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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구례 화엄사

  2월의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눈이 오다가 비가 내리기도 하고, 봄날씨처럼 따뜻했다가 금새 돌변해서 강풍을 몰고 영하의 날씨로 바뀌곤 했다.  구름이 많은 날이었지만 햇빛은 참 따뜻했다. 햇빛 덕분에 차 안은 한여름이었는데, 창밖엔 차가운 강풍 때문에 귀와 뺨이 시렸다. 더구나 지리산 자락엔 골짜기 바람이 더욱 매몰차게 불어왔다.  

 

  지리산 노고단 올라가는 산자락 아래 초입에 있는 화엄사, 이곳은 그 동안 네 다섯 차례 방문한 곳이었다. 80년대 초 지리산 등산길에 처음 보았던 감동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제 다시 찾은 화엄사는 성벽처럼 쌓은 돌담 안에 새로 지은 거대한 절집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우리나라 절집들은 산세와 눈높이를 맞추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보여주는 자연미가 최고의 아름다움인데,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의 거대한 건물과 이제 금방 칠한듯한 단청과 황금색 금칠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고금을 통해 어떤 종교라도 황금을 숭상하게 되면, 그 기능을 상실하고, 몰락의 길을 걷기 마련인데, 세속을 떠나 깊은 산중에 떠억 버티고 서있는 육중한 건물은 식견 없는 내 눈으로 보아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의 끝자락을 움켜쥔 통속적 사바의 모습이었다.

 

  실망감이 컸지만, 일부러 서너시간이나 걸려 이곳까지 내려온 노고 때문에 조심스럽게 경내로 들어섰다. 이윽고 요란하게 늘어놓은 절집들을 지나 천왕문 위, 보제루 뒤편에 들어서자,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옛 절집인 대웅전과 각황전들은 규모가 큰 건축물이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절제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역시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 속의 절집들이었다. 그런데, 각황전을 돌아 뒤 언덕에 있는 4 사자 삼층석탑은 아뿔싸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는 출입금지 바리케이드가 때문에 올라가 볼 수 없었다. 안내 그림을 보니 커다란 불사를 수행 중인 모양인데, 아쉬운 마음과 함께 입구의 건물처럼 위압감을 주는 절집이 들어서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저 아름다운 언덕 위에 걸맞지 않은 건물이 들어선다면... 

 

  주차장을 지나 개울을 건너는 다리에서 바라보는 화엄사 전경, 왼편의 육중한 현대식 목조건물이 보기에 거북했다. 화강암을 커다란 벽돌처럼 반듯하게 다듬어 쌓아서 마치 성벽같은 담장과 크고 호화로운 건물이 시야를 가로막아 깊은 산과 어울리지 않았다.

 

  ‘지리산화엄사’ 편액이 걸린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계단 위 보제루 좌우에 범종루와 운고루가 있다. 그 뒤가 유명한 각황전과 대웅전이 있다.

 

  보제루 옆에 있는 범종루. 역시 건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보호각과 방금 주조해낸 듯한 범종이어서 그닥 어울려 보이지는 않았다. 대칭을 이루는 곳에 있는 운고루는 단청과 금박이 찬란하였다. 여기까지가 속세의 티끌이었다. 세속의 잡티가 산속으로 번질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염려스러워졌다.

 

  보제루 뒤의 대웅전, 내가 보기에 화엄사의 진면목은 여기부터였다. 세속의 때가 없는 그야말로 청정구역으로 여겨진다.

 

  왼편의 각황전과 오른편 대웅전

 

 고색창연한 각황전. 이층으로된 육중한 목조건축물이지만 전혀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저 아름다웠다. 마참 구름 속에 들었던 햇볕도 쨍해서 더욱 좋았다.

 

  오층석탑, 석탑 뒤에 보이는 단청과 금박물이 짙은 운고루. 

 

  각황전 정면, 각황전 왼쪽 언덕 숲 뒤에 4사자 삼층석탑이 있는데, 현재 불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 혹여 산세를 거스를까 염려스럽다.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은 정면 7칸, 측면 5칸의 2층 팔작지붕으로 그 건축수법이 뛰어나고 아름답다. 왼편으로는 동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각황전에서 바라본 대웅전,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서 조선 중기에 조성된 삼신(三身)의 삼존불(三尊佛)이 봉안되어 있으며, 1757년에 제작된 후불탱화(後佛幀畵)가 있다.

 

 각황전 앞에 있는 4사자탑

 

  대웅전과 명부전 사이로 보는 삼전

 

  명부전 끝에서 보는 각황전

 

  보제루 아래 왼편의 천왕문 오른편에 도열해있는 위풍당당한 절집들. 화엄사에 축적된 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제루 아래 금강문 왼편의 청풍당 등 새로 세운 절집들...

 

  법고루에서 바라본 각황전, 원통전, 영전. 퇴락한 단청 빛과 풍상에 빛바랜 석재들과 목재들이 세속 너머 불심에 가까운 듯하다.

 

  천왕문

 

Photo by Sony a6000, ILCE-6000L/B. E PZ 16-50mm

 

  1970년대 화엄사 전경, 화엄사 홈피에서 퍼옴. 대웅전과 2층의 각황전 등, 유서 깊은 절집들이 소박한 모습으로 산자락 아래 흩어져 있는 모습이 오히려 정겨워 보인다. 내가 처음 본모습이 바로 이런 모양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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