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1번지 삼성역에서 한 블럭 건너 있는 봉은사.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싼 땅에 있는 절이다. 강남을 개발하던 시절, 이 절에 들렸던 기억이 있어서 잠깐 방문했는데, 과거의 기억은 흔적도 없고 그 사이 불사를 크게 일으켜 높은 빌딩 사이에서 큰 몸체를 자랑하며 비싼 땅값에 겋맞는 자본주의의 상징이 된 것 처럼 보였다. 사찰 본연의 아늑하고 고풍스런 느낌보다는 건물이 크고 금물로 외벽을 치장하는 등 재력을 과시하고 있어, 천박함을 지울 수 없었다.
본디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 시절,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하여 견성사(見性寺)라 했는데, 조선조 연산군 때에 부왕인 성종의 능 선릉(宣陵)을 위하여 능의 동편에 있던 이 절을 크게 중창하고, 절 이름을 봉은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게다가 명종 때는 이 절을 선종(禪宗)의 수사찰(首寺刹)로, 세조의 능인 광릉 봉선사(奉先寺)는 교종의 수사찰로 삼았으며, 보우(普雨)를 주지로 삼아 불교를 중흥하는 중심도량이 되게 하였다. 그 후, 보우는 1562년에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을 선릉(宣陵) 동쪽으로 옮기고 절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중창하였다. ‘대웅전(大雄殿)’ 과 '판전(板殿)'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다. 특히 ‘판전(板殿)’ 편액은 김정희가 죽기 3일 전에 쓴 것으로 전해진다.
1975년 진신사리 1과를 봉안한 삼층석탑과 석등을 조성하였으며, 1982년에 진여문과 대웅전을 중창하였다. 1996년에 미륵대불을 조성하였으며, 1997년 천왕문과 법왕루(法王樓)가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중종 때 이 절의 주지였던 보우대사 좌상
대웅전 앞 채인 법왕루
법왕루와 대웅전 사이의 탱화, 법왕루와 대웅전 사이를 철골과 유리로 지붕을 해 덮었다.
왼쪽이 대웅전
산수유 꽃망울, 꽃이 피려다 밤새 내린 눈과 차가운 샘 바람에 움추러 들었겠다.
대웅전 뒤쪽에서의 전경
추사가 죽기 3일전에 썼다는 '판전'의 편액
모처럼 날씨는 청명했는데, 새벽에 내린 눈탓인지 바람이 찼다. 꽃샘추위라지만 오전에 쌓였던 눈은 다 녹아 없어지고, 거대한 빌딩 계곡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골짜기 바람이 살을 깎는 듯 차가웠다. 전통미를 보존하는 불사를 일으켰으면 좋았으련만 천박한 자본주의의 손때가 너무 많이 묻은 것 같아 보기에 썩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