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952) 썸네일형 리스트형 여름 칠갑산 장곡사 지난겨울 장곡사에 들렸었다. 눈 내린 길을 아랫녘 상가에서 일주문을 지나 장곡사까지 걸었었다. 청양에 들른 김에 겨울과 다른 여름 풍경을 보고 싶어 장곡사를 다시 찾았다. 법당 내부를 찍지 말라는 안내인의 당부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의 상호를 촬영하는 것이 그토록 보안을 요하는 것도 아닐 텐데, 주지 스님의 고집이 요란해 보인다. 장곡사엔 대웅전이 두 개이다.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이 있는데, 이런 독특한 구조는 우리나라에서 장곡사가 유일하다. 게다가 대웅전에 석가모니불을 모시지 않은 것도 장곡사의 또다른 특징이라 하겠다. 사찰의 큰법당은 모시는 부처님에 따라 그 종류와 명칭도 다양하다.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 좌우 협시불을 두고 삼존불을 모시면 대웅보전, 화엄종 사찰의 주불.. 청양 면암 최익현 기념관과 모덕사 유명 연예인이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랑스러운 4대 의사 가문을 자랑하다 역풍을 맞았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니 그녀의 잘못은 없다. 더욱이 얼굴도 모르는 증조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은 증손녀가 떠안을 과오도 아니다. 다만 막연하게 할아버지와 부모로부터 부끄럼 없이 집안을 일으킨 영웅처럼 전해졌다는 증조부의 전설이 문제였다. 일제에 부역하면서 조선옷도 입지 않고 집안에서도 우리말 대신 일본말을 썼다는 증조부 가정생활이야기는 같은 블랙 코미디의 실사판이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조부모는 부모 밑에서 내지인 생활을 했으니까 실제 부모의 실체를 알았겠고 부모와 같이 일본사람처럼 살았겠고, 그 연예인의 부모는 어렴풋이 가문의 분위기를 알고 성장했겠다. 그리고 어린 자녀들에겐 부끄러운 과오보단 명예로.. 종묘에서 들어간 창경궁 종묘 북신문을 통해서 창경궁으로 들어갔다. 일제가 훼손한 길을 넘어 궁궐로 들어가 그야말로 감개무량했다. 창경궁에 들어서면 언제나 눈시울이 뜨겁다.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 동궐이라 부르는 이곳을 동물원과 놀이시설로 만든 간악한 술수도 모르고 복원할 때까지 창경원으로만 알고 있었던 나 자신의 무지가 한심했었다. 창경원은 그저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이 30이 넘도록 봄이면 벚꽃놀이 가고 싶고 여름이면 연못에서 보트를 타고 싶던 곳이었다. 그런 비극의 역사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언론에서도, 심지어 방송에서도 그런 역사적 비극에 침묵했다. 오히려 봄이면 벚꽃놀이에 얼마나 많은 인파가 다녀갔는지를 경쟁하듯 방송과 신문에서 앞다투어 내보냈었다. 그런데, 그.. 종묘 북신문을 지나다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 아침부터 해가 이글거렸다. 넓은 차양 달린 모자를 쓰고 햇볕을 가리는 우산까지 준비해 갔으나, 우산을 통과한 태양열도 보통이 아니었다. 다행인 것은 너무 더워 방문객이 별로 없어 호젓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국인은 거의 없었고, 외국 관광객들이 더위에도 불구하고 관람하고 있었다. 이전 방문 때 정전 보수 공사가 한창이라 가림막 안의 모습을 온전하게 볼 수 없어 이번 방문에 기대가 컸다. 더욱이 알제가 창경궁과 종묘 사이 큰 도로를 내어 끊어놓은 것을 터널로 덮어 창덕궁 창경궁과 다시 이었다. 그 길로 종묘에서 창경궁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설렘까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임에도 종로 3가 길 건너 세운상가 재개발로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취.. 배롱꽃이 한창인 논산 돈암서원 바야흐로 배롱꽃의 계절이다. 선비의 상징이라는 배롱꽃은 여름철이면 서원과 사찰에 어김없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돈암서원에도 예외 없이 배롱꽃이 만발하여, 서인의 스승인 사계 김장생의 찬란한 업적을 돋보이고 있었다. 조선 중기부터 오늘날까지 주류세력으로 이어온 서인들이기에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김장생과 그의 스승 이율곡의 위계는 대단하다. 오늘날 유학의 이론을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마는 인조반정으로 등극한 서인들의 영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다. 김장생의 향리인 논산땅은 그야말로 서인들의 본고장이자 광산 김씨들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곳곳마다 광산 김씨들의 공적비와 사당들이 산재해 있는 선비들의 고장이다. 돈암서원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타계한지 3년 후.. 논산 반야산 관촉사 밤 사이 태풍소식에 크게 걱정했으나, 다행히 큰 비는 내리지 않았다. 오후 들어 구름이 개자 모처럼 맑은 하늘빛이 너무 고왔다. 밖이 더워 망설이다가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가 남쪽으로 달렸다. 햇살이 따가워 계룡산 계곡에 들릴 생각도 해봤지만, 물이 맑을 것 같지 않아 결국 논산 관촉사까지 가게 되었다. 수 차례 들린 곳이긴 하지만 나름 운치 있는 사찰이라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언덕 계단을 올랐다. 고려 광종 19년(968년)에 승려 혜명(慧明)이 광종의 명으로 창건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상이자 은진미륵(恩津彌勒)이라고도 부르는 국가 보물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있다. 설화에 따르면 은진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캐던 한 여인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 그곳으로 가 보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솟아.. 비 개인 아침 풍경 7월 11일 이른 아침 밤새 내린 폭우가 그쳐 밖에 나갔더니 구름들이 올라 가고 있었다. 낮은 산 부터 고층 아파트 허리에 걸린 구름들이 바쁘게 솟아 올랐다. 해가 떠오르자 엷은 구름 띠를 둘러 산 중턱에 걸렸다. 늘어난 급류에 개울가 풀들이 쓸리고 시멘트 포장길이 움푹 파여 조각난 채 수 미터 떠밀려 내렸다. 다음날 아침 해뜰 무렵 집냥이 렉돌의 삶(5) 이따금 낯선 시선에 고개를 돌려보면 멀찍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파란 눈의 고양이 렉돌. 키우기 쉬운 순둥이 고양이라는데 이 녀석은 여간 까탈스러운 게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가기 때문에 언제나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이다. 강아지처럼 밖에 나가지 못하니까 안쓰러워 위로차 쓰다듬어 주고 싶은데 그조차 할 수 없다. 고양이 알러지 때문에 품에 안아주거나 오랫동안 만질 수도 없지만, 밖을 바라보는 걸 좋아해서 창문을 열어주면 바람냄새에 머리를 들고 코를 세운다. 바람의 양이 기대에 못 미치는지 발톱으로 방충망을 뜯는 탓에 그것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언젠가 방충망을 기어오른 적이 있다. 행여 방충망이 떨어지면 그야말로 즉사다. 귀한 생명체를 집에 들여 온갖 치다꺼리 다하며 키우는 아들의 정성이 대단해 .. 수원 화성 밤나들이 창룡문 주변 흐렸던 날씨가 해넘이 무렵 맑아졌다. 바람이 선선해서 동네 산책나왔다 다시 들어가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들고 창룡문으로 나갔다. 화성 동벽이 예뻐서 그리로 갔더니만, 아뿔싸 동이치에서 동일치 토끼굴까지 공사 중이었다. 공사하는 곳을 등지고 렌즈를 열었으나 애시당초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뜨겁던 한낮과 달리 밤바람이 선선한 탓으로 산책객들이 많았다. 불청객 숲모기가 잊지않고 찾아와 따라다니면서 괴롭혔다. 명색이 세계문화유산인데 보수공사가 끊이지 않는다. 한꺼번에 몰아서 하면, 관광객들에게 좋을 것인데, 이곳저곳 찔끔거리며 보수 공사를 벌이니, 보는 사람 입장에선 안타깝다. 예전에 파리에 갔을 때, 잔뜩 기대하고 개선문을 찾았건만, 공교롭게 보수 공사 중이었다. 지금도 개선문을 생각하면 반쪽이 가.. 정조대왕의 효심서린 지지대 고개와 노송 공원 노송지대는 지지대 고개 정상부터 옛날 서울 수원간 국도를 따라 노송이 있는 약 5km 지대이다. 고갯마루에는 지지대비(遲遲臺碑)와 비각(碑閣)이 서 있다. 순조 때 세운 비석과 비각으로 정조 대왕의 애틋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창덕궁에서 출발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의 릉(당시에는 현륭원이었음)을 뵈러 올 때는 이 고갯길을 넘어면서 "왜 이리 더디 가느냐?"고 물었었고 반면, 아버지의 릉을 참배하고 한양 궁궐로 돌아갈 때는 "왜 이리 빠르냐, 좀 더디 가면 아니 되느냐?"고 물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정조 임금의 효심을 헤아려 이 고갯길을 '더딜 지(遲)'자 두 개를 써서 '지지대(遲遲臺) 고개'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참고로 지지(遲遲)라는 표현은 맹자 만장의 "去魯,曰:『遲遲吾行也。』去父母國.. 여름 영흥 수목원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뻐꾸기 소리를 들었다.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줄곧 들어온 친숙한 새소리이다. 소쩍새처럼 막연히 다가서는 그리움 같은 것을 먹먹하게 전해주는 뻐꾸기 소리. 그리고 산에서 골짜기를 타고 내뿜는 밤나무 꽃향기가 버찌 껍질 부서진 도로 위로 내려왔다. 뻐꾸기 소리 때문인지 바깥바람이 그리웠다. 전화를 몇 군데 돌렸지만 모두 바쁘단다. 헐겁게 사는 건 나뿐인지... 뜨겁기 전에 넓은 차양이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카메라만 달랑 메고 수목원에 들렀다. 두문불출 박혀있는 카메라에 바람도 쐬줄 요량이었다. 여름꽃이 한창이지만 꽃이름들은 잘 모른다. 햇살이 뜨거워 멀리 걷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빤히 보이는 온실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딱히 예전과 달라진 풍경도 없는 탓도 있었지만... 여전히 보수중인 독산성 엷은 구름이 깔려 시계가 뚜렷하진 않았다. 지난 연말쯤 공사가 완공되었을 거란 생각에 독산성에 올랐다. 주차장 옆 약수터엔 물이 말랐고, 새로 지은 화장실 역시 붉은 비닐 테이프로 문을 감아 출입을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편의 시설을 지어놓고 사용하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면 뭐 하러 지었을까. 더군다나 지자체장 선거날이 모렌데, 하다못해 언제 개방하겠다는 안내문이라도 붙여 놨다면 잠시나마 이해라도 할 것을. 아무튼 모처럼 산을 오르는데, 멀리서 뻐꾸기가 올고 가까이에선 까마귀가 극성스레 울었다. 여름 까마귀는 텃새이고 겨울철 떼 지어 다니는 까마귀는 철새란다. 자세히 보고 구분할 수 없으니, 동격으로 취급받는 텃새까마귀는 조금 섭섭할 듯하다. 가끔씩 산비둘기가 협연하듯 함께 울어주기도 했다. 독산성.. 이전 1 2 3 4 ··· 8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