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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설경 다행스럽게도 폭설이 내린다는 예보와는 달리 눈은 살짝 뿌리고 지나갔다. 날씨가 좋지 않아 카메라와 담쌓고 지내다가 눈 내린 풍경을 보고서야 밖으로 나섰다. 큰길은 녹은 눈으로 질척거려 지나는 자동차마다 눈 녹은 포말들을 뿌리면서 달려갔다. 눈 녹은 차도로 강풍에 낙엽들이 휩쓸려 나뒹굴고 있었다. 모처럼 햇빛이 좋았다. 구름도 적당하고... 겨울의 찬 바람만 없다면 겨울기분이 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주변의 눈은 이미 다 녹아버렸고... 겨울화성에는 아침 일찍부터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지나치면서 억양 다른 이방의 말소리에 내국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 일본사람들이었다. 여름에는 중국사람들이 많더니... 흩뿌린 눈이라 깊이가 없었다. 푸근한 맛도 없고 그저 눈 내린 기분만 조금 맛볼 수 ..
보스 포러스 해협 아침 6시 10분에 3층에서 식사를 하고, 호텔방으로 돌아갔으나, 방을 찾을 수 없었다. 카드키 껍데기를 방에 두고 알맹이만 가져온 탓에 방 번호를 몰라 내방을 찾아갈 수가 없었다. 당연히 카드키에 방 번호가 씌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 문이 그 방문, 모두 똑같이 생긴 방문에 방향감각까지 잊어버려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세월 따라, 머리가 점점 굳어가는가 보다. 식당으로 다시 내려가 가이드를 만나 방호수를 확인하고, 방문을 열려했으나, 이번에는 카드키가 말썽이었다. 1층 안내데스크에 가서 사정을 얘기하니 카드를 기계에 꽂고 키보드로 입력 후 됐다고 했는데 그 역시 먹통이었다. 그렇게 두세 번을 오르내리다가 지배인과 함께 올라가 겨우 방문을 열었다. 아침 먹고 오르내리다 아까운 시간을 다 ..
이스탄불의 밤 트로이를 마지막으로 이번 여정이 끝이었다. 그 길고 멀었던 28,000km의 행군도 끝나는 것이다. 이제 다시 열몇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아부다비를 거쳐 돌아가야 한다. 이스탄불의 마지막 밤을, 가장 번화하다는 탁심 거리에서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오이김치, 깍두기, 닭볶음탕, 그리고 배추국과, 흰밥이 메뉴였다. 불과 며칠 만에 맛보는 한식이었건만 매콤한 낙지볶음이 추가되자 탄성을 질렀다. 반찬류야 우리나라보다 못했지만, 에페소에서 먹었던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날이 저물어 탁심 거리 관광을 나섰다. 갑자기 밤이 되자 기온이 뚝 떨어져 돌아다니는 동안 오들오들 떨었다. 배낭이 실려 있는 버스는 멀리 있고 대책 없었다. 너무 추우니까 관광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갔던 동료는 ..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다 터키 여정도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트로이로부터 이스탄불까지는 대략 5시간 소요되는데, 차나칼레에서 다르다넬스 해협을 카페리로 50여분 건너간다. 이 해협에서 1차 세계대전 때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터키 겔리볼루 반도에 상륙 작전을 벌렸는데 그것이 유명한 갈리폴리 전투이다. 1차세계대전 2년 차인 1915년 초에 독일은 오스만 터키에 막대한 경제원조를 제시하여 주축국으로 가담하게 하였다. 터키의 참전으로 러시아가 영국 프랑스로부터 보급로를 차단당하게 되자, 영국은 터키의 다르다넬스 해협을 제압하여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보급로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당시 영국은 독일과 대치하고 있는 북해에서 사용할 수 없는 구형 전함들을 해군력이 취약한 터키 전선에 투입하였다. 또한, 아라비아에서 활동 중인 로렌스의 와해 ..
트로이 지중해 연안도시 아이발릭의 밤은 쓸쓸했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은 뒤 지중해 바닷가로 나가 잠시 걸었다. 어둠이 짙게 내린 해안에는 철 지난 파라솔들만 접힌 채로 서서 바람소리에 잉잉 우는 소리를 내었다. 급격히 떨어진 기온과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몄으나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이드가 추천해준 양갈비 집을 찾아가니, 벌써 우리 일행의 다른 팀들이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한 자리 끼어들어 10불짜리 양갈비와 맥주 두 병을 시켜 그들과 담소하며 먹고 마셨다. 잔뜩이나 기대했던 양갈비는 기대 이하였다. 고기 냄새를 맡고 서성이는 많은 고양이들과 개들에게 갈비뼈를 던져주었다. 고양이와 개들은 익숙한듯 냉큼냉큼 잘 받아먹었다. 그렇게 길들여진 탓에 낯선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이 동물들의 정체성이..
에페소 파묵칼레 히에라 폴리스를 떠나 에페소로 가는 도중 흐렸던 하늘이 활짝 개었다. 에페소까지 대략 3 시간여 걸렸다. 에페소에서 한식당에 들려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기름장이 참기름 아닌 올리브유였다. 뭐 꿩 대신 닭이라고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씹으라 했다. 밀려드는 손님들은 모두 한국 손님뿐, 가족들로 운영하는 듯한 이 식당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손님들 치다꺼리에 정신없었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비빔밥 위에 얹어주는 계란 프라이가 없다고 말을 하자, 정색을 하며 계란 프라이 만들다간 하루 종일 부쳐도 감당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른바 독점의 배짱이라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생하며 장사하는 것이 안쓰럽긴 하지만, 계란 하나 부쳐줄 정성이 없다면 서비스 정신은..
히에라 폴리스-파묵칼레 전날 저녁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차창밖으로 파묵칼레(터키의 의미로 '목화의 성')이라고 불리는 흰 석회 종유석 언덕을 보았다. 조명등에 하얗게 빛나던 종유석 언덕이 아름답게 보였다. 아침식사 후 숙소에서 떠나 10여분 거리에 있는 종유석 언덕 위에 있었다는 고대도시 히에라 폴리스를 찾았다. 하얀 석회석 벼랑 아래 작은 마을과 연못이 있었는데 우리는 마을을 지나 벼랑을 돌아서 언덕 위로 올라갔다. 언덕 위가 고대도시 히에라 폴리스로 이곳에는 아폴론 신전을 비롯해 원형극장, 공동묘지, 목욕탕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온천지로 유명하여 크레오파트라까지 이곳을 찾았고, 유럽지역에서 병을 치유하고자 많은 환자들이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종유석 언덕 위 로마시대의 고대도시는 지금도 계속 발굴을 진행하고 있으며,..
카파도키아에서 파묵칼레까지 노정 쾌적한 카파도키아 호텔에서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식사 후 일행들의 대부분은 벨리댄스 관람을 가고, 아침 식사 때는 열기구 투어를 떠나서 남아있는 사람은 모처럼 제 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느긋하게 일어나 6 층 호텔의 창문 커튼을 젖히니, 아침 햇살 속에 풍선이 날아오르듯 열기구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잠시 창 밖 풍경에 취하다가 식당에 내려가 8시에 아침을 먹었는데, 그동안 터키 투어에서 일찍 먹던 습관이 몸에 밴 탓인지 우리가 선착이었다. 9시에 기구 투어 갔던 일행들을 만나 카파도키아를 떠났다. 왔던 길을 되돌아 전날 점심을 먹었던 우치 히사르 인근의 상점에 들렸다가, 산업도시인 Konya를 거쳐 장장 9시간을 버스를 타고 달려 어둠이 내린 파묵칼레 리조트에 도착했다. 식사 후 리..
괴레메 계곡-카파도키아 우치 히사르를 오른편에 두고 작은 언덕을 돌아나가자 광활한 대지에 움푹 꺼진 큰 골짜기가 나타났다. 골짜기 사이에 풍화된 무수한 바위들이 솟아 있었는데, 그 장대함은 이루 비할 데 없었다. 내 비록 너른 세상을 두루 섭렵하진 못했으나 이렇게 기묘하고 아름다운 자연은 아직 보지 못했었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천하의 명산인 황산보다도 대만의 해양공원 야류의 버섯돌들도 이보다 감동을 주진 못했다. 한 눈으로 보는 괴레메 계곡 전경 지나온 우치 히사르 뒷모습 괴레메 좌측으로부터 1 괴레메 좌측으로부터 2 괴레메 좌측으로부터 3 괴레메 좌측으로부터 4, 우측 끝 지점까지 자리를 옮겨서 70mm 줌 24mm 버스로 잠깐 이동 중 차창 밖 풍경,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른바 스머프 마을이라는 버섯 바위,..
우치 히사르-카파도키아 데린쿠우에서 나와 점심을 먹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우치 히사르로 갔다. 우치 히사르는 날카로운 바위라는 의미로 거대한 바위 하나에 입구를 뚫어서 집의 형태를 이루었다. 이 모양이 비둘기 집과 비슷하다고 해서 비둘기집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단다. 바위 꼭대기에는 빨간색의 터키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빨간 터키 국기가 날리고 있었다. 렌즈를 광각으로 바꾸어 모래 언덕에 올라가 멀리 전경을 찍었다. 우치 히사르 전경 후경
지하도시 데린쿠우-카파도키아 으 흘라라 협곡으로부터 40여분 달려 지하도시인 데린쿠우에 도착했다. 데린쿠우는 초기 크리스트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살던 지하 동굴 도시로서 안쪽에는 부엌, 마구간, 창고, 저장고, 학교, 교회 등이 있다고 한다. 얽히고 설킨 지하동굴에 한 때 약 5만 여명의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단다. 그만큼 광대한 지하의 땅굴 도시로 1983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데린쿠우는 '깊은 우물'이라는 의미로 지하 8층까지 내려갈 수 있는데, 환기 갱도를 설치하여 연기를 배출시키고 지상 위의 신선한 공기를 순환시켜 생활하였다고 한다. 적들의 침략에 대비하여 입구마다 연자방아 돌 같은 시설물을 설치하여 막을 수 있게 하였고, 연기 구멍을 사방에 뚫어 살고 있는 위치를 감추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으 흘라라 협곡-카파도키아 카파도키아로 가는 도중에 들린 으 흘라라(Ihlara) 협곡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평원 지대에서 화성암이 침식되어 생긴 협곡으로 그 생긴 모양이 우리나라 강원도 철원에 있는 한탄강 유역과 흡사했다. 다만, 그 규모가 매우 커서 장엄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카파도키아 남쪽의 엘지에스 산(Erciyes)이 수차례 분화한 화성암이 침식되어 생긴 이 협곡은 길이 16km 골짜기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은 고대 비잔틴 시대에 벌집 모양으로 뚫린 동굴들이 지하 거주지로 사용되어, 이 때문에 현재 중부 터키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협곡을 따라 멜렌디즈(Melendiz) 개울이 흐르고 있어서, 쉽게 물을 구할 수 있고, 협곡 안에 동굴을 만들면 겉에서 잘 눈에 띄지 않아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탄압을 피해 이..
앙카라 노정 터키 여행을 하면서 생활패턴이 달라졌다. 시차 적응 문제는 접어두고 아침식사는 늘 5시나 5시 30분에 했고, 한 시간 뒤에는 어김없이 버스에 올라 투어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대륙을 달리고 달리기 때문에 버스에서의 생활이 대부분이었다. 버스는 40인승 벤츠라 나무랄 데 없었다. 우리 일행도 많지 않아서 여유 있는 좌석을 활용할 수 있었다. 우리가 달린 여정은 장장 28,000km. 점심식사는 대부분 휴게소에서 오후 두 시경이었고, 투어 후 호텔에 도착하면 대부분 저녁 8시경, 식사를 하고 잠을 청해 보지만, 언제나 새벽 두세 시면 눈이 떠져 한두 시간을 뒤척이다 다시 잠들었다 기상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것이었다. 호텔마다 와이파이 주소를 알려줘서 인터넷으로 어정쩡한 밤 시간을 소화할 수 있었다. 스마트 ..
이스탄불에서 샤프란 볼루까지 톱 카프 궁전 투어를 마치고 10시 30분경 수도인 앙카라를 향해 이스탄불에서 출발했다. 날씨는 흐려 이따금 가랑비가 내렸으나 옷을 적실 정도는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에 가랑비의 영향은 조금도 받지 않았다. 터키는 지금이 우기란다. 행여 우산을 준비하기는 했으나, 빗속을 여행한다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어서 내심 걱정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후 날씨는 조금 흐렸거나 매우 화창해서 관광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덥지도 않고 선선한 날씨여서 걷기에도 좋았다. 다만, 아침과 저녁은 좀 쌀쌀하다가, 낮이 되면 더웠다. 또, 해가 일찍 저물어 투어하는 시간이 짧았다. 버스 안에서 시간에 따라 난방과 냉방을 교대로 해서인지 건조한 탓으로 예민한 내 코가 자주 빡빡해졌다. 샤프란 볼루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톱카프 궁전 블루 모스크 관람 후 성소피아 사원 뒤편에 있는 톱카프 궁전으로 이동했다. 톱카프 궁전은 15세기 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약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군주가 거주한 궁전이다. 이 궁전은 유럽의 다른 궁전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은 것이 특색이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드에 의해 건설을 시작하여 1467년인 메흐메드 2세 때 완공되었다. 오스만 제국 때 술탄들의 거처로 쓰인 톱카프 궁전은 거주하는 시종과 군사, 관료의 수만 5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톱카프 궁전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보스포루스 해협의 높은 평지에 위치해 있으며 그 내부는 4개의 정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정원에는 바그다드 코슈큐, 이레네 교회 등이 들어서 있고 술탄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전시실도 갖추어져 있다. 예전에 주방으로 ..
블루 모스크 1616년 오스만 터키의 14번째 술탄 아흐멧 1세가 성소피아 사원 옆에 세운 이슬람 사원이란다. 우리나라 교회만큼이나 무수한 이슬람 사원 가운데 큰 사원은 미나르가 네 개, 작은 사원은 한 개를 세우는데, 이 블루 모스크는 유일하게 미나르가 여섯 개이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술탄 아흐멧 1세는 이 사원의 건축가에게 황금 미나르를 세우라고 했는데, 돈이 부족했던 당시 건축가는 숫자 여섯과 황금의 발음이 유사한 것을 핑계로 여섯 개의 미나르 첨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여섯 개의 미나르가 있는 사원은 메카에 있는 것이 유일했는데, 블루 모스크가 여섯 개를 가짐으로써 메카의 권위에 도전하는 형국이 되어 메카의 사원에 미나르 한 개를 더 세워줬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대단한 규모의 사원이었다. 소피아 사원과 사..
성 소피아 사원 점심식사후 몇 걸음 걸어서 블루모스크 주차장을 지나 도착한 곳이 그 유명한 성 소피아 사원이었다. 사진에서 익히 보아왔기에 눈에 익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성 소피아 사원은 건물의 중심 돔 지붕 아래 지지대를 세우고 보수하는 중이었다. 이탈리아 곳곳의 웅장한 듀우모 성당이나 파리의 노틀담 성당 앞에서는 절로 탄성이 나왔었는데, 이곳에서는 이상하게도 놀라움이 없었다. 입장 후 X선 검색대까지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서야 그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구불구불한 대리석 경사로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 그 유명한 성모자상 등 모자이크 그림들을 보았다. 성모자상은 얼굴부분 이외의 부분이 대부분 훼손되어 있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돔의 내부로 들어가니 사원의 웅장함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다만 왼쪽으로부..
터키 이스탄불까지 엉겁결에 다녀온 터키 여행이었다. 직항 편이었다면 수월했을 것을, 경제성을 고려해서 선택한 것이 ETIHAD(UAE) 항공 여행상품이었다. 아부다비에서 환승하는 것이었는데, 비행기 타는 시간만 총 15시간 정도였다. 환승 대기 시간 3시간을 고려하면 18시간, 인천공항 대기시간까지 합산하면, 결국 이스탄불까지 하루 종일 달려간 셈이었다. 싼 값으로 비행기를 탄다고 환승했는데, 피곤함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랍에미리트 항공기라 영화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국영화는 달랑 두 편, 그것도 아부다비행 비행기는 내 좌석의 오디오가 망가져 보지도 못하고, 10시간여를 버스보다도 좁은 기내 좌석에서 에서 뒤척거리며 갔다. UAE와 시차는 5시간, 그곳에서 이스탄불과는 또 2시간의 시차, 도합 우리와는 7시간의 시차..
가을 창경궁 ...................... 단풍빛깔이 한창인 지금 창경궁은 춘당지 부근의 숲이 한창 아름다울 터였다. 창덕궁 후원이 깊고 그윽해서 좋긴 한데, 해설사의 인솔에 따라 단체로 움직이는 번거로움이 부담스러웠다. 본디 창경궁과 창덕궁 후원은 서로 붙어있던 공간인데, 담을 쌓아 분리해 놓은 것이다. 일제가 꼼수로 조선을 폄하하기 위해 왕궁을 동물들의 분뇨로 훼손하여 행락지로 바꾼 것을 복원했기에, 과거에 분리된 담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일 게다. 향후 종묘와 창경궁 사이의 도로 위를 덮어 하나로 이으면 일제에 훼손되었던 궁궐이 좀더 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일제에 훼손된 우리 문화재를 생각하면 몹시 속상한데, 오늘날 정치가들이나 관리자들이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는 우리의 민도가 아직도 한참..
고궁의 가을 뜨락 수능날, 비온다는 예보와 달리, 기막히게 좋은 날씨였다. 바람이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산행 대신 찾은 창경궁에 가을이 풍성하게 머물고 있었다. 궁궐들도 아름답지만, 창경궁 뒤뜰은 바야흐로 흐드러진 단풍숲이었다. 창덕궁 뒤뜰과 다를 바 없이 풍성하고 그윽한 숲이었다. 단풍의 물결 속에 헤엄치듯 흐느적거리며 탄성짓는 인파에 휩쓸려 가을의 진수를 맛보았다. 통제되는 창덕궁 뒤뜰과 달리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구경하는 사람조차 빨갛게, 노랗게, 파랗게, 주홍색으로 나무 이파리 색깔처럼 물들어 버릴 것만 같다. 정비석님의 표현대로 옷을 벗어 쥐어짜면, 단풍물이 흐드러지게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모처럼 도심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의 성찬이었다. 춘당지의 가을 대온실 주변숲 관덕정 주변 숲 환..
가을서정 싱싱하던 이파리들이 땅 위에 수북히 쌓여간다. 나무들은 제 몸을 털어서 제 몸을 북돋운다.
비 나들이 토요일 오전 내내 비가 내렸다. 가로수까지 모두 형형색색 마지막 제 색깔로 치장을 하는데, 부슬부슬 내리는 빗방울에 가을 나들이를 하지 못해 실망감이 컸다. 궂은비를 맞으며 돌아다닐 기분도 아니어서 하릴없이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공원의 나무들이 지나는 가을을 환송이라도 하려는 듯 화려한 색깔로 비에 젖고 있었다. 나무 사이를 지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바라보다가, 굵어지는 빗줄기와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중국산 스모그 때문에 미련감만 가득 남기고 말았다 .
시월잔상(十月殘像)
가을 화성 가을이 농익는다. 가을의 늦은 오후 색깔은 더욱 노랗게 윤이 난다. 성곽 주변의 억새숲이 가을바람에 흰머리결을 흩날리고 있었다. 화사한 봄풍경 못지않은 가을의 향연이, 때로는 붉게, 혹은 노랗게, 화성(華城)을 물들이고 있었다. 동북포루 방화수류정(동북각루) 동북포루와 용연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동북포루와 방화수류정 동북포루 동북공심돈 서장대 원경 동북포루 동북포루 동북포루 동북포루에서 방화수류정과 용연, 장안문 일대 방화수류정에서 동북포루
외암민속마을 두 번 째로 방문한 온양 외암마을, 일요일이라 방문객도 많았다. 늦가을로 접어들 때라 초가농가에서 이엉올리는 작업들이 한창이었다. 보여주는 마을이 아니라 주민들이 살아가는 곳이라 민속마을의 외형에 현대문명이 상당수 섞여 있었다. 대부분의 집마당엔 대형 파라솔, 대청마루엔 알미늄 샷시. 처마에는 위성방송 수신 안테나, 골목마다 cctv 카메라 ... 전통적 요소들을 잃어가는 것이 많은 마을이어서 방문이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전근대적 삶의 방식을 따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속마을 간판을 달고 외지인들에게 보여주는 관광마을이라면, 최소한 현대문명도 전통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의 흔적들이 조금은 보여야 할 터인데, 전통요소들이 마구 훼손되어서, 그저 어정쩡한 마을로 바꿔가고 있는 것 같..
정호승 북콘서트 인근 도서관에서 개최한 정호승 북콘서트! 감각적 이미지로 공감을 자아내게 하던 시인이었기에 귀찮음을 떨어내고 다녀왔다. 옛날엔 문학의 밤이라고 해서 잔잔한 음악을 깔고 시낭송회를 하곤 했던 것 같은데, 이젠 북콘서트란다. 북콘서트란 말이 너무 생소해서 거북하기도 했지만 시인을 만나 그의 육성을 들어볼 기회가 많지않은 터이라 기쁘게 경청할 수 있었다. 정호승 시인의 인생이야기 뒤에는 서율이라는 혼성 밴드가 시인의 노래, 또는 시인의 산문과 관련된 내용을 가사로 만들어 노래로 들려 주었다. 시를 바탕으로한 노래 가사는 물론 좋았고, 맑은 여가수의 목소리는 더더욱 쓸쓸한 가을밤을 청아하게 만들어 주었다. 값싼 눈물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대중가요에 찌들은 세상을 잠시나마 맑게 정화시켜주는 듯 했다. 게다가 왕년..
가을 호수 ..................................
고군산군도 몇 년 전, 새만금방조제로 육지가 된 신시도 대각산에 올라 지척의 고군산군도를 바라본 적이 있었다. 확성기로 유행가를 틀며 선유도를 맴도는 유람선들을 보면서, 그곳에 가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신선이 놀다갔다는 선유도. 그 때, 대각산에서 바라본 선유도는 불쑥 솟은 바위산봉우리 두 개가 햇빛에 반짝거리고 섬사이를 잇는 다리들이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고 있어서, 동화 속 세계처럼 너무 아름다워 보였었다. 선유도를 가기 위해 군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렸으나, 버스 시간을 알 수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모두 모른단다. 어쩔 수없어 막 정차한 시내버스 기사분에게 물었다. 한참을 장고한 끝에 그 기사님이 환승지까지 데려다 준다며 타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번에 갈 수 있는 7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