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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신선대

  지난밤에 궂은비가 내린 탓으로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밀린 숙제 풀듯 눈에 아른거리던 도봉산을 향해 작심하고 떠났다. 늦게 출발한 탓에 도봉산 아래 도착한 시간이 12시였다. 등산로 입구로 들어서자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일찍 출발했어야 했을 것을... 길지 않은 산행길이긴 하지만 해가 짧아져 벌써 6시쯤에 해가 진다. 

  날씨는 가을답게  다행히 20도 내외라 산행날씨론 적격이었다. 탐방센터에 이르기까지 길가에 무수한 음식점들과 등산복 가게들이 즐비했다. 사람도 많고 상점도 많았다. 도로 따라 전선줄도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살 만큼 되었으면 뒤엉킨 전선들을 정리했으면 좋겠다. 명색이 국립공원인데 탐방로 주변이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었다. 등산로 입구부터 안내표지도 제대로 된 것이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서 등산로를 찾았다. 

  예전에 두어 번 왔던 곳이긴 하나, 십 년이 넘은 세월이라 그 흔적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탐방안내소에서 지도를 두 장 얻어 참고하려 했으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외국인들도 많았는데, 자세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옛 기억을 더듬어 가장 빠른 길로 기억되는 천축사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홀로 걷는 산행이라 홀가분했다. 산행 때마다 무거운 카메라가 부담되지만 핸드폰 사진은 아직 마음에 차지 않는다. 쉬엄쉬엄 오르며 내리며 사진 찍는 재미도 쏠쏠하니, 아마도 카메라와 이별하긴 글렀다.    

 

 

도봉탐방지원센터

 

길가에 있는 소설가 이병주의 '북한산 찬가'

 

도봉동에서 양계장을 하며 참여문학의 새 지평을 열였던 김수영 시비가 폐허 된 도봉서원 울타리 밖에 초라하게 서있었다. 암울했던 시대에 깨어있는 민중의 각성을 촉구하며 문학의 현실참여를 온몸으로 실천했던 시인이었는데, 그가 떠나간 자리가 쓸쓸해 보였다. 교통사고로 타계한 뒤 발견된 그의 유작 '풀' 한 구절이 그를 기억하게 하고 있었다. 

 

폐허가 된 옛 도봉서원 자리

 

멀리 선인봉(708m)의 뾰족한 봉우리가 보였다.

 

드디어 급경사가 시작되는 계단, 길고 지루한 급경사 계단을 오르자, 숨이 가쁘고 상태가 좋지 않은 귀가 먹먹하기 시작했다. 나무 계단 뒤에는 돌계단이 이어졌다.

 

예전 기억을 좇아 천축사 방향으로 걸었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 같은 일주문이 반갑게 나타났다.

 

천축사 입구, 금강역사가 지키는 문 뒤에 작은 불상들을 모셨다.

 

작은 불상들을 모신 뒤편에 있는 작은 암석을 파고 만든 마애불.

 

천축사 정면, 뒤로 선인봉이 버티어 굽어보고 있었다.

 

천축사 뒤편의 옥천석굴원, 천축사는 이전에 옥천사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가파른 언덕길에 나타나는 마당바위 이정표

 

마당바위에서 바라보는 서울시가. 멀리 롯데빌딩과 남산 서울타워가 보였다. 관악산, 청계산 사이로 광교산까지... 

 

자운봉까지 400m, 산길 3-400m는 장난이 아니다. 이곳 역시 평범하지 않은 어려운 길이었다.

 

자운봉 오르기 직전의 선인 쉼터, 왼편에 만장봉과 아래쪽 선인봉이 우람하다. 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쉬었다.

 

쇠난간을 두고 내려오는 사람과 동선이 겹쳐 마주칠 때마다 머뭇거려야 했다. 오르고 내리는 길을 구분해서 만들었으면...  

 

자운봉 턱아래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롯데타워가 말뚝처럼 보여 부근의 지형을 짐작케 했다.

 

자운봉과 신선대 사이 나무 계단을 통해 올라간다. 자운봉 측면.

 

자운봉 옆 신선대

 

신선대 오르는 길에서 바라보는 자운봉

 

의정부 방향, 자운봉 뒤 포대능선으로 가는 포대정상

 

해발 726m의 신선대, 도봉산의 최고봉인 자운봉은 오르지 못하니, 신선대가 오를 수 있는 도봉산의 정상인 셈이다.

 

 신선대에 오르니 맑고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왔다. 막힘없는 남쪽의 북한산과 서울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를 때 흘렸던 땀이 금방 식었다. 모자를 벗고 서늘한 바람으로 땀을 식히며 세상사의 오욕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눈앞에 두고 바라보며, 청량한 공기를 호흡하는 이 순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이 맛에 산에 올라 정상에 서는 것일 게다. 오를 때는 힘들었지만 정상에서 맛보는 상쾌함이 커다란 감동으로 몰려왔다. 

 원초적이긴 하지만, 산정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호사스런 자동차도, 고래등 같은 집도 소용없다. 누구나 자신의 두 발로 한 발 한 발 땀 흘려 올라와야 한다. 빈부귀천이 따로 없이 누구나 자신만의 체력으로 올라와야 느낄 수 있는 상큼한 아름다움이다. 

 

도봉산 능선 넘어 북한산이 보였다. 역광이라 인수봉은 백운대 그늘 뒤에 숨어 잘 보이지 않았다.

 

신선대에서 내려다보는 만장봉과 선인봉

 

자운봉과 만장봉 선인봉

 

자운봉과 Y계곡 건너편의 포대정상

 

신선봉 앞 전경, 왼쪽 불암산에서 북한산까지 파노라마

 

도봉산의 주봉인 자운봉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을 내려다보며, 떠나기 싫은 신선대에서 하산하기 시작했다.

 

Y 계곡 건너 자운봉 뒤 포대 정상

 

신선대를 우회하는 등산로, 욕심 같아서는 저리로 가서 내려가고 싶지만, 시간이 늦은 탓에 아쉬움만 남겼다. 

 

자운봉과 신선대 사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계단길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자운봉 아래 하산길

 

만장봉과 선인봉 아래 쉼터에서 앉아 숨을 고르며 잠시 쉬었다.

 

마당바위 위 갈림길, 잠시 망설이다 올라왔던 길이 가장 빠른 길 같아서 하산하기로 했다.

 

하산길의 마당바위

 

도봉산 탐방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