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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미내다리 처음으로 가본 강경읍이었다. 예전엔 서해에서 배를 타고 이곳까지 들어와 젓갈시장이 발달한 곳이다. 강경읍을 다니다 보니 곳곳에 젓갈 상점과 음식점들이 산재해 있었다. 강경읍에서 처음 찾은 곳이 미내다리였는데, 네비에 나오지 않아 근처를 목적지로 정하고 갔다. 근처에서 휴대폰 맵을 통해 찾아갈 수 있었다. 자동차용 네비보다 휴대폰 맵이 훨씬 정교했다. 미내다리로 가는 길은 하천 위 뚝방길을 따라가는 길이라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교행이 어려웠다. 중간중간에 교행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긴 했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려 300년이 지난 오늘의 미내다리는 제방을 쌓아올린 넓은 미내천 가장자리에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천의 물길도 그 동안 크게 변한 탓으로 옛날엔 이 미내천도 작은 ..
국립 세종수목원 지난겨울 방문했다가 휴관일이어서 관람하지 못했던 수목원이었다. 구름이 많고 바람이 세게 불어 야외활동하기에는 그리 썩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중춘이라 계절 꽃들이 많았다. 꽃들의 식재 방법이 일반 수목원과 조금 다른 듯했다. 군락지를 이룬 곳이 드물었고 대부분 산책길 주변에 꽃을 식재하고 있었다. 국립 수목원이라 일반 민간 수목원보다 넓고 전통 정자와 크고 작은 한옥 정원들이 많아 스케일이 컸다. 온실도 두 곳에 있어서 아기자기한 맛과 웅장한 멋이 있었고, 부지가 광활하여 볼거리가 많았다. 아쉬운 것은 다소 산만해 보인다는 것. 수목원 입구 인적이 드문 오른쪽부터 시작하여 대온실까지 한 바퀴 돌기로 동선을 정했다. 인도네시아산 아카시아 나무뿌리, 거대한 조형물 같아 보였다. 분재원, 분재에 관심이 없었으..
세종시 금강보행교 아침에 흐렸던 날씨가 오전 늦게 푸른 하늘을 보였다. 지난겨울에 갔었던 세종 금강보행교에 미련이 남아 차를 달려 그곳에 갔다. 겨울철엔 낙상방지를 위해 전망대를 폐쇄했었기 때문에 원형 다리를 한눈에 보지 못했었다. 하늘은 푸르렀으나 구름이 많았고, 강가여서 바람이 더 차갑게 불었다. 계단으로 올라가 원형다리를 내려다보며 몇 컷 사진을 찍었다. 평일이라 산책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 한적하게 보행교를 한 바퀴 돌아 나왔다. 겨울철과 다른 봄 풍경이라지만 다리 위에서 보는 경치라 특별하게 다른 것은 없었다. 다만 막혔던 전망대에 올라 보았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아래에서 본 전망대 전망대 오르는 계단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강 남쪽의 세종시와 보행교 인조 나무 원형 다리 곳곳에 있는 쉼터. 원형다리 동북..
태종 이방원과 순조의 헌인릉 어제까지 황사에 가려 뿌옇고 서늘하던 날씨가 하룻만에 맑은 하늘을 보였다. 푸른 하늘에 상쾌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으나, 갑자기 기온이 치솟아 여름 날씨를 방불케 했다. 재킷을 벗어 들고 걸었지만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었다. 봄 꽃가루들이 눈송이처럼 날려서 알러지 때문에 마스크도 벗지 못하는 어려운 외출이었다. 헌인릉은 조선을 반석 위에 올린 조선조 3대 임금 태종과 조선 23대 순종 임금의 묘이다. 애석하게 헌인릉 주변엔 정보기관이 있어서 평일임에도 헌인릉 방문과 상관없는 차량들이 주차장에 가득 차있었다. 입구인 인릉을 거쳐 헌릉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왔는데, 인릉은 아래에서 바라볼 때 경사가 심해서 봉분이 잘 보이지 않았다. 헌인릉 아래엔 비닐하우스 화훼단지들이 많아 왕릉과 조화롭지 않았다. 인릉은..
황사 속 화성 풍경 코로나에서 회복되나 싶으니 중국발 황사가 극성을 부린다. 예년보다 일찍 핀 영산홍에 화성에 나갔으나, 하늘이 뿌옇게 황사로 덮였다. 영산홍이 아름다운 방화수류정 앞 용연주변은 보수중으로 흉측하게 비닐 금줄을 둘러 출입하지 못하게 막아 놓았다. 화성을 보러 일부러 먼 곳에서 온 사람들도 많을 텐데, 실망이 클 것 같다. 내 경우 일부러 찾아간 먼 곳의 여행지에서, 보고 싶었던 대상이 보수공사하고 있을 때 그 실망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보수 공사도 계획적으로 흉하지 않게 하면 좋으련만... 창룡문(화성의 동문)과 동북 공심돈, 그리고 광교산. 창룡문 내성 동북 공심돈(공심돈은 내부에 대포를 거치하여 성밖 적군을 퇴치하기 위한 포루이다.) 연무대 앞 활터. 연무대 연무대 방향 외성 용연 옆에 있는 동북 포..
수원 영흥수목원 수원시 영통동 소재 영흥숲공원 안에 영흥수목원이 5월 개장에 앞서 4월부터 임시개장을 했다. 임시 개장은 하루 3회 인터넷 예약으로 수목원에 들어갈 수 있다. 현장 등록도 가능하다고 해서 1시 30분 2회차에 방문자 센터에서 등록을 하고 들어 갔다. 공원 안에 수목원으로 조성된 부지가 넓어서 왼쪽부터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인공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정겨웠다. 도심에서 깊은 산골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개울 물을 따라 온실에 들어가 꽃과 열대 식물들을 구경한 후, 오른 편의 조경수들과 만든 담장과 연못으로 꾸민 정자들을 보았다. 정자는 옛날 양반집 정원을 연상케 하여 나름 운치 있었다. 산길을 걷는 코스도 있었지만 수목원 건물 앞을 중심으로 식물원, 정자 주변을 보고 나왔다. (4..
봄꽃 공원 안에 봄꽃들을 심어놨다. 밤 날씨가 추워 얼어 죽을까 염려했지만 저녁마다 덮어주는 비닐때문에 선명한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대부분 꽃이름도 알 수 없지만, 꽃들을 보면 생동감이 넘친다. 어느새 아파트 뜰 앞에 제비꽃이 활짝 피어 지천으로 깔렸다. 드디어 몽우리졌던 살구꽃도 활짝 피었다. 장미 만큼이나 예쁜 명자 꽃몽우리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이따금 키낮은 노란 민들레도 보이고... 이젠 벚꽃차례인가, 꽃망울이 제법 달렸던데... 공원 안에 심어서 보호하는 예쁜 꽃보다, 마른 풀 사이를 헤집고 솟아난 제비꽃이 대견하다. 야생이 제일이다.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낸 겨울의 승리자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화성의 봄과 행궁동 한옥마을 25도까지 치솟던 날씨가 비 온 뒤, 곤두박질쳐서 바람이 쌀쌀하다. 그 덕에 날씨가 맑아 시계가 시원했다. 모처럼 화성에 나가 서늘한 바람을 쐬며, 동쪽 성문인 창룡문에서 북문인 장안문으로 들어가 행궁동 한옥촌을 지나 서문인 화서문까지 걸었다. 바람은 쌀쌀했으나 봄기운이 완연하다. 방화수류정과 수원천변의 수양버들 실가지에 푸른빛이 감돌았다. 오랜만에 들린 행궁동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었다. 장안문 근처에 한옥들이 한두 채 들어서더니, 그 사이 상당히 늘어났다. 주로 시에서 주관하여 한옥들을 지었는데, 점차로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주택을 한옥으로 개축하고 있었다. 과거 심재덕 시장 재임시절, 화성 안의 모든 주택들을 한옥으로 바꾸겠다는 옹골찬 계획을 발표한 바 있었다. 예산 문제로 실행되지 못했는데..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갑자기 날씨가 더워졌다. 이러다간 봄 없이 곧 여름철이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따금 가보는 곳이긴 하지만, 한동안 코로나 여파로 유엔초전기념관이 폐쇄되었었다. 봄나들이 겸 전시물들을 보기 위해 초전기념관에 들렸다. 죽미령은 한국전쟁 당시 기습남침한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미군이 최초로 전투를 벌인 곳이라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당시 참전한 미군 스미스 대대는 사전지식도 없이 7월 1일 주둔한 일본에서 황급히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들어와 7월 5일 새벽에 오산 죽미령에 참호를 파고 아침 8시부터 남하하는 북한군 탱크부대와 보병 부대를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적을 모르고 자신만만했던 스미스 부대는 북한군보다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 전투로 북한군의 전력을 재평가하고 유엔군이 한국전쟁에 참여하는 ..
오산 궐리사 오산 궐리사는 공자의 64 세손인 공서린이 서재를 세워 후학을 지도하던 곳이다. 공서린은 조선 중종 때 문인으로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정조대왕은 이곳에 사당을 짓도록 하고 '궐리사'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조선으로 이주한 공자의 후손들이 이곳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서 태어난 공자의 고향 지명을 그대로 내린 것이다. 궐리사는 고종 8년(1871) 흥선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렸다가, 고종 31년(1894)에 다시 제단을 마련하여 제향을 올리기 시작하다가 고종 37년(1900) 건물을 짓고 성적도를 모셨다. 성적도는 공자(孔子, BC 551~479)의 행적을 여러 장면으로 도해한 그림으로, 공자성적도 또는 공부자 성적도라고도 불린다. 104폭의 그림으로 구성된 ..
지금 종묘 정전은 보수중 오랜만에 종묘에 들렸다. 토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날은 단체로만 입장이 가능해서, 한참을 기다려 지정된 시간에 입장했다. 문화 해설사 설명을 들으며, 해설사 뒤를 어미닭을 쫓는 병아리들처럼 따라다녔다. 애석하게도 정전은 가림막을 쓰고 보수 중이었다. 개인활동이 제한되니까 돌아보는 장소도 한정적이어서, 대략 50분 정도를 대충 둘러보고 나온 셈이었다. 종묘는 조선조 역대 왕과 왕후, 그리고 나중에 추존된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태조 3년 (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1395) 9월에 완공하여,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 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현재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주가 모셔..
성곽길 따라 걷는 낙산 한양 도성 하늘은 푸르렀으나 미세먼지로 시야가 탁했다. 세 번째 절기인 경칩이라서인지 온도는 15도를 웃돈다는 예보였다. 카메라 가방을 챙겨 동대문 역사 공원으로 갔다. 지난 인왕산길에 이어 경복궁의 좌청룡 능선인 낙산길을 걸어 볼 생각이었다. 인왕산과 달리 낙산은 경복궁에서 보이지 않는다. 높은 건물이 없었던 조선시대엔 인왕 능선보다 낮기는 하지만, 오른쪽에서 우람하게 궁궐을 호위하는 능선이었을 것이다. 한편, 창덕궁이나 청경궁에서 보면 인왕능선보다 더 가까운 보호능선이 낙산성곽이었겠다. 지금은 낙산이 구릉처럼 형성되어 성 안팎으로 자잘한 주택들이 많았다. 그동안 정비되고 개발되었겠지만, 아직 70-80년대 모습을 지닌 곳이 많았다. 동대문에서 혜화문까지 먼 길도 아니고 높은 고개도 없어서, 비고적 순탄하게 걸었..
독립문과 서재필 1897년 중국사신들을 영접하던 모화관 앞 정문인 영은문을 헐고 대한제국이 중국의 종속국이 아닌 독립 자주국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세운 문이다. 고종은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그동안 사용했던 중국 연호를 버리고 자체 연호 광무(光武)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79년 성산대로 공사로 본디 자리에서 이곳으로 70m 정도 이전하였다. 독립문 앞에 있는 두 개의 돌기둥은 영은문(迎恩門) 기둥을 받쳤던 주초석이다. 영은문은 조선 초 태종 7년(1407)에 모화루(慕華樓)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져 490여 년 동안 조선의 사대주의를 상징하였다. 영은문 주초석과 독립문, 독립문 외벽의 녹물과 오염된 부분을 깨끗이 닦아내면 보기에 좋을 것 같다.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독립문 건립에 앞장섰던 서..
성곽길 따라 걷는 인왕산 한양도성 날씨가 제법 풀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열었더니, 햇빛은 비치는데, 스모그 현상이 심했다. 대체로 오후가 되면 날씨가 맑아지는 경향이 있기에 천천히 준비해서 11시쯤 집에서 나왔다. 그러나, 스모그 현상이 더 심해져서 가시거리가 시간이 갈수록 더 나빠졌다. 지난번 창의문에서 북악산을 오를 때, 뒤로 보이는 인왕산 성곽길이 아름다워서, d-day로 삼았다. 일기예보는 오후에 상온 10도 정도로 상당히 포근하리라 한다. 문제는 들머리를 찾는 것이었다. 창의문에서 오르는 코스는 햇살을 마주 보고 걷는 남향길이라 서대문길을 선택했는데, 들머리 코스가 다양해서 나는 나름 원칙대로 끊어진 도성이 시작되는 지점을 찾아 오르기로 했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용산 전쟁 기념관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용산 전쟁기념관은 몇 번 갔었지만, 아이들이 장성한 지금은 관심밖이었다. 그런데, 듣자하니 군복무하던 시절 소속 부대에서 운용했던 자주포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불현듯 그 자주포가 보고 싶어졌다. 현역시절에 낡아서 잔고장이 많았었지만,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사거리를 가진 대한민국 유일한 자주 평사포였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세월도 많이 흘렀다. 지금도 어쩌다 군시절의 악몽을 꾸기도 하는 나로서,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 당시 군대는 사람 아닌 짐승 같은 집단으로, 욕설과 구타가 일상이었다. 전우애는 말로만 존재하는 허상이었고, 부대원 대부분이 내 한 몸 편하고자 별별 짓거리를 다하는 그야말로 인간시장이었다. 넓은 내무반에 20~30 명이 오밀조밀 붙어살면서 기간병 고참들은 ..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이제서야 2본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동시에 전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중앙박물관으로 갔다. 우리나라 불교예술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두 사유상이기에 이 전시장은 의의가 큰 듯하다. 예전엔 격년제로 전시하는 등, 수시로 바꿔가면서 사유상 한 본만을 전시하곤 했는데, 21년 가을부터 전시실을 서편 2층으로 옮겨 두 본의 반가사유상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이 반가사유상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태자시절의 모습을 구현한 것으로 소년의 모습이다. 석가모니께서 소년 시절 출가하기 전, 인생무상을 깨닫고 깊은 사유에 빠져 회의적이면서도 야릇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태자의 영화로운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게 된 계기를 보여주는 사유상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묘한 깨달음의 순간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인지 전시장 이름도 '사..
오산 독산성 세마대 작년까지 유적을 발굴한다고 파헤쳤던 독산성 북쪽벽이 복구되었단 말을 듣고 오랜만에 오산 세마대에 올랐다. 독산성에 대해 오산시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듯, 성윤곽이 예전보다 뚜렷해졌다. 아쉽게도 공사하고 난 뒤처리에 문제가 있었다. 치성의 전망대를 설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비닐 금줄을 함부로 둘러보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별다른 유물이 나올 곳도 아닌데, 거창하게 파헤쳐진 흔적이 지워진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 서쪽 성벽과 서문으로 오르는 길 서문 햇빛을 등지고 순광을 따라 서문에서 북문 방향으로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말끔하게 단장한 북쪽 성벽, 목책까지 두르고, 성벽 아래 걷는 길도 새로 만들었다. 북쪽 암문 북쪽 끝 치성 전망대에서 서쪽으로 내려다본 북쪽 성벽 동문 안에 있는..
K-star 그리기 처음 그려 본 연예인 인물화였다. 잡지 속 광고 사진을 복사한 사본이 원본이라 노이즈가 많고 선명하지 않았으나 인물 외 복잡한 부분이 없어 선택해서 그렸다. 스케치 북에 그린 것을 사진으로 찍어 머리와 목 부분을 컴퓨터로 보완해서 마무리지었다. 마우스로 그리는 보완 작업이 생각처럼 섬세하게 그릴 수 없어 쉽지 않았다. 포토샵 곡선을 사용해서 스케치 북의 거친 질감을 빼버렸더니, 원작과 다른 그림이 된 것 같다. K-Star 그리기
수원 영흥 숲 공원 몇 해전부터 산 아래 울타리를 치고 조경 작업을 하더니, 2022년 10월 26일 개장했댄다. 우연히 지나가다 4차선 차도가 뚫려 있어 주변을 산책 삼아 한 바퀴 돌아보았다. 4차선 차도는 공원 안에 짓고 있는 아파트 진입도로였다. 영흥 공원을 조성한다고 야단을 떨더니, 공원 안 중심지와 주변 야산에 산책로를 만들고 민자사업으로 수목원과 아파트 단지를 만들었다. 어찌 보면 시민을 위한 공원이 민간 사업자 배만 불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공원 부지 안에 민간 아파트를 짓게 했는데, 그 아파트 부지 판매한 돈으로 시민의 숲을 만드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공원의 절반, 그 중심지에 민자 수목원을 만들고 주차장도 두 군데 만들어 유료화했다. 수목원은 아직 개장을 하지 않았다. 5월에 정식 개장을 한다는..
겨울 광교 호수공원 아침엔 하늘이 뿌옇더니 오후가 되자 맑아졌다. 한파가 조금 물러가자 미세 먼지가 극성인가 보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광교 호수 공원으로 나갔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호수 둘레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 같은 백수야 할 일이 없어 운동삼아 호숫길을 걷는다지만, 젊은이들은 할 일도 많을 텐데... 하늘이 맑아 호숫길을 한 바퀴 돌았다. 카메라를 들고 자연을 담아야 할 것을, 저수지 주변에 세워진 빌딩들만 찍어대곤 말았다. 이따금 드라마 배경으로 이곳 야경이 비치던데, 얼음이 녹으면, 해진 뒤, 호수를 물들이며 더욱 반짝이는 인공의 야경들을 다시 담아봐야 하겠다. 옛날 원천 저수지에 유원지를 만들어 선상 식당들과 아이들 놀이동산이 있던 때와 사뭇 달라진 풍경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얼음이 꽁꽁 얼어붙..
Hollywood -Star 그리기 Tom Cruise - 믿고 보는 배우, 언제나 씩씩하고 용감하며 지혜롭다. 스턴트 맨을 거의 쓰지 않는 배우로 알려져 그의 담대함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를 자주 찾는 배우라 정감이 더 가는지도 모르겠다. 1962년생이라는 나이도 잊고 열연하는 열정이 대단하다. Leonardo DiCaprio(1974년 11월 11일) '타이타닉'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배우, 그때, 우리나라에 대해 비하발언을 해서 거부반응이 일어나기도 했다. 연기파 배우로 요즘 악당 연기에 열심인 것 같다. Jason Statham(1967년 7월 26일), 영국 출신. 믿고 보는 액션 배우, 제이슨이 출연한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게 본다. Amanda Seyfried(1985년 12월 3일) '맘마미아' '레미제라블' 등으..
겨울 대전 현충원 두 풍경 한파가 몰아쳐 바람이 찼으나, 하늘빛이 너무 고와, 밖에 나갔다가 산책할 요량으로 현충원에 들렀었다. 날씨가 추운 탓으로 인적마저 끊긴 듯,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준비 없이 나갔던 탓에 휴대폰으로 몇 장 찍어 보았다. 청명한 하늘이었다. 구름 하나 없이 파랗던 하늘이 밤사이 구름으로 덮였다. 아침부터 눈이 내린다. 날씨가 어제보다 조금 풀렸다. 산책나왔던 차에 현충원에 들렀다. 인적은 끊어지고 까마귀 소리만이 감돌았다. 어쩌다 승용차들이 바퀴자국을 남기며 넓은 현충로를 지나갔다. 유일하게 삼각대까지 준비하고 나온 아저씨를 만난 게 전부였다.
세종 금강보행교 세종 금강보행교는 세종 호수공원 가까이 있었다. 위치를 몰라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물었다. 호수공원에서 도보로 가기엔 거리가 제법 멀어 차를 타고 보행교 북주차장으로 갔다. 금강 보행교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뉜 세종시를 잇는 원형 다리이다. 이 다리는 복층구조로 아래층은 자전거 전용도로였고, 위층이 보행자 전용도로였다. 북주차장에서 접근하는 전망대는 동절기에는 폐쇄하여 출입을 막고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면 원형다리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날씨도 춥고 해도 저물고 있어서 원형다리를 한 바퀴를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따뜻한 날 호수공원과 수목원, 그리고 원형다리인 보행교를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북주차장 가까이 있는 전망대 전망대 계단 아래 나무 조형물인 '뿌리 깊은 나무..
세종 호수공원 잔뜩 찌푸린 설날 오후, 바람까지 차가워 추운 날씨였다. 세종시 호수 공원 한 바퀴 둘레길을 걸었다. 작년보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여기저기 빨간 띠로 금줄을 둘렀다. 행여 비탈에서 미끄러져 호수에 빠질까 염려해서 쳐놓은 금줄인데, 보기에 흉했다. 넓은 호숫가를 한 바퀴 돌며 산책하듯 천천히 걸었다. 겨울은 역시 쓸쓸한 계절이다. 호숫가에 얼어붙은 얼음을 보며 회색빛 하늘과 앙상한 나목들과 누런 들풀들에 머릿속에서나마 푸른 봄날의 색깔들을 입혀 보았다. 봄날, 푸른빛이 감돌 때, 다시 찾아 둘레길을 걷고 싶다.
영동군 노근리 평화공원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까지 5일 동안 참전미군에 의해 충북 영동군 영동읍 하가리 및 황간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도 및 쌍굴 일대에서 발생했다. 사건 당시 미공군기에 의한 공중폭격과 미 제1 기병사단 소속 미군들의 무차별적인 기관총 및 소총사격에 의해 무고한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한국정부는 2008년 12월 12일, 사망 150명, 후유장애 63 명 등 총 226명을 희생자로 결정했다. 그러나 사건 직후의 신문기사에 400명이 희생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귀중한 생명들이 많이 희생된 역사적인 사건이다. 노근리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건해결을 위한 첫 시도는 1960년 10월, 이 사건으로 어린 아들과 딸을 잃은 정은용이 앞장서서 정구헌 등 유가..
백화산 반야사 월류정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반야사에 들렸다. 월류정 윗굽이에서 초강천과 석천이 만나는데, 반야사는 북쪽에서 흐르는 석천 상류 8km 정도 시냇가에 있었다. 월류정에서 둘레길을 따라 이곳까지 걸어서 오는 탐방객들도 더러 있는 듯,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곳 반야사 산비탈에 호랑이 형상 무늬가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반야사는 조용하고 아담하며 맑은 물이 흐르는 시냇물과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청정지역에 있는 예쁜 절이었다. 자동차로 일주문을 지나 반야사 경내에 주차할 수 있다. 백화산 반야사 일주문 반야사 종무소와 심검당, 오른편엔 중화당(종무소) 범종각과 요사채 뒤, 개울 건너 산골짜기 비탈에 자갈들이 만든 호랑이 형상. 대웅전과 극락전 대웅전 앞 백화산 능선 삼층석탑, 뒤에는 왼..
영동 월류정 모처럼 겨울 햇살이 따가웠다. 며칠 동안 극성부리던 미세먼지가 걷히자 드러난 맑고 파란 하늘이 몹시 고왔다. 하늘빛 따라 찾아간 곳이 충북 영동군 황간에 있는 월류정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던가. 아름다워 보이는 정자에 오르려 했으나 정자 앞을 쇠사슬 금줄과 철책이 막고 있어서 되돌아 내려왔다.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으로 만족할 수밖에... 지자체에서 월류정 앞에 나무 데크를 깔고 조형물을 세우는 등 정성을 들였으나 정작 보고 싶은 정자는 낡아서 올라갈 수 없으니, 주객이 바뀐 격이었다. 이쯤 되면 빛 좋은 개살구란 말이 딱 들어맞는 말이겠다. 자고로 한옥은 사람의 손때가 타야 오래가는 법이다. 세트장처럼 낡은 정자에 단청만 곱게 입혀 멀리서만 바라보라니 고장 난 벽시계를 바라보라는 것과 다를 바 ..
논산 개태사와 천호산 유감스럽게도 논산지방은 대부분 그 유적지가 명확하게 밝혀진 곳이 많지 않은 듯하다. 막연하게 전설로 구전하는 이야기를 토대로 추정만 할 뿐이다. 그런데, 황산벌 전투는 신라와 백제의 최후의 결전지만이 아니었다. 남북국 시대 말기 후고구려군과 후백제군의 마지막 패권도 역시 황산벌에서 결정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군대와 싸우던 후백제 견훤의 큰아들 신검이 일리천(현재 구미시) 전투에서 패하여 이곳 황산벌로 도주하였으나, 추격하는 고려군의 기세에 눌려 싸울 의지를 잃고 후백제 왕 신검이 이곳 천호산 아래 주둔한 고려군 진영에서 왕건에게 항복했다. 이에 왕건은 항복받은 자리에 통일을 기념하여 거국적으로 불사를 일으켜 開泰寺라는 절을 세우고, 누르메 황산이란 산이름을 天護山(하늘이 보호하는 산)으로 고쳐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