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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바래봉

 

  내내 청명했던 날씨가 토요일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요일 바래봉 등반을 약속했기에 가뜩이나 들떴던 마음이 속상해졌다.  다행히 일요일 오전엔 날씨가 갠다는 예보에, 아침 일찍 우산을 챙겨 길을 나섰다.  이슬비가 내렸으나 작년에 올랐던 황매산 철쭉이 너무나 예뻤기에 바래봉 철쭉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남원으로 가는 도중 구름이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행여나 그 덕에, 맑은 날에 볼 수 없는 장관을 볼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낙관적 상상까지 하기도 했다.

 

 9시 30분가량, 남원의 운봉 전북 학생교육원 입구에서 내렸는데, 가느다란 이슬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우중 산행이라 한산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좁은 산길에 이미 등산객들이 꼬리를 이었다. 아마도 팔도의 산악회들이 다 몰려나온 듯,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남자보다도 여자들이 더 많았다. 우먼 파워가 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 듯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등산하는 여자들의 일반적 특징은 대체로 시끄럽다는 것이다.  나도 등산객 중 하나이니 말할 자격도 없지만 떼 지어 다니는 일부 등산객들로 모처럼의 산행 기분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만난 사람 중에도 거침없이 큰소리로 육두문자하며 웃기려는 젊은 아낙과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산행하던 젊은 아가씨, 큰 소리로 동료 이름을 고함치며 불러대던 40대의 아저씨들이 비까지 내려 우울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그들을 지나치거나 먼저 보낸 뒤 타박타박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명상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즐겨보려던 생각은 등반하는 도중 내내 이룰 수 없었다. 다만 내려오는 길에서 지름길로 접어들어 나 홀로 산행을 할 때만 빼고...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주춤거리며 한참을 오르니, 행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산길은 낙엽 쌓인 황톳길이라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산행하기가 매우 좋았다. 간혹 비 때문에 미끄러운 구간도 있었지만, 험한 바위길을 걷는 것보다는 백번 나았다. 고갯마루도 그리 험한 곳이 없어 초보 산행꾼들도 그리 어렵지 않을 산길이었다. 주능선으로 접어들자 좌우 막힘이 없는 전망 좋은 능선길인데, 아쉽게도 구름 때문에 가시거리는 10여 m 정도여서 전방과 좌우만 조금씩 살피면서 바래봉으로 나갔다. 간간이 뿌리는 비와 세찬 바람이 카메라를 적셨다. 궁여지책으로 손수건으로 렌즈 경통을 감고 왼팔 소매로 카메라 윗부분을 가리며 산행을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 꼴이 우스웠다. 카메라를 접어 넣고 핸드폰으로 찍어볼까 하다가 모처럼의 산행 사진을 그르칠 수 없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비올 때를 대비해서 가벼운 방수 카메라라도 하나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등산할 땐 카메라 무게의 중압감도 엄청난데, 가볍고 성능 좋고 값싼, 소형 카메라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렌즈도 무겁긴 마찬가지고... 렌즈 무게 때문에 산행할 땐 경통이 짧은 1735 하나 달랑 물려 다니는데, 이번엔 가벼운 50미리 단렌즈까지 준비했었다.  비가 내리는 날씨 때문에 번거로워서 50미리는 한 번도 물리지 못했지만... 비가 내리고 사람이 많아 렌즈캡을 잃어버려 적잖이 당황했었다.

  

 막힘없이 탁 트인 능선 산행인데 철쭉꽃이 만발해서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맑은 날의 바래봉 산행은 정말로 기막힐 것 같다. 지리산 주능선들을 멀리 내다보며 만개한 철쭉을 즐긴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다. 날 좋은 날로 택일해서 다시 한 번 바래봉 철쭉능선을 오르고 싶다.

 

  전북 학생수련원 위 세동치 오르는 산길 입구

 

양탄자 깔은 듯한 황톳길 등산로

 

세동치 3거리, 바래봉까지 5km

 

 전망 좋을 능선길

 

드믄드믄 철쭉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운치 이정표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철쭉 군락...

 

팔랑치로 가며 뒤돌아 본 철쭉 군락...

 

철쭉 사이 등산길

 

구름 바람이 거셌다.

 

팔랑치 부근 철쭉 군락

 

등산 길가에 세워진 안내 그림, 날씨가 좋았더라면 이랬을 것을...

 

팔랑치

 

바래봉 가는 길

 

철쭉꽃만큼이나 많은 등산객들...

 

바래봉 길목의 이정표

 

바래봉 아래 코너의 샘터, 물맛이 좋았다.

 

코너를 돌아 바래봉으로 돌아가는 길. 길은 아예 비가 내려 진흙탕이었다. 

 

바래봉 정상, 정상 표지만 찍으려고 5분여를 기다리며 양해를 구했지만, 전쟁처럼 기념사진 찍으려는 사람들로 찍을 수 없었다.  

 

바래봉 너머로 가는 길, 한가해서 직진하다가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니, 도착지인 운봉의 용산마을로 가려면 되돌아 내려가야 한단다.  할 수 없이 U턴해서 되돌아 내려왔다.

 

바래봉 바로 아래 안내판

 

 아아,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단다.  몇 년 전 가을철에 천왕봉에 올랐다가 구름 때문에 안갯속만 헤매다 하산한 슬픔이 있었다.  

 

 바래봉 3거리로 되돌아오는 길, 주목 원시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바래봉에서 운봉 용산마을로 내려가는 길, 바닥에 돌과 시멘트 블록을 깔았다.  발바닥과 발목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시멘트 블록 길로 내려가는데, 인적이 뜸한 지름길을 택했다. 숲이 울창하고 내리막에다 황톳길이라 걷기가 좋았다.   인적이 뜸해서 으스스하기까지...

 

용산 마을 가까운 곳의 운지암, 대웅전은 지붕에 황금색 기와를 얹였다.

 

운지암에서 큰길로 나가는 길

 

산행 후 돌아오는 길, 운봉 부근 차창밖 풍경. 구름 걷힌 푸른 하늘...   날씨복 없음을 탓하며 씁쓸한 마음을 달래는 수밖에... ㅠㅠ.

 

등산 코스 :  전북 학생수련원  -> 세동치 -> 부운치 ->  팔랑치 -> 바래봉 -> 운지암 -> 용산리 주차장   약 12km, 소요시간 약 6시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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