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山寺

남양주 봉선사

 

  수양대군(세조)의 명복을 빌었던, 광릉의 원찰

 

  남양주 봉선사(奉先寺)는 세조의 능인 광릉 초입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시대인 광종 20년(969년)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창건 당시의 이름은 운악사(雲岳寺)였다. 그 후 조선시대로 들어와 세조가 승하한 후 예종이 광릉에 세조의 능을 조성하고, 이 운악사를 광릉의 원찰로 삼고 이름을 봉선사로 바꾸었다. 봉선사(奉先寺)라는 이름 자체가 ‘선왕을 모신다’라는 의미이다. 광릉의 원찰이 되면서 봉선사는 사세가 크게 확장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사세가 위축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의 봉선사는 그리 큰 절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되고 또 광릉의 원찰이었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만큼 많은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봉선사 동종과 괘불이다. 봉선사 동종은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종신의 문양이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또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했던 운허 스님이 봉선사 대웅전의 현판을 썼는데, 대웅전이란 한자 대신 '큰법당'이라는 한글 현판인 점이 이채롭다. 그리고 운허 스님과 친분이 두터웠던 춘원 이광수 선생이 이 봉선사 부근에 은거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봉선사 입구에 춘원 이광수 기념비가 있다. <김휴림의 여행 편지에서>

 

 봉선사 입구의 철 지난 연잎들...

 

 

 하마비 곁에 백팔번뇌를 형상화한 백팔 장승

 

큰법당으로 들어가는 청풍루는 유감스럽게도 시멘트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운하당 처마 아래에서 전망, 큰법당과 방적당

 

좌로부터 운하당, 관음전, 큰법당

 

본존불을 모신 곳을 대웅전이 아닌 큰법당으로 현판을 걸었다.  독립운동가였던 운허 스님의 글씨라고 한다.

 

관음전 뒤, 한 채 세 칸 건물에 칸마다 독성각, 북두각, 산영각이 있었다.

 

큰 법당과 관음전 사이에서 바라본 전경, 청풍루의 뒷 이름은 설법전이다.

 

관음전의 관세음보살

 

장독대와 공양간

 

우측의 관음전과 산영각, 북두각, 독성각.

 

큰법당에서 범종루 가는 길...

 

봉선사 현판이 있는 운하당과 방적당

 

큰법당 좌측 운하당과 나란히 세운 판사관무헌- 봉선사 주지는 조선왕조로부터 봉향판사(奉香判事)의 직위를 받았다. 판사관무헌은 주지가 머무는 곳이다. 

 

선열당

 

좌로부터 운하당, 큰법당, 지장전, 방적당

 

회랑과 선열당

'山寺'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악산 봉선사  (2) 2013.10.07
치악산 상원사  (4) 2013.10.03
금강산 건봉사  (2) 2013.06.20
설악산 백담사  (8) 2013.06.18
양양 낙산사  (4) 2013.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