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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전통과 근대가 어우러진 덕수궁

 무심결에 지나치던 덕수궁이었다. 그 동안 시청광장을 지나면서도, 옛시절 그림전시회보러 몇 번 들어갔었던 기억 속에 머무르며, 지나쳤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치 도심 속 숨겨진 비밀 정원처럼 덕수궁 안은 담장밖 세계와 전혀다른 은밀한 공간이었다. 숲이 우거지고, 유리창에 반사되는 현대적 빌딩들과 달리 고즈넉한 궁궐들이 숲 속에서 위엄을 한껏 부리는 곳이었다. 옛날의 기억들을 되살려 가며 찬찬히 살피며 나갔다. 예전에 세종대왕 동상이있었던 것 같은데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고, 덕수궁 내부의 조경마저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마치 내가 외국인이 된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문화재에대해 너무나 무지했다는 자괴심마저 들었다. 일제에 훼손되지 않았으면 더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을... 안타까움 속에 수년전부터 보여주던 수문장 교대의식도 이젠 제법 틀이 잡혀 귀티가 나기 시작한 것 같아 호기심있게 지켜보았다. 


  덕수궁은 조선 시대 두 번 궁궐로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몽진에서 돌아와 불타버린 경복궁에 들어가지 못하고, 월산대군과 그 후손들이 살던 사저를 임시로 빌려 사용하면서 부터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이사하기까지 임시행궁으로 사용했는데,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이 행궁을 경운궁이라 불렀다.  그 후, 조선말 러시아 공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와 정궁으로 삼으면서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자신은 황제로 즉위했다. 나라의 독립과 자주성을 대외에 밝히며 궁궐도 현제의 세배수준의 크기로 확장하였으나, 일제에 의해 좌절되면서 퇴위하고 말았는데, 고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사하면서 고종황제의 장수를 비는 의미로 '덕수'라는 궁호를 올렸다. 그때부터 경운궁이 덕수궁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덕수궁 안내 자료>


 수문장 교대의식이 한창인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시청광장과 맞붙은 담장 옆 덕수궁 연못


 함녕전과 덕흥전, 함녕전은 고종의 편전이자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명성황후 승하 후, 황후를 두지 않아서 별도의 내전이 없다. 덕흥전은 외국사신들을 접견할 목적으로 지은 전각이다.


  함녕전 후측면


  함녕전과 덕흥전 뒤뜰, 내전의 후원처럼 아기자기한 꽃으로 분위기를 내고 있다. 모란꽃이 한창이었다.


  아름다운 봄풍경을 훼살짓는 4월의 짖궂은 바람


정관헌, 덕흥전 뒤에 있는 건물로 러시아 건축가가  한옥과 양식을 절충하여 설계하였으며, '조용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고종황제의 휴게공간이었다.


  준명당과 죽조당, 준명당은 석어당과 함께 중화전 건립 후 선조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던 전각. 


  석어당, 선조가 임시로 거처했을 때부터 사용하던 편전으로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다시 중건하였다.


석어당과 정전인 중화전


  석조전. 대한제국의 대표적 서양식 건축으로 1910년 완공되었다. 1919년 고종 승하이후 일제에 의해 덕수궁이 훼손되는 과정에서 일제의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2009년부터 복원을 시작하여 2014년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중화전, 덕수궁의 정전


  함녕전 덕흥전의 바깥 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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