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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설악산 백담사

  40여 년 만에 다시 가 본 백담사였다. 과거의 희미한 기억은 세월 저 편에서만 가물거리는 탓으로 모든 것이 그저 새로웠다. 옛날 설악동에서 텐트까지 짊어지고 대청봉을 넘어 봉정암을 지나 수렴동에서 백담사로, 그리고 용대리 큰길까지 타박타박 걸어 지나던 기억만 남았을 뿐, 흐릿한 영상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그동안 몇 번, 용대리를 지나면서 백담사에 들려보려 했으나, 버스로 갈아타고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번엔 작정하고 용대리에서 민박으로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 승차장 부근에서 해장국으로 요기하고  8시 첫 버스로 백담사에 갔다.  일요일이라 등산객들이 많아 승차장이 북새통이었지만 일찍 서두른 탓에 첫차를 탈 수 있었다.  버스에 사람이 차면 떠났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았어도 될 것을 조바심에 서둘렀나 보았다. (버스는 8시부터 운행하는데, 배차간격은 30분이다. 일요일 경우, 손님이 차면 출발하는 듯... 차비는 편도 2000원, 백담사에는 입장료가 없다.)

 

  백담사 가는 찻길은 버스 하나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었는데, 구비마다 두 대가 교행할 수 있도록 도로 폭을 넓혀 놓았다. 하얘서 백담계곡일까,  맑고 고운 골짜기 벼랑길을 십여분 정도 4km를 달려 백담사에 도착했는데, 그곳 버스승강장엔 멧돼지 두 마리가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음식을 먹느라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야생인지 순치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처음 보는 광경이라 퍽이나 놀랐었다.  버스에서 내려 백담계곡을 가로지른 기인 다리를 건너 40여 년 만에 드디어 백담사 경내로 들어섰다.

 

 

 백담사 앞 골짜기

 

백담사 불이문, 왼편엔 찻집인 농암실, 오른편엔 범종루가 있다. 불이문 안쪽으로 보이는 것은 대웅전격인 극락보전.

 

제일 먼저 들린 불이문 오른 쪽, 범종루 옆에 있는 만해 한용운 스님 기념관

 

기념관 앞, 만해스님 흉상

 

기념관 전경, 기념관 내부는 촬영금지 구역이었는데, 전시물은 대부분의 전시장처럼 옛날 사진이나 신문 기사 중심으로 조악한 편이었다.   

 

기념관 남쪽으로 범종루와 찻집인 농암실

 

단청 칠한 곳이 나한전과 황색벽 건물이 만해당

 

본존불이 모셔진 극락보전, 우측이 법화실인 종무소이고 좌측은 화엄실로 전 대통령이 머물던 집이다.

 

 

 

삼층석탑 뒤가 화엄실, 518의 주역 전 대통령이 유배 살던 집, 당시 생활상을 사진 찍어 마루에 전시해놓고 있었다.

 

  화엄실의 가운데 방으로 전대통령 부처가 지냈다고 한다. 무소불위의 통치자였던 부부도, 이 작은 방과 이불 한 채, 옷 몇 점이면 면피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세속의 중생들이 부귀영화와 권력, 사치를 쫓는 허상들이 가슴을 친다. 

 

만해 교육관

 

찻집인 농암실과 정문, 그리고 범종루, 만해 기념관 

 

나한전과 극락보전 사이 연못의 수련

 

 

범종루와 만해기념관

 

범종루와 찻집인 농암실

 

 

 

 

 

 

 만해 한용운은 충남 홍성 사람이다. 홍성은 한용운 선생 외에도 김좌진 장군, 윤봉길 의사를 배출한 충렬의 고장이기도 하다. 만해는 인근 오세암으로 출가하여 이곳 백담사에서 스님이 되었기에 이곳은 스님의 애국애족 정신이 서린 곳이라 할 수 있는데,  518의 원죄를 짊어지고 스스로 유배 왔던 전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지금도 재산은닉 때문에 추징금 징수 문제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백담사의 유배생활에 진정한 속죄심은 없었는 듯하니, 지나는 여행자의 발걸음도 그리 홀가분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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