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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한양릉

 한양릉(汉阳陵은 한(漢)의 네 번째 황제인 경제(景帝) 유계(刘启)와 황후가 합장된 능원(陵园)이다. 센양시[咸阳市] 웨이청취[渭城区] 정양전[正阳镇] 장자완[张家湾]에 위치하며, 시안시[西安市]의 북쪽에 있다. 능원(陵园)의 면적은 약 12㎢이다. 제릉능원(帝陵陵园), 후릉능원(后陵陵园), 능묘(陵庙), 배장묘원(陪葬墓园), 형도목지(刑徒墓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우천례팅[文物陈列厅]을 참관할 수 있으며, 현재 한양링[汉阳陵]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새로 세워진 디링와이짱캉바오 후잔스팅[帝陵外葬坑保护展示厅]이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현대화된 제왕릉(帝王陵)에 위치한 지하박물관(地下博物馆)으로서 총 건축면적이 7,865㎡이며, 중점적으로 전시되고 있는 81개의 외장갱(外葬坑) 중 10개가 이곳에 있다. 지하의 갱도에 세워졌으며, 유리로 된 통로가 깔려있어 관광객은 발 밑에 있는 유리를 통해 배장품(陪葬品)을 볼 수 있다. <두산백과>

 

  함양은 서안의 동북부에 위치하며 함양 국제 공항은 서안에서 1시간 거리이다. 서안에 유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서안에서 멀리 떨어진 함양에 국제공항을 건설했는데, 아이러니하게 국제공항 가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 한양릉이라고 한다. 함양은 진시황이 다스리던 진나라 황궁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함양은 관중평야에서도 위하(위수)의 하류지역으로 여산을 끼고 있어 풍수적으로도 좋은 위치에 있다. 아방궁은 함양의 궁전 가운데 정전의 전전(前殿)이었다. 전전(前殿)은 궁전 중에서 전방에 두는 대표적인 건물로 정전(正殿)·대전을 말한다.  

 

 한양릉으로 오르는 길

 

한양릉 발굴터

 

한양릉 표지석 - 표지석의 간자체의 한자를 읽지 못해 답답했다. 나중에서야 '汉'은 한 수 한(漢), '阳'은 볕 양(陽)의 간자체라는 걸 알고 쓴 웃음을 지었었다.  

 

 능 앞에 커다란 누각 정문을 짓고 담장을 둘러 복원하여 보존할 모양이었다. 누각 정문 공사중이었다.

 

한양릉 지하박물관

 

지하박물관 입구

 

지하박물관 현관

 

한양릉 지하 발굴터-유리로 벽을 만들고 일부는 발굴현장 위에 유리판을 깔아 관람을 돕고 있었다. 토용은 실제 사람보다 작은 인체의 1/4 크기인데, 몸통은 일률적으로 찍어낸 후 나무로 된 팔을 조립했다. 인형에 비단옷을 입혔으나 비단옷과 나무팔은 썩고 삭아 도용만 남았다. 진시황 병마용은 사람보다 크지만 한나라 때는 경제성을 고려하여 작게 만들었을 것이라 한다. 사람형상의 도용뿐만 아니라 지하에서 황제가 굶지 않고 영생할 수 있도록, 무수한 개와 양, 돼지 소형상의 도용들이 있었다.

 

발굴현장 위의 유리 보도

 

도용들은 본디 서있는 형태였으나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진 것이라 한다.

 

본래의 모습으로 재현한 전시물 

 

 지하 박물관 옆의 기념품 판매장, 한나라 당나라 시대의 유물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다.

 

돌아 나오는 후문 출구에 있는 기념품 상점

 

경내에 멀리 보이는 또 하나의 능침

 

서안으로 돌아오는 길의 차창밖 풍경, 멀고 먼 지평선까지 옥수수밭이 이어져 있고, 그 가운데 오늘의 중국을 상징하는 듯 거대한 발전소가 있었다.

 

  함양의 한양릉 주변에는 많은 고분들이 세월에 노출되어 바람을 맞고 있었다. 누구의 묘지도 알려지지 않은 고분들... 앞으로의 발굴작업을 통해서 지하에서 밖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곧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며 말로만 듣던 위수를 바라보면서, 2000여 년 전의 유적들이 즐비한 중국 대륙이야말로 진정, 인류문명의 보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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