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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내 자리 네 옆자리

  30년 지기 서순석 시인이 시집을 냈다. 두 번째 시집으로 그동안 공을 많이 들였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것이 안쓰러워, 큰 물로 가라고 농담도 해보지만, 그는 큰 욕심이 없다. 언변 좋고 활달하나, 사람 좋아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한다. 한 때 지방 문인 협회를 꾸려가며 짬짬이 신문에 고정 칼럼을 쓰기도 해서, 향후 그의 칼럼집도 기대하고 있다.   

 

  화가가 자신의 색깔과 선으로 그림을 그리듯, 문학가는 자신의 내면을 언어로써 밖으로 내보낸다. 문학 작품은 작가 자신만이 구축한 세계이므로 그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때로는 자신을 돌아 보며,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독백이기도 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밖으로 분출하는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서순석 시인은 그렇게 독백하며 메시지를 던진다. 무엇보다도 그의 시는 난해하지 않아서 좋다. 세상사 삶의 애환들을 대부분 직설적 화법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비장하진 않더라도 자잘한 페이소스(pathos)나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낄 수 있다.

 

  일상을 관조하듯, 넉넉한 시선으로 노래하는 따스한 눈길이 정겹다. 때로는 세상을 향해 내뱉는 풍자조차 웃으며 읽을 수 있다. 화려한 이력에 널리 알려진 詩들은 아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친구나 가족끼리 나누는 사랑이 느껴진다. 막걸리처럼 조금은 투박해 보여도 기분 좋게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시집이었다.         

 

  서순석 서정시집 "내 자리 네 옆자리"   

 

 

     존재

 

있어도 없었던 자리

내 자리 네 옆자리

 

오갔던 많은 말들

편한듯 했었지만

 

있어도 혼자였듯이

없어도 그저 그렇게

 

 

등잔밑

 

연속극 보던 아내가 갑자기 욕을 한다.

얼마나 고생을 시켰으면 여자가 저렇게 코를 고냐고.

거칠었던 하루 

그 여자는 행복한 얼굴로 5월 셋째 날을 마감하려 한다.

소거된 음과 동작이 숨까지 차게 만들 때 불규칙 음파 정적을 깬다.

 아내가 코를 골고 있었다. 여리다가 점점 크게

 

 

애수 - 제부도 이야기 1

 

물길이 닫힐 때면

제부도는 혼절한다.

목울대 울컥대는 

파도소리에 스러져

사계가 

뒤섞여 사는 무인도가 된다.

 뒤늦게 눈 뜬 이 하나

전설을 기웃대다

그렁한 눈동자에

수평선이 뜬다.

그러다

넘쳐 흘러서

운무 같은 비가 온다.

 

 

 향수- 제부도 이야기 4

 

수족관 유리벽에

지전이 영근다.

고기들이 사라졌다

또다시 채워진다.

주인은 옆집 사람과

18년째 남남이다.

 

 

한 때는 대문 없이

온 마을이 한 집이고

서너 장 빈대떡에

섬 잔치가 열렸던 곳

그들의 안락했던 섬

사람 살던 섬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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