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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다

터키 여정도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트로이로부터  이스탄불까지는 대략 5시간 소요되는데, 차나칼레에서  다르다넬스 해협을 카페리로 50여분 건너간다.  이 해협에서 1차 세계대전 때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터키 겔리볼루 반도에 상륙 작전을 벌렸는데 그것이 유명한 갈리폴리 전투이다.

 

  1차세계대전 2년 차인 1915년 초에 독일은 오스만 터키에 막대한 경제원조를 제시하여 주축국으로 가담하게 하였다. 터키의 참전으로 러시아가 영국 프랑스로부터 보급로를 차단당하게 되자, 영국은 터키의 다르다넬스 해협을 제압하여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보급로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당시 영국은 독일과 대치하고 있는 북해에서 사용할 수 없는 구형 전함들을 해군력이 취약한 터키 전선에 투입하였다. 또한, 아라비아에서 활동 중인 로렌스의  와해 직전에 있다는 터키군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영국의 이 전쟁계획에 영향을 주었다. 당시 해군상이었던 처칠의 주도로 이 작전이 실행되었는데,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1915년 2월 19일과 2월 25일, 3월 25일에 각각 다르다넬스 해협의 터키군 포대를 포격했으나 터키군의 해안 포격과 해안에 설치한 기뢰 등으로 인해 전함 3척이 격침되고, 3척이 대파되었다. 이로인해 당시 해군장관이던 윈스턴 처칠이 물러나고 영국 해군의 피셔 제독도 사임했다. 이에 연합군은 새로 임명된 영국의 I. 해밀턴 장군의 지휘 아래에 4월 25일에 호주와 뉴질랜드를 주축으로 한 영연방 및 프랑스군 7만 명을 갈리폴리에 상륙시켰다. 당시 터키군은 지휘관이던 케말파샤 휘하의 제57 연대가 결사항전을 벌여 전원이 사살되거나 부상을 당하였다. 악전고투 끝에 연합군이 승리를 했지만, 이미 과반수 이상의 전투력을 상실하여 터키군에게 전투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7개월 만에 전체 전력의 약 59%인 22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철수하고 말았다. 터키군도 21여만 명의 사상자를 내었으나 쇠퇴해진 국가의 위상을 이 전투로 높임으로써 국민적 자부심을 고취하게 되었다.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무스타파 케말은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로 터키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터키를 재건하고 오늘의 터키를 만든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이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 전멸한  57연대를 기념하여, 오늘날 터기군에는 57 연대를 두지 않는다고도 한다.  

 

  버스는 왼족에 다르다넬스 해협을 끼고 달려갔다.

 

차나칼레 항에 도착했다. 보이는 배가 우리가 타고 건널 페리.

 

누군가가 새우깡으로 갈매기들을 유혹했다. 이제 머지않아 이곳 터키 갈매기들도 한국산 새우깡에 중독되어 야성을 잃을 듯...

 

50여분의 항해끝에 치나칼레항의 맞은 편인 겔리볼루 반도의 킬리트바히르 항에 도착했다.

 

 해협을 건너는 배안에 보따리 잡상인들이 열쇠고리 같은 기념품들을 팔았는데, 배가 출항할 땐 개당 1불씩 팔더니, 해협을 반 이상 건너가자, 1불에 두 개씩 떨이로 팔았다.  하여간 어딜 가면 문지방 넘을 때가 중요한 모양이었다.  킬리트바히르에서 점심을 먹고 이스탄불을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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