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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당성 잘 알려진 이야기로, 신라시대 원효와 의상스님이 불교를 배우기 위해 당나라로 가는 도중 산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다. 갈증 때문에 한밤중에 일어난 원효스님은 근처의 우물을 찾아 바가지로 물을 떠마셨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물을 떠마신 바가지는 사람의 두개골이었다. 이에 깨달음을 얻은 원효스님은 중국 유학을 포기하고 국내에서 스스로 정진하며 민중중심의 해동종을 열였다. 당나라 유학을 마친 의상대사는 귀국하여 귀족중심의 불교를 널리 전파하였고... 그래서인지 현재까지 전하는 많은 사찰은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원효스님에게 깨달음을 준 곳이 바로 이곳 당성 근처다. 신라인들은 내륙의 충주로 올라와 죽주산성을 거치고 용인의 처인성을 지나서, 오산의 독산성(세마대)으로, 옛수원읍성을 통과하여 화성시 서..
팔달문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은 조선 정조 18년(1794년)에 축성되었다. 그동안 화성의 4 대문 중 유일하게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에서도 훼손되지 않고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 문루 2층의 일부 서까래가 빠지고 보가 처지는 변형이 일어났다. 이에 수원시는 2010년 6월부터 팔달문을 해체하고 복구작업을 시작했는데, 2013년 4월, 3여 년에 복구공사를 끝내고 예전처럼 그 자리에서 아름다움을 뽐내게 되었다. 그동안 수원 화성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팔달문이 가림막 안에 있어서 안타까움이 컸으나, 이제 가림막을 벗고 세상에 다시 나와 華城의 아름다움을 더하게 되었다. 좌측면 - 화면의 오른쪽으로 화성장대가 보인다. 우측면 뒷면- 성 안쪽 남문 시장 가운데 도로변의 정조대왕 동상, 수원 화성..
현충사의 봄 금년에 봄이 일찍 찾아들어 봄꽃이 20여일 일찍 피었다더니,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오히려 벚꽃은 1주일 이상 늦게 피었다. 급작스레 더웠다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씨변화에 정신마저 혼란스럽다. 농작물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데, 기상이변이 심각하기 이를 데 없다. 작년에 지구종말이 온다고 난리법석이더니 종말론의 2012년이 지났는데 기상변화는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아열대 기후로 바뀌면 따스해질 것이라던 예상도 맞지 않나 보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 아닌지 염려스럽다. 모처럼 날이 따뜻한 날, 현충사 나들이였는데 봄볕을 즐기려는 상춘객들이 많았다. 이제 이순신 장군의 생가는 잘 가꿔진 국민 공원이 되어 국민들 가까이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역사의 교육장이기..
봄이 오는 길목 날씨가 롤러코스터 타는 듯 변덕이 심하다. 하늘은 맑고 구름도 아름다운데, 바람이 세게 불었다. 찬바람에 겨울 파카를 커내 입고 뒷산을 오르는데, 등줄기에서 땀이 흐른다. 얼굴에 부딪히는 세찬 바람엔 왼쪽 눈에선 눈물이 찔끔거렸다. 바람이 없는 양지녘은 봄이 무르익고 있는데, 변덕스런 날씨덕에 봄꽃들이 수난을 겪고 있나보다. 활짝 피지 못하고 시들시들한 것이 보기에 썩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나무와 단풍나무에선 새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뒷산에 올라 한바퀴 돌아서 찬바람 속에 동네를 나들이했다. 유독 변덕스런 금년에, 아아, 언제쯤 따스한 한반도의 온전한 봄볕을 즐길수 있으려나...
봄꽃 몇 점 전쟁 위협 때문인지 날씨까지 얼어버렸다. 봄이라 해도 눈발까지 날리는 걸 보면 금년에는 5월이 되어서나 봄기운을 느껴볼 것 같다. 4계절이 뚜렷하다는 우리나라가 이제는 여름과 겨울, 두 계절의 나라가 되어버린 것 같다. 날씨가 추우니 몸까지 움츠려든다. 나무에서 올라오던 새 순도 잔뜩 움츠려 들었나 보다. 양지녘 따스한 곳에서 나름대로의 봄기운을 살짝 느껴 보았다.
수원 화성 비 온 뒤, 날씨는 청명했으나, 봄바람이 아직 차가웠다. 산수유가 활짝 피어 흐드러지고 있었다. 아직은 산수유의 계절이었다. 일요일이었지만 찬 바람 탓에 상춘객들이 많지 않았다. 사람들마다 옷깃을 여미며 나름대로 아직은 철이는 봄을 느끼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빠르게 이동하는 구름, 먹이를 쫓는 비둘기 무리들... 봄은 그렇게 스멀스멀 찾아들고 있었다. 화성의 서문인 화서문의 안쪽 화서문 바깥쪽 옹성 안. 서북 공심돈과 서북각루 . . . . . . . . 방화수류정
수원 봉녕사 1. 2.
목련 봄바람 속에 온 산이 진달래 붉은 꽃으로 물들면, 마을 담장 사이로 드문드문 솜사탕 피어오르듯 목련꽃이 부풀어 오른다.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꽃처럼 목련꽃도 봄의 전령사이다. 금년은 예년보다 봄이 일찍 찾아든 줄 알았는데,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보통이 아니다. 봄꽃들이 피려다가 시들고 시들다가 다시 피어난다. 목련 역시 밀려드는 봄기운을 피할 수는 없었는지 활짝 피지는 못했지만, 터지기 직전 팝콘처럼 망울 망울 부풀어 올랐다. 군복무 시절, 민간인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시절에, 봄낮이면 산꼭대기 대공초소에서 머언 민가에서 솜사탕처럼 피어오른 목련들을 바라보노라면, 고향의 집이 생각났었다. 하루종일 산꼭대기에서 보초를 서며, 서울서 부산까지 왕복하고도 족히 남을 시간들을 목련꽃을 바라보며 국방부 시간..
2013년 서울 모터쇼 킨텍스 제2 전시장 현대자동차 제2 전시장에서 가장 화려한 부스를 갖춘 현대차. 국내 최대자동차 메이커다운 컨셉트 카 HND-9 그랜드 스타렉스 캠핑카 - 기본형이 약 4800만원 정도. 내 보기에는 가격대비 효용성이 별로 없어 보였다. 운전석 뒤로 달랑 2인승 좌석이 있었고, 그 왼쪽 옆으로 작은 취사그릴과 싱크대, 냉장고들이 종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취침 때에는 뒤 트렁크 쪽에서 매트리스를 잡아당겨 침대를 만들고, 천정에 2인용 침상을 만들어 잠잘 수 있게 제작되었다. 기본형의 경우 전원은 외부의 가정용 220V를 끌어 쓰게 되어 있다. 구경꾼들의 관심이 폭발적이어서 내부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현대차 라인업 산타페 롱바디 맥스 크루즈 - 산타페보다 21.5cm 길다. 고호의 그림으로 외장한 그렌..
2013년 서울 모터쇼 자동차에 대해서 문외한이라 겨우 국산자동차 외양이나 구분할 수 있는 처지임에도, 나들이 겸 일산 킨텍스를 찾아갔다. 지하철로 합정역까지 가서 킨텍스까지 무료운행 셔틀버스를 탔기 때문에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갔다. 15분에 한 대씩 운행하는 셔틀버스는 승차인원에 상관없이 시간에 맞춰 출발해서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모터쇼 관람할 때 킨텍스의 전시장이 넓고 동선이 길어 다리가 몹시 피곤했다. 제1전시관에 이어 2전시관까지 걸어 다니면서 3-4시간 구경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로 출시된 국산 신차들의 운전석에 올라 내 차와 비교하며 편의성을 살펴보고, 외제차들은 눈요기로 만족하며 지나쳤다. 외제차라야 로고만 겨우 알 뿐, 언감생심 욕심낼 생각도 못해볼 처지인지라 신기한 눈초리로 구경하는 것만도 감지덕지한 ..
봄 발코니 햇살은 따스한데 바람이 차다. 기상예보로는 내일 꽃샘추위가 닥친단다. 어제 따뜻한 햇살 속 바깥 외출에 얼굴이 까맣게 그슬렸다. 두세 시간의 외출이었는데, 봄햇살이 제법 따가왔나 보았다. 아직은 '春來不似春'이라 진정으로 따스하고 꽃피는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더구나 북한이 핵실험 이후 남쪽 우리 형제들에게 폭언으로 위협하는 공갈협박에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한다. 봉건왕조국가로 전락하여 소수의 권력자들이 오로지 자신들의 부귀영화에 탐닉하여 백성들을 내버리고도, 자유를 구가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남녘의 동포들에게 공갈치는 살상 협박이 참으로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베트남의 호찌민은 백성들을 위해 평생을 독신으로 독립과 통일 운동에 몸 바쳤고, 중국의 마오쩌뚱은 그의 아들을 한국전쟁에 참전시켰는데, 그 아들..
동묘(2) 그동안 날씨가 풀렸다. 따스한 봄볕에 집에만 있을 수 없어서 묘목을 사러 외출을 했다. 따뜻한 햇살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하릴없이 봄볕을 쬐며 사람들을 구경하며 동묘에 들려 잠시 쉬었다가 황학동에서 청계천을 따라 종로까지 걸었다. 종로 묘목상에서 그동안 별렀던 감나무 묘목과 장미를 샀다. 며칠 전부터 인터넷으로 주문하려다 미루고 있었는데 드디어 접붙인 묘목 두 그루를 사서 비닐봉지에 넣고 집에 와 화분에 곱게 옮겨 심었다. 심을 곳도 없으면서 감나무 욕심에 화분에 심었는데 잘 자랄지 모르겠다. 올봄엔 감꽃을 볼 수 있을지 자못 기대감이 크다. 동묘 정문 입구의 동묘 안내도 중문 동묘 정면 동묘 좌측면 내부의 관우상
안성 미리내 성지 비가 온다는 예보와는 달리 날씨는 맑았다. 햇볕이 따뜻해서 나선 나들이였으나, 하늘엔 점차 구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미리내 성지에 도착했을 땐 구름 가득 흐린 날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바람은 세상에 가득하여 메마른 나뭇가지 끝에도 푸른 빛이 감돌고 있었다. 때마침 성지를 방문한 순례자들의 발걸음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맑고 청명한 공기를 호흡하며 경내를 산책하며 봄기운을 호흡하였다.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맑은 계곡물도 그리 차지 않았다. 봄기운이 오른 들녘엔 봄맞이 준비를 하려는 농부들의 기지개가 한창이었다. 103 시성 기념 성당 성 김대건 신부님 경당 잔디광장에서 바라 본 103위 시성 기념 성당과 성 김대건 신부님 경당
황학동 벼룩시장 신당동 전철역을 나오자마자 길바닥 좌판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크고 작은 공구들부터, 시계, 인형, 장신구, 구제 의류 등등이 도로를 따라 길거리에 널려 있었다. 에전에 종로 거리에서 봐왔던 노점상들이 이리로 다 모였나 보다. 한두 점을 깔아놓고 추운 날씨에도 임자를 기다리다 지쳤는지 쭈그리고 앉아 졸고 있는 상인부터 높은데에 올라가 큰소리로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까지 참으로 각양각색이었다. 아마도 구하지 못할 물건이 없으리라 싶었다. 해병대, 공수부대, 육군 군복부터 그럴싸한 동양화, 서양화, CD, 캠코더 필름, 정력제, LED TV, 라디오, 카셑, 차량용 오디오, 썬그라스 등등등... 필카에서 디카까지, 수북히 쌓아놓은 핸드폰, 핸드폰 밧데리, 고장난 것부터 사용가능한 것들까지... 진열장 속에 눈에..
동묘 황학동 벼룩시장 구경에 나섰다가 들린 곳이 벼룩시장 중심에 있는 관우의 묘당인 동묘였다. 대만에 갔을 때, 절 안에 관우를 모셔놓고 향을 피우며 음식을 차려놓고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관우님은 돈을 벌게 해주는 분이기에 재물복을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이 가득 담긴 것들이었다. 1800여 년 전 중국 후삼국시대 촉나라 장수 관우를 재물과 관련시켜 비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에 관우사당을 지어놓고 제를 올렸다는 것이 흥미로왔다. 대만에서는 재물복을 위하여 빌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태민안을 위해 관우님께 빌고 또 빌었겠다. 동묘 주변엔 고층빌딩들이 즐비하고, 주변 골목마다 구제시장과 벼룩시장으로 인파들이 넘쳐났다. 구경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여서 길거리에 진열해 놓..
화성공룡화석산지 1994년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시화호 방조제 공사로 바다에서 육지가 되자, 1999년 발견된 공룡알 화석산지는 2000년 3월 21일 천연기념물 제414호로 지정되었다. 약 1억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공룡들의 집단 서식지로 추정되며, 지금까지 12개 지점에서 30여 개의 알둥지와 200여 개의 알화석이 발견되었고 흔적화석도 다수 발견되었다. 특히 2008년 5월 30일 화성시 전곡항 방조제에서 발견된 화성공룡화석은 한반도 최초로 발견된 뿔공룡으로 새로운 속과 종인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화성에서 발견된 한국 각룡류 공룡이란 뜻)로 명명되었다. 이 공룡은 중생대 백악기(약 1억 1000만 년 전) 때 한반도에 살았으며, 전체 길이는 2~3m로 추정된다. 이족보행에서 출발해 완전한 사족보행으로 진화과정..
이충무공 묘소 이순신 장군의 묘소는 아산 현충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산 2-1, 어라산 아래 있다. 장군은 1598년(선조 31) 정유재란 때 노량(露梁)에서 전사하여 이듬해 2월 고향인 아산군에 장사 지내졌고 그 뒤 다른 곳으로 이장되었으나, 광해 6년에 덕수이씨 선산인 현재의 묘역으로 옮겨졌다. 아산현충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이다. 정조대왕 어제 신도비에는 영의정 김육의 글이 새겨져 있다. 주차장에 있는 묘역 안내도 관리 사무소
봉평 이효석 문학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강원도 평창의 산간마을 봉평을 메밀의 대명사로 만들어 버렸다. 예로부터 가뭄이 들어 모내기를 못해 논농사를 망쳤을 때, 대체식물로 심었던 것이 메밀이었는데, 산간마을 봉평은 일찍이 논농사가 어려워 메밀을 많이 심었었다. 대한민국에서 메밀의 산지가 어찌 봉평 뿐일까마는 이제 메밀은 봉평산이라야 가장 신뢰할 수 있게 되고 말았다. 춘천막국수가 유명한 것도 메밀이 춘천주변에 많이 생산되었던 작물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토속적이며 서정적인 단편소설 "메밀꽃..."은 일제강점기 장돌뱅이들의 애환을 다룬 소설이다. 가난하고 못생긴 장돌뱅이 허생원의 하룻밤 사랑이야기에 환상적인 메밀꽃 핀 밤풍경을 결합시켰다. 그리고, 거기에 동이라는 총각 장돌뱅이를 연계하여 부자의 연을 암시하고 있다. ..
원주 토지문화관 두루 아시다시피 박경리 선생은 경남 통영사람이다. 1926년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여고를 나온 선생은 그녀의 선배가 김동리의 부인이었던 연고로 김동리의 도움으로 1955년 현대문학 8월호에 단편소설 "계산"이 추천되어 문단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많은 작품활동을 거쳐 19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토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고, 26년 만인 1994년에 "토지"를 완성하여 전 16권으로 출판하였다. 이로써 그녀는 한국문단의 거장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그녀가 살며 "토지'를 집필하던 원주에 토지문화관을 세우고 문인들의 집필활동을 지원하는 등, 문화활동을 하던 중 2008년 5월에 이곳에서 타계하였다. 통영시 산양면에 선생의 문학관과 유택이 있다. 그리고 "토지"의 의 ..
경주 여행 천년 신라의 수도 경주, 도처가 유적지이니 경주시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할만하다. 이곳저곳 산재해 있는 왕릉들을 제외하고 기억에 남았던 유적들을 찾아보기로 했는데, 탈해왕릉은 포항에서 경주로 들어오는 길에 있어서 길가의 안내판을 보고 찾아들었다. 전설로 전하는 석탈해왕의 무덤이 현존한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탈해왕릉 위에는 경주이씨 시조가 태어났다는 표암이 있었고, 그 아래엔 시조 알평공 경모비와 사당이 있어 신비로움을 더했다. 석굴암과 불국사를 관람하고 보문단지에서 1박 후 아침식사까지 마치고, 경주시내로 나왔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었으나, 예전에 갔었던 김유신 장군 묘와 첨성대가 생각이 나서 그리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우연히 탈해왕릉처럼 이정표를 보고 분황사에 들렸다. 분황사는 내 생..
토함산 석굴암 두 번째 방문이었다.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아내와 두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왔었다. 그때 애들은 천방지축 순진하게 뛰노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했었는데, 그동안의 세월에 이젠 대놓고 어른 행세를 한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어렸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코밑이 꺼메지고 목소리가 변성기에 접어들면 벌써 대하는 태도부터가 다르고, 부모하곤 함께 여행도 하지 않으려 하니, 재미가 반감되고 오히려 긴장감만 커간다. 독립해 나간 큰 녀석이 그립긴 하지만 품에서 이미 벗어나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 비치는 것도 어려워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순하디 순한 막내만 부모 따라나섰으나, 말수가 없어져 무뚝뚝하고 행동이 기계적이라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부모 싫다 하지 않고 따라나서 준 것이 고맙고 대..
불국사 오랜만에 다시 본 불국사였다. 석가탑 보수 소식을 보도를 통해서 익히 알았지만 현장에서 그 모습을 보니 서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석가탑 보수를 위해 지은 가림막 때문에 아름다운 불국사 지붕의 스카이라인에 단절감이 생기고 말았다. 게다가 모아놓은 눈들이 녹아 질척거리기까지 했다. 날자를 잘못 잡았다는 실망감도 있었으나, 불국사의 대표성만큼이나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었다. 카메라를 지녔다는 것 하나로 불국사 경내를 구석구석 돌며 두루 살펴보았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와서 처음 대했고, 그 후에도 서너 번 들렸었으나 대부분이 주마간산 격이었다. 고교시절엔 변변한 카메라조차 없어 기념사진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했었다. 이젠 물질문명의 풍요로움 속에 널린 것이 카메라이지만, 그 카메라로 아름다운 풍..
포항 호미곶 날씨가 썩 좋지 않아 햇살이 들쭉날쭉 했다. 덕구온천에서 1박한 후 호미곶으로 줄곧 달려왔다. 포항 영일만의 끝자락으로 한반도의 모양이 호랑이를 닮았고 이곳이 그 꼬리부분에 해당된다고 해서 2001년 12월부터 호미곶이라 이름하였다. 원래 생김새가 말갈기와 같다 하여 장기곶으로 불렸다. 1918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표현인 갑으로 고쳐 장기갑으로 불리다가 1995년 장기곶으로 변경하여 불렸다. 최근 이곳은 새해 첫날 해맞이 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수년 전 방문한 적이 있어서 큰 감동은 없었으나,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은 되었다. 그 사이 도로도 확충되었고, 해맞이 데크도 새로 만들어져 보다 세련되어 있었다. 1. 포항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상생의 손 2. 연오랑 세오녀 상 3..
동해 추암 촛대바위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어디 한둘이겠는가마는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와 해풍을 맞으며 꿋꿋한 세월을 버텨온 촛대바위 같을까 TV 애국가 첫머리에 등장하기도 했던 추암의 일출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수없이 반복되는 일출은 보지 못하고 배고픈 철새처럼 잠시 들려 풍경을 맛보았다. 손님맞이 행사인지 해풍이 세차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여서 방한 마스크에 귀마개까지 착용하고 추암에 나갔다. 추운 날씨임에도 추암을 보러 나온 관광객들이 많았다. 나도 그 틈에 섞여 추암에 올라 한 바퀴 비잉 돌아 나왔다. 바람이 세차 맞바람에 눈물이 나서, 들여다 보는 파인다로 초점잡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추암을 돌아 삼척 임해정방향으로 해변을 걸어갔다. 그쪽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아름다워서 뒷바람에 밀려 인적도 없는 해변 끝머리..
거제 청마 기념관 북상하는 길에 거제시 북서쪽에 있는 둔덕면 방하리 소재 청마기념관을 방문했다. 그동안 청마 유치환은 통영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거제도에서 이곳 산방산 아래 마을에서 태어났단다. 그가 태어난 마을에 기념관을 세우고, 태어난 곳에 초가집 생가를 복원하였다. 멀지 않은 곳에는 그의 묘가 있다. 청마 유치환은 옛적부터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맨 처음 공중에 단 줄을 안 그는./ "이란 그의 시 이 실려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게다. 통영에..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해금강에서 귀로길에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들렸다.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 국군과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힌 공산군들을 수용하던 대표적 수용소로 귀 따갑도록 들어왔던 곳이기에 호기심이 많았었다. 특히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많이 들었던 것처럼 포로들이 수용소 내에서 극도의 이념투쟁으로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반공포로들을 살상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어서, 그 흔적들을 조금이라도 보고 싶었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잘 꾸며진 공원 부지에 순회하며 관람할 수 있도록 각종 전시관들을 설치하여 이해를 돕고 있었는데, 그 구성물들이 조악하여 현대적 관점으로 유치한 수준이어서 실망감이 컸다. 유적공원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조차도 딱히 찍을 거리가 없었다. 6·25 전쟁 중 유엔군과 한국군이 사로잡은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
거제 신선대 해금강을 둘러본 후, 어제 밤늦어 보지 못했던 신선대에 들렀다. 바닷가 절벽 옆에 홀로 우뚝 솟은 바위, 그것이 신선대였다. 신선대에서의 전망은 해금강 우제봉에서 바라보는 서쪽 풍경과 동일했으나, 신선대를 감싸고도는 해안가 풍경이 아름다웠다. 바람의 언덕과 서로 등지고 있어서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을 이어서 볼 수 있고,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신선대 쪽이 더 좋아 보였다. 신선대로 내려가는 길 신선대 신선대 너럭바위에서 조망 신선대에서 큰 길로 오르내리는 계단
거제 해금강 거제 해금강 일대는 내가 보기엔 북녘의 고성 해금강보다 더 뛰어난 절경이었다. 수년 전 유람선을 타고 외도와 바다쪽에서 해금강을 보았던 적이 있었다. 엄청난 관람객으로 호들갑스럽던 외도는 작위적인 냄새가 너무 나서 이내 싫증이 나버렸고, 해금강 주변과 소매물도 주변이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배 위에서 바라본 경치도 수려하고 좋았지만, 동백숲 사이로 우제봉에 올라 동서남북을 조망하며 바라보는 경관은 더없이 향기롭고 아름다웠다. 거제 해금강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백미였다. 한반도의 끝자락에서 사시사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때로는 거센 태풍과 사나운 바람을 한 몸으로 부딪히며 지나온 무수한 세월에 갈리고 닦여 만들어진 세월의 아름다움이었다. 1. 우제봉에서 2. 유람선 선착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