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865)
방화수류정의 봄 동네마다 영산홍이 만발했다. 방화수류정 영산홍은 시기가 좀 늦은 편이다. 이 즈음, 방화수류정이 제일 예쁠 때다. 붉은 영산홍과 주렴처럼 늘어진 수양버들의 연두색 줄기가 축축 늘어져, 이름 그대로 꽃을 찾고 물가에 휘늘어진 버드나무를 따르는 방화수류정이 된다. 붉은 꽃은 만발했는데 아쉽게 사람들에 밟혀 영산홍 관리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특히 요즘 들어 젊은이들이 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는 유행 때문에 용연 주변 영산홍과 잔디가 많이 상했다. 방화수류정에 올라 용연을 내려다보니, 밑에서 올려보는 수류정만큼이나 예쁘고 아름답다. 아쉬운 것은 주변에 들쭉날쭉 세워지는 고층 아파트 때문에 스카이 라인이 엉망이라는 것이었다. 중국 자금성의 경우 그 주변에는 고층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한다는데, 자..
화성 어차 날씨가 화창해서 철원 한탄강을 가려다가, 갑자기 일이 생겨 오전 시간을 놓친 탓에 오후 화성 동문인 창룡문으로 갔다. 연무대 앞에 대기하고 있는 화성 어차를 보곤 엉겁결에 타고 말았다. 화성 어차는 예전 코스와 달리 팔달산에 오르지 않고, 왕복코스로 연무대로 다시 돌아온단다. 객차 네 량을 끌고 다니는 화성열차는 승차감이 좋지 않으나, 수원 화성의 주요 부분을 지나기 때문에 눈요기 관광거리로 제법 인기가 있어 휴일에는 매표하기조차 어렵다. 코로나 탓인지 승객들이 별로 없어 대기시간 없이 즉시 탑승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속도가 빨라 안내방송에도 불구하고 대상물을 놓치기 일쑤였다. 팔달산에 오르지 않고 화서문에서 U턴해서 장안문부터는 일반도로를 버스처럼 달렸다. 달라진 코스 때문에 볼거리가 변변치 않아 시..
광교호수공원 토요일 내내 내리던 비가 그치고 북쪽에서부터 하늘이 맑아 왔다. 비 내린 탓에 모처럼 미세먼지가 사라져 상쾌했다. 코로나만 없었더면 금상첨화일 것을... 겨우내 먼지를 뒤집어쓴 자전거를 정비해서 나 홀로 광교호수공원으로 향했다. 호수공원 안쪽 길은 자전거 통행을 금지해서,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호숫가를 걸었다. 예전에 원천 저수지로 유흥 식당과 술집, 놀이 시설로 북적이던 곳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천지개벽되고 말았다. 옛 시절엔 저수지 물이 생활하수로 오염되어 등 굽은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니곤 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저수지 상류엔 새로 건설된 신도시 생활하수가 더 많이 유입될 텐데... 아직 날씨가 덥지 않아 물 냄새는 나지 않았다. 봄을 즐기려는 상춘객들이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떼 지어 ..
광교 호수 공원
방화수류정 개나리꽃이 한창이었다. 버드나무엔 벌써 꽃가루가 날렸다. 미세먼지 기운이 아직 남아 하늘이 맑지 않았다. 코로나 와중에도 상춘객들이 북적거렸다. 특히 젊은 커플들이 많았다. 코로나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일상이 돼가는지도...
벚꽃 시대 동네 곳곳에 벚꽃이 만개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인적 뜸한 길가에서 몇 장면으로 본격적인 봄날을 기념했다. 명자나무 꽃도 따라 활짝 피었다.
화성시 궁평해변 날씨가 포근했지만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가 걷히리란 생각으로 화성시 궁평항에 갔으나, 바다에는 더 짙은 연무가 퍼져 있었다. 궁평항에서 해변가에 설치한 바다 육교를 따라 궁평 해변으로 걸어갔다. 해변을 따라 쌓은 방파제 둑 위엔 요즘 유행하는 차박 캠핑족들이 바다를 향하여 뒤 트렁크를 열어놓고 촘촘히 줄지어 조밀하게 서 있었다. 어찌보면 낭만적 모습이겠지만,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철없는 활동처럼 보였다. 내가 소심한 탓인지 차박한답시고 자동차에 차박 시설을 해놓고도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인적이 뜸한 곳이라면, 힐링이 될 법도 하겠지만 조밀하게 주차해서 가스버너에 음식을 조리해서 먹는 모습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차박하는 행렬에서 벗어나, 인적 뜸한 해변가를 거닐며 밀물이 몰려오는 서해 풍경을 ..
평택 정도전 기념관 원균 묘에서 돌아오는 석양길에 정도전 기념관에 들렸다. 조선 개국의 일등 공신으로 조선의 기틀을 세웠지만, 태조의 계비 강씨 소생을 왕세자로 옹립하는 바람에 태종 방원의 손에 척살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정도전은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한양에서 참살당하였으나, 이곳 평택 진위면에 봉화정씨 집성촌이 있어서 삼봉을 기리고자, 2014년에 정도전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삼봉기념관 삼봉문학관 이곳의 관리실인 민본재 홍살문 삼봉의 장자인 정진의 사당 희절사 삼봉 정도전의 사당인 문헌사
평택 원균장군 묘와 기념관 그동안 한 번 가봐야 하겠다고 벼르던 원균의 묘와 기념관을 찾았다. 국도를 따라 내려가는데, 그곳 부근은 거대한 토목공사 중이었다. 황량한 들판에 산자락을 깎아내어 아파트를 지으려는지 아니면 공단을 조성하려는지 덩치 큰 덤프트럭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어 몹시 어수선했다. 좁은 마을 안길로 들어서자, 사당처럼 보였던 모선재와 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모선재를 둘러본 후, 저수지를 지나 원균 장군 묘로 이동했다. 칠천량 해전에서 패전한 원균장군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기에 장군의 말이 물고 돌아왔다는 유품들과 부인 파평 윤씨와 합장하여 묘를 만들었다. 외아들이 함께 전사했기에 원균의 손자로부터 대를 이은 후손들이 번성하여 묘역을 잘 가꾼 탓일까, 묘역은 깔끔하고 위엄 있어 보였다. 계단을 따라 봉..
용인 은이성지 낮 기온이 올라서인지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렸다. 코로나에 미세먼지, 집 주변 가까운 거리 산책마저 힘든 날이었다. 그래서 찾은 은이 마을 은이 성지였다. 은이(숨을 隱, 마을 里) 마을은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아서 마을 이름이 그렇다고 한다. 이곳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1836년 프랑스 선교사로 최초 입국한 모방 신부님이 15세 소년 김대건에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와 첫 영성체를 주고, 신학생으로 선발한 곳이다. 1845년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신부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님이 10월에 귀국하여 이듬해 부활 대축일까지 은이 공소에서 기거하며 서울과 용인 교우들을 시목하였다. 김대건 신부님이 묻힌 안성 미리내까지는 살아생전 그가 시목 활동을 위해 걸어 다니던 행로였고, 순교 후에는 그의..
봄꽃 어느 사이 봄이 왔다. 코로나가 극성을 떨어도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한다. 발코니의 동백은 꽃피운지 이미 오래다. 매화꽃도 산수유도 활짝 피었다. 인간들만 바이러스 때문에 움추려 산다. 내년 봄에는 마음껏 호흡하며 봄꽃들을 마주할 수 있을런지...
김옥균 유허 정안 IC에서 세종시 방향으로 가다가 우연하게 발견한 '김옥균 묘'란 표지판을 보고 궁금했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는 내비게이션에 아예 목적지로 설정하고 찾아갔다. 김옥균은 갑신정변 주역으로 그의 쿠데타는 3일 천하로 끝난 비극이었다. 일본군을 등에 업고 시도했다는 것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다. 큰 도로에서 옛길로 접어들어 커브길을 돌아가는 지점에 출생지가 있었다. 도로변 표지판에서 김옥균 묘라고 해서 찾았는데, 옛길 모퉁이에는 김옥균 유허라 크게 써 안내하였다. 좁은 밭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생가터가 나왔다. 넓은 부지에 낮은 철책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한가운데, 추모비만 하나 뎅그라니 서 있었다. 이곳은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북쪽에 위치한 창동(蒼洞) 시목골(감나무골)이다. 이곳은 공주시 정안면..
안성 미리내 성지 화창한 토요일, 창밖으로 봄이 밀려든다. 집콕하며 창밖의 봄을 관상하던 차에 친구가 춘천에서 닭갈비 먹는 사진을 보내왔다. 코로나가 한창임에도 나다닐 사람들은 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살고들 있나 보다. 방구석에서만 답답하게 사는 생활이 억울하단 생각에 차를 몰아 달려간 곳이 김대건 신부님이 영면하시는 곳, 미리내 성지였다. 햇빛은 따스한데 바깥바람이 찼다. 아직 겨울바람이 머물러 있었다. 찬 바람 속에 성지를 한 바퀴 돌아 나왔다. 미리내를 찾은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때 이른 상춘 나들이었지만 모처럼의 바깥나들이에 기분이 제법 상쾌해졌다. 몇 년 전, 방문했을 때보다 달라진 풍경이 많았다. 새로운 풍경을 찍으며 반나절을 보냈다. 성지를 방문한 나들이객들이 제법 많았다. 그 사람들도 이 지루한 코로나 바..
겨울 방화수류정 너무 무료해서 잠깐 짬을 내서 화성 방화수류정에 다녀왔다. 코로나 탓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동네 노인네들만 양지쪽에 삼삼오오 앉아 시국 얘기로 잡담하고 있을 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사진가들이나 탐방객들로 붐비고 있었을 텐데... 너무 분위기가 쓸쓸해져서 몇 컷 사진을 찍고는 되돌아왔다. 엊그제와 달리 날씨가 포근했다. 겨울 날씨 변덕이 보통이 아니다. 곳곳에 눈이 쌓여 있는데 밤부터 비가 내린단다. 생활하는 데는 눈보다 비가 낫겠지만 겨울임을 고려하면 눈이 내리는 것이 맞을 성싶다. 방화 수류정 곁에 있는 동북포루, 작년에는 보수차 거푸집을 뒤집어쓰고 있더니, 말끔한 모습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동북각루로 불리기도 하는 방화수류정이 나목 사이에 반쯤 가려 있다. 주변 재단장이 작년 초에 끝나 ..
부여 만수산 무량사 영겁보다 셀 수 없는 시간이 무량이라 들었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 중생들에겐 상상조차 되지 않는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무량사란 이름을 가진 사찰들이 많다. 그동안 소문으로 들었던 부여 무량사를 찾아 나섰다. 부여에 있다 해서 가까운 거리로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먼 길이었다. 이정표를 보니 오히려 보령 대천 쪽에 더 가까운 모양새였다. 한동안 우중충하던 날씨도 화창했고 겨울답지 않게 포근해서 나들이하기에 좋았다. 무량사 넓은 주차장엔 이미 많은 차량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을까 염려했으나, 경내는 한적하고 고요했다. 남향으로 자리 잡은 2층 누각의 극락전은 고색창연하며 위풍당당했다. 만수산 자락 아래 높지 않은 담장을 두른 가람은 첫 방문임에도 친숙해 보였다. 생육신을 대표하는 매월당 김시습이 임종..
눈오는 밤 오후부터 날씨가 흐려지는 듯싶더니 어둠이 내려앉자 함박눈이 평평 쏟아졌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창문을 커튼으로 꽁꽁 싸 막은 탓에 아무 기척도 몰랐었다. 뉴스를 보고서야 뒷발코니로 나가 창문을 열었더니, 눈발이 사정없이 몰아치고 지상엔 벌써 흰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눈 쌓인 도로엔 자동차들이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도 나가지 못하던 차에 모처럼 보는 진풍경에 별다른 세상을 보는 듯했지만, 빙판이 돼버린 도로를 보면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찬 바람을 타고 날리는 눈발이 발코니 안으로 들어왔으나, 한동안 눈 내리는 진풍경을 넋 잃고 바라보았다. 하얗게 순백색으로 변해가는 대지처럼 코로나 바이러스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다 외출할 때, 길가에서 마주치는 ..
공주 공산성 한 바퀴 공산성은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으나, 2015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처음이었다. 백제의 웅진 천도는 475년 9월 고구려군이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살해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강을 빼앗기고 수도 위례성이 함락된 백제는 웅진 공산성으로 수도를 옮겼다. 웅진은 근처에 금강이 있어 방어에 매우 유리한 지역이어서, 당시 고구려에 쫓기던 백제가 수도로 삼기에 적합하였다. 이후 웅진은 동성왕에서 무령왕을 거쳐 성왕이 수도를 사비로 옮기는 538년까지 60년간 백제의 수도였다. 660년 7월 13일 의자왕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공격을 피해 사비성(泗沘城)에서 웅진성(熊津城)으로 피난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웅진 성주 예식진에게 7월 18일에 오히려 사로잡혀 포..
논산 불명산 쌍계사 길가 이정표만 보고 찾아 간, 쌍계사는 논산시 양촌면 절골 저수지 위 두 골짜기 계곡 사이에 있었다. 저수지 아랫마을 쌍계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언덕을 올라 저수지 옆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쌍계사 앞에 또 주차장이 있었다. 대부분의 차들이 이곳에 주차되어 있어서, 아랫마을 주차장에 차를 놓고 먼 길을 걸어온 우리가 우스워졌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작업차들이 엉켜 있었다. 지금 불사를 진행하는 모양으로 곳곳에 건축 자재가 널려 있어서 어수선해 보였다. 넓은 마당 건너 우뚝 앉은 대웅전은 그 규모가 우람하고도 웅장했는데, 굵은 나무 기둥들이 자연목 형상 그대로였다. 쌍계사의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려 초기에 창건했을 것으로 짐작하며, 고려시대 한 때, 500~600칸의..
매죽헌 성삼문 선생의 묘 연무대에서 쌍계사를 찾아가던 중, 매죽헌로를 통과하게 되었다. 매죽헌이 누구인지 금방 생각나지 않았다. 매죽헌로 갈림길 작은 삼거리에 세워진 '성삼문의 묘'란 표지를 보고서야, 비로소 매죽헌이 성삼문 선생이었다는 기억이 스치듯 떠올랐다. 예전에 선생의 묘가 논산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감격해서 급히 차를 돌려 삼거리 우측에 있는 선생의 묘를 찾았다. 묘는 보이지 않고 사당 앞에 '충문공 매죽헌 성선생 신도비'가 서 있었다. 그 뒤로 무이문(無二門)이란 사당의 정문이 있고, 굳게 잠긴 문 뒤엔 선생의 사당인 성인각(成仁閣)이 있었다. 들어갈 수 없어 담 너머로 성인각을 바라보며 선생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추모하였다. 사당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가 서산으로 기우는 햇살과 어우러져 정면으로 바라볼 ..
논산 견훤왕릉 호남 고속도로를 다닐 때, 도로변 안내판에서 견훤왕릉 표지를 보고 무척 궁금했었다. 논산 연무대에서 4km란 이정표를 보곤 그리로 향했다. 논산벌 한가한 시골 들판 구릉 위에 견훤릉이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견훤은 후삼국 시대 강력한 카리스마로 신라를 정벌하여, 경애왕을 퇴위시키고 경순왕을 옹립했었던 막강한 인물이었다. 궁예의 뒤를 이은 왕건과 후삼국 통일을 두고 각축을 벌릴 정도로 강력했던 그는 아들들의 불화로 금산사에 갇혔다가 왕건에게 투항하고 말았다. 견훤에게는 열 명이 넘는 아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견훤은 기골이 장대하고 지략이 뛰어난 넷째 아들 금강(金剛)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 그러자 세 형 신검(神劒), 용검(龍劒), 양검(良劒)이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다. 마침내 군사권을 휘어잡은 세 아..
논산 선샤인랜드 날씨 쾌청, 날씨가 추우리란 예상과 달리 포근했다. 선샤인랜드는 연무대 육군 훈련소 막사가 빤히 보이는 곳에 있었다. 연무대 훈련소 앞을 지날 때 옛날 추운 겨울 12월에 군기가 제일 빡세다는 훈련소 30연대에서 뺑뺑이 돌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이도 어린 놈이 어찌나 악랄했던지 논산 쪽으로는 소변도 보지 않겠다 결심했었다. 옆소대 내무반장이였던 인천 출신 하사 녀석은 매일 저녁 술에 취해 훈련병들을 심하게 때렸다. 그 때, 그녀석은 '불루 나이트 요코하마'란 왜국 노래를 늘상 읊조리고 다니던 아주 고약한 자식이었다. 지금 이름도 잊었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훈련병이던 주먹으로 내 가슴팍을 모질게 때렸다. 소대 막사 복도 끝에서 끝으로 발로 차며 밀며 주먹으로 암팡지게 때려서 이 주일 이상, 가슴이 저려 ..
백제군사박물관과 계백장군 묘 가을비는 폭우로 변해 쏟아져 내렸다. 자동차에서 내릴 때, 쏟아지는 비 때문에 경황이 없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내렸다가 주차장 직원의 지적에 놀라 황급히 자동차로 돌아가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관람객은 없어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데, 잠시 정신줄 놓은 탓이었다. 우산을 썼으나 비때문에 옷이 젖어 들었다. 카메라에 비 맞을까 노심초사 걱정이 많았다. 실내관람이라 편하게 생각하고 가져온 카메라였는데, 우산을 썼음에도 주차장과 박물관의 거리가 멀어 운동화와 옷이 많이 젖었다. 박물관 입구에서 카톡을 이용해 QR 코드로 인증을 받고 발열 체크 후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무녕왕 능처럼 꾸민 복도를 지나 파노라마 영상관에서 백제 역사를 안내하는 영상물을 시청하고 전시실로 입장했다. 코로나 사태로 제한된 일부 구..
반야산 관촉사 내게 관촉사는 비와 인연이 있나 보다. 맑은 하늘을 보며 출발했는데, 계룡산 고개 넘어갈 때 소나기를 만나기도 했고, 도착해선 가을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경내에 들어서서는 제법 가을비가 떨어져 내렸다. 예전에 들렸을 때도 여름 이슬비를 만났었다. 관촉사 주차장에 차를 두고 일주문을 돌아 들어갔다. 매표소 옆에도 간이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천왕문을 지나 계단으로 오르니 단풍잎들이 비를 맞으며 빨간 잎들을 불태우며 떨구고 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관람객이 거의 없어 코로나 부담 없이 여유 있게 경내를 거닐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관촉사는 968년(광종 19) 혜명에 의해 창건될 때 조성된 석조미륵상이 발산하는 빛을 좇아 중국에서 명승 지안이 와 예배했다고 하여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부여 백제문화단지 백제 이해에 가장 부족한 것이 사료의 부족이다. 신라 천 년 수도 경주에는 각종 유적이 즐비한데, 위례에서 웅진으로 천도했다가 다시 쫓겨 내려간 백제의 유적은 그리 흔치 않다. 예전 부여 부소산에 올랐을 때, 멀리 보이던 백제문화단지에 가보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다. 대전에 내려온 김에 그곳에 가 보기로 했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주변 건물이 리조트를 비롯한 현대식 건물이라 크게 실망했다. 주차장 앞 매표소에서 표를 사려했으나 그곳 매표소는 수륙양용버스투어 매표소였다. 주차 안내원에게 물어 역사문화관 앞 매표소에서 발권해서 문화단지 정문인 정양문으로 들어갔다. 정양문 안 넓은 광장에 여러가지 꽃으로 각종 조형물 장식을 세워 놓았다. 첫인상은 역사 유적지보다는 놀이동산같은 인상이 들었다. 백제 궁전과 ..
비오는 가을 풍경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물먹은 가을 이파리들이 선홍색 빛깔을 토해내고 있었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한 이파리들은 힘없이 떨어져 길바닥에 뒹굴었다. 연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세월이 어찌 지났는지 모를 정도인데 계절은 무심하게 가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한 해가 지나가고, 그만큼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다. 내년에는 바이러스 없는 세상에서 마음껏 숨 쉴 수 있을는지...
국립대전현충원 대전 국립 현충원으로 향하는 대로에서 멀리 계룡산 산봉우리가 보였다. 대로에서 대전 현충원으로 들어서자 산능선들이 분지를 이루어 순국지사들을 위로하듯 감싸 안고 있었다. 남향으로 앉은 이곳 자리가 서울 동작동 현충원 위치보다 오히려 더 좋아 보였다. 조국을 위해 순국하신 분들의 묘역이라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경건한 마음새로 그 안에 들어섰다. 서늘하면서도 화려한 가을 향기가 현충원 안에 가득했다. 백선엽 묘 문제로 한창 뜨거웠던 금년 7월의 여론이 있었던차라 궁금하긴 했지만 구태어 찾지는 않았다. 묘역을 한 바퀴 둘러보며,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께 감사했다. 현충원 입구 보훈장비 전시장, 옛날 중고등학교 다닐 때 수시로 방위성금을 냈었다. 그 시절 월남전에서 맹위를 떨쳤던 팬텀기가 이젠 이곳에 전시..
대청호 오백리길, 대청댐 대청호 오백리 길, 이름이 좋아 무작정 탐방지원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아뿔싸 코로나 사태 때문에 탐방지원센터 내부엔 들어갈 수 없었고 건물 주변에 조성한 생태공원을 거닐며 보았다. 대국을 재배하는 국화 화원을 지나 아기자기한 야생화 정원을 거쳐, 건물 앞 정원을 관람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국화 전시회를 성대하게 치렀을 텐데, 직원들의 노고가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아쉬웠다. 직원에게 물으니 오백리 길은 구간구간이 있어서 차를 타고 가며 쉬엄쉬엄 관람하라는 것인데, 초행에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어 무조건 대청댐 전망대로 향했다. 길이 좁고 대청호를 끼고도는 길이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라 멀미를 느낄 정도였으나, 불타는 듯한 가을산과 바람에 흩날리는 형형색색의 가을 이파리들을 바라보며 가을의 정취에..
대전 숭현(崇賢)서원 날씨가 쌀쌀해졌다. 아침저녁으론 찬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아름답게 변해가는 나무 이파리들의 화려함에 밖으로 이끌려 나왔다. 차안에서 히터를 틀었더니 땀이 났다. 밖은 춥고 차안은 덥고... 겨울날씨도 아닌데 몸이 적응을 하지 못했다. 목적지인 숭현서원 이정표를 찾았지만 이정표 뒤에 진입로 표시가 없다. 결국 근처에 차를 세우고 홍살문을 찾아 걸어 올라갔다. 가을 풍광이 아름다웠다. 동향으로 배치한 홍살문 뒤 이층 다락이 운치 있어서, 영남지방의 유명 사원보다 보기가 좋았다. 이 서원은 건립시기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배향인물 중 가장 늦은 규암 송인수(1499~1547)가 서거한 1547(명종 2년)을 기준으로 16세기 후반으로 짐작한다. 처음 충암 김정, 수부 정광필, 규암 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