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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대전 숭현(崇賢)서원

날씨가 쌀쌀해졌다. 아침저녁으론 찬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아름답게 변해가는 나무 이파리들의 화려함에 밖으로 이끌려 나왔다. 차안에서 히터를 틀었더니 땀이 났다. 밖은 춥고 차안은 덥고... 겨울날씨도 아닌데 몸이 적응을 하지 못했다. 목적지인 숭현서원 이정표를 찾았지만 이정표 뒤에 진입로 표시가 없다. 결국 근처에 차를 세우고 홍살문을 찾아 걸어 올라갔다.

 

  가을 풍광이 아름다웠다. 동향으로 배치한 홍살문 뒤 이층 다락이 운치 있어서, 영남지방의 유명 사원보다 보기가 좋았다. 이 서원은 건립시기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배향인물 중 가장 늦은 규암 송인수(1499~1547)가 서거한 1547(명종 2년)을 기준으로 16세기 후반으로 짐작한다.  처음 충암 김정, 수부 정광필, 규암 송인수 사우로 용두록(현재 중구 용두동)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 되었다. 1609년(광해 1)에 성남수가 옮겨 세우면서 삼현(三賢)서원이라 하였고, 당시 유생들이 조정에 청원하여 숭현이라 사액되었다. 이후 1646년(인조24) 사계 김장생을 추가로 배향하고, 1641년 죽창 이시작, 야은 송시영, 1681년(숙종7)에 동춘당 송준길, 1695년 우암 송시열을 배향하여 8인을 모시면서 8현묘(八賢廟)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후 1871년 (고종 8) 대원군의서원 철폐 정책으로 철거되어 묘정비만 남았었다. 1994년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위패를 모시는 사당과 강당, 송시영과 이시작의 위패를 모시던 별사터를 확인한 후 1994년뷰터 2001년 까지 8년에 걸쳐 복원하였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 때문인지 인적이 끊겼다. 서원의 위치도 옛동네 길목 뒤에 있어 진입로 찾기가 어려웠고, 주차장도 없었다. 대전의 명소라면 당국자들이 신경 좀 써야 할 일이다. 도로변에 즐비한 식당가들의 주차장은 넓고 여유있는데, 서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농로처럼 좁고 찾기도 어려웠다. 다행히 홍살문을 보고 걸어 올라 가기는 했다. 서원 안에서 문화해설사 한 분을 만나 발열 체크를 하고 방명록에 기록한 후, 곳곳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들었다.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당 두 동은 규모가 작았다. 옛날 당대의 것을 복원했다고는 하나 나름 규모의 차이가 있을 거라 나름 생각해 보았다. 풍광 좋은 곳에 복원된, 가을에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서원이었다.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그들을 표상으로 학업에 정진했던 유생들의 교육기관이었던 서원이 그들의 스승을 중심으로 학파를 형성하고 지역을 바탕으로 당쟁을 일으키는 한 축이 된 것은 실로 유감이다. 지금도 끊이지 않는 학연 지연 혈연이 우리 정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수많은 산들과 냇물로 갈라진 우리 국토산하의 모양 때문일 거라 짐작해 본다. 그러나 이런 편협한 지역색이나 붕당색깔을 극복해내지 못하면 우리 정치의 후진성은 영원히 면하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나라 정당들이 이념보다도 지역이나 학연, 개인의 친밀도에 따라 형성되어, 미시적 안목으로 지엽적인 문제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서로 헐띁는 작태는 하루 빨리 청산되어야 민생이 살고 국가가 부강해질 일이다. 

 

 

 홍살문과 선비들이 시를 읊던 이층다락 영귀루(詠歸樓)

 

영귀루-선비들이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시를 읊던 송현서원의 문루, 이층 다락 오량각으로 그 모양이 미려했다.

 

가운데 숭현 서원과 좌우로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당

 

숭현서원 묘정비. 숭현서원의 내력을 적은 것으로 상촌 신흠이 짓고 우암 송시열이 덧붙인 것을 동춘당 송준길이 썼다. 현재의 것은 2001년 모사해서 세운 비석이다.

 

서원 정면

 

서원 왼쪽에 관리사

 

사당으로 들어가는 중문

 

8분의 신주를 모신 사당, 문이 잠겨 찢어진 창호문 사이로 사당 안, 의자 위에 모셔진 신주들을 보았다.

 

제사용품을 보관하는 관리사

 

다시 숭현 서원 앞으로 나왔다. 오른 쪽엔 양반의 자제들이 공부하던 강당

 

왼쪽에 평민들이 공부하던 강당,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당대 신분질서가 엄격함을 짐작할 수 있겠다.

 

영귀루 뒷면

 

영귀루로 오르는 계단

 

멋부려 지어올린 다락 지붕의 안 구조, 오량각으로 석가래를 받치는 도리가 다섯 개로 짧은 석가래들을 사용하여 미려한 지붕곡선을 만들었다. 

 

영귀루에서 바라본 숭현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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