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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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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쟁 기념관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용산 전쟁기념관은 몇 번 갔었지만, 아이들이 장성한 지금은 관심밖이었다. 그런데, 듣자하니 군복무하던 시절 소속 부대에서 운용했던 자주포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불현듯 그 자주포가 보고 싶어졌다. 현역시절에 낡아서 잔고장이 많았었지만,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사거리를 가진 대한민국 유일한 자주 평사포였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세월도 많이 흘렀다. 지금도 어쩌다 군시절의 악몽을 꾸기도 하는 나로서,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 당시 군대는 사람 아닌 짐승 같은 집단으로, 욕설과 구타가 일상이었다. 전우애는 말로만 존재하는 허상이었고, 부대원 대부분이 내 한 몸 편하고자 별별 짓거리를 다하는 그야말로 인간시장이었다. 넓은 내무반에 20~30 명이 오밀조밀 붙어살면서 기간병 고참들은 ..
영동군 노근리 평화공원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까지 5일 동안 참전미군에 의해 충북 영동군 영동읍 하가리 및 황간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도 및 쌍굴 일대에서 발생했다. 사건 당시 미공군기에 의한 공중폭격과 미 제1 기병사단 소속 미군들의 무차별적인 기관총 및 소총사격에 의해 무고한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한국정부는 2008년 12월 12일, 사망 150명, 후유장애 63 명 등 총 226명을 희생자로 결정했다. 그러나 사건 직후의 신문기사에 400명이 희생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귀중한 생명들이 많이 희생된 역사적인 사건이다. 노근리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건해결을 위한 첫 시도는 1960년 10월, 이 사건으로 어린 아들과 딸을 잃은 정은용이 앞장서서 정구헌 등 유가..
그 때 그 사람, 궁정동 안가 나동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에서 만찬중 살해되었다. 사건 발생 후 신군부는 그 역사적 현장인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안전가옥) ‘나동’을 헐어버렸다. 2층 양옥으로 잘 지어진 이 건물은 워낙 비밀스런 존재였기 때문에 사진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청와대 영빈관 옆에 있는 궁정동 안가는 모두 철거되고 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남은 것이 바로 앞 청와대 경호실장 관저이다. 1993년 2월 25일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청와대는 안가를 모두 헐어내고 공원(무궁화동산)으로 만들었다. 비록 10·26의 현장은 이미 지웠지만, 나머지 안가마저 기억하기 싫었기 때문이리라. 공원 앞 표석에는 “안가(안전가옥)를 헐어내고 조성한 것”이라는 설명만 돼 있다. 안전가옥이 무엇이며, 이 안가에서..
담낭 제거 수술 세월을 이기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우리네 신체는 더욱이 무상하다. 금년 설날 이후부터 가끔 명치 아래가 답답하고 거북해서 식도염으로 생각하고 동네 의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으나, 나아지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수원 성빈센트 병원에 10여 일 후인 2월 25일 예약을 하고 기다렸다. 때마침 코로나 확진자들이 어찌나 폭증하는지, 행여 병원에서 감염될까 염려되어 예약을 취소했었다. 복부의 불쾌감이 괜찮은 듯싶다가도 다시 심해져서 별 수없이 빈센트 병원에 다시 3월 11일 예약을 하고 병원에 갔다. 공교롭게 오미크론 환자들이 정점에 도달하던 시점이었다. 4년 전 찍었던 CT cd를 가지고 진료 전 병원 영상 복사기에 복사한 후, 시간에 맞춰 예약 의사를 만났다. 4년 전 CT 소견에 담석이 많았다고 하..
내 자리 네 옆자리 30년 지기 서순석 시인이 시집을 냈다. 두 번째 시집으로 그동안 공을 많이 들였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것이 안쓰러워, 큰 물로 가라고 농담도 해보지만, 그는 큰 욕심이 없다. 언변 좋고 활달하나, 사람 좋아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한다. 한 때 지방 문인 협회를 꾸려가며 짬짬이 신문에 고정 칼럼을 쓰기도 해서, 향후 그의 칼럼집도 기대하고 있다. 화가가 자신의 색깔과 선으로 그림을 그리듯, 문학가는 자신의 내면을 언어로써 밖으로 내보낸다. 문학 작품은 작가 자신만이 구축한 세계이므로 그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때로는 자신을 돌아 보며,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독백이기도 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밖으로 분출하는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서순석 시인은 그렇게 독백하며 메시지를 던진다. 무엇보..
동네 반 바퀴 어제보다 바람이 잦아들었다. 발코니에서 내려다 보이는 가로수 벚꽃들이 너무 탐스러웠다. 봄바람을 이기지 못하곤 카메라를 둘러메곤 동네 산책을 나갔다. 벚나무길엔 이미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꽃 나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코로나 탓으로 뒷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마스크를 하고 경사진 산길을 오르노라면 숨이 차지만,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 어쩌다 인적이 끊기면 잠깐 벗어보지만, 마주치는 사람들이 부담스럽다. 봄바람이 다소 차가웠으나 오랜만에 나온 걸음인데다, 이내 적당하게 땀이 나서 곧 상쾌해졌다. 벌써 반바지 차림으로 다니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세상에 바이러스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던 것이 중세 때, 페스트가 전부인지 알았는데, 21세기 들어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바이러스 중에, 이..
지구의 경고 코로나 여파로 하늘이 맑아졌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 코로나 사태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지구 스스로의 자구책이라고 한다. 인간들의 끝없는 탐욕으로 황폐화된 지구 환경, 결국 지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바이러스로써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래서인지 유달리 맑은 하늘과 따뜻한 봄 날씨를 맞는다. 너무 화창한 날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잠깐 뒷공원으로 꽃구경 나갔다. 살구꽃은 이미 끝물이라, 그동안 못다 핀 꽃들이 마지막 열정을 피우고 있었다. 이제는 벚꽃이 대세로 여기저기에서 팝콘 터지듯 피기 시작했다. 아파트 뜨락 양지 녘엔 제비꽃이 지천이다. 민들레와 냉이꽃,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고개들을 삐죽삐죽 내밀고 있었다.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봄이다. 어린애들..
왼손목 골절 치료 지난 5월 초 운동하다 뒤로 엉덩방아 찧면서 손을 뒤로 짚었는데, 넘어진 후 주저앉아 팔을 보니 아뿔싸 왼 손목이 부러져 팔이 뒤틀려 있었다. 동호인들의 도움을 받아 구급차를 불러 황급히 정형외과에 달려갔는데, 단순골절이 아니라 분쇄골절인 데다 부러진 팔뼈가 손목 안으로 밀려 들어갔단다. 다음날, 마취 후 수술하고 5일간 입원했다. 보름 후 실밥을 뽑고 팔목 보조대를 착용하며 지냈는데,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수술한 상처도 아물고 부러진 뼛조각들도 잘 붙은 듯 하지만 아직도 손가락과 손목 관절이 자유롭지 않고, 움직일 때마다 띠끔띠끔거린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론 관절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데, 혹시 무리해서 탈골되지 않을까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조각난 뼛조각을 붙이기 위해 ..
거목, 쓰러지다. 영통동의 상징인 느티나무. 2018년 6월 26일 오후 3시경 수령 500년이 넘는 거목이 쓰러졌다. 든든한 디딤목으로 영통동 주민들에게 위안을 주던 느티나무가 한순간에 부러져, 그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영통동 청명마을이 정들게 된 것도 이 느티나무 때문이어서, 밤새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어려워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어제 저녁에 잠깐 나갔다가 찢어진 가지들을 전기톱으로 자르는 모습들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서 외면하고 돌아왔다. 가슴이 아프고 심란해서 밍그적거리다가 오늘 오후에야 나가봤더니 뎅그라니 나무 밑동만 말뚝처럼 남겨놓고, 그 무성한 가지들을 다 치워버렸다. 휑하니 남은 나무 밑동을 둘러싼 보호 울타리엔 곧 복구하겠다는 현수막만 바람에 펄럭이고 있어서 마음이 더 상했다..
웃픈 두 현실 촛불집회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2017. 10. 28. 토요일, 오후 4시 30분경 종각 부근에서 노동조합 깃발을 들고 시가행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슈는 '비정규직' 철폐였다. 깃발을 들고 단위조합들끼리 열을 지어 광화문에서 종로로 행진하고 있었다. 먹고사는 것이 현실의 가장 큰 문제이니 대부분 젊은이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시청 광장에서는 '청춘 콘서트'가 열릴 예정인가 보았다. 종각에서 시청광장으로 걷다가 4시 45분경 플라자 호텔 앞도로에서 행진하는 이른바 태극기 부대 시위대를 만났다. 군복, 또는 검은 색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선두와 후미에 서고 일반인들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행진을 했다. 소형 SUV차량 짐칸에 실은 대형 확성기로 구호와 유신시대 계몽가요를 요란하게 방송하며 시위대를 선..
상흔(傷痕) 목포에서 진도로 가는 도중 옆으로 누윈 세월호의 모습이 먼 시야에 들어 왔다. 친구가 "목포 신항만으로 예인한 세월호"라고 일러 주었다. TV 화면에서 익히 보아온 모습임에도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에전에 맹골수로 세월호 침몰해역을 지나며, 가슴 아파했었는데, 이젠 저렇게 처참하게 누은 모습으로 밝은 세상에 나타났다니 답답한 마음에 가슴이 메이는 것 같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목포신항만으로 갔다. 항만 안이 통제구역이라 들어갈 수 없어서 노란 리본이 꽃처럼 휘날리는 철망 밖에서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래봐야 보이는 것도 별로 없었지만, 세월호는 수많은 사람들을 물 속에 수장하고, 사람들에게 슬픔과 울분을 자아나게 했던 통한의 선박이라 가슴이 찡하게 다가왔다.
병풍도 해역 하늘은 맑고 쾌청했다. 육지의 날씨는 무더웠으나, 바다 바람은 스산했다. 더울까 봐 간단하게 입어서 바깥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야간열차 타고 목포, 목포에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팽목까지 가느라 고단했다. 드디어 서거차도 가는 9시 50분 금오페리 7호를 탔다. 1년 사이 배는 한림페리호에서 금오페리호로 배가 바뀌었다. 이전 배보다 더 크고 속도도 빠른 것 같았다. 서거차까지 다도해 많은 섬들을 거쳐 가기 때문에 3시간여 걸린다. 바람이 너무 차서 조도까지는 선실 안에서 다리를 뻗고 눈을 붙였다. 야간열차에서 못 잔 잠이 한꺼번에 몰려와 짧은 시간이었지만 편히 잠을 잤다. 관매도를 지나 동거차도로 가는 해역에 세월호 침몰현장이 있다. 크레인 바지선이 인양작업을 하고 있는 중인데, 선실에서 나와 멀리..
謹弔 20년 전인 1993년 10월 변산 앞바다 위도에서 서해페리호가 과적으로 침몰해서 292명이 사망했다. 위도에서 낚시를 즐기고 돌아오던 강태공들이 대부분이었다. 1994년 10월엔 한강의 성수대교가 무너져 다리 위를 달리던 자동차들이 강물에 추락하여 32 명이 사망했다. 이른 아침 통학 시간이라 통학하던 고등학생들이 대부분 희생되었다. 1995년 6월에는 강남의 삼풍 백화점이 무리하게 증축을 하다가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502명이 매몰되어 사망했다. 1999년 6월 경기도 화성군 궁평리 바닷가에 컨테이너를 쌓아 올려 만든 씨랜드에서 불이나 23명이 사망했는데, 이 가운데는 체험활동 중이던 유치원 어린이 19명이 부모 곁을 떠나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도..
봄봄 기다리던 봄 꽃들이 드디어 여기저기 망울들을 터트렸다. 그동안 생강나무와 산수유만 유심히 살펴봤는데, 어느 사이 민들레도 오랑캐 꽃도 양지 녘에서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계절은 변함없이 찾아들었건만 정작 내 마음 속에만 봄이 들지 않았나 보다. 발코니 창문을 활짝 열고 집안에 가득한 겨울 때를 봄바람으로 벗겨내야겠다.
가을 창경궁 ...................... 단풍빛깔이 한창인 지금 창경궁은 춘당지 부근의 숲이 한창 아름다울 터였다. 창덕궁 후원이 깊고 그윽해서 좋긴 한데, 해설사의 인솔에 따라 단체로 움직이는 번거로움이 부담스러웠다. 본디 창경궁과 창덕궁 후원은 서로 붙어있던 공간인데, 담을 쌓아 분리해 놓은 것이다. 일제가 꼼수로 조선을 폄하하기 위해 왕궁을 동물들의 분뇨로 훼손하여 행락지로 바꾼 것을 복원했기에, 과거에 분리된 담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일 게다. 향후 종묘와 창경궁 사이의 도로 위를 덮어 하나로 이으면 일제에 훼손되었던 궁궐이 좀더 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일제에 훼손된 우리 문화재를 생각하면 몹시 속상한데, 오늘날 정치가들이나 관리자들이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는 우리의 민도가 아직도 한참..
시월잔상(十月殘像)
소나기 모처럼 쨍해서 푸른 하늘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뜨거운 햇살이었지만, 반가워서 외출준비를 하려는데, 갑자기 후두둑 세찬 빗방울이 떨어졌다. 여우비처럼 먼 산엔 햇살이 강하게 내렸지만, 긁은 빗방울들이 바람을 타고 집안으로 들이쳤다. 앞 창문을 닫고 뒷창에서 비오는 풍경을 한참이나 내다 보았다. 이 장마가 끝나야 콧구멍에 바람이라도 쏘일텐데...
숭례문 그 동안 안타깝게 차창으로만 바라보던 숭례문! 복구된 모습을 가까이 다가서서 찬찬히 살펴 보았다. 과거와 달리 숭례문 좌우에 훼손되었던 성벽의 일부도 복원한 탓으로 성문의 모습을 조금 더 갖추웠지만 그 덕에 조금 왜소해 보이는 듯했다. 또한 숭례문 좌측으로 조금 길게 뻗어간 남산 방향의 성벽은 갓 다듬어낸 화강암이라 500여년 전통의 한양성벽으로 너무 산듯해 보이기도 했다. 이왕지사 복구할 성벽이었다면 목멱산 방향으로 더 길게 뻗어 쌓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례문 주변이 말끔하게 정리되고 다듬어서 깔끔해진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화재 이전엔 성벽이 잘리고 훼손되어, 도로 속 외딴 섬이었던 숭례문이 가까이 돌아와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목련 봄바람 속에 온 산이 진달래 붉은 꽃으로 물들면, 마을 담장 사이로 드문드문 솜사탕 피어오르듯 목련꽃이 부풀어 오른다.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꽃처럼 목련꽃도 봄의 전령사이다. 금년은 예년보다 봄이 일찍 찾아든 줄 알았는데,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보통이 아니다. 봄꽃들이 피려다가 시들고 시들다가 다시 피어난다. 목련 역시 밀려드는 봄기운을 피할 수는 없었는지 활짝 피지는 못했지만, 터지기 직전 팝콘처럼 망울 망울 부풀어 올랐다. 군복무 시절, 민간인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시절에, 봄낮이면 산꼭대기 대공초소에서 머언 민가에서 솜사탕처럼 피어오른 목련들을 바라보노라면, 고향의 집이 생각났었다. 하루종일 산꼭대기에서 보초를 서며, 서울서 부산까지 왕복하고도 족히 남을 시간들을 목련꽃을 바라보며 국방부 시간..
瑞雪 2013년 새 해 첫날, 눈이 내렸다. 오전부터 펑펑 함박눈이 쏟아지더니 미련이 남았는지 밤에 또 한바탕 폭설로 내려 부었다. 정월 초하루에 내리는 눈이라서인지 서설이란다. 그러고 보니 12월 25일 전후에도 눈이 내려 White 가 되기도 했었다. 送舊迎新이라는데, 해가 지나고 바뀌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심란했던 연말연시였다. 때론 친구처럼, 동생처럼 여겼던 知己가 급작스레 29일 55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자 연락마저 끊고, 외롭게 투병하다가 기초 없는 모래탑처럼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언제나 어려운 사람을 위해 발 벗고 나서며, 올곧은 목소리로 소신을 굽히지 않던 그의 따스한 인정과 용기에 의기투합하여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동고동락하던 그리 많지 않은 친구 중 한 사람..
첫눈 그 동안 뚝 떨어진 기온과 찬바람만으로 겨울을 느꼈는데, 비로소 이제 내린 흰 눈으로 겨울을 심감하게 되었다. 첫눈치고 폭설에 가까워 교통대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스럽지만, 눈 내릴 때면 제일 즐거운 건 어린이들이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눈덩이들을 굴리고 있다. 아마도 농경시절의 눈은 한 해를 수고한 농부들을 편히 쉬게하는 눈이었을텐데... 도시에 내리는 눈은 출근길을 괴롭히는 존재로, 철 모르는 아이들만 좋아할 뿐, 낭만을 찾아 보기 어렵게 되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한 해를 또 아쉬움 속에 떠나보내며, 눈덮힌 세상을 바라보며 비로소 겨울을 맞는다.
2012 가을 2012.10.21 2012.10.22 2012.10.23 2012.10.27 2012.11.01 2012.11.04 2012.11.05 2012.11.06 2012.11.19
가을 산책 올해 단풍은 질기고도 질기다. 가을비가 그렇게 내리고, 강풍이 불어도 굳굳하게 정열을 불사르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는데도 곱게 물든 단풍의 뜨거움은 식을 줄 모르니 참으로 대단하다. 홀로 동네 뒷산길을 걸으며, 한 해를 돌아보니, 참으로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이루어 놓은 것 없이 한 해가 훌쩍 지나간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면 커가는 키높이에 비례해서 지식으로 뿌듯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성장이 대견스러울 터인데, 이제는 거울을 들여다 볼 때마다 주름살만 더해가니, 이른바 인생계급장만 높아져 유수같은 세월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세월탓으로 위눈꺼풀이 늘어지고 쳐져서 속눈썹이 각막을 찌르는 고통때문에 보름 전쯤에 눈썹수술을 감행했다. 그 동안 10여년을 참으며 버텨왔었는데, 더 이상 감..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 그곳엔 과거가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 기울어진 햇살 아래 MBC 촬영장은 짙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시간을 뛰어넘어 호랭이 담배 먹던 과거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들어가는 진입로 주변은 축사농가라서, 동물들의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르고, 동네 개울에는 농가의 오수가 악취를 내며 흘렀다. 도로도 좁아서 승용차 두 대가 서로 교행하기도 불펀할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통의 산맥들처럼 북-남으로 뻗은 낮은 산줄기에 동향으로 앉은 세트장은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컷다. 전에 보았던 부안 종합셋트장보다 남양주 종합 촬영소보다도 규모가 더 커 보였다. 단지 내 상식으로 알 수 없을 것 같은 국적불명의 건축물이 많아서 아쉽긴 했지만... 입장료 7000 원을 내고, 세트장을 주욱 돌아 보는데, 일본인 관광객들이 ..
Autumn Cafe 가을이 성큼 지나간다. 지난 여름, 뜨거운 열기로 태우던 잎새들이 바람결 따라 강물 위로 흘러 간다. 나뭇잎들이 자라서 시간이 되고, 낙엽이 떨어지고 쌓여서, 세월이 된다. 짧아진 가을 햇살에 바람은 더 스산해지고, 강물은 석양을 향해 낙엽처럼 붉게 물들어, 겨울로 떠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