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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城

여전히 보수중인 독산성

 엷은 구름이 깔려 시계가 뚜렷하진 않았다. 지난 연말쯤 공사가 완공되었을 거란 생각에 독산성에 올랐다. 주차장 옆 약수터엔 물이 말랐고, 새로 지은 화장실 역시 붉은 비닐 테이프로 문을 감아 출입을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편의 시설을 지어놓고 사용하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면 뭐 하러 지었을까. 더군다나 지자체장 선거날이 모렌데, 하다못해 언제 개방하겠다는 안내문이라도 붙여 놨다면 잠시나마 이해라도 할 것을. 

 아무튼 모처럼 산을 오르는데, 멀리서 뻐꾸기가 올고 가까이에선 까마귀가 극성스레 울었다. 여름 까마귀는 텃새이고 겨울철 떼 지어 다니는 까마귀는 철새란다. 자세히 보고 구분할 수 없으니, 동격으로 취급받는 텃새까마귀는 조금 섭섭할 듯하다. 가끔씩 산비둘기가 협연하듯 함께 울어주기도 했다. 독산성은 예로부터 수원 읍성을 방어하는 주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한양의 길목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왜란 중에도 산성을 재정비하였고 정조 때에는 새로 건설한 수원 화성과 한양 남쪽을 지키는 주요한 방어 요새로 여겨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고 전한다. 

 일년에 한두 번 찾는 성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올 때마다 온전한 모습을 보기 어렵다. 여기저기 파헤쳐 공사를 하니 한 시도 성한 날이 없다. 이번엔 서문에서 보적사로 가는 길을 막았다. 보적사 뒤를 돌아 세마대에 오르니 세마대 동편에서 발굴작업을 하고 있었다. 발굴작업이 극비라도 되는 듯 사진을 공개하지 말란다. 뭐 대단한 문화재가 출토된 것도 아닌 마당에 작업 사진에 그리 신경 쓸 이유라도 있을까 싶다. 

  세마대 아래에서 보적사로 역행해서 들어가니 동문 주변의 성곽을 다시 쌓는 모양이었다. 카메라를 들이댔다 괜한 소리 들을 것 같아 멀리서 지켜보았다. 남문방향으로 내려가니 중간 내리막길에서 내성의 축대를 쌓고 있었다. 언젠가 비에 무너진 적이 있는 곳이었다.  남문 내성 안쪽 비탈에 울타리를 치고 공사판을 벌여 놓았다. 예전엔 한 동안 발굴작업한다고 몇 년을 그러더니, 새삼 또 무슨 공사일까. 내가 보기엔 독산성은 손을 댈수록 더 망가지는 것 같다. 예전에 성곽 아래 비탈엔 잡목이 무성했었다. 그 덕에 무너지지 않았으나. 경사면의 잡목을 모두 베어내니, 비 오면 사태 나듯, 성벽아래 흙더미가 무너져 내린다. 무너져 내린 경사면에 몇 년째 시퍼런 비닐을 덮어둔 탓에 경관이 썩 보기 좋지 않았다. 고증이 잘못되었거나, 임기응변식 관리가 문제인 것 같다.   

 한 바퀴 돌아 서문으로 내려오면서 조금은 쓸쓸하고 안타까웠다. 복원을 하려면 차분하게 계획을 세워 성문을 홍예문으로 만들고 그 위에 전각을 세우고, 성벽 위로 엄폐용 성벽을 쌓고 총안을 만들면, 수원 화성 못지않은 진면목을 지닌 독산성이 될 터인데, 게걸음 걷듯 횡보하는 보수방식이 답답해 보인다. 진행하는 것이 좋을 듯한데,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주먹구구식으로 여겨져 보기에 좋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쌀로 말을 씻어 왜군을 물리쳤다는 전설을 컨텐츠로 보다 탄탄한 성을 복원한다면, 그 흔한 존재 이유도 모를 저수지 출렁다리나, 환경을 파괴하는 값비싼 케이블카 보다 훨씬 더좋은 명소가 될 텐데 아쉬운 생각이다.  

 

 

서편 성벽

 

서문으로 오르는 계단과 성벽

 

북쪽 성벽, 성벽 끝부분 흙더미가 무너져 비닐을 덮어놓은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았다.

 

북 암문

 

부쪽 성벽

 

동문이 있는 보적사, 공사 중 펜스가 엉성하게 길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세마대로 우회하라는 안내판. 성의없이 세운 안내판에 권율 장군이나 정조대왕이 보셨다면 몹시 섭섭하실 것 같다.

 

세마대

 

세마대 아래 발굴현장

 

보적사와 오른쪽 세마대

 

보적사 동남쪽 치성

 

세마대 아래 동남쪽 성곽

 

남문과 공사 현장

 

뒷방향 동남 성곽

 

남서 암문과 성벽

 

남쪽 평택방향, 일망무제, 막힌 곳 없이 탁 트였다. 

 

서편 성곽과 서문

 

주차장 아래 안내문

 

주차장에 있는 문 닫힌 화장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