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르트 도굴 사건 (1) 썸네일형 리스트형 예산군 남연군묘 꺼져가는 촛불처럼 조선의 기운이 쇠락해 가던 시절, 자신의 야망을 감추고, 시정잡배 파락호로 위장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이하응(1820~1898). 그는 안동 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도정치 속에서 앞날을 내다보며, 자신의 후손을 왕위에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하응은 풍수설의 신봉자로, 지관 정만인에게 아버지 남연군의 묏자리를 의뢰하였다. 당대의 유명한 풍수쟁이였던 정만인은 충청도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가야사를 일러주며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라고 했단다. 이에 이하응은 1846년 가야사를 불태워 없애고, 이미 경기 연천에 모셨던 아버지의 묘를 가야사 탑이 있던 자리로 이장하였다. 그로부터 7년 뒤에 둘째 아들 명복을 낳았는데, 그가 조선조 철종의 뒤를 이은 고종임..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