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948) 썸네일형 리스트형 배롱꽃이 한창인 논산 돈암서원 바야흐로 배롱꽃의 계절이다. 선비의 상징이라는 배롱꽃은 여름철이면 서원과 사찰에 어김없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돈암서원에도 예외 없이 배롱꽃이 만발하여, 서인의 스승인 사계 김장생의 찬란한 업적을 돋보이고 있었다. 조선 중기부터 오늘날까지 주류세력으로 이어온 서인들이기에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김장생과 그의 스승 이율곡의 위계는 대단하다. 오늘날 유학의 이론을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마는 인조반정으로 등극한 서인들의 영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다. 김장생의 향리인 논산땅은 그야말로 서인들의 본고장이자 광산 김씨들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곳곳마다 광산 김씨들의 공적비와 사당들이 산재해 있는 선비들의 고장이다. 돈암서원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타계한지 3년 후.. 논산 반야산 관촉사 밤 사이 태풍소식에 크게 걱정했으나, 다행히 큰 비는 내리지 않았다. 오후 들어 구름이 개자 모처럼 맑은 하늘빛이 너무 고왔다. 밖이 더워 망설이다가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가 남쪽으로 달렸다. 햇살이 따가워 계룡산 계곡에 들릴 생각도 해봤지만, 물이 맑을 것 같지 않아 결국 논산 관촉사까지 가게 되었다. 수 차례 들린 곳이긴 하지만 나름 운치 있는 사찰이라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언덕 계단을 올랐다. 고려 광종 19년(968년)에 승려 혜명(慧明)이 광종의 명으로 창건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상이자 은진미륵(恩津彌勒)이라고도 부르는 국가 보물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있다. 설화에 따르면 은진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캐던 한 여인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 그곳으로 가 보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솟아.. 비 개인 아침 풍경 7월 11일 이른 아침 밤새 내린 비가 그쳐 밖에 나갔더니 구름들이 올라 가고 있었다. 낮은 산 부터 고층 아파트 허리에 걸린 구름들이 바쁘게 솟아 올랐다. 애가 떠오르자 엷은 구름 띠를 둘러 산 중턱에 걸렸다. 늘어난 급류에 개울가 풀들이 쓸리고 시멘트 포장길이 움푹 파여 조각난 채 수 미터 떠밀려 내렸다. 다음날 아침 해뜰 무렵 집냥이 렉돌의 삶(5) 이따금 낯선 시선에 고개를 돌려보면 멀찍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파란 눈의 고양이 렉돌. 키우기 쉬운 순둥이 고양이라는데 이 녀석은 여간 까탈스러운 게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가기 때문에 언제나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이다. 강아지처럼 밖에 나가지 못하니까 안쓰러워 위로차 쓰다듬어 주고 싶은데 그조차 할 수 없다. 고양이 알러지 때문에 품에 안아주거나 오랫동안 만질 수도 없지만, 밖을 바라보는 걸 좋아해서 창문을 열어주면 바람냄새에 머리를 들고 코를 세운다. 바람의 양이 기대에 못 미치는지 발톱으로 방충망을 뜯는 탓에 그것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언젠가 방충망을 기어오른 적이 있다. 행여 방충망이 떨어지면 그야말로 즉사다. 귀한 생명체를 집에 들여 온갖 치다꺼리 다하며 키우는 아들의 정성이 대단해 .. 수원 화성 밤나들이 창룡문 주변 흐렸던 날씨가 해넘이 무렵 맑아졌다. 바람이 선선해서 동네 산책나왔다 다시 들어가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들고 창룡문으로 나갔다. 화성 동벽이 예뻐서 그리로 갔더니만, 아뿔싸 동이치에서 동일치 토끼굴까지 공사 중이었다. 공사하는 곳을 등지고 렌즈를 열었으나 애시당초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뜨겁던 한낮과 달리 밤바람이 선선한 탓으로 산책객들이 많았다. 불청객 숲모기가 잊지않고 찾아와 따라다니면서 괴롭혔다. 명색이 세계문화유산인데 보수공사가 끊이지 않는다. 한꺼번에 몰아서 하면, 관광객들에게 좋을 것인데, 이곳저곳 찔끔거리며 보수 공사를 벌이니, 보는 사람 입장에선 안타깝다. 예전에 파리에 갔을 때, 잔뜩 기대하고 개선문을 찾았건만, 공교롭게 보수 공사 중이었다. 지금도 개선문을 생각하면 반쪽이 가.. 정조대왕의 효심서린 지지대 고개와 노송 공원 노송지대는 지지대 고개 정상부터 옛날 서울 수원간 국도를 따라 노송이 있는 약 5km 지대이다. 고갯마루에는 지지대비(遲遲臺碑)와 비각(碑閣)이 서 있다. 순조 때 세운 비석과 비각으로 정조 대왕의 애틋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창덕궁에서 출발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의 릉(당시에는 현륭원이었음)을 뵈러 올 때는 이 고갯길을 넘어면서 "왜 이리 더디 가느냐?"고 물었었고 반면, 아버지의 릉을 참배하고 한양 궁궐로 돌아갈 때는 "왜 이리 빠르냐, 좀 더디 가면 아니 되느냐?"고 물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정조 임금의 효심을 헤아려 이 고갯길을 '더딜 지(遲)'자 두 개를 써서 '지지대(遲遲臺) 고개'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참고로 지지(遲遲)라는 표현은 맹자 만장의 "去魯,曰:『遲遲吾行也。』去父母國.. 여름 영흥 수목원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뻐꾸기 소리를 들었다.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줄곧 들어온 친숙한 새소리이다. 소쩍새처럼 막연히 다가서는 그리움 같은 것을 먹먹하게 전해주는 뻐꾸기 소리. 그리고 산에서 골짜기를 타고 내뿜는 밤나무 꽃향기가 버찌 껍질 부서진 도로 위로 내려왔다. 뻐꾸기 소리 때문인지 바깥바람이 그리웠다. 전화를 몇 군데 돌렸지만 모두 바쁘단다. 헐겁게 사는 건 나뿐인지... 뜨겁기 전에 넓은 차양이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카메라만 달랑 메고 수목원에 들렀다. 두문불출 박혀있는 카메라에 바람도 쐬줄 요량이었다. 여름꽃이 한창이지만 꽃이름들은 잘 모른다. 햇살이 뜨거워 멀리 걷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빤히 보이는 온실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딱히 예전과 달라진 풍경도 없는 탓도 있었지만... 여전히 보수중인 독산성 엷은 구름이 깔려 시계가 뚜렷하진 않았다. 지난 연말쯤 공사가 완공되었을 거란 생각에 독산성에 올랐다. 주차장 옆 약수터엔 물이 말랐고, 새로 지은 화장실 역시 붉은 비닐 테이프로 문을 감아 출입을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편의 시설을 지어놓고 사용하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면 뭐 하러 지었을까. 더군다나 지자체장 선거날이 모렌데, 하다못해 언제 개방하겠다는 안내문이라도 붙여 놨다면 잠시나마 이해라도 할 것을. 아무튼 모처럼 산을 오르는데, 멀리서 뻐꾸기가 올고 가까이에선 까마귀가 극성스레 울었다. 여름 까마귀는 텃새이고 겨울철 떼 지어 다니는 까마귀는 철새란다. 자세히 보고 구분할 수 없으니, 동격으로 취급받는 텃새까마귀는 조금 섭섭할 듯하다. 가끔씩 산비둘기가 협연하듯 함께 울어주기도 했다. 독산성.. 화산 아래 녹음 속 융건릉 둘레길 겨울 동안 출입이 통제되었던 융건릉 뒤를 걷는 산책길이 5월 15일 이후 해제되어 일부러 찾아갔다. 녹음이 우거지고 맑고 상쾌한 피톤치드에 더운 것도 모르고 한 바퀴 돌아왔다. 산책길은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고, 옛날 수원 고읍성 토성길을 걸을 때는 감회가 새로웠다. 융건릉 동남쪽 독산성(세마대)이 예부터 수원읍성을 지키는 산성이었고, 수원에서 흐르는 황구지천이 수원고읍성의 수자원이었다. 수원시에서 주로 화성시와 통합을 추진해 왔으나 화성시 반대로 무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원시는 본디 같은 수원군의 수원읍이 되었다가 광복 후 수원시로 승격하여 나갔지만, 수원과 화성은 본디부터 하나의 생활권이었다. 화성시는 2000년 들어 동탄신도시가 개발되어 인구 100만이 넘는 거대 면적을 지닌 공룡 같은 .. 외롭고 서러운 황궁우 환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곳으로 황단, 원구단, 원단이라고도 한다. 이 자리는 조선 후기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남별당이 있었는데,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하면서 제국의 예법에 맞추어 환구단을 건설하였다. 1897년 광무 원년 10월 완공된 환구단은 당시 최고의 도편수였던 심의석이 설계하였다. 환구단은 제사를 지내는 3층의 원형제단과 하늘신의 위패를 모시는 3층 팔각 건물 황궁우, 돌로 만든 석고, 삼문 등으로 구성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조선총독부가 황궁우, 석고, 삼문 등을 제외한 환구단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을 지었다.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는 상징적 시설로 당시 고종 황제가 머물던 황궁(현 덕수궁)과 마주 보는 자.. 역사의 재구성, 덕수궁 코드명 Y의 비밀 투어 하늘빛이 맑고 고왔다. 벌써 초여름인 듯 햇볕이 따갑다. 역사를 재구성하여 조선 궁궐을 입체적으로 안내하는 덕수궁 투어에 참여했다. 덕수궁은 그동안 여러 번 갔었고 대한문 앞을 이따금 지나치는 곳이라 관심이 덜한 곳이었는데, 의외로 입장객들이 많아 놀랐다. 궁궐탐방이 아닌 도심 속 휴게소로도 그만한 공간이 없을 듯하다. 다만 그 앞에 대형 확성기를 놓고 시위하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웠던 것이 흠이었다. 과거에서 찾아온 Y가 안내하며 들려주는 덕수궁과 고종에 얽힌 이야기가 애처러웠다. 일제에 강탈당한 조선말의 비참했던 우리 역사가 참으로 슬프다. 제 나라 하나 지키지 못하고 일제에 농락당하다 결국 나라까지 빼앗기고 독살당한 고종의 이야기가 오늘에 다시 되풀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 마음으로 외세에 맞서.. 거만해진 냥이 렉돌(4) 한 살 되자 성묘인 양, 움직임이 둔해졌다. 새끼냥이땐 제법 이리저리 숨고 뛰며 사냥놀이도 잘 하더만, 한 살 먹었다고 이젠 장난도 누워서 앞발로만 깔짝대며 놀려고 한다. 만지면 깨물려고 하며 도망가서 웬만하면 손대지 않지만, 대부분 근처에 머물며 지켜보는 얄미운 녀석이다. 사람이 나가도 그만, 들어서도 그만, 제멋대로다. 어쩌다 중문 앞에 마중 나오거나 배웅 나오면 그 짓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마음 내켜야 하는 짓이니 강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강아지 같으면 허리가 빠지도록 엉덩이를 흔들며 아양 떨 텐데, 그 맛이 없으니 심드렁하다. 야행성인 만큼 낮엔 주로 지 좋은 곳에서 잠을 자고 밤이 되면 활달하다. 지가 아쉬울 때면 앓는 소리로 의사 표현을 한다.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발코니 창틀에.. 이전 1 2 3 4 ··· 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