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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배롱꽃이 한창인 논산 돈암서원

 바야흐로 배롱꽃의 계절이다. 선비의 상징이라는 배롱꽃은 여름철이면 서원과 사찰에 어김없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돈암서원에도 예외 없이 배롱꽃이 만발하여, 서인의 스승인 사계 김장생의 찬란한 업적을 돋보이고 있었다. 조선 중기부터 오늘날까지 주류세력으로 이어온 서인들이기에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김장생과 그의 스승 이율곡의 위계는 대단하다. 오늘날 유학의 이론을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마는 인조반정으로 등극한 서인들의 영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다. 김장생의 향리인 논산땅은 그야말로 서인들의 본고장이자 광산 김씨들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곳곳마다 광산 김씨들의 공적비와 사당들이 산재해 있는 선비들의 고장이다. 

 돈암서원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타계한지 3년 후인 1634년(인조 12) 충청도 연산현(連山縣)의 임리(林里)에 창건되었다. [249 번지] 창건시 김장생을 주향으로 모셨고 1658년(효종 9)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추배하였다. 이어 1688년(숙종 14)에 동춘당(同春堂) 송준길( 宋浚吉), 1695년에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각각 추배하였다. 처음에는 김장생 문인들이 스승을 추모하여 사우를 건립한 뒤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오다 사당 앞에 강당을 건립하면서 서원의 단초를 이루었다. 원래는 현재 위치에 보다 서북쪽으로 1.5km 떨어진 하임리 숲말로 연산천 가까운 저지대였는데 1880년(고종 17) 홍수를 피해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1660년(현종 원년) ‘돈암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려주어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지역의 공론과 학문을 주도했다. 서원이 처음 입지 한 숲말 산기슭의 큰 바위를 돈암이라고 불렀는데, 이 바위의 이름을 따서 사액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돈암’의 돈은 원래 ‘둔(遯)’자로 주역의 둔괘遯卦의 의미와 관련이 깊으며 주자가 만년에 사용한 둔옹(遯翁)이라는 호를 가탁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1871년(고종 8)의 전국적 서원 훼철령에서도 철폐되지 않고 보존되었지만 1881년(고종 18)에 이르러 숲말의 지대가 낮아 홍수 때마다 서원 뜰 앞까지 물이 차므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돈암서원의 배치는 약한 구릉지를 이용하여 전면에 강당을 두고, 후면에 묘당을 둔 전형적인 전학후묘식 배치이며, 전면에서부터 산앙루,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우가 중심 축선상에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고, 그 좌우로 응도당, 동서재, 장판각, 경회당, 전사청 등의 건물이 비대칭으로 자리 잡고 있다. 크게 묘당(廟堂), 강학(講學), 유식(遊息), 수직(守直)의 4개 구역으로 구분되는데, 가장 중요한 묘당 구역은 제일 안쪽이자 서원 내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전면에 내삼문을 두고 주위에는 사괴석 담으로 둘러져있다.

 강학 구역에는 강당인 양성당(養性堂)과 그 앞 좌우에 동·서재를 배치해 두었다. 윈래 돈암서원의 옛터에는 응도당이 강당이었으나, 이건(移建) 과정에서 양성당이 먼저 강당 자리를 차지하였다. 중앙의 양성당(養性堂)을 중심으로 좌, 우 대칭으로 배열된 동재인 거경재(居敬齋)와 서재인 정의재(精義齋)로 이루어져 있고, 양성당의 서편으로는 판각을 보관한 장판각(藏板閣), 사계선생의 부친인 황강 김계휘 선생께서 강학하시던 공간인 정회당(靜會堂)이 위치하고 있다.

 돈암서원을 관리하는 고직사 구역은 서원의 북편에 배치하고 있다. 하나는 관리인이 거주하는 경회당과 담장과 협문을 지나 제향을 준비하거나 제기 등을 보관해 두는 전사청이 있다. 전사청은 원래 수직사로 사용하다가 경회당을 신축하면서 현재의 용도로 변경되고, 입덕문 앞에 산앙루(山仰樓)를 건립하면서 유식(遊息) 공간을 만들었다. 

 돈암서원은 호서는 물론 기호 전체에서 존숭받는 서원으로서 사계김장생을 제향한 서원 중 가장 비중 있고 영향력 있는 서원으로 인정받았으며, 기호사림전체의 구심체가 되었다. <돈암서원 홈페이지 소개글>

 건물 배치가 동향이라 사진을 좋아하는 분들은 오전이 좋을 듯, 오후 시간이라 역광에 눈이 부시고 그림자가 짙은 사진들이 되었다.

 

홍살문과 돈암서원 원경

 

유생들의 풍류 공간인 산앙루

 

황강 김계희 선생 정회당 사적비 - 사계 김장생 부친인 김계희 선생이 세운 정회당과 관련된 돈암서원의 사적비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란으로 폐허가 된 정회당과 서원이 중건되고 사액된 역사 및 김계희 선생의 후학양성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이다.

 

서원의 정문 입덕문

 

양성당을 중심으로 유생들의 숙소인 정의재와 거경재가 마주 보고 있다.

 

경회당(관리사) 앞 배롱나무

 

응도당- 보물 제1569호로, 응도당은 학문을 갈고닦던 강당으로 서원 옛터에 남아있던 것을 197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며, 강학공간 전면에 직각 방향으로 틀어서 배치되어 있다. 강학공간 전면에 직각 방향으로 틀어서 배치되어 있다. 돈암서원에서 가장 빼어난 건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응도당은 다른 서원 건축양식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 영면에 하나를 덧댄 가첨지붕(눈썹처마) 구조와 지붕형태를 가지고 있다. 대들보는 크고 웅장하며, 생동감 있는 비늘무늬는 살아있는 용이 꿈틀대는 듯 익공의 화려한 화려함과 화반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창방 위에 놓인 화반형 조각은 기둥 사이마다 1개씩 얹었다.

 

맞배지붕 아래 비를 가리기 위한 가첨 지붕(눈썹처마)가 흥미롭다.

 

정의재와 양성당 거경재. 양성당 앞에 돈암서원 원정비가 있다.

 

장판각, 논산시 향토문화유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내부는 모두 마루로 되어 있으며 무고주 5량집 구조이고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있다. 기단은 장대석 외벌대로 하고 덤벙주초를 넣은 다음 두리기둥을 세웠다. 장판각에는 <사계전서><신독재 전서><황강실기><사계유고><신독재유고> 등 목판이 보관되어 있는 소중한 곳이다. 김장생, 김집, 김계휘의 문집과 왕실의 하사품인 벼루, 전적 등과 책판이 보존되어 있다.

 

정회당, 돈암서원이 창건되기 이전 사계 선생의 부친인 황강 김계휘 선생께서 강학하던 건물이다. 1557년(명종 12) 대둔산 고운사 경내에 설립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후면 열 가운데 2칸은 마루방으로 지어져있다. 고운사 터에서 1954년에 옮겨 왔다.

 

양성당과 원정비, 양성당은 유생들이 모여 강학하던 서재이다. 사당 바로 앞에 위치하며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 3칸은 전후에 퇴를 둔 대청이며, 좌우에는 온돌방 각 1칸씩 두었다. 서원 이건(고종 18년, 1881) 당시 대강당인 응도당을 옮겨오지 못하고 대신 양성당을 옮겨서 강당으로 활용하였다.



양성당 뒤 사당인 유경사 내삼문. 내삼문은 유경사에 제향을 지내기 위해 출입하는 문으로, 사당 앞의 어칸과 양 협칸을 별도로 하나씩 세우고 문과 문 사이에는 담장이 쳐져있다. 담장에는 지부해함, 박문약래, 서일화풍 등 김장생과 그의 후손들의 학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12개의 글자를 새겨놓았다.

 

유경사-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5호인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찬으로 앞쪽열은 퇴칸이다. 실내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전퇴는 벽돌바닥이다. 주간의 앞면에만 사분합 띠살문을 달고, 옆면은 회벽을 쳤다. 공포는 이익공 외출목 집과 동일한 수법으로 짜 올렸다. 내부의 양봉은 전통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사당 내부에는 주향(主享)인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 신독재 김집(愼獨齋 金集),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들 네 분은 모두 문묘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돈암서원은 선정서원이기도 하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중정일(中丁日)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전사청 문과 담장 

 

전사청 옆에 붙어있는 유경사

 

전사청

 

관리사 옆에서 바라보는 담장 밖 산앙루와 출입문인 입덕문, 강당격인 응도당

 

거경재와 양성당

 

담장밖 산앙루

 

주차장 앞 코스모스, 돈암서원 앞까지 이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