 있었나 보다. 젊었던 시절 화엄사 오른쪽 계곡을 따라 노고단에 몇 번 올랐었다. 그때의 화엄사를 떠올리면 현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해졌다. 거대한 전각들이 들어서고 찬란한 단청색에 눈이 부시다. 화려한 외형보다 내면이 더 소중할 터인데, 절집들도 빌딩처럼 솟아나는 오늘의 교회처럼 거대한 건물들과 석조물, 화려한 단청빛이 오히려 세속의 어지러움을 부추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불교신자가 아니면서도 절집의 목조건축물들이 찾곤 하지만 크고 화려하여 오히려 세속적인 모.. 벼랑 위의 공중 암자, 구례 오산 사성암(四聖庵) CNN에서 한국 관광명소 100 중 하나로 선정했다는 사성암이다. 일찍이 찾아보고자 했으나 이제야 들린 것에 만시지탄이 든다. 그동안 사진들과 영상들을 통해 기암절벽에 암자를 지은 모습이 경이로웠다. 예전에는 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두고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암자에 올랐으나, 이제 암자 아래 주차장을 만들어 셔틀버스의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 날씨가 선선해졌지만, 한낮의 땡볕은 매우 뜨거웠다. 금년은 더워도 너무 더웠었다. 사성암이 있는 산은 그 모양이 자라를 닮아 자라 '오(鰲)'자를 써서 오산(鰲山)이다. 그런 연유로 백제 성왕 때 오산암으로 창건하였으나 이후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한 곳이라 하여 사성암(四聖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한다. 사성암에 오르며.. 화산(花山) 용주사(龍珠寺) 전날의 강풍과 전일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내린 비 때문인지 날씨가 오월의 하늘 그대로 화창했다. 예전 푸른 초원으로 목가적이었던 용주사부터 융건릉까지 아름다운 시골풍경은 주변 도시개발로 사라졌다. 도로마저 끊고 주변을 재구성하여 아파트와 상가주택, 공원을 건설함으로써 일대가 상전벽해로 변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된 융건릉 때문인지 신도시마다 들어서는 죽순 같은 고층 아파트는 절제했다는 것이다. 과거 고려시대와 옛 수원성의 유물이 발견되어 개발이 지체되기도 했었는데, 유물발굴은 제대로 되었는지 모르겠다. 국민을 위하는 옛 토지개발공사의 무분별한 주거지 개발의 참화가 이곳을 피해 가지 못했다. 새로 만든 도로를 통과해서 용주사에 갔는데, 초파일이 가까운 탓에 방문객들이 많았다. .. 계룡산 신원사 벚꽃 벌써 벚꽃이 지기 시작한다. 아쉬움에 모처럼 화창한 날씨를 핑계 삼아 벚꽃구경에 나섰다. 계룡산 신원사 벚꽃 사진이 기억에 남아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고 돌아 신원사로 갔다. 신원사 대웅전 마당 앞에 있는 벚꽃이 탐스럽긴 했지만 고목인데다 마당 가득 연등이 달리고 천막까지 쳐있어서 기대만큼 화려하진 않았다. 경내를 한 바퀴 산책 삼아 거닐며 오전 한 때를 보냈다. 중악단 산신각 논산 천호산 개태사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완성한 곳에 세운 사찰이다. 개태사는 고려의 태조 왕건이 후백제왕 신검으로부터 최후의 항복을 받은 역사적 장소이며, 마침내 후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상징적인 장소이다. 전에 보았던 우주정(개태사 부엌에서 쓰였던 무쇠 가마솥을 보호하는 정자 모양의 집)이 있었는데, 그 사이 천막 비닐로 감싼 철확(가마솥)만 남아있고 우주정은 없어졌다. 대신 대웅보전 앞에 고려 태조 왕건 상소문을 새긴 커다란 기념비가 서 있었다. 이번 방문에는 본래 개태사가 있던 개태사지와 왕건이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는 천호산엔 올라가지 않았다. 천호산의 옛 이름은 황산으로 산 아래 연산벌이 바로 삼국시대 신라군과 백제군의 격전지였다. 개태사 아래 연산역 북쪽 깃대봉 아래 황산성터가 남아있다. 황산성.. 논산 반야산 관촉사 관촉사에 갔을 때마다 비가 왔었다. 그런 연유로 모처럼 맑은 날 일부러 관촉사로 먼 길을 찾아갔다. 관촉사에 도착했을 때 정오쯤이었는데, 관촉사가 북동향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었나 보다. 일주문에서부터 따가운 남쪽 햇살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지독한 역광이었다. 가능한 대로 역광을 피해 측광을 이용하려 애썼지만 대체로 사진들이 어두웠다. 게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미륵전 뒤 석탑과 석등은 가림막을 쓰고 보수 중이었다. 모처럼 찾아간 곳이 보수 공사를 하게 되면 실망이 여간 큰 게 아니다. 게다가 관촉사 경내 마당은 맨땅이라 얼고 녹기를 반복해서 매우 질척거렸다. 자유롭게 걸어 다니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건물을 이어주는 마당길에 야자매트를 깔아 불편을 해소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엔 등산.. 겨울 동학사 모처럼 청명한 날씨였다. 날씨도 제법 푸근해서 동학사를 찾아 걸었다. 동학사 아래 웬 모텔과 펜션, 음식점들이 그리 많은지 깊은 계곡 법당에서 중생들을 구제하실 부처님도 놀라시겠다. 산중 깊은 절을 찾는 것은 아름다운 산수를 벗하며 그윽한 향연 앞에서 부처님 상호를 뵙는 것이 목적일진대, 절 아래에선 세속의 본능들을 굽고 탐하는 난장판이니, 평범한 범생이 중생으로서 불계와 속계의 공존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더구나 동학사는 신라 충신 박제상을 추모하는 동계사가 있고, 고려말 충신 포은 야은 목은을 추모하는 삼은각과 조선초 삼촌 수양에게 시해당한 단종임금과 그를 위해 목숨 바친 사육신 생육신 등 351 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한데... 시류가 이럴진대 감히 오지랖 펼 .. 불심처럼 그윽한 영평사 구절초 영평사의 구절초 축제는 끝났지만 구절초들은 막바지인지도 모를 작은 꽃들을 올망졸망 피워내고 있었다. 절정기가 지난 탓 때문인지 영평사 뒷동산에는 이 빠진 듯 구절초들이 성근 곳도 많았지만, 익어가는 가을 속에 부처님의 불심처럼 곱게 피어나고 있었다. 구절초를 심어 꽃동산을 만든 이곳 스님들의 노력으로 영평사는 가을 구절초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리 크지 않은 사찰임에도 변화무쌍 변모하는 영평사에는 스님들의 혁신 정신이 그 동력의 원천이 되는 듯하다. 구절초 동산 외에도 추모공원을 만들고, 많은 장독들에 전통 장류들을 숙성시키는 등, 상업적으로도 재정확충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한 순간 지나가는 과객으로서 자세한 내용이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절 주변의 조경만 보더라도 이곳 스님들의 노력은 기.. 계룡산 신원사와 중악단 천도재 갑사에서 가까운 신원사를 찾았다. 신원사는 규모는 크지 않으나 소박하고 단아하며 깔끔한 절이다. 동학사와 갑사, 신원사가 계룡산의 대표적인 고찰인데 내 보기에는 그중 신원사가 제일 단아하며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절이다. 백제 말 의자왕 때 창건한 절로 역사가 깊다. 예전에 계룡산 골짜기에 우후죽순처럼 많았던 무속신당들을 철거하자 계룡산 주변으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일부 무속인들이 옮겨 간 곳이 신원사 주변이다. 계룡산 정상인 천왕봉과 가장 가깝기도 하거니와 산에서 뿜는 기운이 가장 강한 곳이 신원사가 아닐까 나름 짐작해 본다. 계룡산 서남쪽에 자리한 신원사는 조선시대 중악단을 두고 산신께 제사 지냈다. 조선조 때 묘향산에 상악단을, 지리산에는 하악단을 세워 국가에서 산신께 제사를 지냈다. 지금은 .. 계룡갑사의 가을 기상하여 커튼을 제치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완연한 가을이다. 기온도 뚝 떨어져 아침 온도가 10도 안팎이다. 간단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계룡산이 가까워지면서 닭볏 같은 기묘한 산봉우리들이 눈앞에 전개되었다. 언제 보아도 참으로 신묘한 형상이다. 제법 눈에 익은 갑사 가는 길이었음에도 주차장 근처에서 내비게이션이 심술을 부렸다. 좁은 편도 일 차선에서 엉뚱한 길로 안내하는 탓에 잘못 들어섰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앞으로 가야 했다. 펜션들이 즐비한 마을의 좁은 길을 돌고 돌아 주차장에 들어섰다. 어젯밤까지 내린 보슬비 때문에 갑사로 가는 길 위에 젖은 낙엽들이 쌓여 있었다. 송풍기로 낙엽들을 날리는 굉음과 휘발유 타는 냄새가 요란했다. 시간을 두고 조금만 참으면 저절로 말라서 .. 여주 봉미산 신륵사와 강월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신륵사였다. 평일 오후여서인지 신륵사엔 주변부터 한산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기 때문인지 식당을 찾아들었으나, 주인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로 요기하고 신륵사 경내로 들어갔다. 전에는 입장료를 받았는데, 매표소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매표 없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이곳 신륵사에도 징수하던 관람료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신륵사는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썩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고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내에 들어가서 두 번 실망했다. 첫 번째는 가람막을 씌우고 범종각일대를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신륵사 좌측면 바위 위 강월헌 정자 주변에 추락 위험이라 적은 현수막과 정자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어설프게 둘러친 금줄 때문이었.. 백화산 반야사 월류정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반야사에 들렸다. 월류정 윗굽이에서 초강천과 석천이 만나는데, 반야사는 북쪽에서 흐르는 석천 상류 8km 정도 시냇가에 있었다. 월류정에서 둘레길을 따라 이곳까지 걸어서 오는 탐방객들도 더러 있는 듯,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곳 반야사 산비탈에 호랑이 형상 무늬가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반야사는 조용하고 아담하며 맑은 물이 흐르는 시냇물과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청정지역에 있는 예쁜 절이었다. 자동차로 일주문을 지나 반야사 경내에 주차할 수 있다. 백화산 반야사 일주문 반야사 종무소와 심검당, 오른편엔 중화당(종무소) 범종각과 요사채 뒤, 개울 건너 산골짜기 비탈에 자갈들이 만든 호랑이 형상. 대웅전과 극락전 대웅전 앞 백화산 능선 삼층석탑, 뒤에는 왼.. 부여 만수산 무량사 꽃지에서 귀가하는 길에 보령시 뒷산맥을 돌아 부여 외산면 만수산 무량사에 들렸다. 무량사는 남북국 시대 창건된 사찰로 임진왜란 당시 왜적이 불태워 없앤 것을 임란 후 인조 때 터를 옮겨 중창했다고 한다. 특히 무량사는 매월당 김시습 선생께서 돌아가신 곳으로 국내 유일하게 그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재작년 겨울철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초가을 경관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무량사 들어가는 일주문 무량사로 건너가는 극락교, 도로 왼편엔 매월당 부도가 있고, 오른쪽에 무량사가 있다. 무량사 초입 요사채 천왕문 천왕문에서 바라보는 이층 전각의 극락전, 구부러진 소나무 덕에 극락전 전경이 막히지 않았다. 무심한 소나무에도 불심이 가득한 듯하다. 왼편의 향적당, 천막 아래 현수막에 매월당 초상이 붙어 있었다. .. 5월의 마곡사 몇 번을 다녀왔지만 마곡사는 정감이 가는 사찰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을미사변에 왕비인 민비가 일제에 시해되자, 분한 마음에 황해도에서 민간인으로 변장한 왜군을 죽임으로써 그 원수를 갚고자 했다. 그 죄로 인천 감옥에 압송되어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에 이곳 마곡사에서 잠시 의탁한 적이 있다. 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세계유산목록으로 등재하였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은 통도사(양산), 부석사(영주), 봉정사(안동), 법주사(보은), 마곡사(공주), 선암사(순천), 대흥사(해남) 등 7개 사찰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7~9세기 창건 후 현재까지 지속성, 한국 불교 역사성’이 세계유산 등재.. 구절초는 시들었지만 ... ... 수년 전, 구절초가 아름답다는 영평사를 보러 가다가, 영평사 입구에서 차가 막혀 방문을 포기한 적이 있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의 문턱에 선 지금, 구절초는 시들었겠지만, 옛 생각에 영평사를 찾았다. 갑자기 미세먼지가 안개처럼 자욱한 날, 집 밖을 나서는 것이 선듯 내키지 않았지만, 집콕하는 코로나 시국에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 영평사는 생각보다 작은 절이었다. 동향으로 자리 잡은 대웅전 앞에 부여 정림사지 5층 탑을 본뜬 시멘트 탑이 있었다. 향후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겠다는 염원을 시멘트 모조탑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영평사 뒷산이 이른바 장군산인데, 이 일대에 구철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은 말라 시들은 꽃대의 흔적만 볼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 생명력을 보여주는 몇 송이 구절초들을 보는.. 하동 삼신산 쌍계사 남해도에서 돌아올 때, 하동 섬진강변 길을 택했다. 섬진강 구비가 아름답고 벚나무숲 가로수가 예쁜 까닭이었다. 수년 전 구불구불한 길을 넓히고 곧게 펴서 도로가 강변을 따라 시원스레 펼쳐졌다. 좀 더 달릴 수 있을 터인데 속도가 50km-60km/h로 제한되다 보니, 운전하는 입장에선 짜증이 난다. 곳곳의 과속감시 카메라 때문에 속도를 올릴 수 없다. 그래도 은빛으로 빛나는 강줄기를 따라, 예전에 들렸던 악양면 들판의 부부송과 최참판댁을 추억하며,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화개장터를 돌아 쌍계사로 들어갔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가는 도로는 왕복 2차선으로 길이 좁았다. 제한 속도는 40km/h. 안전을 위해서 그렇다니 할 수 없지만 전방에 차가 없으면 시원하게 주행하게 할 수는 없을까. 차밭이 많아 길.. 남해 금산 보리암 보리암 아래 전망은 절경으로 꼽는 명승이라는데, 이전에 두 번을 방문했지만, 안개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다. 관음포 충무공 유적을 참배한 후, 금산 보리암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맑은 탓에 안개보다 더위가 걱정이었다. 가파른 금산 산마루를 구불구불 힘들게 올라 주차장 매표소에 도착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공단에서 징수하는 주차료가 4000원으로 생각보다 과하단 느낌이었다. 주차장 매표소에서 한참을 올라가 보리암 입구 주차장에 주차한 후, 보리암 매표소에서 1인당 1000원씩 보리암 입장료를 내고 산길을 타박타박 30여분 걸어 올라갔다. 보리암 가까운 언덕 구비 전망대에서 드디어 탁 트여 막힌 곳 하나 없는 일망무제 남해를 바라볼 수 있었다. 여행의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사진.. 부여 만수산 무량사 영겁보다 셀 수 없는 시간이 무량이라 들었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 중생들에겐 상상조차 되지 않는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무량사란 이름을 가진 사찰들이 많다. 그동안 소문으로 들었던 부여 무량사를 찾아 나섰다. 부여에 있다 해서 가까운 거리로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먼 길이었다. 이정표를 보니 오히려 보령 대천 쪽에 더 가까운 모양새였다. 한동안 우중충하던 날씨도 화창했고 겨울답지 않게 포근해서 나들이하기에 좋았다. 무량사 넓은 주차장엔 이미 많은 차량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을까 염려했으나, 경내는 한적하고 고요했다. 남향으로 자리 잡은 2층 누각의 극락전은 고색창연하며 위풍당당했다. 만수산 자락 아래 높지 않은 담장을 두른 가람은 첫 방문임에도 친숙해 보였다. 생육신을 대표하는 매월당 김시습이 임종.. 논산 불명산 쌍계사 길가 이정표만 보고 찾아 간, 쌍계사는 논산시 양촌면 절골 저수지 위 두 골짜기 계곡 사이에 있었다. 저수지 아랫마을 쌍계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언덕을 올라 저수지 옆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쌍계사 앞에 또 주차장이 있었다. 대부분의 차들이 이곳에 주차되어 있어서, 아랫마을 주차장에 차를 놓고 먼 길을 걸어온 우리가 우스워졌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작업차들이 엉켜 있었다. 지금 불사를 진행하는 모양으로 곳곳에 건축 자재가 널려 있어서 어수선해 보였다. 넓은 마당 건너 우뚝 앉은 대웅전은 그 규모가 우람하고도 웅장했는데, 굵은 나무 기둥들이 자연목 형상 그대로였다. 쌍계사의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려 초기에 창건했을 것으로 짐작하며, 고려시대 한 때, 500~600칸의.. 반야산 관촉사 내게 관촉사는 비와 인연이 있나 보다. 맑은 하늘을 보며 출발했는데, 계룡산 고개 넘어갈 때 소나기를 만나기도 했고, 도착해선 가을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경내에 들어서서는 제법 가을비가 떨어져 내렸다. 예전에 들렸을 때도 여름 이슬비를 만났었다. 관촉사 주차장에 차를 두고 일주문을 돌아 들어갔다. 매표소 옆에도 간이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천왕문을 지나 계단으로 오르니 단풍잎들이 비를 맞으며 빨간 잎들을 불태우며 떨구고 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관람객이 거의 없어 코로나 부담 없이 여유 있게 경내를 거닐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관촉사는 968년(광종 19) 혜명에 의해 창건될 때 조성된 석조미륵상이 발산하는 빛을 좇아 중국에서 명승 지안이 와 예배했다고 하여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계룡산 신원사 계룡산은 본디 무속신앙이 발달한 곳이다. 박대통령 시절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며 산 속에 흩어져 있던 신당들을 없애고, 정비했는데, 지금 신원사 부근에 많은 신당들이 모여들었다. 신원사는 그 규모는 작지만, 조선말기 고종왕비 민비가 이곳의 산신당을 중수하여 몸소 머물며 기도했던 곳이다. 민왕후는 궁궐 안에도 신당을 짓고 무당을 불러 자신의 자손과 가문의 번영을 위해 굿판을 벌리는데 열중했다고 전한다. 국가의 번영보다는 자신을 위한 굿판의 보람도 없이 왜적들에게 시해되고 말았으니, 개인을 떠나 국가의 비극이었고 망국의 길로 치닫게 하는데 일조한 인물이다. 상업적 목적으로 뮤지컬 '명성황후'를 만들어 그를 영웅으로 미화하여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대사로 마치 민족의 영웅처럼 대중들에게 인식되기도 했으나, .. 계룡산 갑사 그 동안 서너 번 들렸던 갑사. 절 중에 으뜸이라 '甲寺'라 한다고 하지만, 내 보기엔 으뜸이 될 만한 사찰은 아니다. 갑사보다 수려하고 고풍스런 가람들이 많은 터에, 으뜸이란 말은 과유불급이다. 때마침 일요일이라 코로나 사태임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정리되지 않은 개천변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주차료는 3000 원을 받았는데, 여기 절들은 주차료가 일정치 않았다. 같은 공주 권역인 마곡사는 잘 정비된 주차장임에도 무료였고, 대전권역이지만 봉우리 하나 넘어 동학사는 4000원을 받으니, 중구난방이다. 계룡산이 국립공원이라 하나,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인데, 그를 핑게삼아 상술을 부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입구에 즐비한 식당가를 지나, 인적이 없는 옛길로 걸어 올라갔다. 호젓.. 태화산 마곡사 벌써 기온이 뚝 떨어져 조석으로 쌀쌀했다. 대전에 며칠 머무르는 사이 짬을 내서 마곡사를 찾았다. 가을이 무르익는 마곡사 경내는 아침 시간이라서인지 탐방객이 없어 고즈넉했다. 상가들이 모여있는 주차장에서부터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일주문에 이르렀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탓인지 모든 게 평화롭고 여유 있어 보였다. 상가 앞 넓은 주차장은 충청도 인심을 반영하는 듯 무료로 운영하고 있었다. 동학사 주차장은 시간에 관계없이 4000원을 받았는데... 일주문을 지나니, 전에 보지 못했던 산속 숲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계곡길에서 벗어나 숲길로 접어들자, 여기저기에 재래종 산 밤톨들이 흩어져 있었다. 동심에 빠져 밤톨들을 주으며 숲길로 마곡사로 갔다. 숲 사이로 절집들이 조금씩 비치기는 했으나 잡목이 무성한 탓으로 .. 계룡산 동학사 일 있어 대전에 내려갔던 길에 동학사를 찾았다. 70년대 후반 겨울에 갑사에서 산을 넘어 이곳을 지났던 적이 있었다. 가랑비를 맞으며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홀로 산을 넘을 때, 어찌나 외롭고 쓸쓸하던지 다시는 홀로 여행을 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었다. 그러나 나이 들어 카메라를 친구 삼다 보니, 오히려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여행의 진수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홀로 생각할 시간이 많고,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표현하려고 궁리하면서, 제법 자연의 풍광을 음미할 줄도 알게 되었다. 계룡산 남쪽 계곡을 따라 길게 가람을 배치한 동학사는 신라 때 창건된 절로 현재는 마곡사의 말사이다. 동학사가 유명하게 된 것은 예로부터 충신들의 충절을 기린 사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 태조 때 신라 충신 박제상을 추모.. 서산 내포 가야산 보원사지 사람들을 피해 한적한 곳이라 생각해서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마애삼존불상을 찾아갔다. 유감스럽게도 삼존불상으로 가는 다리 앞 나무 그늘 아래 노천 식당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왁자지껄 떠들며 식사를 하거나 환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저러고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일 듯 싶었다. 주차 후 계곡을 건너려 했더니, 아뿔사 다리 입구를 금줄로 칭칭 감아 출입을 막고 있었다. 이른바 삼존불상으로 오르는 계단 데크 공사를 한다는 것이었는데, 먼 거리를 달려온 입장에선 황당했다. 하릴없이 되돌아 나오려는데, 보원사지 철불상 현수막이 눈에 띄어 아쉬움을 달래고자 용현골짜기 위로 차를 몰아 나갔다. 용현 계곡에는 아직도 계곡 가장자리에 평상들을 깔아 놓고 장사.. 이전 1 2 3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