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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릉 한양릉(汉阳陵은 한(漢)의 네 번째 황제인 경제(景帝) 유계(刘启)와 황후가 합장된 능원(陵园)이다. 센양시[咸阳市] 웨이청취[渭城区] 정양전[正阳镇] 장자완[张家湾]에 위치하며, 시안시[西安市]의 북쪽에 있다. 능원(陵园)의 면적은 약 12㎢이다. 제릉능원(帝陵陵园), 후릉능원(后陵陵园), 능묘(陵庙), 배장묘원(陪葬墓园), 형도목지(刑徒墓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우천례팅[文物陈列厅]을 참관할 수 있으며, 현재 한양링[汉阳陵]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새로 세워진 디링와이짱캉바오 후잔스팅[帝陵外葬坑保护展示厅]이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현대화된 제왕릉(帝王陵)에 위치한 지하박물관(地下博物馆)으로서 총 건축면적이 7,865㎡이며, 중점적으로 전시되고 있는 81개의 외장갱(外葬坑) 중 10개가 이곳에 ..
진시황릉 통일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의 능묘. 즉위 직후부터 대대적으로 공사를 시작해 높이 79m, 동서 475m, 남북 384m에 둘레가 무려 25㎞에 이르는 거대 무덤, 진시황릉(秦始皇陵)이 축조되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무덤으로는 세계 최대 크기로, 1987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장장 37년이라는 시간과 70만 명에 이르는 장인의 노동력이 투입된 능묘는 살아생전 진시황의 야심을 오롯이 반영하고 있다. 당시 수도였던 셴양을 축소한 묘의 내부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하며 수은으로 된 시내가 흐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영생을 꿈꾸던 진시황의 소망을 담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인어기름(고래나 바다표범의 기름으로 추측됨)으로 만든 초가 불을 밝히고 있다. 도굴꾼의 잠입을 막기 위해 진입을 시도하..
화청궁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동교(東郊)의 린퉁현[臨潼縣] 남쪽, 리산[驪山]에 있는 온천이다. 중국 시안. 시안에서 35㎞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온천수가 풍부하여 주나라 때부터 무려 3천여 년 간 온천 휴양지로서 유명하다. 서주(西周) 말기에 주유왕(周幽王)은 지금의 화칭츠[华清池]에 리궁[骊宫]을 세웠다. 당(唐) 때인 644년에는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이 탕취안궁[汤泉宫]을 지었고 현종(玄宗)이 이를 증축한 뒤 화칭궁[华清宫]이라 개칭하였다.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杨贵妃)의 연애시절에는 이곳이 매우 번성하였고, 당시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가, 안사의 난(安史之乱) 이후로 화칭츠[华清池]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화칭츠 온천수의 수온은 43℃ 이다. 풍부한 광물질과 미량의 원소가 ..
장안성 중국 당대(唐代)의 국도였으며 현재의 서안을 포함하는 지역. 수의 개황 2~4년(582~584)에 건설한 대흥성을 당이 계승하고 충실하게 완비하여 장안성이라 개칭했다. 성벽은 북 9570m, 서 8470m의 장방형이고 동남 모서리 만이 남으로 돌출, 동은 부용원, 서는 곡강지. 북성벽에 연하여 중앙부에는 궁성이 있고, 그 남쪽에 황성(정부관청)이 있었다. 궁성은 태극궁(수에서는 대흥궁), 중앙 부분의 전전(前殿)을 태극전(수에서는 대흥전)이라 칭하고 농부에 동궁, 서쪽의 남북에 액정궁과 태창을 배치했다. 태종 때, 동북의 성 밖에 대명궁(東內), 현종 때 성안의 동쪽에 흥경궁(南內)이 설치되고 태극궁(西內)과 합하여 ‘3대내’라 부른다. 황성에서 남으로 달리는 주작대로에 의하여 서쪽의 장안현과 동쪽의 함..
대명궁 대명궁은 당나라 3대 궁전인 태극궁, 흥경궁, 대명궁 가운데서 가장 크고 웅장한 궁전으로 원명은 영안궁이란다. 당태종은 아버지인 당고조에게 효도를 하기 위하여 공사를 시작했는데, 대명궁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연의 죽고말자 대명궁의 공사는 중지되었다. 그 후 당고종이 공사를 계속하여 이듬해에 대명궁에 입주하고 집정하였다. 이로써 대명궁은 대당제국의 새로운 정치중심으로 되었다가 건녕 3년(896년)에 전란으로 인하여 훼손되었다. 대명궁의 둘레의 길이는 7.6 킬로미터, 면적은 3.2 평방키로메타로서 북경 자금성의 4 배, 축구장 500개의 면적이란다. 대명궁은 총 11개의 성문이 있고 동, 서, 북에는 협성이 있다. 남쪽에는 세 겹의 성벽이 있고 성밖의 단봉문거리는 넓이가 176미터로서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제..
대안탑 광장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허핑먼[和平門] 밖의 대자은사(慈恩寺) 경내에 있는 전탑(塼塔). 원래 명칭은 자은사탑(慈恩寺塔)이다. 652년 당(唐)나라 고종(高宗) 때 건립된 4각형의 누각식 탑이며, 명(明)나라 때 외벽에 한 겹의 벽돌을 더 둘러쌓았다. 모두 7층이며, 전체 높이는 64m이다. 천축(天竺)을 다녀온 삼장법사 현장(玄奘)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보관하기 위하여 석탑을 세우려고 하였으나 자재와 비용을 구하기 어려워 표면만 벽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채운 토심전탑(土心塼塔)을 세웠다. 이 탑은 견고하지 못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졌고, 701년에서 704년 사이에 측천무후의 명으로 허물고 다시 건립되었다. 탑신(塔身)은 1층 이상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둘레가 급격히 줄어든다. 탑..
아방궁과 대당부용원 아방궁은 西安 서쪽에 있었다는 진시황의 궁전으로 아방촌(阿房村)이라는 한촌(寒村)에 있다. 시황제는 함양궁(咸陽宮)을 비롯하여, 그의 손으로 멸망시킨 육국(六國)의 궁전을 본뜬 육국궁 등 많은 궁전을 지어 미인과 즐겼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셴양[咸陽]의 대안(對岸)에 더 큰 궁전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전에 지은 궁전이 아방궁으로, 규모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동서 약 700m, 남북 약 120m에 이르는 2층 건물로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건설에는 죄수 70만이 동원되었으나 시황제의 생전에는 완성되지 않아 2세 황제에 의해 나머지 공사가 진행되었다. 셴양 부근에 세워진 수백에 달하는 궁전군(宮殿群)은 2층으로 지은 복도와 담장 때문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길로 종횡으로 이어져 아방궁에서 위..
섬서성 역사 박물관 무더위 절정기에 지치고 지친 몸으로 서안행 야간 비행기를 탔다. 중국 동방항공의 자그마한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서안에 도착했는데, 그곳도 더운 건 마찬 가지였다. 중국 내륙의 한 복판이라 날씨는 우리나라보다 더 엉망이었다. 4일 밤을 머무는 내내 푸른 하늘은 하루도 보지 못했다. 뿌연 먼지에 뒤덮여 안개 낀 것처럼 탁한 하늘빛만 바라보았다. 그나마 저녁 무렵에만 약한 푸른빛이 하늘가에 감돌 뿐이었다.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의 수도로 고도로만 알고 있었던 서안은 예상과 달리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져 꿈틀거리는 거대한 도시였다. 거대한 성벽들과 치솟은 고층 빌딩... 여기저기 곳곳에서 진행되는 빌딩 신축 공사는 서안이 과거의 도시가 아니라 젊은 도시로 발돋움하는 신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
능가산 내소사 오랜 지기들과의 여름 여행은 무더위 때문에 빛을 잃었다. 본디 목적지도 없이 길을 가다가 풍광 좋은 명승지를 탐승하는 것이었지만, 더위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해변으로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35도를 넘는 처음 겪는 이 무더위에 높은 산 계곡을 찾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로 쉽게 닿을 수 있는 곳, 몇 번이고 다녀온 곳을 또 찾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는 곳이 그저 절집이었다. 수년 전 겨울 격포항에서 하루 묵으며 조반으로 백합죽을 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었다. 그 맛 때문에 이번에 변산으로 또 갔다. 그런데, 휴가철이라서인지 격포항엔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들로 가득했고, 그 주변이 리조트 단지로 개발되어 상전벽해되었다. 할 수 없이 그늘을 찾는다는 것..
담양 식영정 예전에 식영정에서 내다보는 아름다운 경치가 머릿속에 박혀 있어 소쇄원 지근거리의 식영정을 찾았는데, 아뿔싸 날씨가 받쳐주지 않았다.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면서 어두워졌다. 더운 것은 여전했고... 게다가 언덕 위의 식영정은 수리 중이어서 보기에 아름답지 않았다. 아까운 발품 같아서 못내 아쉽기만 했다. 식영정 정자에 걸터앉아 잠시나마 고인들의 정취를 느껴보고자 했는데,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식영정 오르는 길 서하당 부용당 서하당 김성원과 석천 임억령의 사당인 성산사 부용당의 후측면 식영정 근처에서 내려다본 부용당과 서하당 성산사 식영정 내부 보수 중인 식영정
조선 선비들의 안식처, 소쇄원 조선 중종 때 개혁 정치를 펼치던 조광조의 급진적인 정책이 반발을 사게 되어 조광조는 화순 능주로 귀향을 가게 되자 그의 제자였던 양산보는 이곳으로 낙향하여 더 이상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10여 년에 걸쳐 소쇄원을 꾸미는데 이곳에 머물며 자연을 감상하고 사람 만나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곳을 드나든 사람은 송순, 정철, 송시열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조선 중기 문인들로 가사 문학의 대가들이다. 입구부터 대숲이 시원하게 우거져 있었고, 소쇄원을 가로지르고 있는 작은 천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제월당, 광풍각이 있다. 계곡 옆 정자인 광풍각은 ‘침계문방’이라 하여 머리맡에서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선비의 방이라 이름 붙은 곳이다. 소쇄원 가장 높은 곳에 있어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제월당은 ..
담양 죽녹원 대나무의 고장 담양. 그간 몇 번 들렸던 곳이었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담양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더워 담양온천에 들렸다가 유명하다는 죽녹원을 찾았다. 1박 2일에 소개된 후 관광객이 많아졌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명승지를 오락 프로그램으로 소개하는 1박 2일의 순기능도 많아 보였다. 죽녹원은 담양군이 성인산 일대에 조성하여 2003년 5월 개원한 대나무 정원이다. 약 16만㎡의 울창한 대숲에 산책로를 조성하여 죽림욕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총 2.2km의 산책로를 걸으며 대나무들을 질리도록 보고 또 보았다. 죽녹원전망대 앞으로 영산강 상류인 담양천이 흐르고 담양천변에 쌓은 제방에는 300년이 넘은 고목들이 세월을 지키고 있었다. 조선시대 관에서 제방을 쌓고 제방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고 ..
계룡산 산신당, 신원사 갑사에서 멀지 않은 곳, 시골냄새 물씬 나는 마을 끝자락에 있는 신원사를 찾았다. 신원사 주변에는 계룡산을 기반으로 한 토속 신앙촌이 형성되어 무속인들이 상당히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는 도중 무속 간판들이 많이 보였다. 입구 매표소에서 표를 사면서 관리인에게 말을 하고 경내까지 차를 타고 들어갔다. 경내에 차량들이 아무렇게나 주차되어 있는 것이 무질서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너무 더워서 걷기가 힘든 날이니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신원사는 웅장하게 외형만 키운 절집이 아니라 아기자기하게 아담한 절집들을 아름다운 공간에 조화롭게 배치한 그런 사찰이었다. 더구나 조선시대 나라에서 산신께 제사 지내던 중악단까지 있는 곳이면, 그 산세나 지형이 예사롭지 않은 곳으로 생각되었다. 신원사는 계..
계룡산 갑사 35년 만에 다시 찾아본 계룡산 갑사였다. 예전엔 버스 타고 털털거리며 찾아갔었는데, 이젠 여유롭게 차창밖의 전경을 바라보며 갑사로 향했다. 갑사가 있는 계룡산이 차창 밖으로 펼쳐졌다. 산 모양이 닭 볏을 닮았대서 계룡산이란다. 그러고 보니 눈앞에 보이는 계룡산 능선이 닭 볏 같기도 하다. 뜨거운 여름철이라 절을 찾는 손님들도 거의 없는 듯했다. 한적한 숲길 속을 매미소리 친구 삼아 갑사에 들어섰다. 천왕문을 지나니 돌축대 위에 범종각이 우뚝 시야를 막아섰다. 석축 위의 대웅전 오르는 계단, 강당과 범종각. 계단 옆의 약수에서 물 한잔으로 목을 축였으나, 날씨가 더운 탓인지 시원하진 않았다. 대웅전 주변 관음전 삼성각 대웅전 앞뜰 산세가 좋아 많은 기를 품고있다는 계룡산을 배경으로 서쪽을 향해 앉은 갑사..
여름 봉녕사 아침에 뿌옇던 날씨가 오후가 되자 뭉게구름이 몰려들었다. 구름빛이 너무 좋아서 수원 광교산 아래 있는 봉녕사를 찾았다. 광교산 아래는 도시 개발로 산 아래의 봉녕사는 도시 외곽의 사찰이 되었으나, 주변이 그나마 보존되어 그윽한 숲 속에서, 비구니 선원으로 멋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해 내려 오는 절집들이 아니라 현대에 들어서 전통 건축물들로 중수되었지만, 울창한 숲 속의 기품 있는 사찰로 고풍스러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본디 고려 때, 원각(圓覺) 국사가 창건하고 성창사(聖彰寺)라 불렀다가, 1400년대 초에 봉덕사(奉德寺)로 이름을 바꾸었고, 1469년(조선 예종) 혜각(慧覺) 신미(信眉)가 중수한 뒤 현재의 이름으로 고쳤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서 1971년 비구니 묘전(妙典) 스님이 주지로 부..
창경궁의 여름 하늘빛이 너무 고왔다. 버스를 타고 창경궁으로 가면서, 탈 때 사용한 카드를 내릴 때도 찍어야 하는데, 두 개의 카드 중 어느 것을 썼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른 버스로 환승했을 때 환승멘트가 없어서 결재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세월의 흐름이 더 가속되나 보다. 방금 한 일을 금방 잊어버리는 빈도수가 점점 늘어난다. 그러나 저러나 창경원에 가서는 치매 같은 건망증도 깨끗이 씻고 아름다운 궁궐과 구름꽃 핀 하늘의 조화에 넋 놓고 다녔다. 때마침 만난 문화해설사를 졸졸 따라다니며 전각들의 역사를 소상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 연대나 왕들의 이름은 금방 헷갈려 버렸다. 설명 듣는 것에 열중하다 보니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연못까지의 해설코스를 ..
수원 화성 산책 일요일 날씨가 너무 좋았다. 소나기가 지나간 후, 뭉게구름이 둥둥 떠다녔다. 이런 날은 화성이 제격이라 싶어 화성 연무대로 갔다. 창룡문 우측 주차장에 차를 두고 창룡문부터 들렸다. 더운 날씨 탓인지 관광객들은 외국인 일색이었다.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의 대화는 중국어 아니면 일본어였다. 내국인치고 이렇게 더운 날 걸어서 다닐 사람이 어디 또 있겠나 싶었다. 햇볕은 구름 따라 들쭉날쭉해서 사진의 질감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햇볕 나기를 기다리기도 했지만 더위에 지쳐갔다. 창룡문에서 성밖으로 나가 방화수류정, 장안문, 화서문을 돌아서 화성장대까지 뚜벅뚜벅 걸어가려니, 더운 날씨 탓에 땀이 흘러 셔츠가 다 젖었다. 서장대 아래 약수터에서 화성열차를 타고 연무대로 복귀하려 했으나, 화성열차표가 모두 ..
춘천 청평사 아침에 안개 때문에 불투명했던 시야가 한낮이 되면서 화창한 날씨로 바뀌었다. 오랜만에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을 보는 날이었다. 모처럼 어린 시절 죽마고우들과 나들이를 함께 했다. 세월은 지났지만, 말투나 성격은 변함없어 희희낙락 떠들다 보면 지나간 세월들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문득문득 집안 얘기들이 스쳐 지나갈 때는 수십 년의 세월들이 번갯불처럼, 주름진 시간들을 현실로 돌려주었다. 만나면 그저 유쾌하게 떠들며, 한 잔 술에 과거의 추억들을 떠올리고, 우리 곁에 머물렀던 시간의 파편들을 퍼즐 조각 맞추듯 재구성하는 일들이 그저 즐겁기만 했다. 간혹 우리 곁을 떠나간 친구와 흰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또 다른 친구들을 볼 때면,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이 퍽이나 길게 생각되었다. 한낮의 햇볕은 정말로 따가웠..
삼척 대금굴 모노레일을 타고 동굴 안까지 들어가 관람하는 대금굴, 몇 년 전 환선굴만 보고 가며, 아쉬워했었는데... 매표구에서 표를 사려니 인터넷 예약이 아니면 불가하단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그래서 관람하지 못했다. 현장 매표가 오히려 인터넷보다 못한 세상이었다. 나같이 계획성 없는 사람과는 인연이 없나 보다 생각하고 그 옆의 환선굴 매표를 하려는데, 한 시간 뒤 것으로 표가 있다며 의향을 묻는다. 입장료가 12,000원이니 싼 값은 아니었다. 표를 사들고 대금굴 입구까지 나무로 만든 계단을 올라갔다. 날씨는 잔뜩 흐렸는데, 어제 내린 비로 청량감이 더했다. 역시 강원도답게 골짜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퍽이나 맑고 시원해 보였다. 대금굴 모노레일 승차장 주변은 계곡을 따라 생태체험 숲길을 만들었는데, 주변 환..
춘천 의암호 금강산에서 내려오는 북한강에 설악산에서 흐르는 소양강이 흘러들어 하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의암댐 덕에 호수를 이루었다. 그 덕에 춘천은 호수로 휘감긴 호반의 도시가 되었다. 봄가을엔 물 위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도시가 휩싸이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물안개가 상고대를 이루어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의암호 위에 종합 스포츠 타운이 건설되고 강가엔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만들어졌다. 옛적엔 꽁꽁 얼어붙은 공지천에 빙상 링크가 만들어져, 매년 동계 전국 체전이 열렸었다. 그 덕에 춘천 사람치고 스케이트 타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던데, 이젠 수상 스포츠 타운으로 여름철 레포츠도 활성화될 성싶다.
송도 센트럴 파크 뻘을 막아 간척을 하고 그 위에 국제도시를 건설한다던 송도 신도시는 부분적으로는 매우 화려하고 산뜻했다. 아직도 공사 중인 곳이 많아서 뭐라고 속단하기 어렵지만 완성된 부분의 신도시 시가와 주변 공원은 매우 아름다웠다. 특히 중앙 공원은 예쁘게 잘 꾸며 놓았다. 한국식 정자만 없다면 다른 나라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송도 신도시가 계획대로 국제도시로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중앙공원을 한 바퀴 산책하며 둘러보았다. 솔직히 이렇게 예쁜 공원을 근처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아파트 꼭대기에 붙여 놓은 플랜카드들을 보면, 입주민들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건설사에 대한 항의 문구가 오늘의 우리나라 신도시 문제들을 한 마디로 대변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사는 공간들이 모두 인간과 자연..
삼척 준경묘와 영경묘 지난 겨울에 가보고 싶었던 준경묘였다. 그때, 지척까지 갔다가 갑자기 내린 눈 때문에 안타깝게 포기했었다. 태백에서 내비게이션(지니맵)에 준경묘를 입력하고 달렸으나, 도착한 곳은 비포장도로의 끝지점인 시멘트 광산 본부 사무실이었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으나 이정표 하나 없는 첩첩산중이어서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일이어서 비탈을 오르는 시멘트 구비길을 200여 미터 오르니 현장 숙소가 나타났다. 이른 아침 차소리에 잠을 깬 현장 직원들이 놀래서 밖으로 나왔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종종 내비게이션 오류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준경묘는 이 산의 반대편에 있단다. 산을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고 멀지 않으니 활기리 마을회관을 찾으면 될 것이라는 말에 차를 되돌려 또 달리고 달렸다...
화성행궁 수위의식 화성 행궁 수위의식은 정조대왕이 행궁에 행차했을 때, 대왕의 호위군이자 화성을 지키는 장용영 군사들이 정조대왕께 자신들의 무술을 시범보이는 의식이다. 장용영 수위의식이라고도 하며, 이때 정조대왕은 행궁 밖으로 나와 백성들을 위로하고, 신풍루 누각에 올라 장용영 군사들의 무술시범을 참관했었다고 한다.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좌측에 드라마 대장금 촬영장이었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행궁문이 열리고 다섯 개의 화살을 꽂은 대왕의 상장물이 맨 앞에 나온다. 정조대왕이 백성들을 만나보기 위해 행궁 밖으로 나온다. 시범 훈련을 알리는 나발 연주 조총 사격 시범에 이은 궁술시범, 뒤로 돌아선 자세로 상반신을 돌리며 활을 쏜다. 이어서 정면의 표적을 보고 연속으로 활쏘기 시범 힘차게 날아가는 화살 시범이 끝난 후, 신..
비온 뒤의 연밭 풍경 폭우 뒤의 연밭은 엉망이었다. 비바람에 연줄기는 쓰러지고, 연잎들은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흙탕물에 뿌리박고 연잎을 피워, 속세를 극복하고 해탈하는 부처의 상징인 연밭이 곱지 않음에 적잖이 실망했으나, 시간이 지나면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바람은 시련 중에 또 하나의 시련일 것이다. 망가진 연밭 수로에 뜸부기 가족들만 한가롭게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연밭 수로엔 뜸부기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처음 보는 뜸부기 새끼들...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물에 젖은 날개를 터는 모습이 귀여웠다. 뜸부기들이 지나간 자리 비바람에 뭉개진 연밭에도 성한 모습으로 활짝 봉오리를 터트리는 연꽃도 있었다. 마치 고해 속에서 해탈하는 부처님들처럼... 성한 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