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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갑사 그 동안 서너 번 들렸던 갑사. 절 중에 으뜸이라 '甲寺'라 한다고 하지만, 내 보기엔 으뜸이 될 만한 사찰은 아니다. 갑사보다 수려하고 고풍스런 가람들이 많은 터에, 으뜸이란 말은 과유불급이다. 때마침 일요일이라 코로나 사태임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정리되지 않은 개천변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주차료는 3000 원을 받았는데, 여기 절들은 주차료가 일정치 않았다. 같은 공주 권역인 마곡사는 잘 정비된 주차장임에도 무료였고, 대전권역이지만 봉우리 하나 넘어 동학사는 4000원을 받으니, 중구난방이다. 계룡산이 국립공원이라 하나,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인데, 그를 핑게삼아 상술을 부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입구에 즐비한 식당가를 지나, 인적이 없는 옛길로 걸어 올라갔다. 호젓..
대청호 청남대 한글날, 날씨가 좋았다. 하늘엔 새털구름이 깔렸다. 그동안 몇 번 가보려다 포기했던 청남대에 갔다. 문의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해서 대청호의 구불구불한 길을 돌고 돌며 가을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모두 마스크를 쓰고 발열 체크까지 하고 입장했지만, 마스크를 벗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풍광 좋은 대청 호숫가에 자리 잡은 대통령 별장 청남대는 주변에 철망 울타리와 원형 철조망을 올려놓아 철책선을 방불케 하여 아름다운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권력의 서슬이 시퍼렇던 전두환 폭정 시절, 민생과 관계없이 국민의 세금으로 호화롭게 지어진 청남대 경내를 거닐며,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말 나쁘단 생각이 들었다.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여 안보타령과 정쟁으로 긴장감..
태화산 마곡사 벌써 기온이 뚝 떨어져 조석으로 쌀쌀했다. 대전에 며칠 머무르는 사이 짬을 내서 마곡사를 찾았다. 가을이 무르익는 마곡사 경내는 아침 시간이라서인지 탐방객이 없어 고즈넉했다. 상가들이 모여있는 주차장에서부터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일주문에 이르렀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탓인지 모든 게 평화롭고 여유 있어 보였다. 상가 앞 넓은 주차장은 충청도 인심을 반영하는 듯 무료로 운영하고 있었다. 동학사 주차장은 시간에 관계없이 4000원을 받았는데... 일주문을 지나니, 전에 보지 못했던 산속 숲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계곡길에서 벗어나 숲길로 접어들자, 여기저기에 재래종 산 밤톨들이 흩어져 있었다. 동심에 빠져 밤톨들을 주으며 숲길로 마곡사로 갔다. 숲 사이로 절집들이 조금씩 비치기는 했으나 잡목이 무성한 탓으로 ..
계룡산 동학사 일 있어 대전에 내려갔던 길에 동학사를 찾았다. 70년대 후반 겨울에 갑사에서 산을 넘어 이곳을 지났던 적이 있었다. 가랑비를 맞으며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홀로 산을 넘을 때, 어찌나 외롭고 쓸쓸하던지 다시는 홀로 여행을 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었다. 그러나 나이 들어 카메라를 친구 삼다 보니, 오히려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여행의 진수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홀로 생각할 시간이 많고,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표현하려고 궁리하면서, 제법 자연의 풍광을 음미할 줄도 알게 되었다. 계룡산 남쪽 계곡을 따라 길게 가람을 배치한 동학사는 신라 때 창건된 절로 현재는 마곡사의 말사이다. 동학사가 유명하게 된 것은 예로부터 충신들의 충절을 기린 사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 태조 때 신라 충신 박제상을 추모..
서산 내포 가야산 보원사지 사람들을 피해 한적한 곳이라 생각해서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마애삼존불상을 찾아갔다. 유감스럽게도 삼존불상으로 가는 다리 앞 나무 그늘 아래 노천 식당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왁자지껄 떠들며 식사를 하거나 환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저러고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일 듯 싶었다. 주차 후 계곡을 건너려 했더니, 아뿔사 다리 입구를 금줄로 칭칭 감아 출입을 막고 있었다. 이른바 삼존불상으로 오르는 계단 데크 공사를 한다는 것이었는데, 먼 거리를 달려온 입장에선 황당했다. 하릴없이 되돌아 나오려는데, 보원사지 철불상 현수막이 눈에 띄어 아쉬움을 달래고자 용현골짜기 위로 차를 몰아 나갔다. 용현 계곡에는 아직도 계곡 가장자리에 평상들을 깔아 놓고 장사..
조선 최고의 명당 남연군 묘 모처럼 날씨가 쾌청했다. 어젯밤에 비가 온 탓인지 티끌 먼지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날이었다. 집콕하기엔 너무 아까운 날이어서 외출을 감행했는데, 인적 없는 곳을 고르다 보니 덕산에 있는 남연군 묘가 생각났다. 영화 '명당'이, 이 묏자리를 두고 안동 김씨 세력과 대원군이 암투를 벌리는 내용이던데, 대원군은 그의 후손 두 명이 왕이 될 자리라는 풍수쟁이의 말을 듣고, 본디 있던 가야사를 불태우고 석탑이 있던 자리에 아버지의 묘를 멀리 연천에서부터 1846년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묘자리는 왕을 배출하기는 하지만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달이 우선이었던 대원군은 기어코 아버지 남연군(1788∼1822)의 묘를 쓰고 말았다. 사도세자는 혜빈 홍씨와 ..
공세리 성당 삽교호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세리 성당에 들렸다. 코로나 여파로 성당 진입로 입구에 손세정제와 방명록이 있었다. 성당이 있는 언덕 위, 박물관과 사제관으로 가는 길목을 금줄로 막아 놓았다. 하는 수 없이 성당 아래 둘레길인 십자가의 길 14처를 돌면서 인적 없는 숲 속을 거닐었다. 산책 중에 기도하는 남자를 보았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14처 곳곳에 멈추어 기도하는 모습으로 보아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보였으나 마스크를 쓰지 않아 그를 멀리 우회해서 걸었다. 왜 쓰라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걸까. 남을 위해서라기 보다도 자신의 방역을 위해서 쓰라는 것인데...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마스크 없이 편히 숨 쉴 수 있는 세상이 그립다. 모든 것이 불편하다.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니 답답해서 미칠 ..
삽교호 공원 집콕에 지쳐 바다라도 보고픈 마음에 삽교호로 갔다. 그동안 몇 번 들렸던 곳인데, 몇 해 사이에 너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엔 삽교방조제 준공 기념비와 함상공원들만 있었는데, 이젠 대관람차를 비롯해서 놀이 공원과 캠핑장까지 조성되어 있었다. 코로나 염려에도 불구하고 바람 쐬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도 나처럼 일요일이라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산책꾼들이겠다 싶었다. 생명줄 같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대놓고 한 마디씩 하고 싶었지만, 내가 알아서 멀리 피해 지나치곤 했다. 젊은이들도 젊은이지만 나이 많은 노인들이 마스크 없이 크게 떠들며 다니는 걸 보면, 밉상이 따로 없어 보였다. 집콕이 최선이라는데, 집을 벗어나 관광지에 나온 내 탓이 크다고 자책하며 가볍..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오후 다섯 시 넘어, 시원한 바람 따라 길을 나섰다. 기운 햇살 탓에 햇볕이 뜨겁지 않았고, 비 내린 후라 날씨도 선선했다. 유엔군 참전 초전비를 참관하고 기념관 뒤쪽에 조성된 평화 공원을 찾았다. 작년에 조성된 탓으로 주변이 조금은 어수선했으나, 이곳에서 최초로 북한군을 맞아 산화한 미국 스미스 부대원들을 기리는 의미가 더 깊어 보였다. 대기가 맑고 깨끗하여 시계가 거의 무한대로 열려, 공원 전망대에서는 과천 관악산까지 보였다. 가볍게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왔다. 코로나 때문에 닫았던 기념관을 개방하고 있었다. 사간이 늦어 들어가지 못해 다음을 기약했다. 주차장 앞 기념관 앞 기념비 앞 참전국 국기 유엔군 초전 기념비, 북한군의 남침을 지연시킨 스미스 부대원을 기리고 있다. 평화공원으로 내려가는 길 ..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 남쪽에선 호우가 내린다는데, 여긴 날씨가 너무 맑고 고왔다. 가시거리도 멀어서 모처럼 독산성에 올랐다. 유물발굴 작업 때문에 서북쪽 성벽에 비닐을 덮고 울타리를 쳐서 출입을 막았다. 북쪽 암문부근에서 산 가운데 길로 우회하여 세마대에 올라 동남쪽 성벽을 걸어서 한 바퀴 돌아왔다. 공교롭게 산 위에 오르자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어 곧 비라도 쏟아질 것 같았으나, 다행스럽게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마스크 쓰고 다니는 게 답답해서 한적한 곳에선 마스크를 벗어 들고 걸었다. 사람을 마주치면 마스크를 쓰고 지났는데, 마스크 없이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보다 나를 위해 쓰고 다닌다고 생각하고 답답함을 참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는 것 같다. 모처럼 독산성 길을 걸으면서 북으로는 관악산, 동편으로..
양평 세미원과 두물머리 날씨가 무덥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임에도 이리도 많은 행락객들이 운집해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집콕에 지쳐 정신까지 피폐해져 모처럼 나들이 나갔는데, 인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세미원 주차장은 이미 발 들일 공간조차 없었다. 하는 수없이 멀리 떨어진 공영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입장했다. 30도를 넘는 더위는 세미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사람을 지치게 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많아서 관람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20% 정도는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는 듯했다. 무더위에 마스크를 쓰고 걷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더운 날씨 덕에 마스크 안에 땀까지 차올랐으나 벗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능한 대로 사람들과 떨어져 걸으려 했음에도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임에도 이리 많은 사람들이..
탄도항 누에섬 대부도에서 방조제를 통해 화성시로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탄도항에 들렀다. 이곳에서도 수요일은 휴무란다. 안산 어촌박물관도 휴관이어서 누에섬이 보이는 방조제로 나갔다. 저녁 시간이라 누에섬 개방 시간도 이미 지났거니와 밀물이 들어오는 형국이어서 잠시 해변을 거닐었다. 내륙과 달리 바닷가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찬 바람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동하고 말았다. 해넘이 풍경으로 유명한 곳인데, 오월의 해가 너무 길어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탄도항 맞은편은 화성시 전곡항인데, 요트항으로 유명하다. 시간이 늦어 요트항에는 들르지 못했다. 등대가 있는 누에섬, 그 뒤로 보이는 섬이 화성시 제부도이다.
선재도 목섬 예전에 선재도에서 간재미 무침을 맛있게 먹은 적이 있어서 기억을 더듬어 해산물 센터를 찾았으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분위기도 썰렁해서 돌아 나와 인근 목섬으로 향했다. 때마침 밀물이 들어오는 시기여서 싸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섬에 들어간 사람들을 향해 빨리 나오라는 경고방송이 이어졌다. 결국 목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닷가에서 멀리 바라 보기만 했다. 선재도 목섬
영흥도 십리포 해변 모처럼 푸른 하늘이었다. 햇살이 퍼져 여름 날씨 같았으나, 영흥도 바닷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물 빠진 갯벌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언 가를 캐고 있다. 내 보기엔 별 거 없을 것 같은데... 산이나 바다에 나가면 아직도 여전히 수렵과 채취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초적 본능이라 뭐라 할 수 없지만, 먹을 것도 되지 않는 것들을 거둬가는 것을 보면 안스럽다.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요즘 세상에 씨까지 말라가는 어패류들을 보면 마음이 그리 좋지 않다. 여유있게 살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마음까지 상쾌해졌으나 가볍게 차려 입고 나온 옷차림이 문제였다.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찬 바람에 콧물이 비치었다. 해안에 나가 바닷가를 걷다가 십리포 서편의 산책로를 걸었다. 바위절벽 앞..
광교 호수 공원 2 비 온 다음 날, 날씨가 흐렸지만 광교 호수로 산책을 나섰다. 공용 주차장에 주차하고, 신대 저수지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았다. 코로나가 다시 극성을 부린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마주치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덕에 지루한 줄 모르고 둘레를 힘들이지 않고 걸었다. 자전거 산책도 좋을 듯하다. 호숫가로 새로 옮긴 검찰청과 법원, 예전 건물도 쓸만한데, 새 청사를 지은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특징도 없이 그저 밋밋한 건물이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신대 저수지 제방 제방 건너 언덕 위에 있는 하늘 공원
광교 호수 공원 1 구름 한 점 없는 오월의 하늘이었다. 누가 오월은 계절이 여왕이라 했던가. 청자색 푸른 하늘에 아카시아 달콤한 꽃향기가 바람에 날려왔다. 바람이 세게 불어 두꺼운 봄점퍼를 입었는데, 5월의 날씨답게 이내 땀이 나기 시작했다. 광교 호수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개중엔 마스크 없이 큰 소리로 떠들며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서 조심스러웠다. 집콕에서 벗어난 해방감도 좋지만,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이 코로나를 막았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내 보기엔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가래침을 함부로 뱉는 행위, 코로나 사태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턱에 걸치고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 전철역에서 에스칼레이터로 움직일 때 걷거..
화성시 당성 신라시대 중국으로 가는 통로였던 당성이었다.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중국으로 가기 위해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숲 속에서 노숙하며 물을 마셨는데, 바가지로 사용한 것이 해골이어서, 원효대사는 무상감을 느껴 중국행을 포기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오랜만에 들렸더니 그동안 깔끔하게 단장되고 있었다. 성벽 주변에 무성했던 잡목들을 제거하고 성벽 위에는 잔디를 심고 사람들이 걷는 통로에는 마직포를 깔아 산뜻해졌다. 역사 유적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양새여서 보기에 좋았다. 7월 말까지 정비 보수공사가 끝나면, 자랑스러운 유적지로 각광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새로 들어선 당성방문자 센터, 새로 산뜻한 주차장도 마련하여 보기에 좋았다. 예전에 사용했던 당성 입구에 있는 관리 사무소, 이제는 철거하는 ..
화성시 제부도 날씨가 오락가락한다. 며칠 전엔 여름날처럼 덥더니, 오늘은 찬 바람이 몰아쳤다. 황사까지 뿌옇게 끼여 두꺼운 봄 점퍼를 꺼내 입고 나섰다. 제부도 물길이 오후 7시까지 열려서 여유 있게 제부도에 입도했다. 차에서 내리자 바닷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두꺼운 옷을 입고 마스크까지 했건만, 추위에 콧물까지 줄줄 흘러내렸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지 않아 매바위 입구 갯벌체험장 부근에서 갈매기들과 한참을 놀았다. 녀석들은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으려고 거센 바람에 저항하며 제 자리에 떠있다가 던지는 새우깡을 잽싸게 나꿔채 먹었다. 새우깡을 들고 주려다가 손가락을 물릴 뻔했다. 녀석은 기술적으로 손가락 사이에 있는 새우깡만 쏙 빼먹고 다시 기회를 노렸다. 새우깡에 길들여진 기막힌 녀석들이었다. 제부도 서해안..
강화 역사 박물관과 전등사 역시 코로나가 문제였다. 강화 역사박물관에 갔으나 무기한 폐쇄로 문을 닫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박물관 옆에 있는 강화 고인돌 유적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유명하다는 강화 고인돌 유적 공원 안에는 애석하게도 실물 고인돌 하나밖에 없었다. 고인돌 유적 공원 울타리 주변에 세워 놓은 것은 이곳저곳의 고인돌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며 소개하는 조악한 수준의 것들이었다. 놀라운 것은 야외 공원 화장실이었는데, 관리를 하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여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상태였다. 코로나 때문에 박물관 폐쇄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 옆에 있는 야외 화장실을 청소하지도 않고 방치한다는 것은 그곳 직원들의 직무유기였다. 부근에서 마주친 청원 경찰에게 도움을 받을까 화장실을 문의해봤지만 헛수고였다. 기분이 언짢아 볼 멘 소리..
강화 교동도 아침에 햇살이 곱길래 강화섬에 가려고 작정했다. 강화 평화 전망대에서 북한땅을 촬영하려고 500mm 렌즈까지 챙겼다. 내비게이션 만 믿고 따라갔는데, 사당역 교차로로 안내하는 바람에 차가 막혀 죽도록 고생했다. 내가 아는 길보다 나을 줄 알았는데, 실시간 교통정보를 제공한다는 내비게이션 안내는 아직까지도 단순하고 기계적일 뿐이었다. 사당역 부근부터 동작동 현충원 앞 큰 도로까지 나가는데 족히 한 시간은 걸렸다. 올림픽대로부터는 막힘이 없어 강화 평화전망대까지 순탄하게 달려갔는데, 아뿔싸 전망대 입구에서 경비병들이 코로나 때문에 전망대를 폐쇄했다고 했다. 푸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소리여서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어 가던 길을 달려 교동도까지 갔다. 이따금 TV에 소개되던 교동도 재래시장인 대룡시장에 가서 때..
동탄 호수공원 신도시마다 유행처럼 만들고 있는 호수공원인지라 모처럼 동탄호수공권으로 나들이 나갔다. 동동탄 도시 기반 공사를 할 때 지났던 곳이라, 그 모양이 사뭇 궁금했었는데,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쾌적해 보였다. 호수 주변에 벤치와 흔들 그네들을 설치해서 인근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예쁘게 꾸며 놓았다. 주변에 아직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라 완성된 모습은 아니었지만, 나름 시민들을 위한 쾌적한 공간으로 생각되었다. 한 바퀴 돌며 산책하던 중 호숫가 언덕에 정숙옹주 태실터가 있다고 해서 올라가 보았다. 산 정상 위에 태실비만 덩그러니 서있었는데, 앞부분은 글씨가 마모되어 정확히 읽을 수 없었고, 뒷부분의 명문은 뚜렷해서 판독할 수 있었다. 명나라 만력제 16년 7 7월 11일 을시에 세웠다고 한다. 만력제는 명나라 ..
화성 융건릉 아침에는 날씨가 흐리더니, 오후에 햇살이 쨍하게 내비치었다. 바람이나 쐬려고 화성 융건릉에 나갔다. 동탄 병점 인근 회사원 가족들이 다 나왔나 보다. 주차장은 이미 만석이어서 차를 빙빙 돌리다, 근처 음식점 주차장에 두고 융건릉 안으로 들어갔다. 엊그제만 해도 추워서 떨었는데, 벌써 한여름이 찾아왔다. 봄옷을 걸치고 나갔음에도 더위를 주체할 수 없어 헉헉거렸다. 코로나 방역 마스크 덕에 숨 쉬는 게 더 힘들었다.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융건릉 관리 사무소에서 방송으로 마스크 쓰고 2m 거리를 유지하라고 계속해서 안내 방송을 하던데, 방송도 형식적이었고 관람객들도 소귀에 경읽기였다. 답답함에 시원한 자연을 즐기러 나온 것은 이해되지만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 할 것이나, 방심해서 잊고..
수원화성 부처님 오신 날, 날씨가 화창했다. 영산홍이 한창일 화성 방화수류정에 나갔다. 꽃은 활짝 피었는데, 코로나 사태가 무색할 정도로 인파들이 몰렸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고, 마스크를 턱에 건 채로 담소하며 활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방화수류정 아래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 봄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은 것은 처음 보았다. 방화수류정에서 화성행궁으로, 하성의 남문인 팔달문을 거쳐, 시장 골목으로 한 바퀴 돌았는데,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니 코로나 사태는 지나 간 듯했다. 모럼 활기찬 인파를 보게되니, 반갑긴 한데, 아무래도 끝나지 않은 바이러스 상황이 염려스러웠다. 하루빨리 이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아래에서 봄맞이 하는 사람들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화..
보련산 보탑사 보탑사는 처음 들어보는 절이었지만, 법주사 팔상전이나 금산사처럼 목탑 구조 법당이라 불원천리 멀다 않고 찾아간 곳이었다. 절의 가람배치와 건물구조가 전통절집과 많이 달라 보였다. 건물들이 대부분 아기자기하고 주변에 예쁜 꽃들을 심고 가꾸어 한껏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초파일을 맞아 주변 소나무 가지에 열매처럼 걸어 놓은 빨간 연등도 예사로운 솜씨가 아니었다. 대부분 절들은 시중에서 대량 제작한 연등을 법당 앞에 줄을 띄우고 걸어 놓는데, 이곳에선 손수 만든 빨간 연꽃잎등을 나무에 달아서 내 보기에 훌륭했다. 비구니 스님들이 1992년 불사를 시작하여 2003년에 완공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그 역사는 짧으나, 비구니 스님들의 섬섬옥수 정성들이 곳곳에 스며 있어서 낯선 구조이지만 나름 보기에 아름다웠다. ..
길상사와 김유신 탄생지 진천에 와서야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사당을 세웠는데 그것이 길상사였다. 하루 사이에 날씨가 뜨거워져서 여름날씨처럼 더웠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가니 텅 빈 공간에 사람이 없었다. 사당에 오르려 했으나, 사당문이 굳게 잠겨져 있었다. 코로나 때문일까. 아니면 군당국의 무심한 행정 때문일까. 멀리서부터 이곳을 보러 찾아왔는데, 안에 들어가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고 야속했다. 다행히 길상사 왼편에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있어서 그리로 따라 올라가며 측면에서 도둑촬영하듯, 몇 컷을 찍고 내려왔다. 아마도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놓고 관리하기 귀찮으니까 자물쇠로 잠가놓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았다. 괜한 걸음 한 것 같아 후회 막심하기도 했거니와 군청..
진천 농다리 하늘다리에서 초평저수지를 돌아 진천 농다리로 갔다. 농다리는 고려초에 만들어진 다리로 여러 개의 돌로 징검다리처럼 교각을 쌓고 그 위에 크고 넓적한 돌을 건너질러 만든 돌다리였다. 중부고속도로로 이 부근을 지날 때마다 궁금했던 곳이었는데, 비로소 그 궁금증이 풀리게 되었다. 농다리 주차장을 지나 중부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면 미호천 가에 넓은 소형차 주차장이 있다. 개울 건너 맞은편 산 위에 정자를 짓고 인공 폭포를 만들었다. 코로나 사태 때문인지 폭포는 가동하지 않고 산 위에 쓴 "생거진천"이란 푯말이 인상적이었다. '생거진천'이란 말은 이곳에 전해오는 옛날이야기인데, 이곳 진천에서는 진천군의 구호처럼 대단한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은 뒤에 용인에 머물러라." 즉 '생거진천 사거..
생거진천 하늘 다리 生居鎭川(생거진천) 초평호수 하늘다리, 신록이 우거지는 계절에 잔천군 청소년 수련원 앞 초평호숫가에 있는 하늘 다리를 걸었다. 모처럼 날씨도 화창하고 따뜻해서, 방콕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었다. 지방자치제마다 출렁다리를 놓아 홍보 도구로 삼는 게 요즘 추세인가 보다. 호수에, 또는 계곡에 출렁다리를 놓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데, 이곳 하늘 다리는 규모가 아담하고, 진천의 유명한 농다리와 연결되어 한나절 트레킹 코스로 안성맞춤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 아니어서, 큰 위험은 없어 보였다. 시원한 호숫가에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모처럼 바깥바람을 원 없이 쏘인 하루였다. 청소년 수련원 앞 하늘 다리 초입 데크 이곳 하늘 다리는 반은 일반..
진천 배티 성지 청룡사 보수 공사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청룡사 북쪽 서운산 너머에 있는 석남사로 방향을 돌렸다. 서운산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청룡마을에서 고개를 넘어 충북 진천으로 들어갔다가 왼쪽으로 돌아 서운산 고개를 넘었다. 그 고개가 바로 배티인데, 고개 넘기 바로 전 충북 진천 땅에 배티성지가 있다. 예전에 들려본 곳이긴 했지만, 잠깐 내려 성지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곳은 1981년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들어 교우촌을 이루자, 이곳에 신학교를 짓고, 이곳을 중심으로 신부들이 사목활동을 하였다. 김대건과 함께 마카오에 유학하여 신부 수업을 받았던 최양업이 김대건 신부 순교 후, 1849년 중국 상해에서 신부 서품을 받고 조선의 두 번째 신부로 귀국하여, 1850년부터 이곳 배티를 근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