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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서산 개심사

   "開心寺"  - 마음을 씻고 여는 절

 

 겨울철 歲暮에 개심사 가는 길에는 하얀 눈이 살짝 뿌려져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녹지 않아 도로는 눈이 덮여 미끄러웠으나, 차량의 왕래가 많지 않아 순백색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일주문 근처 주민들의 노점에는 산골 냄새 물씬 나는 농산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수걸이하라며 듬뿍 쥐어주는 갓 볶은 땅콩 한 줌만큼이나 투박한 충청도 사투리가 정겨웠다.

 

 개심사 방문은 수차례였지만 눈 덮인 풍경은 처음이었다. 일주문을 지나 구불구불한 돌계단을 지나 개심사로 오르는데,  맑고 서늘한 산속의 공기에 뼛속까지 상쾌해졌다. 도시에서 찌든 공해의 흔적들이 맑고 깨끗한 상왕산의 차가운 정기에 정화되는 듯했다. 

 

 개심사는 650년 경 백제 의자왕 때 개원사로 창건되었으나 고려말 개심사로 이름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 후 조선조 성종 때 중창하였고, 한국전쟁 이후 1955년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되었다고...  대웅전은 보물 제143호, 명부전(冥府殿) 및 심검당(尋劍堂)은 충남 문화재자료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대웅보전과 요사채인 심검당은 조선 초에 지어진 건물로 당시의 건축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한다.  

 

 개심사 일주문으로 오르는 길, 나뭇가지 위에 앉은 눈덩이들이 살랑이는 바람에 눈송이처럼 흩뿌려 아침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절앞에 네모로 파여있는 연못은 이미 꽁꽁 얼어버렸고, 얼음 연못 건너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절집이 그윽한 산세와 어우러져 그림처럼 다가섰다. 빈 터에 쌓아놓은 기왓장들과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승용차들만 없다면 시간을 뛰어넘은 고대라 해도 의심 없을 듯했다.

 

범종각이 개심사의 최전면에 나섰다. 그 뒤로 둥글둥글한 글씨로 쓴 상왕산 개심사란 현판이 걸린 안양루가 보이고... 봄철 왕벚꽃이 이곳의 명물이라 하는데, 앙상한 나뭇가지들에 얹힌 흰 눈들의 지취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상왕산 개심사’라는 현판은 근대 명필로 알려진 해강 김규진의 글씨라고 한다.

 

범종각의 기둥이 참으로 기묘했다. 뒤틀어지고 굽은 나무기둥들이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안양루 옆으로 돌아들면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해탈문이다. 이곳의 기둥들도 생긴대로 대충 다듬어 세운 나무들이었다. 해탈까지는 어렵겠고 잠시라도 세속을 잊고 청아해지고픈 마음으로 문 아래를 지나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섰다.

 

  대웅보전은 맞배지붕 건물로 차분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밖에서 보면 기둥 사이로 공포가 놓인 다포계 건물로 보이나 안쪽에는 기둥 위에만 공포가 놓인 주심포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형대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건축형태라고 해서 우리나라 건축사에 의미 있는 유물이란다.  대웅보전 왼편의 심검당과 열선당의 기둥도 생긴 모양 그대로인 것들이었는데, 그런 건축물들이 개심사의 특징이란 유홍준의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뒤틀어진 기둥을 쓴 건축물이 비단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곳에선 상징적 의미로 쓰인 것 같다. 뒤틀어져 쓸모없이 보이는 나무들도 훌륭한 재목으로 쓰일 수 있음을 묵언으로 우리에게 전하는 건 아닌지...  

 

   대웅전 오른편 무량수각 유리문에 비친 심검당. 심검당은 사찰에서 선실(禪室) 또는 강원(講院)으로 사용되는 건물에 많이 붙이는 이름이다.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 하여 심검당이라고 한다. 심검당의 검은 마지막 무명(無明)의 머리카락을 단절하여 부처의 혜명(慧明)을 증득(證得)하게 하는 취모리검(吹毛利劍)을 상징한다. 사찰 내에 적묵당(寂默堂)이 심검당과 함께 위치할 경우에는 적묵당은 선원으로, 심검당은 강원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곳은 윗방이 열선당으로 선원이겠고 아랫방인 심검당은 강원으로 쓰이겠다.  이곳의 기둥들은 굽은 나무를 그대로 건물에 사용해 그 자연스러운 모습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수리를 하면서 발견된 상량문은 개심사에서 이곳이 가장 오래된 건물임을 알게 되었단다.

 

  열선당과 대웅전 사이에서 바라본 무량수각과 안양루. 무량수각 툇마루에 큰 보온병에 차를 담아 탐방객들이 마시도록 배려해 놓았다. 구수하고 다스한 차 한 잔이 흰눈이 뿌린 한기를 녹여 주었다. 안양루 마루 위는 곳간처럼 여러 잡동사니들을 쌓아 놓았고, 한 구석에 법고를 놓았다. ‘안양(安養)’이란 극락을 뜻하는 말로, 안양루는 극락에 이르는 누각을 상징하고, 안양문을 지나면 나오는 무량수각은 극락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대체로 개심사 경내는 다소 흩어진 모양새로 절집의 살림살이들을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명부전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듯... 거대한 문짝 대신 대나무 하나로 속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개심사를 뒤덮은 하얀 눈처럼 위정자들 뿐만 아니라 세상의 사람들이 마음을 씻고 깨끗한 마음을 열고 세상을 열였으면 좋겠다.  사심을 잔뜩 가득 품고 교언영색으로 목청 높여 부르짖는 위선의 목소리들이 제발 사라졌으면 좋겠다. 가식적인 외형으로 세상을 속이려 하지 말고, 내 마음을 씻어, 내 속을 비우고 세상과 백성들을 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개심사 맑은 정기로 가득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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