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의 보은 설화로 유명한 치악산 상원사. 몇 년 전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날, 이 산을 넘은 적이 있었다. 하얗게 흰 눈으로 뒤덮인 상원사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하얀 적막 속에 묻힌 백색의 산사는 치악산의 9부 능선으로 병풍을 친 속에 앉아 있어서 어디선가 금방 꿩이라도 날아와 범종루의 육중한 종을 울릴 것만 같았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녹음 속의 계곡 물소리를 벗 삼아 천천히 올라갔다. 휴일임에도 등산객의 발길은 매우 성글었다. 지리산 천왕봉길에 있는 법계사(1,450m)와 설악산 대청봉 가는 길의 봉정암(1,244m) 다음으로 상원사는 치악산 남대봉 아래 해발 1,084m 높은 곳에 자리한 절이란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無着) 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데, 아무려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 멋들어진 풍광을 볼 수 있다는 행복감으로 쉬엄쉬엄 오르며 산행을 했다.
이윽고, 숲 사이에 빼꼼히 나타나는 범종루의 전각을 보면서 실망감이 들기 시작했다. 골짜기에 다랭이 마을처럼 축대를 쌓고, 약간의 채소를 가꾸고 있었다. 그리고 산 능선을 깎아내고 주변 자연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황금색 화장실과 건물을 신축해 놓았다. 일주문으로 가는 길은 아예 폐쇄해 버렸고, 산신각 아래는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고 있었다. 어지럽게 까놓은 흙더미들이 볼상 사나웠다. 차라리 올라오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머릿속 상상으로 상원사가 더 아름다울 뻔했다. 흉물스러운 곳을 피해 가면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가 아름답게만 구도를 잡으려는 내 의도가 우스워져 머쓱해지고 말았다.
명색이 국립공원이건만, 무슨 배짱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하고 있을까. 앞으로 단풍이 아름다울 이 골짜기를 올랐던 사람들은 아름다운 산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국적불명에다 속세를 옮겨놓은 듯한 황금색 신축 건물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골짜기엔 아기단풍들이 가득했다. 단풍철엔 색깔이 고울 것 같다.
왜 절 아래 경사면의 나무들은 다 베어 버렸을까? 사방공사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토사를 예방하기 위한 목책들을 군데군데 설치하긴 했는데, 살아있는 나무들이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
절 뒤쪽의 나무들도 모두 베어버렸다. 빡빡 깎아버린 비탈면이 정말로 흉물스러웠다. 사찰 전면으로 앞을 내다보면 사바세계가 멀리 내다 보이는데, 세속과 떨어진 이곳은 점차로 속세를 닮아가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종루 아래에서 바라다보이는 치악산 자락 아래 속세들...
수년 전의 겨울 상원사 - http://fallsfogs.tistory.com/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