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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해금강(1) 도장포 "바람의 언덕"에서 기상 후 부랴부랴 섬안의 삐죽한 반도를 따라 동쪽으로 길을 떠났다. 바다의 끝자락 해금강이 바라보이는 만(灣)에는 별장 같은 주택들이 남쪽을 향해 그림같이 앉아 있었다. 안내도를 보니 해금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우제봉까지 산책로가 있어서 동백 숲 사이를 걸어서 산으로 올라갔다. 1월 중순부터 3월까지 핀다는 동백꽃인데 철이른 녀석들이 벌써 꽃망울을 터트렸다. 철 이른 꽃이라 탐스럽진 않았지만, 엄동설한 속 야생에서 꽃을 피웠다는 것이 대견해 보였다. 이곳은 삼면이 산으로 막혀 있어서 바람도 없고 사시사철 햇볕이 드는 곳이여서 제주도보다 더 따스하다고 한다. 눈구덩이 속의 집을 떠나 왔지만 이곳에선 눈덩이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우제봉을 지척에 둔 전망대에 오르니 사방이 ..
바람의 언덕 옥포에서 점심을 먹으려, 좁고 복잡해서 미로 같은, 시장 골목을 헤매다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시내를 벗어나고 말았다. 옥포는 대우조선소 때문인지 국제도시처럼 서양인들이 많았다. 좁은 옥포만이 많은 사람 때문에 정말 혼잡했다. 배고픔을 참으며 어찌하는 수 없이 해안을 끼고 남진하다가 큰 길가에 식당을 발견하곤 때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으로 회덮밥을 주문했는데, 주인 내외가 매우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마침 음식점 벽에 "바람의 언덕" 사진이 크게 붙어있어 물었더니 경관이 매우 좋다고 한다. 회덮밥에 서비스로 끓여준 매운탕까지 배불리 먹고 구불구불 해안선을 돌고 돌아 도장포 선착장에 차를 세우고 "바람의 언덕"에 올라갔다. "바람의 언덕"은 겨울철이라서인지 예상보다 썰렁했다. 해안 언덕에 풍차를 세워놓..
거제 옥포대첩기념공원 침매해저터널이라는 가덕터널을 지나며 이구동성으로 인간의 기술력에 경탄했다. 지상에서 완성한 구조물을 바닷속에 넣어 그들을 연결하여 터널을 놓았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웠다. 놀라운 기술력 덕에 편안하게 바닷속을 지나 거제도로 들어가니 그저 감사한 일이었다. 개통 당시 이곳을 통과하려다 차가 밀려 포기하고 진해로 우회하여 통영에 갔던 가슴 아픈 추억이 있었다. 거제도 안의 도로도 고속도로처럼 죽죽 뻗어 있어서 쾌속으로 달려갔다. 곧은길로 달려서는 아름다운 해안을 볼 수 없어 구불구불한 지방도로를 달리며 옥포대첩기념공원에 다달았다. 두루 알다시피 옥포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의 최초 전승지였고 대우해양조선소가 들어서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옥포대첩공원에서 봄날씨 같은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전시관과 충무공..
우포의 겨울 그동안 얼마나 우포를 보고 싶어 했던가. 그런데, 막상 소문으로 들어 짐작되는, 꽁꽁 얼어붙은 우포는 별로 내키지 않았었다. 부곡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따뜻하고 매끄러운 온천물에 흠뻑 반해버렸다. 더욱이 우리가 머물던 숙소는 지하 대중탕을 숙소 손님들에게 그대로 개방하고 있었다. 대중탕이 낡긴 했지만 깨끗했으며, 온천수도 맑고 매끄러웠다. 많은 온천을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국내 온천수 가운데 아마도 최고의 수질이 아닌가 싶다. 온천욕을 한 후 모처럼 따끈한 방에서 숙면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중탕으로 내려가 온천욕을 한 번 더하고는 근처 식당에서 조반을 먹으며 일정을 의논했는데, 이구동성으로 우포늪지를 첫째로 꼽았다.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 북상하여 우포를 찾아갔다. 우포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매..
영천 은해사(銀海寺) 여행을 하다 보면 절을 많이 찾게 된다. 불교신자도 아니면서 절을 즐겨 찾는 것은 아무래도 사찰이 위치한 빼어난 지세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찰은 아름다운 명승지를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 목조 건축물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전통 목조 건축물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궁궐이나 사찰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볼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역시나 이번 여행에서도 팔공산을 스쳐 지나면서 이 지역의 대표적 사찰에 들리기로 했는데, 그곳이 바로 은해사였다. 법당 뒤에 금괴를 묻었다는 인근의 동화사는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다음 기회에 동화사와 모든 기원을 다 이루게 해 준다는 팔공산 갓바위를 찾아보기로 했다. 절 주변이 잘 정리되어 ..
군위 삼존석굴 인각사로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 군위삼존석굴로 향했는데,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가는 길에 우연히 스친 곳이 한밤 돌담마을이었다. 동네 입구의 솟대조형물과 오른쪽의 돌담과 솔숲이 범상치 않았다. 돌담으로 둘러 쌓인 솔숲안에 두 개의 커다란 추모비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송강 홍천뢰장군을 기리는 비석이었다. 이 추모비는 송강 홍천뢰 장군의 우국단심의 절의를 기리고자 1973년 5월에 세웠는데 정면 글씨는 당시 박대통령이, 비문은 이선근 영남대 총장이 썼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으로 활약한 홍천뢰장군은 영천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나라의 포상을 마다하고 낙향하여 군위와 인근의 영천, 청송 등에서 모인 의병들을 이 숲에서 훈련시켰다고 한다. 홍천뢰 솔숲 옆에서 점심을 ..
군위 인각사(麟角寺)-삼국유사의 산실 인각사를 만난다는 설레임에 잠조차 설쳤다. 그러기에 한 걸음에 달려갈 듯, 차를 몰아서 길고 지루한 고속도로를 지나 군위군 국도로 들어서니, 아뿔싸 도로엔 눈이 가득했다. 국도에는 일손이 미치지 않는 듯, 왕복 2차선의 좁은 길에다 그늘진 산 아래 응달은 아주 빙판이었다. 그 좁은 길에 웬 덤프트럭은 그리 많이 다니는지, 반대편 차선의 덤프트럭과 교행할 때는 공포까지 느끼곤 했다.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인각사 앞에 도착했는데, 온통 흰 눈이 덮여 있어서 지나치고 말았다. 차를 돌릴 공간이 없어 한참을 지나간 뒤에야 U턴해서 인각사 경내로 들어섰다. 흰 눈이 가득한 마당에 절집 두세 채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일연스님을 생각나게 해 준 것은 정면의 경량철골구조 전시관이었다. 불원천리 멀다 않고 달려왔기에..
탄도항과 누에섬 안산시 탄도항에서 누에섬 가는 길은 제부도처럼 썰물 때면 열린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안산시 누에섬에서는 안산시 대부도와 영흥도, 화성시 서해안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썰물 때만 방문이 가능하며, 누에섬의 등대는 연중무료로 개방하고 있어서, 탄도항 주차장에 차를 두고 바다를 가로지르며 갯바람을 실컷 쐴 수도 있다. 또한, 탄도항 내의 안산 어촌 민속박물관은 서해안지방의 풍속을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박물관 입장료는 2000원이고 탄도항 안의 주차는 무료다. 탄도항에서 방조제를 건너면, 해마다 세계 요트대회가 열리는 화성시 전곡항이어서 이국적인 요트풍경을 볼 수 있다. 탄도항에서 누에섬 가는 길 누에섬 등대 위에서 바라본 제부도 등대 안에서 바라본 제부도 등대 위에서 바라본 좌측의 탄도항..
아산 공세리 성당 아산만 방조제를 건널 때마다 야트막한 언덕 위의 예쁜 성당을 만난다. 이 지역을 통과해서 돌아올 때면 의례 한 번쯤 들려보고 싶은 12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아름다운 성당이다. 32명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기도 한 이 성당은 역사적 유적지로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성당이 위치한 곳은 예로부터 충청도 일대에서 걷워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곶 창고지로써 조선 성종 때부터 세곡 해운창을 설치 운영해 오다가 영종 때 폐창될 때까지 근 300년 동안 운영되었던 공세창고였다고 한다. 또한 이명래 고약이 개발된 곳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1895년 부임한 에밀 드비즈 신부님이 그를 돕던 이명래에게 고약의 비법을 전수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폭설 뒤의 한파로 카메라까지 얼려버릴 듯한 추위..
"레 미제라블"-바리케이드 너머엔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는 동안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숨죽이며 울었다. 두 시간 40여분의 지루하다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났을 때, 객석을 박차고 일어나는 관객조차 없었다. 실패로 끝난 청년들의 혁명임에도 불구하고, 파리 시민들과 청년들이 바리케이드에 진을 치고 "바리케이드 너머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있다."며 합창하는 엔딩 장면에서 오늘의 현실이 떠올라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끓어오르기도 했다. 식상하리 만큼 숱하게 읽고 들었던 레미제라블의 줄거리임에도, 비교적 원작에 충실한 영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한 장면도 놓치기 아쉬운 영화였다. 화면을 압도하는 죄수들의 노역장면을 시작으로, 도둑임에도 오히려 촛대까지 보태주신 신부님에 감화되어 장발장이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
瑞雪 2013년 새 해 첫날, 눈이 내렸다. 오전부터 펑펑 함박눈이 쏟아지더니 미련이 남았는지 밤에 또 한바탕 폭설로 내려 부었다. 정월 초하루에 내리는 눈이라서인지 서설이란다. 그러고 보니 12월 25일 전후에도 눈이 내려 White 가 되기도 했었다. 送舊迎新이라는데, 해가 지나고 바뀌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심란했던 연말연시였다. 때론 친구처럼, 동생처럼 여겼던 知己가 급작스레 29일 55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자 연락마저 끊고, 외롭게 투병하다가 기초 없는 모래탑처럼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언제나 어려운 사람을 위해 발 벗고 나서며, 올곧은 목소리로 소신을 굽히지 않던 그의 따스한 인정과 용기에 의기투합하여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동고동락하던 그리 많지 않은 친구 중 한 사람..
운보의 집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 있는 한국화가 운보의 집을 찾았다. 눈 내린 야산에서 불어오는 칼바람 때문인지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날이었다. 날씨는 맑았으나, 여름 하늘처럼 두꺼운 구름들이 창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구름 때문에 들쭉날쭉하던 햇살도 차가운 바람에 따뜻한 기운도 잃었다. 몇 년 전에 방문한 적이 있어서 운보의 집으로 가는 풍경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다만 눈이 내려 들과 산이 흰 세상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과 응달진 곳엔 빙판이어서 위태로웠다는 것이 다르긴 했다. 운보의 집에 도착하니, 입구에 매표소가 나타났다. 전에는 무료로 개장했었는데, 그 사이 세월이 바뀌어 유료화했나 보았다. 입장료는 4000원이어서 그리 비싸지는 않았다. 멀리서 한적한 시골마을까지 찾아온 노고에 비하면... 매표소 ..
화성 설경 아침부터 눈발이 보이더니 정오쯤에는 또다시 주변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잦아드는 눈발을 맞으며 화성에 갔는데, 날씨가 따스한 탓인지 차도에는 눈 녹은 흙탕물이 질척거렸다. 눈 내리는 풍경이 예쁘지 않아 되돌아서려다가, 보도에 쌓인 흰 눈에 용기를 얻어 화성으로 향했다. 화성도 기대만큼의 설경은 아니었으나 눈 덮인 곳을 찾아다니며 몇 컷 촬영하고 돌아왔다. 눈발이 날리는데도 화성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눈길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고... 동편에서 바라본 화성 장안문(북문) 장안문 좌우 포루에 거치된 불랑기포 장안문 동북쪽 풍경 서편에서 바라본 장안문 장안문 서쪽의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화서문에서 바라본 서북각루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서북공심돈과 서북각루 팔달산 위 화성장대와 화서문 주변 장안문 방..
시화호조력발전소 투표 후, 마음을 진정하고자 찾은 곳이 시화호 조력발전소였다. 시화호방조제 옆에 건설한 이 조력발전소는 세계 최대규모로 춘천 소양호 소양댐보다 1.5배로 발전량이 많다고 한다. 생태파괴라고 환경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화석원료를 사용하는 발전소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친화적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 발전소가 앞으로 또다른 조력발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시금석으로 기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발전소 공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지금도 공사중이었으나, 주변이 예쁜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서 보기에 좋았다. 날씨가 추운 탓에 공원에 마련된 휴게소에 들어가 점심식사를 했는데, 그 내부가 고속도로 휴게소 판박이였다. 식사 후, 2층 전망대 위에 올라가 망망한 서해를 바라 보았다. 멀리 영종도, 가까..
여명 동해만 가면 마음이 설렌다. 동터오를 때면 안절부절, 방 안에 앉아 있을 수 없다. 날씨도 흐리고, 강풍이 몰아치는데, 함께 온 일행 모두 늦게까지 마신 술기운에 배기통 큰 코를 드러내고 코골이를 하며 꿈 속을 해매고 있는데, 슬며시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나같은 이들이 몇 명 나와서 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서성거렸다. 동쪽을 바라 보아도 해돋이를 보기는 애시당초 글렀다. 흰 포말을 날리며 파도가 달려든다. 밀려드는 파도와 해안에서 밀려나가는 물결이 서로 부딪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킨다. 바다냄새와 진한 소금기가 바람에 날려 얼굴을 스치며 윙윙 허공을 가르며 지나간다. "일찍 나는 새가 배부를까." 미명에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파도 위를 날고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쓸쓸했을 바다였다...
겨울 화성 눈 내린 화성의 풍경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으나,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서인지 눈들이 질퍽하게 녹고 있었다. 눈 내릴 때 갔어야 하는 건데, 게으름 때문에 진풍경을 놓친 것 같았다. 아직 녹지 않은 눈들도 이미 밟히고 눌려서 순백의 아름다움을 잃은지 오래였다. 화성의 동문 안에 차를 세우고, 방화수류정까지 갔다가 성벽을 끼고 되돌아왔다. 길이 미끄럽고 날씨가 추워서인지 내국인보다는 외국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단체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일본인들 아니면 중국인들이었는데, 겉으로 보는 인물로는 구분할 수 없었다. 가까이 지나가며 그들이 사용하는 말씨를 들어야 비로소 한 중 일이 구별되었다. 동아시아 3국이 서로 견제하며 아웅다웅하는데, 서민들이야 서로 미워할 게 뭐 있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민족감정이네, ..
첫눈 그동안 뚝 떨어진 기온과 찬바람만으로 겨울을 느꼈는데, 비로소 이제 내린 흰 눈으로 겨울을 심감하게 되었다. 첫눈치고 폭설에 가까워 교통대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스럽지만, 눈 내릴 때면 제일 즐거운 건 어린이들이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눈덩이들을 굴리고 있다. 아마도 농경시절의 눈은 한 해를 수고한 농부들을 편히 쉬게 하는 눈이었을 텐데... 도시에 내리는 눈은 출근길을 괴롭히는 존재로, 철 모르는 아이들만 좋아할 뿐, 낭만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한 해를 또 아쉬움 속에 떠나보내며, 눈 덮인 세상을 바라보며 비로소 겨울을 맞는다.
몸살 앓는 백제의 미소 - 서산 삼존 마애불 모처럼 큰맘 먹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돌아 마애삼존불을 찾았는데, 개울물 건너는 다리부터 공사판으로 어지러운 풍경이었다. 삼존불에 오르는 계단 옆으로 석재를 끌어올리는 레일이 설치되어 볼상사나웠다. 삼존불상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불이문도 엉망으로 해체되어 있고, 그 주변이 성의 없이 마구 파헤쳐져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보수를 하려고 이토록 자연스러운 주변 경관들을 파헤치는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천년 풍상을 견디고 오늘에 전하는 삼존불은 자연과 하나 된 아름다움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할 수 있을까. 왜 이리 문화재를 못살게 들볶는지 모르겠다. 그전에는 삼존불 위에 비바람을 피하는 전각을 짓는다고 삼존불상 옆 암벽에 들보 구멍을 뚫었었는데, 전각을 철거한 지금 그 흉측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삼존불..
서산 간월암 만조가 되면 섬이 되고, 물 빠지면 육지가 되는 서산 천수만의 작은 섬 간월도. 그 섬을 다 채우고 섰는 간월암은 지난번 방문 때보다도 더 퇴락해진 모습이었다. 주변에 포구나 식당들은 산뜻하고 예쁘게 치장했는데, 정작 주인공격인 간월암엔 풍상이 몰아쳤는지 예전보다 더 낡고 쓸쓸해 보였다. 추운 날이었지만 하늘빛이 너무 고와 집을 나섰었는데 바닷가엔 내륙과 달리 엷은 해무가 번져 쾌청하지 않았다. 큰맘 먹고 멀리까지 찾아간 발품이 아까웠다. 암자 옆에 바다를 향한 작은 건물은 갓 부화된 새처럼이나 볼품없이 기와 한 장 없는 맨머리로 해풍을 맞고 있었다. 조선조 창업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무학대사가 이 암자에서 달을 보며 도를 깨우쳤다고 해서 간월암이라는데, 해 떠오른 오전보다 오후 시간이나, 아니면 달 ..
분당선 수원 연장 개통 10여 년간 온갖 소음과 분진, 교통장애를 일으키며 공사를 지지부진 끌어왔던 수원 분당선이 일부 구간에서 개통되었다. 12월 1일 개통에 앞서 11월 30일 14시 개통식 후, 수원시 청명역에서 망포역까지 시승을 했다. 분당선 수원 연장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공약으로 2008년 12월까지 완공하기로 한 사업이었었다. 그동안 예산 지원이 신통치 못해, 병아리 오줌 싸듯 찔끔대며 10여 년을 끌다가, 용인시 기흥역에서 영통동 망포역까지 일부구간만 개통하게 되었다. 내년 말에야 최종구간인 수원역까지 이어져 개통될 예정이고, 2015년이면 수인선이 완공되어, 분당선은 수인선과 연결되어 왕십리에서 인천까지 연결될 계획이다. 개통식 후 시승열차가 대기하고 있는 수원시 영통동 청명역 청명역 이정표 열차 안에 붙은 ..
양남 파도소리 길 경주시 양남면 읍천 주상절리를 가려는데, 내비게이션에 읍천주상절리가 입력되어 있지 않아 읍천항을 목표로 삼았다. 이정표를 참고하려는데, 양남에 들어서도 주상절리 푯말이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길가에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 찾아갔다. 마을 입구에 이정표 대신 주상절리라고 쓴, 세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현수막을 따라 좁은 길로 해안으로 나가니, 비로소 최근에 만든 듯, 너른 임시 주차장이 나타났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해안으로 이동했다. 연무 때문에 바다와 하늘이 모두 잿빛이었다. 다만, 해안 풍경들이 흔히 볼 수 없었던 막대모양의 바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서 흥미로웠다. 제주 중문 주상절리는 규모도 크고 육각형의 막대 바위들이 세로로 서 있었는데, 여기의 막대바위들은 누워 있..
헌인릉 오랜만에 들린 헌인릉, 지난여름 별생각 없이 이곳을 찾았었는데, 공교롭게도 월요일어서 헛걸음했었다. 깊어가는 가을날, 날씨는 왜 이리 청승맞게 연일 우중충한지, 오전에 맑았던 날씨조차 비라도 뿌릴 듯, 잔뜩 찌푸려 있었다. 나뭇잎은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들을 하늘로 뻗어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헌인릉은 이복동생들과 자신을 도와 왕권쟁취를 도왔던 처남들마저 무참하게 죽이고, 조선의 기틀을 바로 세우고자 했던 조선조 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의 헌릉과 정조의 아들로 외척들의 세도정치를 막지 못하고 조선 왕조의 몰락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23대 순조의 인릉이다. 왕조의 흥망이 유수하고, 현대화되어 시멘트 철근 건물들이 하늘을 찌르는 요즈음, 도시의 변두리에서 비닐하우스 화원 농장이 즐비한 산자락에 헌인릉은 다..
2012 가을 2012.10.21 2012.10.22 2012.10.23 2012.10.27 2012.11.01 2012.11.04 2012.11.05 2012.11.06 2012.11.19
가을 산책 올해 단풍은 질기고도 질기다. 가을비가 그렇게 내리고, 강풍이 불어도 꿋꿋하게 정열을 불사르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는데도 곱게 물든 단풍의 뜨거움은 식을 줄 모르니 참으로 대단하다. 홀로 동네 뒷산길을 걸으며, 한 해를 돌아보니, 참으로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이루어 놓은 것 없이 한 해가 훌쩍 지나간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면 커가는 키높이에 비례해서 지식으로 뿌듯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성장이 대견스러울 터인데, 이제는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주름살만 더해가니, 이른바 인생계급장만 높아져 유수 같은 세월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세월 탓으로 위눈꺼풀이 늘어지고 쳐져서 속눈썹이 각막을 찌르는 고통 때문에 보름 전쯤에 눈썹수술을 감행했다. 그동안 10여 년을 참으며 버텨왔었는데, 더 이상..
산사에서의 커피공양, 죽산 국사암의 궁예 미륵 쌍미륵사에서 내려오며 바로 좌회전하여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맞은편에서 차라도 나오면 그야말로 낭패였을 것이다. 그 산길을 구불구불 지나 국사암 바로 아래에선 30도 이상 가파른 시멘트 길을 박차며 암자에 올랐다. 막바지 오르막길에선 경사가 급해 자동차가 뒤로 뒤집어질 것 같았다. 나는 두 번째 방문이라 큰 감동은 없었으나, 가을빛이 무르익어 풍광이 아름다웠다. 때마침 작업복을 입은 스님이 설풍기를 등에 지고 바람으로 낙엽들을 치우고 있었다. 싸리비로 낙엽들을 쓸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날려 버리니, 문명의 이기가 이곳 암자까지 들어와 스님의 노고를 덜고 있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 경내를 두루 돌아 관람을 마친 뒤,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낙엽을 날리던 스님이 우리..
가을 찬가, 죽주산성 가을의 색깔은 오묘하다. 가을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색깔은 무엇일까. 산을 불태워버릴 듯 맹렬하게 번지는 단풍나무의 원초적 빨강, 참나무들이 내뿜는 주황, 태고적부터 살아왔다는 화석식물인 은행나무의 노랑 등 등... 형형색색이 서로 섞여, 이 가을을 수놓는다. 그래서 예부터 우리 산하를 금수강산이라 했나 보다. 내가 보기에는 비단에 수놓은 것보다도,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오묘한 색상들의 배합이 더 아름답다. 다시 말하면 미려한 금수강산이란 말보다도 우리의 가을 산천은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곳, 죽주산성에는 노랑색의 향연이었다. 산성에 서식하는 나무들의 주류는 낙엽송이었는데, 노랑 낙엽송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파랑 하늘빛과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허물어졌던 옛 성을 최근에 보수해서 구불구..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 그곳엔 과거가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기울어진 햇살 아래 MBC 촬영장은 짙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시간을 뛰어넘어 호랭이 담배 먹던 과거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들어가는 진입로 주변은 축사농가라서, 동물들의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르고, 동네 개울에는 농가의 오수가 악취를 내며 흘렀다. 도로도 좁아서 승용차 두 대가 서로 교행하기도 불편할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통의 산맥들처럼 북-남으로 뻗은 낮은 산줄기에 동향으로 앉은 세트장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전에 보았던 부안 종합세트장보다 남양주 종합 촬영소보다도 규모가 더 커 보였다. 단지 내 상식으로 알 수 없을 것 같은 국적불명의 건축물이 많아서 아쉽긴 했지만... 입장료 7000 원을 내고, 세트장을 주욱 돌아보는데, 일본인 관광객들이 의..
미륵불의 용화세상, 죽산 쌍미륵사 올해 단풍은 유난히 색깔이 곱고 길다. 도심에서 만나는 가로수들도 한 해를 화려한 잎새들로 마무리하고 있다. 햇빛 좋은 토요일 가까운 산사를 찾았다. 여름에 갔었던 안성 죽산의 쌍미륵사. 그곳에서 궁예왕이 세웠다는 두 미륵불을 만났다. 미륵불들은 화려하게 형형 색색을 내뿜는 가을 산에 둘러싸여 오늘도 변함없이 사바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예로부터 안성 죽산은 미륵 마을이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그만큼, 이 지역은 한반도의 중원에서 세력다툼에 시달렸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죽산 곳곳에 미륵불이 산재해 있다는데, 한 번쯤은 그 미륵만을 찾는 나들이를 해보고 싶다. 1980년대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의 열풍 속에 억압받던 백성들의 희망처였다는 화순의 운주사를 갔던 적이 있었다. 산 등성이에 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