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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강릉 선교장과 경포대

  오죽헌에서 경포 가는 옛길가에 동해를 등지고 남서쪽을 향해 앉은 조선의 전형적인 사대부집인 선교장, 그동안 강릉을 수십 번 드나들었어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마 전 강호동의 1박 2일에 소개되어 관심 있게 봤었다. 그때 선교장 행랑채에서 동남아 산업 연수생을 그 어머니와 만나게 하는 장면이 인상에 깊었었다. 그 덕에 선교장이 조선시대의 전통여관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여관이 아니라 지체 높은 사대부의 집이었단다. 개인의 사유재산이라 지금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일반관람과 숙박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일반 관람 요금은 성인 1인당 3000원인데, 이 선교장(船橋莊)이 오는 16일부터 무기한으로 휴관한단다.  선교장 측은 최근 강원도의 예비사회적기업 지원 공모사업과 관련해 강원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등 의견차를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선교장 운영관리법인인 ㈜배다리문화원은 예비사업회적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본래 당초 11일부터 휴관할 계획이었으나 강릉 단오제가 열리고 있으므로, 단오제 기간 종료 후 휴관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효령대군(세종대왕의 형)의 11대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에 의해 처음 지어져 무려 10대에 이르도록 나날이 발전되어 증축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주택으로서 1965년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어 개인소유의 국가 문화재로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300여 년 동안 그 원형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전통가옥으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미를 활달하게 포용하여 조화를 이루고 돈후한 인정미를 지닌 후손들이 지금까지 거주하는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하늘이 족제비 무리를 통해 점지 했다는 명당터인 선교장은 300여 년 전 안채 주옥을 시작으로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중사랑, 행랑채, 사당들이 지어졌고 큰 대문을 비롯한 12 대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대장원을 연상케 한다. 입구에는 인공 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어 활래정(活來亭)이라 이름을 짓고 연못과 함께 경포호수의 경관을 바라보며 관동팔경 유람하는 조선의 선비와 풍류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만석꾼 곳간채에는 항상 곡식이 가득하여 흉년에는 창고를 열어 이웃에게 나누어주며 베푸는 집안의 표상이 되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하여 선교장이라고 지어진 이름이지만 그 호수는 논이 되었다.  2000년을 기해 한국 방송공사에서 20세기 한국 TOP 10을 선정할 때 한국 전통가옥 분야에서 한국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되었다. <선교장 홈페이지 소개글>

 

 선교장 입구의 안내문

 

입구 앞의 활래정-다도체험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담장 넘어 안채 

 

안채

 

밖에서 들여다본 안채

 

  열화당, 손님 중 지체높은이들을 이곳에서 머물게 했다고 한다.  조금 생뚱맞아 보이는, 마루 앞 동판지붕의 차양구조는 구한말 이곳에서 머물다 간 러시아 공사가 감사의 마음으로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창덕궁  후원에 연경당의 서재인 선향재에도 이와 유사한 동판지붕의 차양구조물이 있다.   하인들은 이 열화당 앞 행랑채에서 지냈단다.

 

열화당 마당 끝자락에서 들여다 본 안채 

 

행랑채 옆 대문에서 본 행랑채와 열화당 마당 

 

선교장 안채와 행랑채 전경

 

 홍예헌

 

기념관 안에 전시된 추사 김정희 글씨의 현판, 추사가 이곳에서 머물고 가며 기념으로 남긴 것이란다.

 

대원군 이하응의 글씨- 대원군은 당대의 명필이었단다. 하기사 을사오적인 이완용도 명필이었다는데...

 

한 바퀴 돌아 나오며 좌측면에서 바라본 활래정

 

 

 

 

인근 경포대와 경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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