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斷想

담낭 제거 수술

  세월을 이기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우리네 신체는 더욱이 무상하다. 금년 설날 이후부터 가끔 명치 아래가 답답하고 거북해서 식도염으로 생각하고 동네 의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으나, 나아지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수원 성빈센트 병원에 10여 일 후인 2월 25일 예약을 하고 기다렸다. 때마침 코로나 확진자들이 어찌나 폭증하는지, 행여 병원에서 감염될까 염려되어 예약을 취소했었다.

 

  복부의 불쾌감이 괜찮은 듯싶다가도 다시 심해져서 별 수없이 빈센트 병원에 다시 3월 11일 예약을 하고 병원에 갔다. 공교롭게 오미크론 환자들이 정점에 도달하던 시점이었다. 4년 전 찍었던 CT cd를 가지고 진료 전 병원 영상 복사기에 복사한 후, 시간에 맞춰 예약 의사를 만났다. 4년 전 CT 소견에 담석이 많았다고 하니까, 담당의는 4년 전 영상은 자료로서 가치가 없다며, 다시 CT촬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CT보다 초음파 검사를 원했으나, 췌장까지 보려면 CT촬영을 해야 알 수 있단다. 어쩔 수 없이 담당의 뜻대로 CT를 찍기로 했다. 그런데, 담당의는 내 다니던 동네 병원에서 위내시경을 하고 의사 소견서를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큰 병원인 본원에서 하면 좋을 것을...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가 싶었지만 내뜻대로 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간 성과도 없이 짐만 떠안고 CT 촬영일자와 다음 진료날짜만 예약하고 돌아왔다. 그동안 동네 의원에서 가져온 약과 속이 쓰릴 때 짜 먹는 약, 양배추 브로콜리 즙, 안동 마 등을 먹으며 속을 달랬으나, 차도가 없었다.  

 

  3월 14일 동네 병원에서 위내시경을 하고 내시경 사진에 휘갈겨 쓴 소견서를 받았다. 무슨 글인지 알아볼 수도 없는 악필이었는데, 의사끼리는 통하는 게 용하다 싶다. 3월 16일엔 빈센트 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와 CT촬영을 했다. 3월 25일 예약일에 담당의는 CT 영상을 보곤 담낭에 염증이 보인다며, 대뜸 수술을 하랬다.  '수술을 하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진료 상담 시간이 3-4분인데, 그 사이 선뜻 담낭 제거 수술을 결정할 수 없었다. 후유증을 물으니 죽을 수도 있다는 대답이었다. 길 가다가도 차에 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우리네 인간이란다.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최악의 상황을 말한다는데, 농담치곤 우습지도 않았고 참 고약한 언변이었다. 위로받으려다 오히려 마음만 무거워졌다. 심란한 마음으로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서 위염과 담낭 염증약을 한 달치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동안 처방약을 먹어도 좋아지는 느낌이 없었다. 동네 의사는 담낭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하고, 빈센트 의사는 담낭보단 위 때문일 것이라 하니, 나로서는 황당할 뿐이었다. 인터넷으로 담낭 수술에 관해 검색해 보았다. 마침 최근 빈센트 병원에서 담낭 수술을 하신 분의 딸이 올린 블로그 글이 있어 궁금한 점을 댓글로 물었다. 고맙게도 그날로 답이 와서 어찌 됐던 수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병원 선택이 문제였는데, 내 경험으론 인근 아주대 병원은 이것저것 검사만 시켜 수가만 올리며 치료도 신통치 않았고 직원들이 친절하지도 않아서 논외로 했다. 이명과 메니에르병으로 고생하며 아주대 병원을 3년 다녔는데, 낫지는 않고 각종 검사만 열 번 이상 했다. MRI를 비롯해서 툭하면 평형 검사, 청각검사를 수차례 했지만 언제나 결과는 이상 없다는 것이었다. 검사 결과 이상도 없다는데, 값비싼 검사를 왜 그리 자주 시키는지...  이따금 검사를 거부했음에도 이 정도였다. 검사료 비싼 평형 검사실에 들어가는 남루한 노인들을 볼 때마다 불쌍해 보였다.

  내 몸은 점점 망가져가며 인내심도 바닥이 나서 다른 병원에 가보려고 소견서 써달랬더니 담당의사의 표정이 달라지고, 직원들의 태도가 불손해졌다. 어지럼증이 발작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들고, 심할 때는 너무 어지러워 방바닥에 엎드려 몸도 가누지 못하고 구토까지 함에도, 그 고통을 고치지도 못하면서 제 밥그릇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의사의 심사는 무엇인지...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는 아닌지...   명색이 의대생을 가르치는 교수라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분당 서울대병원 어지럼증센터에 갔다. 놀랍게도 메니에르 어지럼증은 한 달만에 깨끗이 나았다. 이명은 아직 계속되고 있지만... 고맙게 생각하며 몇 번을 더 갔었다. 치료했던 의사는 내 말은 듣지 않고 제말만 고집하며 세상 이치를 통달한 것처럼 이제 오지 말란다. 좀 친절하면 좋으련만 소귀에 경 읽기, 마이동풍이었다. 아주대나 서울대병원 모두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기계로 귓속 귀지 청소 한 번 해주고 처치료로 몇 만 원씩 받아가는 수법은 동일했다. 어쩔 수 없이 동네 협력 병원을 찾아 서울대병원 처방전대로 지금까지 메니에르 약을 타다 먹고 있다.

 

  환자들은 기계적 치료보다 따뜻한 의료행위를 원한다. 하기사 10분에 3명씩 예약받아 진료하려면 인간이라기보다 기계에 가까운 것이 의사일 것이다. 병원마다 세워 둔 히포크라테스상이 무안해 보인다. 차라리 환자들의 각종 질병치료 사례들을 모두 모아 빅 테이터 센터를 설치해서 환자들이 열람할 수 있게 해서 병원 의사들과 연계하여 치료하게 한다면 좋을 성싶다. 그러나, 의사수 늘이는 것도 결사반대하는 사람들이 의사들인데 그들의 밥그릇을 쉽게 빅 데이터에 양보할 리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원격의료 시스템 구축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오히려 코로나 사태 이후 의사들의 독점적 횡포가 더 심해졌다. 작은 동네 병원까지도 대리처방이 불법이라는 커다란 포스터를 곳곳에 붙여 놓았다. 코로나 시대엔 오히려 비대면 치료가 환자나 의사들에게 바람직한 일일 터인데 말이다. 

 

히포크라테스 흉상<다음백과에서 발췌>

 

 

  수원 빈센트 병원은 가톨릭대 부속병원이면서도 2차 진료기관이라 병의원 의사들의 소견서 없이 예약하고 진료받을 수 있는 게 편리했다. 어머니 때부터 불친절한 의사도 여럿 겪었지만, 가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선택의 이유였다. 또, 서울 가톨릭 병원들과 연계한 치료가 가능하기도 하고, 복강경 수술은 이미 작은 규모의 병원에서도 시술하는 보편화된 방법이라 나름 신뢰하기로 했다.  

 


   이왕지사 결심한 것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기로 하고 4월 4일 아침 예약을 서둘러 담당의를 찾아 말씀드리니, 외과 선생님을 연결해 주셨다. 일주일 후 예약을 기다릴 수 없어 서둘러 당일 접수 후, 오후에 외과 수술 전문 선생님 진료를 받고 4월 13일 입원해서 14일 수술하기로 번갯불로 콩 굽듯 벼락같은 결정을 했다. 외과 선생님 모니터에 내 담낭 안에 돌들이 모여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4월 11일 아침 사전 검사로 X선 촬영과 채혈을 하고 수술을 위해 병원 입원환자 코로나 검사소에서 PCR 검사를 했다. 이날 오후에 코로나 음성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드디어, 4월 13일 오후 3시에 집에서 나와 주차장에 차를 두고 병원 창구에서 입원 수속을 한 후, 병실을 배정받아, 간호 간병 서비스를 하는 병동으로 올라가 그분들의 도움 속에 별 두려움 없이 5인 병실에 입원했다. 다인실이라 잘 때에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불편했지만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코골이가 심한 편이어서 미리 준비해 간 반창고를 입에 붙인 후, 마스크를 쓰고 잠을 청했다. 

 

간호 간병 서비스는 별도의 간병인 없이 간단한 간병 서비스를 받는다. 요금은 하루에 15000원 정도 추가된다.

 

병실 밖 풍경

 

  4월 14일, 전날 밤까지도 수술 시간을 모른다더니, 느닷없이 아침 7시 50분경 서둘러 수술실행 침대에 옮겨져 10층 병동에서 3층 수술실로 이동했다. 출입제한구역인 수술실 2 중문 안 대기실에 여러 명과 함께 잠시 있었다. 그때, 머릿결이 희끗하신 수녀님께서 들어오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 생면부지인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수녀님의 기도를 감사하게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잠시 후 모퉁이를 돌아 넓은 복도를 한참 지나 9번 수술방으로 이동했다. 녹색 가운을 입은 수술담당의들이 복도에서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이 마치 바쁘게 돌아가는 커다란 공장 같은 모습이었다. 그들의 바쁜 움직임이 느린 영상처럼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환각처럼 느껴졌다. 나에게는 첫 경험이지만 그들에게는 반복된 일상들일 테니까 별세계에 들어온 느낌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드디어 수술실 안에 들어가자 다시 한번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내가 요청한 무통증 수액을 확인했다. 수술대 위에서 산소마스크로 잠시 호흡하다 깊은 마취에 빠져들었다.

 

  9시 30분경 눈을 떴을 땐 회복실에 있었다.  10층 병동 입원실 병상으로 되돌아 왔는데,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몹시 아팠다. 무통증 수액을 달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통증이 심하면 무통증 수액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통증이 좀 더 가실 거라며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버튼을 누르면서 통증도 조금씩 완화되었는데, 몸은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 오후 시간에 수술에 동참하셨던 선생님이 떼낸 내 담낭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 폰으로 다시 찍어 확대해 보니 담석 크기와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늦은 시간에 수술 선생님이 회진하면서 몸을 많이 움직이고 숨을 깊이 쉬라셨다. 수술 당일은 금식인데, 오후엔 목이 마르면 물 마시는 건 괜찮단다. 수술 직후라 뱃살이 땅겨 허리 펴기도 수고로웠다. 입술이 바짝 마르고 목안이 타들어가는 듯하여 수시로 물을 조금씩 마셨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목이 잠겨 말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밤새 뜬 눈으로 뒤척거리며 밤을 지냈다.  

 

적출된 내 담낭과 담석들

 

수액과 함께 공급되는 무통증 주사액

 

복강경 시술 부위

 

 

  4월 15일, 수술 다음날 아침, 몸은 조금 가벼워졌으나,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활동을 하라고 해서 병실 복도를 걸었으나, 사정이 그리 여의치 못했다.  병실 복도가 제한적이고 몸도 불편해서 침대를 비스듬히 세워 기댄 자세로 길고 큰 호흡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아침부터 죽을 먹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줄어들어 견딜만 했다.

 

  4월 16일, 수술 후 사흗날, 몸을 움직여도 큰 불편이 없는 듯했다. 새벽에 풍선에 바람 빠지듯 가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침식사로 밥을 먹었다. 일찍 귀가하고 싶어 퇴원을 서둘렀으나, 간호사들이 발목을 잡았다. 토요일이라 당직의사의 퇴원 오더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가고 싶은 사람 빨리 보내주는 것이 서로를 위하는 일일 텐데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오전 11시 30분경 3박 4일의 병원 퇴원 수속을 하고 병원 약국에서 10일 치 약을 받아 지하 주차장에 둔 차를 타고 집에 왔다.(3박 4일간 주차료는 20,000원) 시내에 볼일이 있어 잠깐 나갔다가 힘들어서 도중에 되돌아왔다. 소변은 그런대로 시원하게 보는 편이나, 14일 수술 날 이후부터 대변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복부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느낌이다.  몇 년 전 약국에서 만났던 한 젊은이가 웃으면서 자신을 '쓸개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농담으로 알고 한참을 웃었는데, 이젠 내가 '쓸개 빠진 사람'이 돼버리고 말았다.

 

<퇴원 후 10일간 처방약>

스티렌투엑스정 90mg  아침  저녁 식후 30분   1정씩 복용  하루 2정    (위점막 보호 및 손상부위 개선)

아크로펜정  100mg     아침  저녁 식후 30분   1정씩 복용  하루 2정    (진통 소염제)

호이판정     100mg     아침 점심 저녁 식후 30분  1정씩 복용    하루 3정   (만성 췌장염 급성 증상 완화 및 위절제 수술 후 역류성 식도염 증상 완화. *혈액 검사시 췌장 수치가 높다고 처방) 

노자임캡슐                아침 점심 저녁 식후 30분  1정씩 복용    하루 3정     (소화불량, 위부팽만감 해소)

로와콜 연질 캡슐 100mg  아침 점심 저녁 식전 30분  2정씩 복용    하루 6정    (담석증, 담낭염, 담도염 치료 보조제, 담석 수술 후 결석 재발 방지)

 

<10일 후 외래진료 결과>

 4월 25일, 오전에 췌장 수치 검사를 위한 채혈을 하고, 오후 외래 진료 때 수술한 부위에 붙였던 방수 반창고를 모두 제거했다.  모두 아물어 목욕도 가능하단다. 췌장 수치와 담낭 조직 검사 결과도 이상 없다고... 앞으로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수술 담당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감사했다. 당분간 과격한 운동이나 무거운 것 운반 등에 유의하라는 당부가 있었다. 수술 담당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斷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동군 노근리 평화공원  (15) 2023.01.12
그 때 그 사람, 궁정동 안가 나동  (4) 2022.10.10
내 자리 네 옆자리  (2) 2020.04.17
동네 반 바퀴  (4) 2020.04.05
지구의 경고  (2) 2020.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