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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트로이

  지중해 연안도시 아이발릭의 밤은 쓸쓸했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은 뒤 지중해 바닷가로 나가 잠시 걸었다. 어둠이 짙게 내린 해안에는 철 지난 파라솔들만 접힌 채로 서서 바람소리에 잉잉 우는 소리를 내었다. 급격히 떨어진 기온과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몄으나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이드가 추천해준 양갈비 집을 찾아가니, 벌써 우리 일행의 다른 팀들이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한 자리 끼어들어 10불짜리 양갈비와 맥주 두 병을 시켜 그들과 담소하며 먹고 마셨다. 잔뜩이나 기대했던 양갈비는 기대 이하였다. 고기 냄새를 맡고 서성이는 많은 고양이들과 개들에게 갈비뼈를 던져주었다. 고양이와 개들은 익숙한듯 냉큼냉큼 잘 받아먹었다. 그렇게 길들여진 탓에 낯선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이 동물들의 정체성이 바로 터키인들의 성품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이들에게 주변의 모든 나라는 모두 형제의 나라란다. 그래서 싸우지 않는 한 모두가 형제이다. 노천카페에서 담소하며 즐기다가 10시가 넘어서야 자리를 떠나 썰렁해진 지중해안을 몇 걸음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신기하게도 노천 까페에서 양갈비를 얻어먹던 개들이 호텔까지 우리를 따라와 배웅했다. 참으로 인정미 넘치는 개들이 아닐 수 없었다.

 

  트로이야말로 터키의 유적지 중 가장 황당한 곳으로 볼거리가 없는 곳이라고 가이드가 미리 말해주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음유시인 호머 루스의 인류 최초의 서사시라는 일리아드의 감동 때문에 내게 있어서 이번 여행의 최고의 관심사였다. 대략 BC 1200 전에 아름다운 여자 헬렌 때문에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의 10년간의 전쟁이 일어났다. 동생 때문에 전쟁에 휩쓸려 아킬레스에 맞서다 전사한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  전리품이었던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를 아가멤논 왕에게 빼앗겨 왕에게 삐져서 전투를 거부하던 아킬레우스. 헥토르에게 죽은 친구의 복수를 위해 헥토르를 죽이고, 그의 시신을 헥토르의 가족들 앞에서 훼손하던 아킬레스.  그도 결국 자신의 약점인 발 뒤꿈치에, 전쟁의 빌미를 만든 핵토르의 동생이자 헬렌을 트로이로 데리고 간 패리스의 독화살을 맞고 죽어갔다. 전쟁에서 이겨 고국에 돌아갔던 탐욕스러웠던 아가멤논도 긴 전쟁으로부터 개선하여 집에 온 그날 밤, 아내 클리타임 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의해 목욕탕에서 살해되고 말았다.  비록 신들의 농간이라고 하지만, 유부녀 헬렌을 꼬여낸 트로이의 왕자 패리스, 미남 청년 패리스를 쫓아 지아비를 버리고 트로이로 도망친 바람난 유부녀 왕비 헬렌, 승전하여 귀국한 탐욕스러운 아가멤논 왕, 모두가 욕망의 화신으로 비운의 인물들이었다. 자세히 알아볼 수 없는 트로이 유적지였지만, 고대 신화와 전설의 무대에서 지난날 그들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추모할 수 있었다는 것에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 싶었다.

 

  수년 전에 브래드 피트가 주연했던 영화 '트로이'도 TV 방영까지 포함하면 몇 번을 보았다.  영화에서 보았던, 10년 전쟁에도 함락되지 않은 난공불락의 트로이 성벽이 머릿속에 가득 떠올랐다. 이른 아침 미명에 지중해안 도시 아이발릭의 아름다움도 보지 못하고 버스를 타고 트로이로 향했다.

 

  아침햇살에 버스는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를 동무삼아 터키의 거친 들을 또 달리고 달리었다.

 

  이윽고 길가의 트로이 이정표를 발견하자 버스는 샛길로 빠져 트로이에 도착했다. 아이발릭에서 대략 두 시간 30여 분 거리에 트로이가 있었다.  입장료를 받기 위해 관리가 버스에 올라 머릿수를 세었다. 공사 중인 트로이 입구

 

 길가에 진열한 건축 자재 유적들

 

 오른쪽에 전시하고 있는 트로이의 옹기들과 토관 유적...

 

 트로이 성 입구, 동쪽 성벽. 벌써 많은 관람객들이 줄지어 설명을 듣고 있었다.

 

  이윽고 동쪽 성벽의 끝 지점 북단에 섰다. 멀리 에게해 바다가 보인다. 저곳으로부터 그리스 연합군이 개미떼처럼 밀려왔을 것이다. 수천 년 전에 이 들판, 어디쯤에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싸웠을 것이고, 아킬레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끌고 다닐 때, 트로이 왕과 핵토르의 아내는 이 성벽 어디쯤에서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영웅들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들리는 오늘, 그들과 아무 관계도 없는 먼 이국땅의 이방인이 아침 햇살에 길게 그림자를 남기며 영웅들을 잠깐이나마 추모하며 떠나간다.

 

전쟁의 신 아테네 신전 안내판

 

 옛 우물터

 

 발굴된 곳 중 유일한 트로이 성의 옛 도로 

 

 나오는 길 오른쪽의 유적지

 

 돌아 나오는 길, 왼쪽 편의 원형극장

 

 돌에 새겨진 당대의 글씨

 

 들어갔던 입구 쪽의 원점으로 돌아와서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 트로이 성 동쪽 성벽이 있는 곳으로 나왔다.

 

  이른바, 복원해 놓은 트로이의 목마. 조악한 모습이라고 그리스인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지만, 내가 볼 때는 훌륭해 보였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목마의 내부로 들어가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창을 내었다.  그리스인들이 만들었다는 목마는 발굴하지 못했지만 후세인들은 사악한 바이러스를 쉴 새 없이 만들어 선량한 네티즌들의 정보를 빼내가려 하니, 그들의 원조가 바로 목마가 아닌지...  그리스인들의 잔꾀로 만들어진 목마를 전승품으로 여겼던 탓으로 망해버렸다는, 단순 고지식한 트로이 사람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언제 숨어들지 모르는 트로이잔들을 경계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Are you Hellen's daughters?" 우연히도 목마의 창으로 얼굴을 내민 네 소녀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혹시 저들이 트로이를 전쟁으로 내몰았던 헬렌의 후손들 아닐지 목마 곁을 떠나면서 미련감에 마냥 상상해 보았다.

 

 목마 주변에는 당대의 전차와 무기들을 세워두고 옛날 의상을 빌려주고 있었다.

 

 유적지 설명 오디오를 빌려 주는 곳. 아쉽게도 한국어는 없었다. 오디오 가이드 게시판에 나타난 안내도가 트로이 유적지도쯤 되겠다. 

 

 트로이 성 입구 쪽 들녘, 넓은 밭에 올리브 나무만이 가을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일리아드의 감동을 잊지 못한 독일인 슐리만에 의해 트로이의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 성이 함락되고, 그 위에 다시 성이 쌓이기를 수차례, 그러기에 무너졌던 성들이 퇴적암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고 한다.  슐리만은 1822년 독일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1살이 되던 해 집을 떠나 여러 직업을 거치며 성실하게 일하였다. 그는 언어에 두각을 나타내어 독일어, 영어, 프랑스 어, 러시아 어 등 20개 언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자유로운 언어 구사 능력과 성실함, 장사꾼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하인리히 슐리만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건너가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 가 황금 거래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엄청난 재산을 모으자, 평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가 고고학자로 새 삶을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트로이 발굴작업이었다고 한다. 슐리만의 발굴 작업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나는 이 영화도 몇 번을 보았다.

 

  트로이 유물은 슐리만이 일부 빼돌리기도 했지만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단다. 1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부터 최상층인 9 유적지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시대별, 유적지별로 전시하여 트로이 형성과 발전과정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6 유적지와 7 유적지의 유물을 전시한 곳이 유명한데, 각종 생활 도자기와 황금 액세서리, 전투에 사용했던 화살촉 등이 전시되어, 트로이의 풍요로웠던 옛 모습을 잘 보여 준다고 한다.  슐리만이 빼돌린 유적들은 베를린 박물관에서 보관 중이었는데,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할 때, 베를린에 입성했던 소련군이 노획해 갔다고 한다. 그 탓으로 그 유적들을 보기 위해서는 러시아로 가야 한다고...

 

  아이발릭, 양갈비 한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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