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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한 가운데 마른 장마가 한동안 이어지더니, 어제는 강풍에 폭우가 내렸다. 일주일 내내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와는 달리 오늘은 모처럼 쨍하게 푸른 하늘과 뭉게 구름이 나타났다. 머리 위에서 폭양의 열기가 내리꽂히는 가운데, 광교호수공원으로 나갔다. 한낮의 무더위에 사람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들도 더위를 먹었는지 흐믈거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설설 기어 다녔다. 그러고 보니 쨍한 날씨가 좋아서 나선 내가 우스워졌다. 땡볕 아래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메고 걷는 사람은 오직 나뿐... 그 정성을 생각하면 좋은 그림이 나와와 하는데, 주변의 여건이 그렇지 못했다. 기존 저수지의 유흥상가들을 철수시키고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신도시 환경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인공적 자연이라 그닥 그림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군데..
최고의 별장마을 화진포 화진포는 남한의 동북단에 위치한 최고의 휴양지이다. 맑고 넓은 호수와 고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해변에 푸른 바다가 망망한 하늘을 품고있는 천혜의 해수욕장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일제 강점기엔 총독부 관리들과 서양 선교사들의 별장들이 있었고, 해방후 인공치하에서는 김일성 별장이, 한국전쟁 이후 수복되어선 당대의 최고의 권력가였던 이기붕과 이승만 별장이 화진포에 있다. 휴전선 부근이라 군작전지역으로 이 지역이 대부분 통제되었으나, 이제 일반인들에게 모두 공개하고 있었다. 작년에 이곳에 왔을 때만해도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은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번 방문 때 이들의 별장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주변 환경과는 너무나 달리 우리나라의 얼룩진 역사가 배어 있는 곳이었다. 별장의 주인공들은 해방된 조..
금강산 건봉사 작년에 갔던 그 길을 또 찾아갔다. 갈 곳도 마땅하지 않았지만, 작년에 갔을 때 찬찬치 못해 부처님 치아 사리를 친견하지 못한 아쉬움 탓이었다. 또한 아름다운 경관들을 가족들에게도 보여주고 싶기도 했었고... 북적이던 속초 길보다 그 이북 도로는 적막감이 들 정도로 한적했다. 큰길에서 벗어나 호젓한 산길을 달리며 차창을 열고 싱그런 신록으로 심호흡했다. 인적 드문 산사였지만 도착해서 보니 내방객들이 더러 있어 심심하거나 외롭지는 않았다. 불이문 기둥 돌 받침대에 새겨진 글자로 사방의 악귀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엔 천왕문이 없다. 대웅전으로 건너가는 무지개 돌다리 능파교. 개울을 건너기 전 돌다리 앞에서 돌아본 범종루 대웅전 대웅전 왼 편에 있는 종무소 겸 부처님 치아사리 친견실 친견실 안의 보살님..
설악산 백담사 40여 년 만에 다시 가 본 백담사였다. 과거의 희미한 기억은 세월 저 편에서만 가물거리는 탓으로 모든 것이 그저 새로웠다. 옛날 설악동에서 텐트까지 짊어지고 대청봉을 넘어 봉정암을 지나 수렴동에서 백담사로, 그리고 용대리 큰길까지 타박타박 걸어 지나던 기억만 남았을 뿐, 흐릿한 영상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그동안 몇 번, 용대리를 지나면서 백담사에 들려보려 했으나, 버스로 갈아타고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번엔 작정하고 용대리에서 민박으로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 승차장 부근에서 해장국으로 요기하고 8시 첫 버스로 백담사에 갔다. 일요일이라 등산객들이 많아 승차장이 북새통이었지만 일찍 서두른 탓에 첫차를 탈 수 있었다. 버스에 사람이 차면 떠났기 때문에 서두..
속초 아바이 마을 속초를 지나는 길에 아바이 마을을 찾았다. 네비게이션에 나타난 아바이 마을은 두 군데여서, 첫번 째 아바이마을에 들렸더니, 소문으로 듣던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근처 주민들에게 물으니, 다시 되돌아가서 다리를 건너 오른족으로 나가란다. 그러고 보니 다리 건너 바닷가에 승용차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다시 네비게이션을 의지하여 아바이마을을 찾았다. 아바이 마을은 이제 유명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다리가 없었던 시절엔 유일한 교통로가 갯배였는데, 그 갯배도 이젠 유명한 관광상품이 되었나 보다. 한참 걸려 차를 세우고, 아바이 마을 가운데로 들어가니,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아바이 상인들의 호객소리가 요란했다. 주메뉴는 아바이 순대와 오징어 순대, 그리고 생선구이였는데, 아바이 순대는 돼지 소장에 양념한고기와 채..
양양 낙산사 중부지방은 32도를 오르내리는 불볕 더위라는데, 영동지방은 어딜 가나 잔뜩 흐린 날씨에, 한낮에도 22도가 제일 높아 저녁 무렵에는 오히려 춥기까지 했다. 몇 해전에도 6월에 강릉해변에 왔다가 푸른 하늘은 보지도 못하고 쌀쌀한 날씨에 연무 속에 되돌아간 적이 있었다. 선자령 오를 때의 쾌청한 하늘이 그리웠다. 그때 동쪽에서 구름 안개가 계속 밀려오더니만, 그 구름 안개 때문에 날이 흐리고 기온도 낮은가 보았다. 그 덕에 움직이는데 덥지 않아 좋았으나 바다에는 이미 사람들이 몰려들고, 성급한 아이들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낙산사 주차장이 만원이라 무료로 개방되어 있는 바닷가 도로 옆에 차를 세워두고 낙산비치호텔 방면으로 걸어서 낙산사를 찾아갔다. 비치호텔 앞 낙산사 입구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어서, 그..
오죽헌과 김시습 기념관 1. 오죽헌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이순신 장군, 퇴계이황, 율곡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이 화폐의 주인공들인데, 놀랍게도 이율곡과 신사임당은 母子관계인데도 우리나라 화폐의 중심인물로 등장했다. 일찍이 퇴계와 율곡이 각각 1000원과 5000원 지폐 속의 인물로 쓰였고, 여성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조선시대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사임당 신씨를 선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성계의 대표적 인물로 류관순 열사와 신사임당이 최종 결선에 들었으나 결국 신사임당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신사임당도 좋겠지만 한 집안의 어머니와 아들을 한 나라 화폐의 인물들로 선정한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 조선 성리학의 쌍두마차라는 율곡과 퇴계를 모르는 ..
강릉 선교장과 경포대 오죽헌에서 경포 가는 옛길가에 동해를 등지고 남서쪽을 향해 앉은 조선의 전형적인 사대부집인 선교장, 그동안 강릉을 수십 번 드나들었어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마 전 강호동의 1박 2일에 소개되어 관심 있게 봤었다. 그때 선교장 행랑채에서 동남아 산업 연수생을 그 어머니와 만나게 하는 장면이 인상에 깊었었다. 그 덕에 선교장이 조선시대의 전통여관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여관이 아니라 지체 높은 사대부의 집이었단다. 개인의 사유재산이라 지금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일반관람과 숙박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일반 관람 요금은 성인 1인당 3000원인데, 이 선교장(船橋莊)이 오는 16일부터 무기한으로 휴관한단다. 선교장 측은 최근 강원도의 예비사회적기업 지원 공모사업과 관련해 강원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등 의견..
대관령 국사성황사와 산신당 선자령에서 내려와 선자령 올라갈 때 들었던 굿소리가 궁금해서 국사성황사로 차를 몰았다. 대관령에서 북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산속까지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었다. 우거진 산림 속에 대관사와 성황사, 산신당이 있었다. 때마침 강릉단오제 전날이라 단오제가 시작되는 대관령 성황사와 산신당의 행사가 기대되었으나 별다른 풍물은 보지 못했다. 함박꽃, 또는 산목단, 북한의 국화란다. 성황사 위에 있는 대관사. 단촐한 외건물이었다. 지붕도 전통기와가 아닌 플라스틱 개량기와였다. 유서깊은 곳의 절로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관령서낭당은 대관령산신당 서쪽 약 30m 거리에 있다. 사당은 건평 5평 정도의 기와집이다. 내부 정면 벽에는 국사서낭 신상이 걸려 있다. 현재의 당우는 1944년에 중..
선자령 대관령을 넘는 길에 잠시 들렸던 선자령이었다. 차를 타고 중턱까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볍게 생각하고 대관령에 올랐으나, 선자령 이정표 앞에서 차를 세우고 말았다. 이정표대로 대관령에서 선자령까지는 5km의 능선길 산행이었다. 왕복 10km의 거리는 완만하고 부드러운 흙길로 초입 중간의 시멘트길을 제외하고는 동네 뒷산보다도 편안한 오솔길이었다. 대관령에서 시멘트 길로 2km 정도는 승용차로 갈 수도 있다. 길가에 승용차들을 세워두고 산행길에 나선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험준한 산길이 아니어서 하늘을 가리는 나무 그늘 아래 숲길은 쾌적하고 상쾌했다. 맑고 깨끗한 공기와 청아한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선자령의 벗이었다. 평일날이라 인적도 뜸한 산길을 그렇게 두 시간여를 걸어왔다. 간간이 동해에서 운무가 몰려..
숭례문 그 동안 안타깝게 차창으로만 바라보던 숭례문! 복구된 모습을 가까이 다가서서 찬찬히 살펴 보았다. 과거와 달리 숭례문 좌우에 훼손되었던 성벽의 일부도 복원한 탓으로 성문의 모습을 조금 더 갖추웠지만 그 덕에 조금 왜소해 보이는 듯했다. 또한 숭례문 좌측으로 조금 길게 뻗어간 남산 방향의 성벽은 갓 다듬어낸 화강암이라 500여년 전통의 한양성벽으로 너무 산듯해 보이기도 했다. 이왕지사 복구할 성벽이었다면 목멱산 방향으로 더 길게 뻗어 쌓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례문 주변이 말끔하게 정리되고 다듬어서 깔끔해진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화재 이전엔 성벽이 잘리고 훼손되어, 도로 속 외딴 섬이었던 숭례문이 가까이 돌아와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五月有感 또, 5월이 지나간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지만 주름진 할머니처럼 시름만 안고 지나간다. 청자빛 하늘도 아닌 잿빛 하늘에 제 혼자 냉탕과 열탕을 오가더니 무더위를 듬뿍 뿌리며 훌쩍 지나가고 있다. 춘하추동 네 계절이 여름과 겨울만 존재하는 두 계절로 변해버렸다. 널 뛰는 계절에 인간들도 적응하기 힘든데, 생물들이야 오죽하겠는가마는... 꽃들도 계절에 맞춰 피우기가 버거워 보인다. 송화가루, 이팝꽃잎, 아카시아 꽃잎들이 먼지처럼, 싸락눈같이 섞여 날리고 있었다. 무더운 열기에 수북히 떨어진 꽃잎들을 보며 흐느적이는 바람처럼 또, 한 봄을 배웅하듯 떠나 보낸다.
5월 야경 아카시아 이팝나무, 때죽나무들이 약속이나 한듯 활짝 꽃을 피웠다. 창문을 열면, 서로 섞인 꽃향기에 정신까지 몽롱해질 지경이었다. 거기에 먼지처럼 날려오는 송화가루까지도... 이팝나무가 흔하기 전에는 아카시아 달콤한 향이 너무 좋았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알지도 못했던 이팝나무들이 도처에 흔한 가로수가 되어 아카시아보다도 더 흰 꽃잎들을 터트렸다. 길가 나무들에 함박눈이 내린 듯 눈부시기만 하다. 강렬한 봄꽃향기에 취해서 육교에 올라가 몇 컷 찍었다.
구리시 동구릉 오다가다 생각 없이 들렸던 동구릉. 세 번째 방문이라 그저 바람 쐬듯 한 바퀴 휘 둘러보고 나왔다. 5월의 푸르름 속에 벌써 물로 뛰어들어 물장구치는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볼 수 있었다. 좁은 주차장이 만차여서 차댈 곳이 없어 주변을 헤매다 빈 공터에 차를 대고 들어 갔다.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들이 입구를 막고 있어서 교통체증도 심했다. 차 한 대가 나오면 한 대가 들어가는 식이라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근처 음식점들도 주차지를 제공하고 음식을 팔고 있었으나 규모가 작아 몰려드는 차량을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넓은 동구릉 영역에 비하면 주차장이 너무 협소하여 대책이 필요할 듯하다. 1. 수릉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능, 문조는 23대 순조의 아들로 효명세자 시절 대리청정을 시작하여 백..
남양주 광릉 초파일 연휴, 모두들 연휴의 들뜬 기분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데, 꼭 짚어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먼 거리를 달리자니 체력적으로 부담도 되고 해서 가까운 곳으로 정한 곳이 크낙새가 살았다는 광릉 수목원이었다. 내 어릴 때, 학교에서 무수히 들었던 것이 천연기념물인 광릉 크낙새와 춘천장수하늘소였다.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단골시험문제로 출제되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 시절 봄인지 가을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버스를 대절해서 광릉으로 소풍을 갔었다. 그곳에는 두 명이 맞잡아도 닿지 않는 우람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한국전쟁의 참화로 벗겨진 동네의 민둥산만 바라보다 울창한 숲에 들어서니 그곳이 별천지처럼 생각되었었다. 그 후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한 번 갔었는데, 그..
지리산 바래봉 내내 청명했던 날씨가 토요일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요일 바래봉 등반을 약속했기에 가뜩이나 들떴던 마음이 속상해졌다. 다행히 일요일 오전엔 날씨가 갠다는 예보에, 아침 일찍 우산을 챙겨 길을 나섰다. 이슬비가 내렸으나 작년에 올랐던 황매산 철쭉이 너무나 예뻤기에 바래봉 철쭉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남원으로 가는 도중 구름이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행여나 그 덕에, 맑은 날에 볼 수 없는 장관을 볼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낙관적 상상까지 하기도 했다. 9시 30분가량, 남원의 운봉 전북 학생교육원 입구에서 내렸는데, 가느다란 이슬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우중 산행이라 한산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좁은 산길에 이미 등산객들이 꼬리를 이었다. 아마도 팔도의 산악회들이 다 몰려나온 듯, 그..
불탄절 나무석가모니불! 부처님 태어나신 날, 부처님께서 사바세상의 방황하는 영혼들을 구제해주시길 간절하게 기원합니다. 사상 논쟁으로 분열를 조장하는 극우주의자들에게도, 힘없는 乙들을 쥐어짜서 행복을 얻으려는 super 甲들에게도, 삶의 중압감에서 흔들리며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乙들에게도...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 가득 넘치시기를... 나무석가모니불!
정읍 황토현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정읍역을 지나 고창으로 가던 도중에 이정표에 나타난 길이름이 동학로여서, 황토현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검색하여 찾아들었다. 황토현은 1894년 갑오 동학농민혁명 때 농민군이 최초로 관군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 곳이다. 이곳에 전봉준 장군의 사당과 동상을 세우고 전적비와 기념관을 건립하여 동학 정신을 기리며 오늘에 전하고 있었다. 넓은 대지 위에 2004년 건립한 기념관에는 동학혁명에 관련된 여러 가지 자료들과 동학혁명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었다. 1층의 자료실에 이어 원형 통로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원형 전시장에는, 동학 관련 대형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좌우의 전시장에는 전투 장면을 미니츄어로 유리 바닥 아래 재현하는 등, 어러 가지 볼거리들을 전시해 놓았다. 기념관 맞은편에 전봉준 장군의 사당..
고창 선운사 선운사 앞을 흐르는 검은 계곡물, 그 이름이 도솔천(兜率川)이란다. 아마도 도솔천(兜率天)의 미륵부처님이 물줄기를 타고 내려오신다는 이야기는 아닐는지... 화려한 단풍잎은 아니더라도 연록의 새잎들이 미륵보살님의 숨결처럼이나 고왔다. 냇물 따라 선운사로 올라가는 도중에 물빛에 취한 어느 분이 탄성을 질렀다. 그 탄성을 듣고 내려가 수면 가까이에서 도솔천을 올려다보았다. 물빛이 유난히 검게 보였다. 도솔천, 미륵만을 고대하던 옛사람들의 애환이 그려진다. 그 동안 선운사는 몇 번 들렸던 절집이었으나, 도솔천 냇물을 바라본 것은 처음의 일이었다. 초파일을 준비하는 연등 그림자가 여울처럼 흐르는 물살에 흔들리고 있었다. 도솔천을 따라 들어간 선운사엔 아직까지 동백꽃이 계절의 흐름을 아쉬워하듯이 빠알갛게 맺혀 있었..
고창 읍성 우리나라 읍성 중 5월에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고창읍성을 첫째로 들겠다. 복원된 성곽 아래 영산홍들이 활짝 피어 붉은 꽃동산 위에 세워진 읍성이 여간 예쁜 게 아니다. 여기에 고창 사람들의 애향심이 듬뿍 담겨 온갖 정성이 다 배어 있다. 읍성 앞이 아름다운 쉼터와 배움터로 공원화되어 있다. 도서관 소리박물관, 미술관들이 한데 어우러져 지역문화의 중심을 이루기도 한다. 게다가 구전하는 판소리를 정리하여 6마당을 오늘에 남긴 신재효선생의 생가가 읍성 입구에 자리한 것도 고창의 예술혼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읍성 방문이 두 번 째임에도 처음의 감동이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재작년 이맘때 갔을 때도 붉은 영산홍이 만개한 꽃밭 속을 한 바퀴 돌아 나왔었는데, 봄날씨가 변덕스러웠던 금년에도 붉은..
고창 청보리밭 예로부터 여름철 서민들의 주식이었던 보리가 이처럼 관상용으로 들판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함께 격세지감을 느꼈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세상의 고개 중에 보리고개가 제일로 넘기 힘든 고개라고 했다. 60년대엔 부족한 쌀때문에 베트남 등지에서 수입해서 배급해주기도 했었다. 알랑미(안남미-안남 :베트남)라고 길쭉길쭉한 것이 찰기가 전혀없는 동남아시아 쌀을 동사무소에서 줄서서 타다 머기도 했었다. 푸른 보리밭을 바라보며 그 보리가 누렇게 익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주린 배를 달랬던 것이 엊그제 같다. 동남 아시아 여행길에서 어쩌다 먹게되는, 찰기없이 흩어지는 쌀밥들에 배고팠던 옛시절이 떠오르곤 했었다. 한 때 유난히도 무채색으로 삭막한 겨울철의 도시미관을 위해 길거리 대형화분에 보리를 심어 싱그러운 보리의 ..
옥정호 붕어섬 전주에서 임실로 들어서면서 도로는 강원도 산길처럼 좁고 구불구불해졌다. 국사봉 전망대 주차장 근처에서도 붕어섬이 보이지 않아 휴게소까지 조금 더 전진하자, 그 유명한, 유명해서 보고 싶었던 붕어섬이 나타났다. 특히 옥정호 붕어섬은 ISLAND님의 블러그에서 익히 보아왔기에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설리라는 식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붕어섬을 바라보다가, 차를 되돌려 국사봉 전망대 주차장으로 되돌아갔다. 전망대까지 나무계단을 설치해서 오르기가 수월했다. 중턱의 이동통신 중계소가 있는 모퉁이에서의 전망도 좋았다. 전망대에 오르니 붕어섬과 그 주변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전망대 난간을 의지하고 한참을 바라보다 전망대 뒤쪽 국사봉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좀더 걸으면서 붕어섬을 보았으나 전망대 데크보다 좋아..
완주 대둔산 전날 빗속에 밤늦게 도착했던 대둔산. 대둔산 입구를 통과해서 관광호텔에 숙소를 물으니, 빈방이 없단다. 예상은 했지만 빗속이라 살짝 당황스러웠다. 호텔 직원에게 물어서 찾아간 곳이 식당가 바로 아래 산장촌이었다. 한 곳에 산장들이 여럿 모여 있어서 그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산장은 그런대로 깨끗해서 큰 불편은 없었다. 값도 3만 원으로 저렴했고... 산장 주인에게 근처 식당을 추천받아 식당가로 갔으나 이미 문 닫은 곳이 많았다. 인적 끊긴 식당가에서 불 켜진 곳을 찾아 들어가니, 지긋한 연세의 노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 산골 냄새나는 산채비빔밥을 시켜 먹었는데, 봄이라서인지 나물들이 연해서 씹기에 좋았다. 식사 후 권하는 개똥쑥 차 한 잔에 대추 향과 함께 정겨움이 물씬 묻어났다. 이튿날 아침까지 그곳에서..
허비톨슨과 캐스트 판토바의 곡예비행 - 안산항공전 에어쇼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전혀 없어 그저 하늘만 바라보며, 조종사들의 묘기에 탄성만 냈다. 러시아제 수호이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창공을 자유자재로 날며 보이는 기동기술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였다. 수직상승, 수직하강, 동체를 45도로 비틀어 날아가기, 수직 상승 후 동력을 끄고 글라이더처럼 활강하기 등, 처음 보는 묘기들에 가슴 조였었다. 허비톨슨(미국)과 캐스트 판토바(스페인)의 곡예비행도 예술처럼 아름다웠다.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편대 비행을 하면서 재주를 부렸다. 경비행기이기에 눈높이 가까이로 낮게 날면서 보이는 기동묘기여서 박진감이 있었다. 다만 지상에서 중계하거나 해설하는 사화지들이 쏟아내는 현학적이거나 자극적인 멘트들이 귀에 거슬렸다. 전문용어 같은 단어들을 뱉어내기에 언뜻 들으면 굉장한..
BREITLING JET AIR SHOW - 안산 항공전 스위스 시계전문회사 브라이틀링에서 운영하는 세계 유일한 민간 제트 에어쇼팀. L-39C 알바트로스 체코(체코에서 1968년 개발한 2인승 군용 훈련 제트기) 7 대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 한국 스위스 국가 수교 50주년을 기념하고 브라이틀링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안산항공전을 방문하였는데, 파일럿 대부분은 프랑스 공군이나 공군 곡예비행단 출신으로 블랙이글 못지 않게 20여 분간 곡예비행으로 안산 창공에서 화려한 기동묘기를 보여 주었다.
BLACK EAGLE AIR SHOW - 안산항공전 한국 공군의 특수비행팀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블랙이글팀. 2012 영국 Waddington Airshow에서 "2012 최우수 에어쇼상"으로 세계에 그 이름을 높인 바 있다. 더우기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초음속 국산 항공기 T-50을 타고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보임으로써 한국의 항공기술과 공군의 조종기술을 세계에 알려 국위선양에 일조하는 최고의 파일럿들의 에어쇼팀이다. 안산 항공전에서의 백미도 역시 블랙이글의 에어쇼였다. 모두 8 대의 초음속 비행기로 원주에서 날아와 약 25분여 동안 푸른 창공을 5색 연기로 수놓았다. 초음속 항공기가 보여주는 묘기여서 눈앞에서 순간적으로 출몰하기에 어지러울 정도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 날아가는 편대 비행, 두 대의 항공기가 마주보며 스쳐날아가는 크로스 비행, 난초잎 ..
CATWALK AIR SHOW- 안산항공전 저녁 TV뉴스에서 블랙이글 에어쇼를 어찌나 멋있게 보여주던지, 에어쇼를 보러 안산항공전에 갔다. 프로그램 중 스칸디나비안 팀 에어쇼가 있었는데, 농약살포용 복엽기를 개조해서 CATWALK라 이름하였다. 노랑 비행기에 노랑색에 검은 줄이 있는 옷을 입고 고양이 분장을 한 여자 둘이 복엽기 날개와 동체 위에서 여러 동작을 하며 쇼를 했다. 비행기의 빠른 속도와 곡예비행에도 자리를 이동하며 멋진 포즈를 취하던 모습이 놀라웠다. 비행을 하며 쇼를 하는 동안, 빠른 속도 때문에 탑승자가 여성인지도 몰랐었다. 아름다운 비행에 멋진 묘기를 보여준 연기자들의 기교와 담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안산 최용신 기념관 두 번 째 방문, 처음 왔을 때보다 감동이 줄었다. 안산에 왔다가 가는 길에 들렸기 때문일까. 처음 방문 때는 물어물어 이곳을 찾았었다.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단지 상록수역 부근에 청석골 교회와 최용신의 무덤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기에 그 묘라도 한 번 보려고 했던 것이었는데...(상록수 소설 속의 청석골은 안산 샘골(泉谷里)이다.) 최용신의 묘는 공동 묘지에 있었는데, 안산이 개발되면서 이곳으로 이장하였고, 이 자리에 기념관과 상록수 공원이 조성되었다. 고인은 양지바른 곳에서 그녀의 약혼자였던 김학준과 사이좋게 누워있었다. 농촌 운동가였던 선생의 묘비엔 농촌사업가로 적혀 있다. 최용신 기념관 정면- 1층이 기념관이고 2층은 샘골강습소로 꾸며져 있다. 입구 출입문 옆의 최용신 부조 기념관 내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