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연예인이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랑스러운 4대 의사 가문을 자랑하다 역풍을 맞았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니 그녀의 잘못은 없다. 더욱이 얼굴도 모르는 증조할아버지의 친일 행적은 증손녀가 떠안을 과오도 아니다. 다만 막연하게 할아버지와 부모로부터 부끄럼 없이 집안을 일으킨 영웅처럼 전해졌다는 증조부의 전설이 문제였다. 일제에 부역하면서 조선옷도 입지 않고 집안에서도 우리말 대신 일본말을 썼다는 증조부 가정생활이야기는 <꺼삐딴 리> 같은 블랙 코미디의 실사판이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조부모는 부모 밑에서 내지인 생활을 했으니까 실제 부모의 실체를 알았겠고 부모와 같이 일본사람처럼 살았겠고, 그 연예인의 부모는 어렴풋이 가문의 분위기를 알고 성장했겠다. 그리고 어린 자녀들에겐 부끄러운 과오보단 명예로운 의사 우월의식만 집안내력이라 세뇌시켰으리라.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도 선조들의 후광을 출세 수단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독립 운동가의 후손으로 조상들이 음덕에 힘입어 민주화에 역행하며 고위직에 앉아 호의호식하는 사례들을 많이 봐왔다. 심지어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독립군의 후손이라 자랑스레 떠벌리며 살고 있는 인사들까지 있으니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 속이다. 광복 후,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파들을 심판하지 못한 것이 오늘을 혼탁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광복절을 맞아 면암 최익현 선생의 고택이 있는 청양 모덕사를 찾았다. 최익현 선생(1883~1906)은 경기도 포천 사람으로 조선후기 장령, 돈녕부도정, 승정원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항일운동가로 1904년 4월 13일 74세의 나이로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4월 23일 체포되어 7월 대마도에 압송되었다가, 11월 대마도에서 단식과 풍토병으로 옥사하였다. 광복후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 되었다. 1914년 이곳에 모덕사가 건립되고, 1989년 영당인 성충사를 세우고 금년 2026년 4월에 면암 최익현 기념관을 면암과 그 후손들이 살던 고택 옆에 지어 개관했다.
면암이 청양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가 68세가 되던 1900년(광무 4) 4월, 충청도 정산(현재 충남 청양군 목면 송암리)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맏아들 최영조가 부친의 신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서울과 가까운 포천을 떠나 중앙의 정치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익현의 활동은 정산으로 이주한 뒤, 중앙정부에 상소를 올리는 활동에서 나아가 일제에 맞서 의병을 일으키는 실천적 방향으로 변모하였다. 강회와 유람을 통해 충청, 영남, 호남 지역의 항일 인사들과 교유, 소통하였고 많은 문인을 양성하여 화서학파의 맥을 호서지역에 심었다.
그런데, 금년 4월에 준공한 기념관만 산뜻했고, 저수지 옆에 있는 영당과 모덕사, 고택 주변은 마당 복토공사로 매우 어수선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면암 최익현 기념관



기념관


기념관 내부

















기념관 밖




동상

최익현 선생 동상 우측에는 백범 김구선생 환국고유제문비가 서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은 광복 후 고국에 환국하였음을 고하기 위하여 이곳 모덕사에서 면암 최익현 선생 신위에 고유제를 올렸다. 고유제문이 뒤늦게 발견되어 이를 길이 보족하고자 모덕회원들의 뜻을 모아 모덕회 주관으로 청양군의 지원을 받아서 환국고유제문비를 2022년 4월 13일에 세웠다.


존심루 - 존심루와 명리지는 화서 이항로 선생이 제자 최익현에게 내려 준 '존심명리' 네 글자에서 따온 누각과 연못이다. 1850년 여름, 스승 하서 선생은 18세의 최익현에게 학문을 궁구하는 목적과 자세를 당부하며, '마음을 보존하고 이치를 밝힌다'라는 뜻을 글자를 써 주었다. 같은 해 최익현 선생은 이에 관한 글을 '면암집', '항양만록'에 남겼다.




영당 - 영당(성충대의)은 면암 최익현 선생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곳으로 1989년 청양군에서 건립했다. 영정은 원래 면암선생이 73세(1905년) 때 정산 현감으로 있던 채용신이 그렸으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1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영당에 봉안되어 있는 영정은 이종상 서울대학교미술대학 교수가 모사하여 건물 준공과 함께 봉안한 것으로 영당에서는 매년 4월 13일 의병을 일으킨 날을 기념하여 청양군 주관으로 제향을 봉행한다.



모덕사 - 모덕사는 면암 최이견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뜻을 모아 1914년 건립하였다. 모덕사라는 이름은 1914년 고종황제가 내린 밀지 내용 중 '면암의 덕을 흠모한다'는 뜻의 '모경수덕(慕卿垂德)'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며, 매년 음력 9월 16일 유림주관으로 제향한다. 또한, 이곳에서 1946년 백범 김구선생이 환국고유제를 올렸으며, 1953년 해공 신익희 국회의장이 환도고유제를 이곳에서 봉행했다.



면암고택 - 면암고택은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송암리에 있다. 조선 후기 전통 한옥으로,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항일 의병장인 최익현 선생이 살았던 집이다. 이 고택은 1893년에 지어진 것으로 확인되며, 1900년부터 약 6년 동안 최익현 선생이 머물며 학문 연구와 의병 활동을 준비했던 공간이다. 건축적으로는 안채, 사랑채, 사당채가 ‘튼 ㅁ자형’으로 배치된 전형적인 조선 후기 사대부 가옥 구조를 갖추고 있어, 당시 양반가의 생활 모습과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낸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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