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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보스 포러스 해협

  아침 6시 10분에 3층에서 식사를 하고, 호텔방으로 돌아갔으나, 방을 찾을 수 없었다. 카드키 껍데기를 방에 두고 알맹이만 가져온 탓에 방 번호를 몰라 내방을 찾아갈 수가 없었다. 당연히 카드키에 방 번호가 씌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 문이 그 방문, 모두 똑같이 생긴 방문에 방향감각까지 잊어버려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세월 따라, 머리가 점점 굳어가는가 보다. 식당으로 다시 내려가 가이드를 만나 방호수를 확인하고, 방문을 열려했으나,  이번에는 카드키가 말썽이었다.  1층 안내데스크에 가서 사정을 얘기하니 카드를 기계에 꽂고 키보드로 입력 후 됐다고 했는데 그 역시 먹통이었다. 그렇게 두세 번을 오르내리다가  지배인과 함께 올라가 겨우 방문을 열었다. 아침 먹고 오르내리다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내고 맥 빠져 버렸다. 겨우 짐을 챙겨 1층으로 내려가니 벌써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첨단 디지털이 쇳대로 여는 아날로그보다도 못하니... 뭐가 더 좋은 건지 모를 일이다.

 

   오전 일정으로 유람선을 타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50여 분을 버스를 타고 가서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탔다. 가이드는 선장실에서 유람선 진행 방향 주변을  설명해 주었다. 스피커 소리가 바람에 날리기도 했지만, 선실 위 갑판에서 주변 경관을 바라보는 것이 더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유람선으로 보스포루스 해협을 돌아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어제의 몸살 기운이 싹 사라져 가벼운 마음으로 해협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었다. 에페소에서 노래를 불렀던 분이 배 위에서 메들리로 노래를 불러서 그야말로 귀까지 즐거운 뱃놀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스탄불공항에서 오후 2시 10분 아부다비로 출발했다. 갈 때 5시간 걸렸고, 올 때는 4시간으로 한 시간이 단축되었다. 아부다비에서 환승 대기시간이 2시간이었는데, 내린 곳에서 환승 탑승구까지 걸어가니 한 시간이었다.  물론 한눈팔고 두리번거리며 걷기는 했지만 그만큼 환승장이 멀었다. 아부다비에서 밤 10시 10분에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다음날 11시 30분 인천에 도착했다.  역시 갈 때 10시간 걸렸던 것이, 올 때는 8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갈 때만큼의 피로감은 줄어들었다.

 

  터키여행, 터키 대륙의 반 바퀴를 달리고 달려 역시 점만 찍고 돌아왔다.  8-9시간을 달려 1시간 정도 돌아보고 잠자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 버스 타고...  최소한 우리의 여행코스라면,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빌려 한 달 정도 머물며 돌아봐야 제대로의 여행이었을 것이다. 시간에 쫓기며 점만 찍고 다녔던 여행, 고생스러웠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쓰레기와 거지로 득실거리는 인도보다, 집시들이 호시탐탐 지갑을 노리는 유럽보다도, 마음 편하게 대륙의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었다.

 

  유람선 선착장

 

  아침부터 다리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사방에 우뚝 솟은 것은 이슬람 사원의 미나르(첨탑)이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바다를 메워서 지었다.  원래는 술탄 하흐메트 1세가 휴식처로 쓰던 건물이 있었는데,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제31대 술탄 압둘 마지드가 1853년에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지은 대리석 궁전이란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선사받은 750개의 전구로 장식된 샹들리에가 '황제의 방' 천장에 매달려 있다. 또한 터키 초대 대통령인 케말 아타튀르크가 1938년 서거할 때까지 사용했던 방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방의 시계는 그를 기리기 위하여 지금도 그가 사망한 시각인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아침이라 햇빛을 받는 곳은 유럽지역이다. 역광으로 보이는 곳은 아시아 지역... 언덕 위 경관 좋은 곳에 위치한 것으로 미루어 고관의 저택이 아닐지...

 

  위치와 조경한 것으로 보아 부자들이 사는 동네인가 보았다. 주택들의 모양도 고급스럽다.

 

 선착장으로 회항중.

 

  출발 원점인 선착장

 

  여행 내내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한 사람이라도 놓칠까 봐 매의 눈으로 우리를 보살피던 현지 가이드 아흐메드와 작별인사. 그는 책임감 있고 부끄러움 많던 터키 총각이었다. 공항에서 내리면서 운전기사에게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치켜세워 칭찬해주었다. 그는 무표정한 사람이었지만 키가 크고 콧수염을 기른 잘 생긴 중년이었다.  그 먼 거리를 달리면서 한 번도 졸지 않고 안전하게 규정 속도 90km를 준수하며 운전했다.

 

이스탄불 공항

 

  그런데, 터키사람들, 의외로 쪼잔하다. 첫날 호텔 화장실엔 휴지가 없었고, 둘째 날 앙카라 호텔에선 TV 리모컨이 없었다. 나만 그런지 알았는데 우리 일행 중 같은 경우가 더러 있었다.  또, 호텔에서 아끼면 얼마나 아낀다고, 면도기는 물론이고 그 흔한 치약 칫솔 하나 제공하지 않는다. 소비하는 정육 중 양고기가 70% 이상이라는데, 식사 때마다 들어오는 것은 소고기 소시지 아니면 아니면 닭고기였다(이슬람 국가라 돈육 소시지는 아예 없단다). 여행 중 우리들의 식사는 두 끼를 제외하고 모두 터키식이었는데, 양배추와 상추, 홍당무를 잘게 썰어 만든 샐러드에 레몬과 올리브유를 살짝 뿌리고, 누런 수프와, 프랑스 빵같이 다소 거칠고 단단한 빵 몇 조각, 접시 하나에 한 홉 정도의 안남미 밥과 구운 고기 몇 조각이 전부였다. 빵이 거칠어 여행하는 동안 내내 수프에 찍어 먹었다.  한 때 유럽 대륙까지 진출하는 맹위를 떨쳤다는데, 그거 먹고 힘 못 쓸 거 같았다. 그 넓고 넓은 땅에 사는 사람들이 왜 밥 먹는 식당의 식탁은  그리 좁고 협소한 지...

 

  내 생각에 우리에게 터키 여행은 옛 문명과 유적에 대한 향수보다는 대자연을 느끼는 여행이 아닐런지. 우리와 같은 알타이어족에다, 옛날 중국으로부터 핍박받을 때 고구려와 동맹을 맺었기에 형제의 나라 돌궐이 아니라,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아름다운 대자연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라 나름 정리해 보았다. 혹자에 의하면 몽고어, 터키어는 알타이어 계통이지만 최근 학설로 우리 한국어는 그렇지 않다고 하며, 고구려와 돌궐의 동맹은 증명되지 않은 역사라니, 월드컵 이후 형제의 나라라고 치켜세워던 것은 우리나라의 일방적인 생각에 불과한 건 아닌지...  한국전쟁 때 참전하여 피 흘리며 도와준 우방이긴 하지만 짝사랑까지 할 건 없겠다.  다만, 그들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진출한 용기 있는 민족으로 오늘날, 아시아 서쪽 끝에서 유럽에 편입하여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려고 노력하는 자존심 강한 나라의 백성 들일 것이다. 터키는 국토의 대부분이 아시아에 속한 나라이면서도 아시아 모임에도 참가하지 않는단다. 그들은 나토 회원국이면서 2015년 EU 가입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럽과 FTA가 체결된 현실에서 터키를 유럽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삼는다면, 두 나라의 관계가 진정으로 두터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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