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송지대는 지지대 고개 정상부터 옛날 서울 수원간 국도를 따라 노송이 있는 약 5km 지대이다. 고갯마루에는 지지대비(遲遲臺碑)와 비각(碑閣)이 서 있다. 순조 때 세운 비석과 비각으로 정조 대왕의 애틋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창덕궁에서 출발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의 릉(당시에는 현륭원이었음)을 뵈러 올 때는 이 고갯길을 넘어면서 "왜 이리 더디 가느냐?"고 물었었고 반면, 아버지의 릉을 참배하고 한양 궁궐로 돌아갈 때는 "왜 이리 빠르냐, 좀 더디 가면 아니 되느냐?"고 물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정조 임금의 효심을 헤아려 이 고갯길을 '더딜 지(遲)'자 두 개를 써서 '지지대(遲遲臺) 고개'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참고로 지지(遲遲)라는 표현은 맹자 만장의 "去魯,曰:『遲遲吾行也。』去父母國之道也。"(공자가 노나라를 떠날 때에 말씀하시기를, "더디구나, 내가 가는 것이."라 하셨으니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길이기 때문이다.)에서 온 것이다. 이를 두고 생각하면 참배 갈 때의 아쉬움보다는 떠날 때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마음이 이 고개의 작명에 더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출처 : 나무위키>
정조 대왕은 현릉원 식목관에게 내탕금(임금의 개인돈) 100냥을 하사하여 이곳에 소나무 500그루와 능수버들 40주를 심도록 했다. 를 길가에 심도록 하였다. 현재는 대부분 고사하고 33 그루(지지대 고개 인근 효행공원 9주, 노송공원 18주, 송정초등학교 부근 8주)가 보존되고 있다. 지지대 고개에서 수원으로 내려오는 길목에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가며 큰 교차로가 생긴 탓에 가로수길이 중간에 끊겨 현재 지지대 고개와 노송 공원 등으로 분리되어 일부 남아 있다. 이를 보존하고자 수원시는 지지대 고개 일대를 효공원으로 가꾸었고 끊어진 길 아래 소나무들이 있는 노송지대는 노송공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지지대고개에 있는 효행공원은 그동안 관리가 부실하여 엉망이 되어 있었다. 임금님이 행차하시던 옛길은 이면도로가 되어 각종 차량들이 길가에 주차하는 등 방치되어 지저분했다. 금년 6월부터 정비한다는 현수막만 요란할 뿐 오염된 옛길은 내 보기에 혐오스러웠다. 다행히 아래 녘에 있는 노송지대는 공원을 만들어 황토를 깔고 주민들이 맨발로 산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등 상태가 괜찮았다. 다만 황토길 가장자리가 움푹 파여 깎여 나가고 새로 심은 소나무가 부목을 의지한 채 말라죽은 모습으로 보아 이곳 역시 제대로 관리하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만들었으면 보수하고 관리하며 제대로 유지하도록 힘써야 정상이 아니겠는가.
융건릉이나 수원 화성, 화성 행궁 못지 않은 지지대 고개임에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유명한 곳에는 번지르하게 치장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은 방치하고 있는 행정, 누구의 책임일까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모처럼 정조 대왕의 옛 자취를 찾아보러 갔던 지지대 고개에서 본 것은 개발이 난립하는 공사판과 토사가 쓸려나간 고속도로 교각 주변, 방치된 옛 공원의 모습이 전부였다.
지지대 고개 아래 노송 공원 입구 황토길







노송 공원 끝, 사방으로 뚫린 길 때문에 소나무 길이 끊겼다. 수원 북부 순환도로와 영동 고속도로 교각 아래 넓은 경수대로가 지지대 고개를 넘어간다.

고개로 이어지는 영동 고속도로 교각 아랫길, 흙이 파이고 총체적으로 관리가 부실해 보였다.


지지대 옛 도로. 이면 도로처럼 사용하면서 엉망이 되었다.


수원시립 북수원 전시관과 전시물, 월요일이라 휴관임에도 친절하게 문을 열어 주셨다.


전시관 내부 전시물





전시관 뒤 정조대왕 동상, 등신대 크기의 입상이 너무 단순하여 간동이 없다. 좀도 입체적으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조각 하나가 도시의 상징적 조형물이 되는 예를 생각하면 행정 편의적 안일한 사고방식에서 비롯한 조형물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말 위에서 재촉하던 정조대왕의 모습을 그려야 했을 것을 궁궐 안에서 곤룡포 입고 신하들에게 교시하는 모습처럼 보여 실망감이 컸다.


모든 정책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건립 당시 효행공원을 만들었던 취지가 무색한 현실이 그저 안타깝다.

지지대 옛길

지지대 마루 부근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 왼편은 의왕시로 넘어가는 경수대로.

프랑스군 참전비 뒤쪽으로 수많은 전선들이 지나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프랑스 유족이나 관계바들이 본다면, 오히려 홀대받는 느낌이 들 것 같아. 주변을 정리하여 깨끗이 보여야, 목숨 바친 그분들께 감사하는 일일 것이다. 기념비 하나 세우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깨끗하게 관리하며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이 옳은 일이겠다. 전선들을 지워 올렸다.










프랑스군 참전 기록
1950년 11월 29일 부산에 상륙한 뒤 수원에서 집결하여 대대 병력으로 미 제 2사단에 배속됨
1951년 1월 7일부어 12일까지 원주에서 중국군을 막아냄
1951년 2월 1일부터 16일까지 지평리 전투에서 중국 4개 사잔의 공격을 저지함
1951년 봄 화천지방 에서 중국군 공격을 저지함
1951년 가을 단장의 능선 야간전투에서 60명 전사, 200명 부상
1952년 가을 진지전에서 47명 전사 144명 부상, 중국군 2000여명 살상.
1952년 겨울부터 53년 봄까지 서울 방어 작전에 참가하여 휴전협정 조인 때까지 3200명의 프랑스군이 참전하여 배속된 한국군 18명 포함 288명이 전사함.


프랑스군 참전비에서 유턴하여 지지대 고개 효행공원 보도 걸어 내려왔다.




옛 지지대 고개 내려가는 길,수원 방향


시내 버스 정류장 맞은편 길가에 있는 미륵당


문이 잠겨 위창살 사이로 들여다본 화강암 미륵불, 하반신은 땅 속에 묻혀 있다.


처음 출발했던 노송공원 북쪽 긑머리, 수원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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