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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구리시 동구릉

  오다가다 생각 없이 들렸던 동구릉.  세 번째 방문이라 그저 바람 쐬듯 한 바퀴 휘 둘러보고 나왔다.  5월의 푸르름 속에 벌써 물로 뛰어들어 물장구치는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볼 수 있었다.   좁은 주차장이 만차여서 차댈 곳이 없어 주변을 헤매다 빈 공터에 차를 대고 들어 갔다.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들이 입구를 막고 있어서 교통체증도 심했다. 차 한 대가 나오면 한 대가 들어가는 식이라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근처 음식점들도 주차지를 제공하고 음식을 팔고 있었으나 규모가 작아 몰려드는 차량을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넓은 동구릉 영역에 비하면 주차장이 너무 협소하여 대책이 필요할 듯하다.    

 

 

1. 수릉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능, 문조는 23대 순조의 아들로 효명세자 시절 대리청정을 시작하여 백성을 위한 정치에 힘섰으나 22세에 요절했다.  1834년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익종으로 추대되고,  고종 때 문조로 추존되었다.  신정왕후 조씨는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흥선대원군의 차남 명복(고종)을 왕위에 올린 후 수렴청정하였다.  83세까지 천수를 누리며 조선 후기 정국을 주도했다.  동구릉 입구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첫 번째 합장릉이다.

 

 

2. 현릉

 

  제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 문종은 세종의 장남으로 세종 승하 후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2년 만에 39세로 승하했다. 현덕왕후는 세자궁에 궁녀로 입궁했다가 세자의 후궁이 되었다. 1437년 세자빈인 순빈 봉씨가 폐위되자 세자빈이 되었다가 1441년 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돌아갔다. 사후 1450년 문종이 즉위하면서 왕비로 추봉 되었다. 동원 이강릉으로 우측에 문종, 좌측에 중종 8년인 1513년 천장하여 현덕왕후의 능을 조성하였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단종의 어머니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 수렴청정을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수양대군은 왕위찬탈의 욕망을 가질 기회도 갖지 못했을 것이란다.  

 

3. 건원릉

 

  입구 오른 쪽으로 세 번째, 태조 이성계의 능으로, 태조는 74세의 나이로 1408년 창덕궁에서 승하하였다. 봉분 위에는 잔디를 삼지 않고, 고향인 영흥의 갈대를 심었다.  건원릉 왼쪽으로 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의 목릉이 있다.

 

 

4. 원릉

 

  건원릉을 지나 휘릉을  지나면 나타나는 영조와 정순왕후의 릉, 영조는 묘호가 처음엔 영종이었다. 

 

  영조와 정순왕후 김씨의 묘. 영조는 19대 숙종의 넷째 아들로 1724년 경종 승하 후 왕위에 올라 52년간 재위에 있었다. 조선 최장수 왕으로 보령 83세였다. 정순왕후는 15세 나이에 66세 영조의 계비로 책봉되었다. 훗날 사도세자의 죽음에 빌미를 제공했으며 사도세자의 손자인 순조가 11세로 왕위에 오르자 3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면서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정조 때 등용된 남인들을 축출하고 노론들을 등용하기 위해서 이른바 신유박해를 일으켜 천주교인 100여 명을 학살하기도 했다. 순조 5년 1월에 경복궁에서 61세로 돌아갔다. 쌍릉으로 조성되었다.

 

  동구릉에는 이외에 휘릉(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능), 경릉(24대 헌종과 원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능으로 삼연릉으로 세 기의 능이 나란히 연이어 있다), 혜릉(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의 능), 비공개릉인 숭릉(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이 있다. 

 

동구릉 관련글 : http://fallsfogs.tistory.com/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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