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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계룡갑사의 가을

 기상하여 커튼을 제치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완연한 가을이다. 기온도 뚝 떨어져 아침 온도가 10도 안팎이다. 간단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계룡산이 가까워지면서 닭볏 같은 기묘한 산봉우리들이 눈앞에 전개되었다. 언제 보아도 참으로 신묘한 형상이다. 제법 눈에 익은 갑사 가는 길이었음에도 주차장 근처에서 내비게이션이 심술을 부렸다. 좁은 편도 일 차선에서 엉뚱한 길로 안내하는 탓에 잘못 들어섰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앞으로 가야 했다. 펜션들이 즐비한 마을의 좁은 길을 돌고 돌아 주차장에 들어섰다. 

 어젯밤까지 내린 보슬비 때문에 갑사로 가는 길 위에 젖은 낙엽들이 쌓여 있었다. 송풍기로 낙엽들을 날리는 굉음과 휘발유 타는 냄새가 요란했다. 시간을 두고 조금만 참으면 저절로 말라서 바람에 날아갈 낙엽들을 애써 치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갑사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으로 가는 포장된 도로에서 벗어나 이른바 자연관찰로 쪽으로 우회해서 호젓한 산길을 걸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산골짜기 풍경에 이마가 시릴듯이 상쾌했다. 젖은 풀잎들을 밟으며 잊혀진 듯 산길에 서있는 당간을 지나 본디 갑사가 있던 자리였다는 대적전 앞을 통과하여 갑사에 들어섰다. 

 70년대 중반, 겨울철에 이곳 갑사에 들려 가랑비를 맞으며 산을 넘어 동학사로 가던 기억이 떠올랐다. 낙엽에 떨어지는 가랑비 소리가 온 산을 울리듯 크게 들렸었다. 산 너머 남매탑에선 기어코 눈발로 변해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산속에서 유일하게 만났던 여스님에게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카메라를 건네자, 그 스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야속하게 총총히 사라졌다. 덕분에 기념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던 쓸쓸한 여행길이었는데, 이젠 휴대폰 셀카로도 쉽게 찍을 수 있는 내 얼굴임에도 사진을 찍고 싶지 않다. 길지도 않은 수십 년 시간의 흐름 뒤에 사진 속 얼굴엔 주름이 하루가 다르게 깊게 파이며 늘어간다. 가는 세월을 어찌 잡을 수 있을까마는 엊그제 같이 젊은 시절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스쳐 지나간다.            

 

 계룡산 능선, 관음봉에서 이어지는 문필봉과 연천봉이 신비롭기만 하다. 

 

갑사 철당간, 신라 중기 문무왕 20년(630년)에 만든 것이다. 당간은 깃발을 거는 장대로 신라시대 유적이라니 유구한 역사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철당간에서 대적전으로 오르는 계단

 

승탑과 대적전, 승탑은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갑사 뒤 중사자암에 있던 것을 1917년 이곳으로 옮겼다.  대적전은 본디 갑사의 큰 법당이 있던 곳이라니, 옛갑사의 본전인 셈이다.  

 

배롱나무와 대적전

 

대적전을 지나 계곡을 건너 갑사로 들어가는 길

 

계룡갑사 현판을 단 강당과 범종루, 종루 앞에 주차된 차량들이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저 차들도 자연의 일부라 생각하면 또 자연이 될 것이다. 법당으로 가는 계단에 설치한 쇠구조물도 목조건물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연등을 달기 위한 구조물로 보인다. 연등을 하나라도 더 달아야하는 세속적인 자본주의 관념이 스며든 것 같아 보기에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범종루 위 진해당 끝쪽에서 바라보는 갑사 경내, 계룡산 연봉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다. 

 

청명했던 하늘에 순식간에 구름들이 모여들었다. 구름이 만드는 그늘도 나름 볼만한 장관이었다. 

 

진해당과 대칭이 되는 적묵당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보는 대웅전. 

 

삼성각

 

장판각과 관음전

 

장판각, 월인석보 판목을 보관하고 있다.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하고 석보상절을 설명으로 하여 세조 5년에 편찬한 불교대장경이다. 석보는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의미한다. 

 

관음전 뒤의 대적선원

 

석조여래입상을 모신 곳, 본디 갑사 뒤 사자암에 모신 것을 옮겨왔다.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로 왼손에 작은 약단지를 들고 있다.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여래입상 앞 골짜기

 

공우탑, 정유재란 때 소실된 갑사를 중건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황소를 기리는 탑으로 전해온다.

 

갑사 아래, 내려가는 길옆에 있는 찻집.

 

포장된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사천왕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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