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정읍 황토현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정읍역을 지나 고창으로 가던 도중에 이정표에 나타난 길이름이 동학로여서, 황토현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검색하여 찾아들었다.  황토현은 1894년 갑오 동학농민혁명 때 농민군이 최초로 관군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 곳이다.  이곳에 전봉준 장군의 사당과 동상을 세우고 전적비와 기념관을 건립하여 동학 정신을 기리며 오늘에 전하고 있었다.

 

  넓은 대지 위에  2004년 건립한 기념관에는 동학혁명에 관련된 여러 가지 자료들과 동학혁명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었다.  1층의 자료실에 이어 원형 통로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원형 전시장에는, 동학 관련 대형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좌우의 전시장에는 전투 장면을 미니츄어로 유리 바닥 아래 재현하는 등,  어러 가지 볼거리들을 전시해 놓았다.   

 

  기념관 맞은편에 전봉준 장군의 사당과 동상이 있고, 그 뒤 황토현 언덕 위에 혁명기념탑이 우뚝 서서 호남의 너른 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념관 앞의 깃발

 

기념관 정면

 

 

1층 전시실 -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지도자들을 인형으로 만들어 친근감 있게 보여주고 있었다.

 

동학의 시작과 결말을 요약해서 보여준 1층 우측 자료실

 

동학의 실패는 일제의 신식무기 때문이었다...

 

1층 좌측의 자료실로 그 당시의 세계 정세와 각 나라의 시민운동 자료들

 

원형 통로 위의 원형 전시실에 걸린 관련 그림들로 첫 번 째 그림 -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와 학정이 동학혁명의 원인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농민들의 집회와 봉기

 

농민군의 전주성 함락

 

동학혁명이 끼친 영향 -  실패로 끝난 동학혁명 이후 기미독립운동과 항일 독립전쟁이 그 정신을 계승하였음을 형상화하였다.

 

2층 전시실

 

유리바닥 아래 재현한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 장면

 

동학군을 제압한 일본군의 최신 기관총

 

2층의 부조물

 

일제에 취조받고 있는 전봉준 장군의 모습을 움직이는 인형으로 재현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혁명기념관 건너편 황토현에 있는 전봉준 장군 기념관, 첫째 대문은 제세문(濟世門)으로 이른바 세상을 구하는 문이다.  1983년 전두환 정권 때 세운 기념관이라고 하니 참으로 역사는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중문인 보국문

 

 제민당 안에 모셔진 전봉준 장군 영정, 제민당 안에는 현재 규장각 소장품 동학농민혁명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영정의 양옆에 동학혁명군이 내건 기치였던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글이 걸려 있다. "폭정을 없애고 백성을 구하며, 나라를 도와 백성들을 편안하게 한다."

 

전봉준 장군 동상

 

'구민사'로 동학혁명 100주년이었던 1994년 농민군 지도자 전봉준·김개남·손화중과 참전 제위의 위패 4위를 모신 사당이다. 2008년 농민군 지도자 김덕령 등 51명의 위패를 추가로 봉안하였으며, 2009년 5월 동학농민혁명으로 희생된 선열 60명의 위패를 추가하여 봉안하였다.

 

 황토고개 마루에 1963년 건립한 혁명 기념탐 탑의 정면에 세로로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輔國安民)이 쓰여있다. 박정희 정권 때 건립된 탓으로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도울 보(輔)가 보전할 보(保)로 변형되었다. 정권차원에서 혁명정신까지 제멋대로 왜곡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잠시는 속일 수 있으나 역사는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비문이 보여주고 있었다.

 

뒷면

 

기념탑에서 내려다 본 구민사 뒷모습

 

 

  미완의 동학혁명이 일어난 지,  내년이면 220년, 두 번의 환갑을 맞는다. 세상은 무섭게 변해서 12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남북이 대치되어 일촉즉발의 위기를 겪고 있는 오늘의 한반도 정세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120여 년 전, 봉건사회 탐관오리들의 학정 때문에 고통으로 신음받던 농민들이 더 이상 참을 수없어 사람이 주인 되는 그들의 세상을 만들고자 봉기했던 동학혁명!  그들이 성공했더라면 서구의 선진국들처럼 우리의 민주주의도 보다 일찍 정착이 되고 일제로부터 주권도 지켜냈을지 모를 일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개혁을 주장하던 농민들을 제힘도 없이 외세로 막고자 했던 나약한 왕권 덕분에, 농민들을 학살한 일제에 의해 이듬해에 왕비까지 시해당하고 종내엔 국권까지 잃고 말았다. 

 

  막강한 갑의 횡포에 중소기업들과 소상인들이 죽어간다는 오늘의 현실 속에, 위정자들까지 작은 제 눈앞의 이익과 욕망에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는 꼴들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백성들은 백성들대로 깨어 있어서 올바른 선량들을 뽑아 권력을 위임해야 할 터인데도, 편 가르기, 땅 가르기로 내 작은 욕심만 챙기려 하니 진실로 소탐대실하여 큰 것을 잃지 않을까 참으로 염려스럽다.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릉 선교장과 경포대  (6) 2013.06.12
대관령 국사성황사와 산신당  (4) 2013.06.11
고창 청보리밭  (2) 2013.05.09
안산 최용신 기념관  (0) 2013.04.28
동묘(2)  (0) 2013.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